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팬데믹이 한창이었던 2020년과 2021년에 어려운 상황에서도 한 가지 고무적인 예술적 특질이라고 한다면 컨템포러리 한국무용이 완전하게 정착되고 확산되었다는 것이다. 현대무용과 발레에 이어 다소 늦긴 하나 더 늦지 않은 상황에서 이루어낸 성과라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이는 2010년대 중엽부터 컨템포러리 한국무용에 대한 실현을 꾸준하게 해온 창작자들의 기여에서 크고 작은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그중에서 장혜림을 빼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현재 한국무용계에서 장혜림이란 이름은 상당히 널리 알려져 있다. 장혜림의 대단히 빠른 창작적 성장의 이면에는 운을 실력으로 뻗어나가게 하는 장혜림만의 힘으로부터 비롯된다. 그 근간에는 그녀의 춤에서 느껴지듯 차분하고 진중하고 밀도있게 탐구하고 시도하고 실현해가는 창작자로서 올곧은 태도가 자리 잡고 있다. 이미 많은 것을 쌓아왔지만 여전히 30대 중반에 불과하다는 것 또한 그녀만의 경쟁력이다. 2021년 12월 22일 서초동 모처에서 그녀를 만났다.
제ver.2〈타오르는 삶〉 ⓒBAKI
춤이 마냥 좋았던 아이
1986년 인천에서 태어난 장혜림은 초등학교 3학년 때 무용반에서 율동을 배우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춤을 시작하였다. 5학년 때 서울로 전학을 가서도 춤을 너무 배우고 싶은 마음에 서초무용학원이라는 곳을 찾아갔는데, 당시 그곳에 좋은 무용선생들이 많았으며 그들에게서 제대로 춤을 배울 수 있게 되었다. 춤을 전공으로 하는 게 좋겠다는 무용선생들의 말을 듣고 자연스럽게 선화예술중학교에 입학하였다. 아주 어려서부터 집중적으로 춤을 배웠던 또래들에 비해 늦은 나이에 무용을 배워서인지 입학 당시에는 중하위권으로 들어간 것 같다. 하지만 모든 춤사위를 처음 접하는 입장이었던 장혜림으로서는 배우는 과정이 너무 재미있고 즐거웠다. 그러다 보니 얼마 지나지 않아 실기 1등으로 급상승하기에 이르렀다. 흥미와 노력이 자질과 만났을 때 얼마나 시너지 효과를 거둘 수 있는지 하나의 선례일 것이다. 국내 최고 수준의 예중에서 단시간에 1등을 차지한다는 것은 결코 흔한 일은 아니다. 선화예술고등학교를 거쳐 2005년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실기과 한국무용 전공으로 입학함으로써 소위 말하는 엘리트 코스를 차근차근 밟아갔다.
춤 인생의 첫 번째 시련은 또 다른 기회로
장혜림 춤 인생에서 첫 번째 시련이라고 한다면, 국립무용단의 정단원에 뽑히지 못한 것이다. 한예종을 졸업한 후 국립무용단 인턴 생활을 2년 정도 한 후 정단원 시험을 치렀는데 그만 시원하게 미끄러졌다. 현재 국공립무용단 대부분의 고질적인 문제라고 한다면 기존 단원들이 축적되어 있어 신입 단원이라는 새로운 수혈을 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장혜림이 부족하다기보다는 우리 무용계의 현실이 그렇다고 할 수 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듯 쭉쭉 올라갔던 춤 인생에서 느닷없이 앞이 막히는 느낌이 들면서 처음으로 미래에 대한 고민이라는 것을 하게 되었다. 무용계 현장을 살펴보니 개인 활동을 하려면 안무가로서 자리 잡는 것이 필요하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2012년에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차세대안무가클래스’에 선정되어 창작에 대한 여러 가지를 접할 수 있는 경험을 하였다. 당시 예술감독은 안애순이었는데 한때 우리나라를 대표할 만한 안무가로부터 직간접적으로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있었다. 그리고 2014년 자기만의 무용단인 99 Art Company를 창단하여 <븘나올>이라는 작품을 선보임으로써 안무가로서 출사표를 냈다.
