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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현장

춤작가

감각적 이미지로 한국창작무용의 외연을 확장시킨 안무가 남수정


 

오늘날 한국 전통무용과 창작무용은 서로의 영역을 고수하고 있다. 창작무용이 현대무용화 되면서 우려의 소리도 크지만 한국무용가 남수정은 확고한 견해를 보인다. “한국의 전통무용은 철저히 역사성에 기반한 ‘있는 그대로의 춤’이며 지역과 세월, 거기서부터 내려오고 있는 오랜 춤의 변화가 잘 녹아있는 자연스러운 현대성을 지니는 것이기도 하다. 이에 비해 창작무용은 개인의 자유로운 춤의 주제와 기술적 표현을 허용한다는 점에서 현대무용과 밀접한 관계를 지닌다. 현재의 한국 창작무용은 기술적으로나 주제를 표현하는 방식에 있어서 한국전통무용과 현대무용의 그 중간 어디쯤 있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똑부러지는 성격으로 자유롭고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보이는 남수정은 현재 용인대학교 교수, 남수정무용단 대표로 활동하면서도 무용계와 뮤지컬계를 오가며 창작 작업을 해왔다. 

 

  

<닥, 천년지설>

 

큰 시련 없이 54년을 이어 온 무용가의 길 

 

1965년생인 남수정은 현재 50대 후반에 접어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나이보다 젊다. 외모뿐 아니라 생각이 젊기에 나타난 결과이다. 자신의 창작정신과 대중에 대한 이해는 신선한 감각으로 순수창작품과 뮤지컬에서 빛을 발했다. 명무(名舞)의 길로 접어든 지는 54년이나 되었다. 원로라고 하기에도 부족함이 없다. 4남매의 장녀였던 그녀는 배우를 꿈꿨던 모친의 권유로 4세 때 동네 학원에서 무용을 시작했다. 초등학교에 무용부가 있어서 6년간 학교에서 무용을 했고, 학원과 병행했다. 학원 선생님에게 칼춤, 장고춤, 북춤을 배웠다. 

 

이후 그녀는 예원학교-서울예고-이화여대와 대학원을 거쳐 1986년 서울예술단 창단멤버로 입단한 이래 직업무용수의 길을 걸었다. 엘리트 코스를 거쳐 왔기에 큰 어려움이 없는 듯 보이지만 아버지의 반대는 하나의 시련이었다. 엄한 아버지의 반대가 심해 예원학교 입학 때는 어머니와 몰래 집을 나와 시험을 치루기도 했고 대학교 때는 등록금을 대주지 않겠다고 해 마음고생도 했다. 스스로 경제적 지원 없이 무용을 하겠다는 일념으로 대학 4학년 때 연수단원으로 서울예술단에 입단했다. 고등학교 은사였던 김명숙 선생이 서울예술단으로 가면서 자연스럽게 따라갔고, 입단 후에도 야간의 교육대학원과 병행하며 학업과 실기의 양쪽 끈을 놓지 않으며 서울예술단의 간판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1기였던 남수정의 동기로 전은자, 이미경, 안주경, 남경주 등이 있다. 36세였던 2001년도에 현재의 용인대학교 무용과 교수로 오게 되며 더욱 활발한 작업을 하게 된다.   

             

  

<서기 3004년의 산책 - 기억 속의 옛 집> 

 

안무의 중점은 주제를 표현하는 전체적인 컨셉과 장면 표현방식의 구성

 

