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정식은 차분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안무가로 화려함보다는 진중함으로 인정받고 있다. 안무가로서는 꽤 이른 나이인 20대 초중반부터 크고 작은 작품들을 발표하면서 자신의 내실을 다져왔다. MoDaFe, SPAF, 서울무용제, 크리틱스초이스, SCF, 대한민국장애인국제무용제 등과 같은 주요 춤 축제에 초청되고 국립현대무용단, 경기도무용단, 서울예술단 등과 같은 주요 예술단체와 협연한 경력은 노정식의 내실있는 활동에 자연스레 따라온 성과로 여겨질 수 있다.
유독 춤추는 것을 좋아했던 아이
1973년 광주 출생인 노정식은 어려서부터 유독 춤추는 것을 좋아했던 아이였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유아 세례를 받고 성당에 다니면서도 성가가 흘러나오면 몸을 들썩거렸다고 한다. 춤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 시기는 고등학교 때였다. 다녔던 고등학교가 신부님이 교장으로 계시는 카톨릭계였던 까닭에 학과 공부뿐 아니라 클럽 활동도 중요시하였다. 당시 댄스클럽에서 브레이크댄스나 힙합 등 스트릿댄스를 추곤 했다. 교내 발표회에서 노정식의 춤추는 모습을 본 한 선생께서 무용을 정식으로 해보면 어떻겠냐는 칭찬 겸 조언을 해주셨다.
그 말을 계기로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노정식은 가까운 무용학원을 찾아갔다. 그런데 그곳이 우연찮게 ‘엄영자무용학원’이었다. ‘엄영자 무용학원’은 광주에서 상당히 유명한 무용학원으로 유명 무용가들을 다수 배출하였다. 그곳에는 무용하는 형들이 여럿 있었는데 주재만, 박나훈 형에게 남자무용복 사는 법부터 기본 동작 테크닉에 이르기까지 많은 것을 배웠다. 춤을 좋아했던 만큼 춤에 대한 감각이 있었던지 고등학교 3년에 올라와서는 여러 협회나 대학에서 주최하는 콩쿠르에서 자주 수상권에 오르곤 했다. 그리고는 세종대학교 무용과에 한 번에 합격하였다.
<까마귀>
여러 선생의 가르침을 자양분 삼아 성장하다
무용선생들 중에서 자신의 춤 활동에 영향을 미쳤을 만한 이는 누구인지에 대한 물음은 다음과 같이 답한다. 고등학교 시절 광주에 특강을 온 안은미 선생에게 새로운 스타일의 춤을 배울 수 있었으며 대학 시절에는 안병순 선생에게서 발레를 바탕으로 한 기본 동작들을 제대로 배울 수 있었다. 물론, 가장 큰 영향은 최청자 교수로서 안무법 등에 있어 크고 작은 영향을 받았다. 창작발표회를 할 때면 격려와 칭찬을 해주신 분으로 안무가로서 성장해갈 수 있는 길을 인도했다고 할 수 있다.
대학 졸업 후 세종대학교 동문무용단인 툇마루무용단에 입단하자마자 정기공연의 안무가로 발탁되기도 하였다. 툇마루무용단에는 노정식 위로 선생들과 선배들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최청자 교수가 파격적으로 안무 기회를 준 것이다. 그리하여 1996년 바탕골 소극장에서 <밀폐공포증>이라는 듀엣 작품을 선보일 수 있었으며 이듬해는
<붉은 기억>
안무가로서 본격적인 시작을 알린 노댄스컴퍼니 창단, 그리고 초기작 셋
대학 졸업 후 몇 년간 현장 경험을 쌓은 후 30대에 들어서면서 본격적으로 안무를 해봐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2004년 노댄스컴퍼니를 창단하였다. 이후 스스로 꼽는 초기 대표작 셋을 발표하기 시작하였다. <돌이킬 수 없는>(2004)은 지옥부터 천국까지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동명의 영화에서 영감을 얻었다. 영화가 잔인하고 아프고 재미있고 편안한 장면들을 배치하듯이 노정식의 춤 작품 역시 유사한 흐름을 보인다. 안무에서 중요한 것이 춤 기교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장면 중심적인 최근의 춤 스타일까지 수용하기 시작한 작품이다.