운으로 시작하여 실력으로 뻗어 나가다
장혜림은 상당히 운이 좋은 케이스로, 2015년에 크리틱스초이스에서 <숨그네>를 출품하여 최우수상을 받았으며 그 다음 해에는 크리틱스초이스 수상자 초청으로 <심연>을 초연하여 자신의 이름을 본격으로 알릴 수 있었다. 2015년 크리틱스초이스 당시 그녀가 최우수상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상대적으로 창작력이 약한 해였던 데다가 컨템포러리 한국무용에 대한 가능성을 높이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그 자체로 훌륭했다기보다 채 발굴되지 않은 재능을 알아보고 상을 준 측면이 있다. 이에 보답이나 하듯 장혜림은 공연마다 수직 상승하는 창작력으로 지켜보는 평론가를 기쁘게 하였다.
2016년에는 창작산실 올해의신작에 선정되어 <침묵>이라 작품을 발표할 수 있었다. 창작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이렇게 주요 지원프로그램에 선정된 것은 이례적인데 당시 새로운 한국무용 창작자에 대한 필요와 요구가 얼마만큼인지 가늠할 수 있다. 그리고 2019년 국립현대무용단의 스웨덴커넥션의 일환으로 <제(祭)>의 첫 번째 버전인
배정혜, 국수호, 조흥동이 눈여겨 본 무용가
장혜림은 한국무용의 대가들로 일컬어지는 무용가들과도 인연이 닿았다. 우선 배정혜와는 사제 간으로 알려지는데, 얼마 전 <제 ver.2_타오르는 삶>에 스승을 특별출연으로 모시기도 했으며 2018년에는 스승의 ‘신(新)전통 공연’에 그녀가 출연하기도 했다. 장혜림이 창작 작품에 주역무용가로 참여한 경우도 있다. 2018년에는 국수호 안무의 <무위>에서 주역으로 출연한 바 있으며, 더 일찍이 2016년에는 국립국악원에서 조흥동 안무의 <처용>에서 주역을 맡기도 하였다.
배정혜, 국수호, 조흥동은 자기 예술에 대한 프라이드가 높은 무용가로 섣불리 누군가를 불러들이거나 아무 곳에나 출연하진 않는다. 이러한 대가들과 공연이라는 접점을 갖고 있다는 것 자체가 장혜림이 한국무용계에서 어느 정도 인정받고 있는지에 대한 방증이다.
장혜림의 대표작 셋
<심연(深淵)>은 2016년 크리틱스초이스에서의 초연 후 곧바로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에 초청되어 한층 탄탄해진 작품력을 선보였다.