그녀는 자신의 작품에 대한 주관이 뚜렷하다. 개인적인 작품은 주제를 표현하는 전체적인 컨셉과 장면 표현방식의 구성에 중점을 둔다. 전체 컨셉이 정해지면 처음부터 끝까지 이루어지게 되는 춤 배열의 장면별 움직임과 인원 배치 등 표현과 관련된 구성을 우선적으로 생각함과 동시적으로 미리 고안해 둔 움직임을 보탠다. 생각을 형상화하고 구체화하는 직접적인 안무를 수행해가는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예기치 않은 오류나 무용수의 표현성 문제점 등으로 즉흥적으로 수정 보완하는 작업도 필수적으로 뒤따르는데 이는 작품의 완성도를 높여주는 역할을 한다. 남수정은 이처럼 치밀한 과정을 거쳐 작품을 완성하는데, 그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1988년 <새불>로 데뷔한 그녀의 첫 안무작은 무용인의 내면세계를 다루며 포스트 극장에서 가졌던 <산이>였다. 이후 자유소극장에서 가졌던 <볕>은 이상봉 의상에 영상까지 사용하며 인생에 있어서의 볕을 표현했다. 양지보다 더 화려한 볕을 의미하며 당시에는 현대무용 같다는 평을 듣기도 했다. 이밖에도 대중가요 <동백아가씨>가 흐르며 시작되던 남수정의 창작춤 <마음과 가슴>이 있고 한일댄스페스티벌 일본 동경공연을 가진 <수조>, 세계무용연맹주최 아시아 댄스마켓 참가작 <수조Ⅱ>가 뒤를 이었다. 2000년도에는 한국문예진흥원 신진무용가 부문 지원을 받아 <남수정 생명의 춤 2000–수조/살부신 살>을 선보였다. 그녀의 작품들은 <수조>, <살부신 살>, <사람의 물>, <새봄을 위한 무브먼트>, <우주행>, <서기 3004년의 산책- 옛 집을 만나다>, <부아산객>, <달 끝의 기억>, <모란기억>, <음력여행-화장>, <Memory>, <부아산객(負兒山客)-부아산에 핀 철쭉>, <닥, 천년지설>, <마음과 가슴> 등 다채로운 스펙트럼을 보인다.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작품 속에서 창작성은 빛을 발했고, 창작 작품뿐만 아니라 최현의 허행초, 최현 기본무, 진도북춤(배꽃춤판)/ 故 박병천, 장검무(배꽃춤판)/ 故 이매방 등의 작품에 출연하며 탄탄한 전통춤의 기본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녀가 가장 애착을 갖는 작품인 동시에 대표작은 2007년 제28회 서울무용제 경연대상에서 작품 대상, 남자연기상, 음악상, 미술상을 수상한 <닥, 천년지설>이다. 밀도감 있는 춤 구성과 안정된 무대구성, 단원들의 탄탄한 기량이 어우러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작품이 탄생한 배경에는 2000년부터 축적해 온 많은 솔로작, 소품, 개인공연 등을 무대에 올려온 점과 어머니의 갑작스런 죽음이라는 삶의 경험이 크게 작용하였다. 그리고 안무자 자신이 10년 동안 체험해 온 실험적 오브제 한지에 대한 주제 탐색, 이를 구현하는 데 이상적이었던 조명, 영상, 의상 스텝 선정과 활약, 매일 6시간씩 꼬박 3개월을 의기투합하여 연습한 무용수들의 수고까지, 혼신을 다해 모든 노력을 총합한 결과의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달 끝의 기억> 

 

중심을 이루는 주제는 인생과 삶, 가족

 

한국에서 나고 자란 그녀에게 한국에서의 삶은 내면적으로 큰 모티브가 되었다. 전통적인 한국성이라기보다는 자신이 살면서 느낀 한국의 시간들에 대한 정서이다. 인생의 삶과 죽음의 순간을 겪어오면서 그 특별한 시간마다 느꼈던 참을 수 없는 감정들이 일상의 물건과 현상이 되어 작품으로 구현되었다. 남수정에게 있어 감정이 묻어 있는 오브제들은 경험과 서정의 상징이 되고 그 상징은 예술로 가시화되어 왔으며 최종적으로는 인류가 느끼는 보편타당한 감정의 메시지로 세상에 드러났다. 부포, 종이 한지, 소반, 그릇, 이불, 책, 거울 등 전통적이면서도 일상적인 오브제들은 2000년대 그녀의 작품에 등장하며 삶의 함축성을 담아내는 역할을 했다.