<붉은 기억>(2010)은 단기기억상실증이나 망상 같은 소재를 바탕으로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순간적으로 잃어버리는 기억에 대해 고찰하였다. 전작들과는 시도 자체를 다르게 한 작품으로, 네 명의 무용가들의 관심사를 드러내는데 있어 서로 물들고 섞이지 않기 위해 한 명씩 개별적으로 연습을 이끌었다. 그리고 나서 한 공간에 모여 각자의 동선에서 접점을 갖도록 유도하였다.
<율>(2010)에서는 춤과 함께 장치와 음악의 총체적인 결합을 의도하였다. 특히 세트디자이너 이종영과 수차례의 조율을 거쳐 만든 가로와 세로 모양의 세트는 미니멀한 세련미를 돋우었다. 영상 또한 색감과 구름형상처럼 작품에 필요한 만큼만 활용되었다. 무용가의 춤에 집중할 수 있도록 과도하고 장식적인 장치를 배제한 결과다. 유(柔)하게만 보이는 그에게 안무가로서 강단있는 주장을 펼칠 수 있는 힘을 확인시킨 작품이다. 그 결과가 성공적이었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안무적으로 무르익은 중기를 대표하는 작품들
2010년대 들어 마흔 줄에 바싹 다가선 노정식에게는 ‘젊은’이라는 수식어가 떼어지는 순간 수직 상승하는 기대치에 부응해야 하는 통과의례가 남겨져 있었다. 바로 그 시기에 크리틱스초이스에서 <마력의 눈동자>를 발표할 수 있었던 것은 절호의 기회였다.
노정식의 <마력의 눈동자>는 주제를 풀어가는 춤의 형상이 상당히 뚜렷하다. 적절한 타이밍에 꺼지고 켜지는 조명과 함께, 절제된 춤의 형상은 긴장감을 조성하고 고조하고 유지한다. 그럼으로써 이성으로 제어할 수 없는 이끌림에 관한 주제를 집중력 있게 풀어낸다. 서로 다른 개성의 무용수들로 하여금 하나의 이미지를 표현하도록 이끄는 힘은 아무래도 안무가의 역량이다. 한 예로 하정오가 이 작품에서처럼 자기 개성을 작품에 흡수시킨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무용수들의 작품 이해력이 높았다는 점이 긍정적으로 작용한 셈이다. … (중략) …
노정식은 그동안 다양한 안무적 시도를 거듭하면서도 결과물에 '노정식다움'이라는 느낌을 확립해왔다. 고착되지 않은 창의성과 확고한 자기 정체성이라는 시소의 균형을 잘 잡고 있다는 말이 된다.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낸 <마력의 눈동자> 역시 그 연결 선상에 놓인 작품이다. _ <춤> 2011년 8월호
<마력의 눈동자>는 노정식의 대표작으로 자리 잡으면서 이후 여러 차례 리바이벌되었으며 2014년에 한국현대무용진흥회 최고안무가상과 한국무용학회 무용예술가상을 받는 근간이 되기도 하였다. 스스로 꼽는 대표작의 하나로 <까마귀>는 2017년 창작산실 올해의 신작 쇼케이스에 올렸던 15분짜리 작품을 확장하여 2018년 대한민국무용대상에 출품한 것이다. 인간의 탐욕에 대해 고찰한 <까마귀>는 평범한 한 남자가 욕심을 부리면서 세상과 타협해가고 결국 그 모든 것이 부질없음을 깨닫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현실적인 드라마 같은 장면들이 중간중간에 배치되어 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그 이전에는 창작 경연에서 상을 받는 경우가 거의 없어서 대한민국무용대상에 출품했을 때도 모든 것을 내려놓고 안무에 임했는데 결과적으로 대통령상을 받아 의미가 남달랐다고 한다. 이 작품으로 2020년 보훈무용예술협회 올해의 작품상(대한민국 국회의상)까지 거머쥘 수 있었다.