10월 15-16일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에서는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의 일환으로 장혜림의 <심연>이 재공연되었다. 한국 고유의 정서인 한(恨)을 여러 가지 춤 이미지로 풀어가는 작품으로, 탄탄한 기본기를 갖춘 여성무용가들이 차분하고 날렵한 춤의 선형을 유지한다. 잔잔하고 유려해 보이는 수면 아래에 묵직한 기류가 동요하듯 일렁인다. 몇 달 전 초연에 비해, 춤의 강약과 장단을 훨씬 능숙하게 조절하였다는 점이 작품의 몰입도를 높였다. 특히 ‘하나가 전체 같이, 전체가 하나 같이’ 움직이는 일사불란한 군무는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여덟 명의 여성무용가들이 모두 장혜림의 분신처럼 추었다는 점에서 안무가로서의 역량을 확인시킨다. 한국무용의 기본을 바탕으로 한 컨템포러리댄스를 제대로 그리고 끈질기게 추구하는 젊은 창작자를 찾기 힘든 현 상황에서 장혜림의 등장은 주목할 만하다. <춤> 2017년 1월호
심연은 이후에도 여러 차례 리바이벌 되었는데 2021년 여름에는 남자버전으로 획기적인 변화를 거쳤다. 여성성이라는 재질이 강한 장혜림의 특징이자 한계를 벗어나는 시도라는 점에서 고무적이며, 시도에 그치는 것이 아닌 새로운 창작적 확장성을 확인시켰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실제로, 8월 28-29일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있었던 제2회 ALtimeets 정기공연에서 펼쳐진 <심연> 남자버전의 경우 익숙하지 않았던 초반에는 여성버전에 비해 차분한 밀도와 유려한 흐름 그리고 풍부한 흡입력 등에 있어서 약점을 드러냈으나 한 단계씩 상승하는 에너지와 동선의 확장성으로 말미암아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외향적인 역동성마저 느껴지게 하였다. 30대 중반에 들어선 장혜림은 언제나 적절한 타이밍에 새로운 시도로 창작적 스펙트럼을 넓혀 왔는데 이번 <심연> 역시 그 리스트에 추가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2016 창작산실 올해의신작에서 발표한 <침묵>은 헤르타 뮐러의 소설 ‘숨그네’에서 영감을 얻은 <숨그네>와 <심연>에 이은 연작으로 장혜림의 또 하나의 대표작으로 언급될 수 있다.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공연은 11월 18-19일 나인티나인 아트컴퍼니의 <침묵>이 문을 열었다. <침묵>은 마음 속 진실을 삼킨 채 침묵할 수밖에 없는 소외된 사람들을 동시대적인(컨템포러리한) 감각의 한국창작무용으로 그려나가고 있다. 말라위에서 온 흑인여성 엘라가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하고 진솔하게 내뱉는 가운데, 일곱 명의 여성무용수는 끊임없이 현 상황을 자문하면서 때론 저항하는 움직임을 전개한다. 그녀들은 기본 동작을 집요하리만큼 발전시켜나간다. 강약, 장단, 시간차, 대열변화 등을 통해서 말이다. 기본에 충실하면서 이를 탄탄하게 발전시켜가는 안무 스타일은 긍정적인 성과를 낳기 마련이다. 장혜림은 최근 무섭게 상승세를 타고 있는 창작자다. 한국무용계에서 동시대적인(컨템포러리한) 창작을 제대로 실현하는 젊은 창작자가 많지 않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춤> 2017년 2월호
〈Burnt Offering〉ⓒTilo Stengel
<제(祭)>는 가장 두드러진 변화를 거쳐온 작품이다. 초연은 2019년 스웨덴 무용수들과 함께 한 <제(祭_Burnt Offering)>로 시작한다. 이 작품으로 같은 해 이탈리아 Operaste Festival에 초청되기도 하였다. 2020년에는 한-러 상호문화교류의 해를 맞아 러시아 Open Look Festival에서 <제(祭) II>를 선보였다. 그리고 2021년 스승인 배정혜와 함께 한 <제ver.2_타오르는 삶>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중에서 초연 버전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국립현대무용단의 ‘스웨덴 커넥션 II’는 3월 29-31일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총 4회에 걸쳐 펼쳐졌다. 3개의 작품 중에서 장혜림의 <제(祭_Burnt Offering)>는 여섯 명의 스웨덴 무용수들과의 협업으로 완성되었다. 한국과 스웨덴이라는 국가적, 언어적, 문화적, 인종적 차이뿐 아니라 한국무용과 현대무용이라는 간극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지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상존했던 작품이었으나 결과적으로 매우 성공적인 협업 작품을 완성함으로써 ‘스웨덴 커넥션’이라는 3년여의 중장기 기획의 의미와 가치를 높였다. 특히 스웨덴 무용수들의 신체 움직임에 한국무용의 원리적 특질을 어떻게 내재시킬 수 있을 런지가 관건이었는데 상당히 고무적인 성과를 거두었다. 이는 워밍업으로 승무와 살풀이춤을 집중적으로 트레이닝함으로써 가능할 수 있었을 것이다.