 

남수정의 삶에 주어진 슬픔과 고통은 예술적인 동기가 되었다. 누구나에게처럼 ‘가족’은 그녀에게도 매우 특별한 존재였으며 생명에 대한 경이로움, 삶 속에 존재하는 믿기지 않는 현상들에 대한 복합적인 감정들을 갖게 해 작품을 만드는 원동력이기도, 위로의 대상이기도 했다. 그 중에서도 가족의 소중함과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은 크게 작품의 주제로 작용했다. 특히 어머니를 위해 만든 공연들이 있고, 단대 박사공연에서도 어머니와 관련된 내용으로 춤을 췄다.  

 

  

뮤지컬 서편제 中 <부양가>

 

뮤지컬 <서편제> 안무로 한국 창작춤의 영역을 넓히다

 

1993년 이청준의 소설이 영화화되며 큰 화제를 일으킨 <서편제>는 2010년 뮤지컬로 재탄생되며 주목받았다. 원작과는 다른 터치와 배우들의 열연으로 2010년 한국뮤지컬대상 8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고 초연의 주인공이었던 차지연이 여우신인상을 수상했다. 2011년에는 더뮤지컬어워즈에서 5관왕을, 2012년에는 예그린어워드에서 4관왕을 차지했다. 남수정이 참여한 <서편제>가 세 번째 공연이다. 이지나 연출가에게 연락을 받고 이 작품에 참여하며 뮤지컬 안무의 포문을 열었다. 이후 2011년 뮤지컬 <광화문 연가>의 안무를 필두로 세 번에 걸친 뮤지컬 <서편제> 안무, 오페라 <춘향전> 안무를 비롯해 서울시무용단 <춤추는 허수아비 v.20>, 서울예술단 <이른 봄 늦은 겨울> 안무 등으로 외연을 확장시켰다.   

 

그녀의 관점에서 <서편제> 뿐만 아니라 뮤지컬의 경우 안무가 어렵다기보다 연출가와 생각이 부딪치는 지점이 있다. 그리고 뮤지컬이나 국공립 단체 작품 안무의 경우에는 수정, 보완 작업은 크게 기대할 수 없기에 사전에 작품을 미리 고안하여 실수 없이 안무하도록 철저히 준비해가는 준비성을 갖추기도 했다. 특별히 뮤지컬 안무는 연출자의 요구를 전적으로 수용해야 하고, 안무에서도 한국무용의 물 흐르듯 흘러가는 선의 유려함을 담을 수 없는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남수정은 뮤지컬에서 대사와 노래가 나눠지는 것보다 송스루 스타일을 선호하고 노래와 춤 파트를 나누지 않고 모든 배우들이 모두 노래하고 춤추는 뮤지컬을 좋아한다. 따라서 그녀는 노래와 함께 하는 댄스 뮤지컬의 연출을 꿈꾼다. 

 

  

<사람의 물> 

 

눈을 즐겁게 하고 여백이 많지 않은 춤 스타일 

 

남수정은 기본적으로 춤은 보는 사람의 눈이 즐거워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다. 그녀는 특히 힘 있고 역동적이고 동작이 큰 춤을 선호한다. 그래서 무용수도 힘이 느껴지는 춤을 추는 사람, 어떤 강한 힘을 버텨내는 무게감이 있는 사람을 좋아한다. 즉, 몸을 움직일 때 흔들림이 없고 근육과 뼈까지 단단한 인상을 주는 그런 몸을 가진 무용수 말이다. 그녀의 안무상 특징 혹은 스타일은 춤에 여백을 많이 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매 박자마다 이를 분석해 동작을 심어놓고 역동적으로 표현한다. 무용수들도 체력이 받쳐줘야 하고, 많은 동작들을 흔들리지 않고 해내기 위해서는 전신의 근지구력과 신체의 유연성을 요구한다. 