얼마 전에 노정식은 자신의 창작적 가능성을 한 단계 높이는 작품을 발표했다. 그것이 경기도무용단과의 협연 관계 속에서 이루어질 수 있었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할만하다. 1993년 창단된 경기도무용단은 정재, 전통, 창작을 망라하여 우리 춤의 발전을 도모하며 도민의 문화예술 향유 기회와 수준을 끌어올리기 위한 목표 의식을 꾸준하게 유지하고 있다. 근래 들어서서는 동시대적인 창작 경향에 대한 시도도 단행하고 있는데, 이를 반영하는 기획이 작년 12월 16-18일 경기아트센터 대극장에서 펼쳐진 ‘본(本)’으로써 현대무용가 노정식에게 안무를 의뢰하여 <제(祭)>라는 신작을 발표하기에 이른 것이다.
노정식 안무의 <제(祭)>는 혜원 신윤복의 <무녀신무>란 그림 속에서 무언가를 간절히 비는 여인의 모습에서 영감을 얻었다. 가슴 깊은 곳에 묻어둔 처절한 소망이 20명 내외의 무용수들의 손 끝과 발걸음으로부터 시작하여 일사불란한 구도적 대열로 확장되어 간다. 노정식의 안무가 말끔한 선형과 굵직한 구도를 추구하는 가운데, 20여 명의 무용수들이 섬세한 결에 밀도와 에너지까지 흡착한 춤사위가 이를 구현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제의 모습을 감정적인 표현이 아닌 이미지화시켜 그려놓는 방식은 동시대의 창작 경향인 컨템포러리댄스적인 접근이라고 할 수 있다. <제(祭)>는 노정식의 최근 작품들 중에서도 가장 주목할만한 것으로 꼽힐 수 있는데, 그 근간에 경기도무용단원들의 잘 단련된 한국무용 기본기와 동시대적 감각에 대한 수용력이 있다. _ <댄스포럼> 2022년 1월호
노정식은 무대를 화려하게 채우기보다는 일련의 주제 이미지를 제시하고 예술적 잔상을 남기려는 노력을 하는 안무가다. 동작적 모티브를 반복하고 확대하는 방식을 취하기 때문에 다소 안무가 평이해 보이기도 하지만 무의미한 기교적 남발은 결코 없다. 동작보다는 전체적인 구도를 중요시하곤 하는데 이러한 스타일의 안무는 실연자들의 몸의 밀도와 기본기가 탄탄할 경우 고무적인 성과를 거둘 수 있다. 이를테면 경기도무용단 단원들의 경우 한국무용수이자 직업무용수로서 몸의 밀도와 기본기를 갖춘 상태에서 <제(祭)>를 통해 노정식의 안무 스타일을 더할 나위 없이 실제화하였다. 노정식 스스로도 경기도무용단 단원들의 작품 구현력이 너무 좋아서 하루하루 작품을 채워나가는 과정이 너무나도 행복했었다고 한다. 결과물에 대해서도 큰 만족감을 표한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앞으로도
노정식은 현재 용인대학교 무용과 조교수로 몸담으면서 후학양성에도 힘을 쏟고 있다. ‘안무와 교육에 있어서 어느 쪽에 중요도가 있는지 혹은 균형감을 찾으려고 하는지’에 대한 물음에 그는 후자 쪽이라고 답한다. 안무를 통해 예술가적 만족감을 풍부하게 느낄 수 있고 교육을 통해 가르치는 보람과 함께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에 양자가 모두 필요하고 중요하다는 의미다. 창작 면에서는 앞으로도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시청각적 화려함보다는 예술적으로 잔잔하면서도 진지한 잔상을 남길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가겠다는 의미를 내비친다.
글_ 심정민(무용평론가·비평사학자)
사진제공_ 노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