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수는 한국춤에 있어서 컨템포러리 댄스의 경향을 가장 잘 담아낸 한국무용가이다. 전통춤의 근간을 중시하면서도 이를 해체한 다양한 춤사위로 탈경계의 성향을 오롯이 보여주는 동시에 자신감을 바탕으로 또렷한 색깔을 완성했다. 현재 김윤수무용단 대표 및 예술감독으로 활동하면서 무용수, 안무가, 교육자로서의 역할을 병행하고 있다. 무용을 시작한 이후 국립무용단과 대가들의 작품에서 주역을 맡아 실력을 인정받았고, 인천시립무용단 예술감독과 2018 평창문화올림픽에 올린 공연에서 안무 및 협력연출을 통해 역량을 과시했다. 춤에 대한 성찰을 게을리하지 않는 그의 춤에 매료된 많은 후학들과 관객들은 또 다른 파격을 통한 변신을 기대하고 있다.
연기에서 무용으로의 전환
김윤수는 1970년 생으로 올해 52살이 되었다. 그가 태어난 지 9개월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지만 미대를 가고 싶어 하셨던 아버지의 영향인지 어린 시절 그림 그리길 좋아했다. 중학교 때는 영화에 미치기도 하는 등 예술 쪽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산업디자인을 공부하고 있을 때 어머니가 탤런트 심양홍 씨와 친분이 있어서 여의도 연기학원을 데리고 가시면서 본격적으로 예술계의 길로 접어들었다. 동성고등학교 시절 연기학원에서 최민수의 엑스트라를 하기도 했고, 탤런트 이상아와 주연을 맡을 기회도 있었으나 담임 선생님의 만류로 포기하기도 했다. 이후 심양홍 선생이 부전공으로 무용을 종용해서 고2 때 처음 무용을 시작하게 되었다. 초반에는 발레만 배웠으나 학원 선생님이 정재만 선생님께 가볼 것을 권유했고, 정재만 선생님은 한국무용을 전공하라고 하셨다. 당시 남자들만 20여 명이 모여 잠실종합체육관에서 연습하는 모습을 보고 무용은 그림과 연극, 연출, 그 이외에도 특별한 무엇인가를 합친 형태라는 느낌을 받았다. 당시 받은 감흥을 잊을 수 없었고 이때부터 연기학원과 무용을 병행하게 되었다. 무용으로 경희대에 입학했고, 이후 경영대학원 문화예술경영전공 졸업했다. 대학 시절 같은 무용의 길을 가고 있는 아내 임성옥과의 로맨스도 빠질 수 없다. 연기와의 인연은 대학교 시절 군대 제대 후 무용을 포기하려고 하면서 <지하철 2호선> 1기 멤버가 되었을 때 이어지기도 했다.
세 명의 스승님들이 남긴 유산
김윤수는 세 분의 스승에게서 가르침을 받았다. 그의 가장 큰 스승은 정재만 선생님이다. 처음으로 한국무용을 배우게 된 계기도 그렇거니와, 늘 30분 전부터 바로 몸을 푸시던 모습도 기억에 남는다. 정재만 선생님은 고3인 김윤수에게 승무 전수생으로 올릴 테니 연기를 그만두라 하셨고, 1년 반 사이에 6개의 작품을 주셨다. 이후 춤에만 전념하며 1989~90년도에 차수정, 배성한, 김충한, 김상덕과 함께 승무를 6개월간 연습하며 28분짜리 전수자 발표회를 가졌다. 그만큼 정재만 선생님은 김윤수를 아꼈다. 경희대학교에 입학하게 되면서 김백봉 선생님을 사사했다. 그는 김백봉 선생님의 <선의 유동> 작품을 좋아한다. 코어로 모이는 에너지가 행성의 에너지처럼 보이며 마치 눈의 결정체를 보는 듯 했고, 일체의 서사가 없으나 아름다움이 전해졌다고 한다. 사회에 나와서는 김현자 선생님에게도 영향을 받았다. 결국 김백봉 선생님에게서는 우주를, 정재만 선생님에게서는 인간과 사랑을, 김현자 선생님에게서는 전위성과 세상을 바라보는 이성적 사고를 배웠다. 그가 느끼기에 세 분은 모두 우주와 인간을 다 가진 스승님이었다. 위대한 스승님들은 김윤수의 정신적 지주가 되었다. 하지만 여기에만 머문 것이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기 위해 정진했다.
