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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구호와 한국무용의 만남, 그리고 한국무용의 현재: 서울시무용단 <일무>

서울시무용단이 지난 5월 19일부터 22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올해 첫 공연으로 <일무>를 올렸다. 2019년 서울시무용단 예술감독으로 부임한 정혜진 감독은 <놋-N.O.T>, <허행초>등을 공연하며 오랜 예술감독의 공석으로 침체기를 보내고 있던 서울시무용단에 활기를 불어넣고자 했으나 이듬해인 2020년 전 세계를 덮친 코로나 팬데믹으로 임기 두 번째 해의 절반 이상을 공연을 중단한 채 흘려보내야 했다. 거리두기가 해제되면서 공연계도 평상시로 돌아간 듯 보이지만 여전히 언제 확진자가 발생할지 모르는 위태로움이 남아 있다. 


그러나 지난해 <감괘>에 이어 올해 <일무>를 차례로 대극장 무대에 올린 데에서는 연임이 결정되고 나서 한층 편안하게 2기를 맞이한 예술감독의 자신감이 엿보인다. 또한 <일무>는 그동안의 대극장 공연이 이틀간 2회차의 공연으로 진행되었던 것과 달리 나흘간 4회차의 공연을 선보였는데, 공연을 올린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이 좌석수가 3천 석이 넘는 국내 최대 공연장임을 고려한다면 이 공연에 대한 기대치가 어느 정도인지도 짐작이 가능해진다. 이는 ‘서울시무용단과 정구호의 만남’으로 연출가의 이름을 공연의 홍보 포인트로 삼은 데에서 읽을 수 있듯이 ‘정구호가 연출한 한국무용 무대’에 대한 믿음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극한의 속도감으로 재탄생한 새로운 일무


‘일무(佾舞)’는 조선시대 종묘나 문묘의 제사의식에서 여러 사람이 줄을 지어 추는 춤으로, 제사 대상의 지위에 따라 팔일무, 육일무, 사일무, 이일무로 인원 수가 달라진다. 문덕(文德)을 상징하는 문무(文舞)와 무덕(武德)을 상징하는 무무(武舞)로 나뉘며, 문무는 왼손에 약(箹, 피리)과 오른손에 적(翟, 꿩깃)을, 무무는 왼손에 방패 모양의 간(干), 오른손에 도끼 모양의 척(戚)을 들고 춘다.


인터미션 없는 총 3막으로 구성된 공연은 1막에서는 ‘일무연구’라는 부제로 문무와 무무를, ‘궁중무연구’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2막에서는 춘앵무와 가인전목단을 보여준다. 부제마다 ‘연구’가 붙어 있는데, 각 막은 다시 두 개의 장으로 나뉘어 1장에서는 전통적인 일무와 궁중무를 추고, 2장에서는 여기에 약간의 변형을 가한 창작무로 무대를 이어간다. 2막에서 눈에 띄는 것은 춤도 춤이지만 화문석을 상징하는 무대 상단 조형물이다. 



이러한 조형물은 이제는 ‘정구호 스타일’의 중요한 시그니처가 되었지만, 기존 전통춤 공연에서는 무대 바닥에 깔려 있던 화문석을 무용수들의 머리 위 허공으로 끌어 올림으로써 무대 공간을 재배치하고 재의미화한다는 점에서 한국무용 무대에 ‘정구호 스타일’을 심는 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정구호식 진보’로도 읽을 수 있다. 이는 이미 한국무용 무대의 새로운 기준이 된 ‘정구호 스타일’이 스타일 면에서만이 아닌 진보의 방향을 결정하는 데까지 나아갈 수 있다는 의미다.


2막까지만 보고 안무에 현대무용가 김성훈과 김재덕의 이름이 올라 있는 데 대해 고개를 갸우뚱했다면 3막에서는 비로소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신일무’라는 부제에서 짐작할 수 있듯 기존의 일무와 다른 새로운 버전의 일무가 전개되는데, 1막과 2막이 ‘연구’라는 콘셉트를 통해 전통무에 현대적인 감각을 한 스푼 첨가한 무대라면 3막은 일무를 약간 변형한 정도가 아닌 아예 해체해서 다시 만든 수준이다. 