작품에서 두드러진 요소는 아무래도 안무 그 자체다. 이 시대 제의의 형태와 의미에 대해 탐구하는데 있어서 일상에서 반복되는 노동을 하는 노동자들의 삶을 투영한다. 실제로 일곱 명의 스웨덴 무용수들은 탄광 노동자를 떠올리는 작업복과 안전모 그리고 숯검정으로 분장한 채, 노동으로 태워진 삶을 일련의 춤사위로 구현한다. 그 춤사위가 상당히 독특한데 낮은 무게중심, 순화적인 호흡, 자연스러운 디딤과 어름 등은 한국춤의 본질이지만 이를 서구 무용수들의 몸으로 실현하는데 있어 좀 더 외향적이고 피지컬적인 요소까지 함양하게 되었다. 우리 무용의 세계화 조건이 보편성과 독자성을 균형 잡기라면, 그에 대한 한 예를 장혜림의 <제(祭)>에서 찾을 수 있겠다. <춤> 2020년 2월호
〈GAL-GAL〉ⓒBAKI
창작이란 나에게 주어진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과정
장혜림은 컨템포러리 한국무용의 본격화를 이끄는 안무가라는 타이틀과 함께 자기만의 예술적 특질을 진중하게 새겨왔다. 그것은 여성성 짙은 흡입력, 자연스러우면서도 창의적인 동작성, 정중동, 구조적 축적, 세련미와 절제미 등으로 구체화 될 수 있다.
‘장혜림에게 창작이란 무엇인가’란 물음에 “창작이란 나에게 주어진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과정”이라고 답한다. 창작자에게 무언가에 대한 호기심이나 흥미는 매우 중요하며 그것을 집요하게 풀어나가는 과정은 더더욱 중요하기 마련이다. 실제로, 장혜림은 자신의 창작적 폭과 깊이를 확장하기 위한 끊임없는 시도나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우선, 레퍼토리를 그대로 리바이벌하기보다는 변화하고 수정하고 확장하는 과정을 이어왔는데, <심연>의 남자버전이라든가 여러 변화를 거쳐온 <제(祭)> 등이 좋은 예가 될 것이다.
또한, 새로운 방법론을 학습하여 자신의 춤의 범주를 확장하는 데에도 주저함이 없다. 2019년 말에는 독일 무용가인 퍼트리샤 카롤린 마이의 ‘GAL-GAL’이라는 메소드를 받아들여 동명의 작품으로 실현하기도 했는데, 이는 히브리어의 ‘파도’라는 뜻에서 알 수 있듯 내적 동기로부터 발현된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연속적으로 행하면서 발전시켜가는 형태를 띤다. 자연스러운 시작이지만 반복을 거쳐 발전되어가는 움직임의 절정에 이르러서는 남자무용가도 견디기 힘들 정도로 극단의 에너지를 요구받기에 이르렀다. 이에 대해 장혜림은 ‘자신의 몸이 행할 수 있는 움직임의 한계를 시험하는 기회’였다고 한다.
<침묵>ⓒBAKI
임인년(壬寅年) 새해에도 만 36세에 불과한 장혜림은 창작자로서는 대단히 일찍부터 두각을 나타냈고 주목을 받아왔다. 시작에는 운이 많이 작용한 측면이 없지 않으나 그 운조차 잠재된 가능성에 대한 평론가의 심미안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후 수직 상승하는 창작력으로 뻗어나가면서 우리 무용계에 컨템포러리 한국무용으로의 완전한 정착을 이끌었다.
충분히 이름을 알린 상황에서 자신의 방법론에 안주할 법도 한데, 창작적 내연 확장을 위한 시도와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리고 무엇보다도 창작자로서 자기 페이스를 차분하면서도 묵직하게 이어간다는 점에서, 보다 중요한 창작자로 성장할 가능성은 활짝 열려있다.
글_ 심정민 (무용평론가·비평사학자)
사진제공_ 99artcompan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