 

그녀는 외부에서 의뢰한 안무작들뿐만 아니라 개인 작품에서도 자신만이 지닌 독창적인 동작, 즉 힘 있고 민첩한 연속적 동작의 리드미컬한 연결이라는 특질을 잘 담아내는 것에 힘써왔다. 또한 안무에 있어서 리듬은 매우 중요한 요소여서 음악을 잘게 나누어 엇박과 정박의 크고 작은 강약 대비의 동작들을 만들어내고 숨가쁘게 돌아가는 구성적 변화의 다양함, 무용수들 움직임 높낮이의 효율적인 대비에 주력했다. 작품마다 차이는 있겠으나 경우에 따라서는 안무란 관객이 보는 동안 지루하지 않을 볼거리를 음악적 타이밍의 순간과 조합하여 비주얼 이미지로 기억되게끔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새 봄을 여는 무브먼트-입춘대길> 

 

전통무용과 창작무용에 대한 확고한 생각

 

전통무용과 창작무용의 개념에 대해 남수정은 할 말이 많다. 전통무용은 추어온 사람의 기술에서부터 크게 자유로울 수 없는 정통적 표현과 기술을 중시하는 장르다. 다시 말해 어떤 춤을 오래도록 추어온 춤 고수의 동작 기술과 정서적 표현 기법을 정확하게, 그 이상으로 표현해내는 기술성을 철저히 우선한다는 점에서 전통무용은 명확한 아우라를 뿜어내어야만 하는 장르다. 이에 비해 창작무용은 현대무용처럼 무한한 독창성이 허락됨에도 불구하고 다른 차이점이 있다면 대부분 동작 기술적으로 한국전통무용의 기법에 따른 호흡법이나 손과 다리(주로 무릎과 발)의 사용에 기초를 이루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물론 어떤 경우에는 기법은 전혀 다르더라도 주제나 소재가 한국적이기에 한국창작무용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없지 않다. 

 

따라서 그녀는 최근의 한국 전통무용과 창작무용은 이제 명확한 구분과 경계가 주어졌다고 판단했다. 전통무용은 오래도록 전해 내려온 고도의 기술적 표현의 예술미, 양식미 등 춤 그 자체가 지녀온 빼어난 춤의 표현이 목적인 것이고 한국창작무용은 기술적으로나 주제 표현적으로나 한국 고유의 방법을 일부 지니고 있을 수는 있으나 개인의 감정과 사상, 정서와 의식을 자신만의 자유로운 춤기술로 표현하는 제3의 춤 장르라고 생각했다. 한국창작무용이 보다 창의적이고, 완성도 높은 안무의 확산과 구축을 추구해 나가려면 공간을 사용하는 몸의 사용과 춤기술 개발, 그리고 이를 완벽히 표현해내는 훈련법에 대한 도입과 노력, 독창적 동작 개발과 시도, 다양한 주제로의 접근과 실험적 측면에서 구애를 받거나 구태의연한 답보적 현재에서 벗어나야 함을 주장했다.   

 

 

감각적인 춤을 만드는 안무가

 

남수정의 작품에서 보이는 이미지는 감각적이다. 전통을 배제하지 않으면서도 움직임은 고전적이지 않고 여러 해석을 더하며 변용된다. 다각도의 공간사용과 스피디한 동작과 잔걸음, 변화무쌍한 춤 어휘가 한국 창작춤의 특성을 담아낸다. 그럼에도 주제는 항상 인간의 삶으로 귀결되고 어머니를 포함한 가족애로 집약되며, 한국적 소재에 관심을 갖고 이를 현대화하는 작업에 주력함으로써 따뜻하다. 한국의 문화를 상징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안무가의 부재를 한국 창작춤의 문제라 지적하는 그녀는 오늘도 작품으로써 오롯이 자신을 드러낸다. 춤만이 갖는 침묵의 세계가 좋아 춤꾼의 길을 택한 남수정의 춤세계는 시간을 거듭하며 더욱 확장되고 견고해졌다. 스펙터클하면서도 동시대성을 담아 예술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춤으로 무용계와 뮤지컬계를 접수한 그녀의 도전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글_ 장지원(무용평론가)

사진제공_ 남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