<일무>라는 공연 제목에서 볼 수 있으리라고 상상하지 못한 스피디한 춤과 살아 있는 생물처럼 움직이는 대형의 변화, 이를 뒷받침하는 음악의 에너지가 스타디움처럼 너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무대를 가득 채운다. 55명의 무용수는 이 순간을 기다려 왔다는 듯 응축된 에너지를 분출시키며 관객들을 극한의 속도감 속으로 데려간다.


‘정구호 스타일’이 가리고 있던 질문과 그 대답

 

몇 년 전 한 간담회에서 목격한 장면이다. 지역에서 활동하는 예술가가 창작 관련 지원제도의 어려움 중 하나로 지역의 주변화를 꼽았다. 지역 예술가가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가지고 지역문화재단으로 대표되는 제도의 문을 두드렸을 때 처음 부딪치는 벽은 “서울에서도 이와 같은 것을 했는가?”라는 질문이다. 즉, 서울에서 비슷한 시도가 있었다면 비교적 수용되기가 쉽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지난한 설득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이 과정에는 서울을 활동 거점으로 하는 예술가라면 거치지 않을 단계인 ‘서울에서도 하지 않은 시도를 굳이 지역에서 해야 하는 이유’ 같은 것이 추가된다.

 

서울과 차별화되는 사업이 지역에서 행해질 경우 대개 ‘지역 특성화’라는 명분이 더해지며, 극장 인프라가 수도권, 그중에서도 서울에 집중되어 있는 공연예술 분야에서는 이 같은 지역의 주변화가 더욱 두드러진다. 다르게 말하면 서울의 중앙화라 할 수 있는데, 서울에서 올려지는 공연은 창작활동의 새로운 기준이 되어 지역으로 전파된다.

 

위 단락에서 ‘서울’을 ‘국립’으로만 바꾼다면 이러한 현상은 한국무용 무대에서도 비슷하게 관찰된다. 국립무용단의 새로운 시도는 곧 한국무용의 새로운 기준이 되어 지역무용단으로 퍼져나간다. 그리고 국립무용단의 새로운 시도 가운데 가장 성공적으로 자리잡은 ‘정구호 스타일’은 ‘무용연출가’ 정구호의 의도와 상관없이 그러한 한국무용의 현재에 대한 시금석이 되고 있다.

 


정구호는 2013년 국립무용단의 <단(壇)>과 <묵향>을 시작으로 <향연>(2015), <춘상>(2017), <산조>(2021)를 차례로 연출하며 무용연출가로서 입지를 다졌고, 지난해에는 경기도무용단의 <경합>, 올해는 서울시무용단의 <일무>를 연출하며 자신의 무용 무대가 국립무용단에만 머물러 있지 않음을 보여주었다. 어떤 이들은 세종문화회관의 안호상 사장이나 경기도무용단의 김상덕 예술감독에게서 국립무용단과의 연결고리를 읽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향연>등에 쏟아진 대중관객의 찬사와 입증된 티켓파워, 이후 그의 손길이 닿은 공연들이 하나 같이 ‘현대적’, ‘감각적’, ‘미니멀’, ‘세련미’ 등의 수식어를 달고 홍보되고 있는 현장 분위기를 살펴보면 그동안의 한국무용이 품고 있던 콤플렉스가 무엇이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정구호는 낡고 고루하고 촌스럽고 현대인들의 외면을 받으며 사장되어 가던 한국무용에 호흡기를 달아준 구원자다(일각에서는 그를 ‘2010년대 한국무용계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로 기록될 사람’이라고 칭하기도 한다).



정구호는 2015년 국립무용단의 <향연>을 연출하며 1막에 나오는 일무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는데, 복기해보면 그가 <향연>보다 2년 앞서 <단(壇)>을 연출할 때부터 일무는 그의 아이디어 속에서 이미 씨앗으로 자라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정구호의 한국무용 세계는 이제 <향연>과 <일무>를 넘어 다음 단계로 확장될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무용 무대는 ‘정구호 스타일’로 낡음과 고루함과 촌스러움에서 벗어나 어떤 세계를 열어가고 있는가. 그동안 ‘정구호 스타일’이 가리고 있던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고민해야 할 때다.

 


글_ 윤단우(공연칼럼니스트)

사진제공_ 서울시무용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