다양한 수상으로 실력을 인정받다.
김윤수는 1988년 고등학교 시절 한국무용협회 주최 콩쿠르 학생부문에서 <초원> 작품으로 수석상을 받은 이후, 1995년 제1회 전국재인춤경연대회 신인부 창작부문 최고상인 조택원상을 수상했다. 또한 제1회 강원무용제에서 <걷는새Ⅱ-살아남은 자의 슬픔>으로 최우수상, 제6회 전국무용제전에서 내무부장관상, 제3회 한국안무가 경연 페스티벌에서 금상을 수상하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2000년대에 들어서서는 2001년 네 번째 평론가가 뽑은 젊은 안무가 초청공연에서 <만찬>으로 최우수 안무자 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2003년에는 CID-UNESCO 러시아 문화장학재단 주최 제2회 국제 안무가 콘테스트 (International Choreography Contest)에서 <망망>으로 최고상을 수상했다. 이후 2015년에는 인천시립무용단 단장으로서 그가 안무한 정기공연작 <가을연꽃…(秋蓮)>으로 김백봉 예술상을, 2016~17년에는 정동극장 <바실라> 작품으로 제 32회 한국 국제 관광전 최우수 홍보상과 국민통합 우수 문화콘텐츠 공연부분 대통령표창을 받았다. 작년에는 무용가로서는 뜻 깊은 Creative Artist상을 수상하는 등 다양한 수상을 통해 그 능력을 널리 인정받았다.
그는 신무용과의 운명적 학습내력이나 ‘국립’이라는 관립단체가 갖는 ‘닫힌 기운’을 파기하고, 스스로의 예술적 정체성을 향해 용감하게 질주해나간다. 작품을 창작하는 데 있어 김윤수는 늘 자신을 묶어둘만한 ‘모태적’ 또는 ‘원죄적’ 성향을 과감하게 떨쳐버리고 언제나 새롭게 태어나고자 치열하게 몸부림친다. - <댄스포럼>
1999년에 발표한 <걷는새Ⅲ>는 일상 속에 갇힌 존재들의 상황을 강한 흑백의 분위기 속에서 일종의 알레고리로서 보여준 작품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에 대해 평론가 김태원은 김윤수의 이러한 춤에서 한국춤동작/현대무용적 춤동작의 구별을 갖기는 힘들다고 평한다. 대신 모두 자신의 창작의지와 구성에 ‘호응하는’ 움직임의 선택과 사용이라는 공통분모만 있을 뿐이다. - 평론가 김태원, 월간 <춤>
특히 김윤수 개인의 춤 학습 내력과 활동에서 볼 때 <만찬>에서 시사된 안무의 경향은 매우 급진적인 것이었다. 신무용의 종가(宗家)를 경유했고, 또 대체적으로 보수성을 띤 국립무용단에 몸담고 있다는 김윤수의 태생적 조건과 현재적 위치에서 볼 때 <만찬>에서 보여준 현대적 안무 감각은 한국춤의 새로운 신기원을 추동(推動)하는 큰 움직임으로 점쳐볼 수 있는 것이다. - <댄스포럼>내가 높이 사고 싶은 것은 작품의 수준도 수준이지만 김윤수 예술감독이 이런 패기를 갖추고 있으며 거기서 그치는 게 아니라 그것을 예술적으로 담아낼 수 있는 능력을 겸비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감히 한국춤 기반의 무용극은 그의 손에 의해 송범 선생 이후 역사적으로 진행되어 오던 흐름을 압축하여 한 단계 높은 수준에 등극(登極)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 평론가 문애령 <춤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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