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중엽 센세이션한 내한공연으로 우리 무용계에서도 잘 알려진 미국의 컴플렉션즈 컨템포러리발레단에는 주재만이라는 한국 출신의 무용가가 있다. 광주에서 서울을 거쳐 뉴욕으로 뻗어나간 주재만은 컨플렉션즈라는 세계적인 무용단에서 무용수, 안무가, 발레마스터, 부예술감독라는 길을 차근차근 밟아 올라갔다. 이러한 발자취가 순조롭게 느껴질 수 있으나 그 이면에는 주재만의 치열한 노력과 도전이 있었다. 인간의 몸의 한계를 넘어서 새로운 예술적 가능성을 찾아가는 컴플렉션즈의 춤 스타일과 마찬가지로, 해외무대에서 홀연단신 자신의 한계를 넘어선 노력과 도전 그리고 성취를 거듭해온 주재만을 2022년 6월 4일 서초동 모처에서 만났다. 2007년 초 뉴욕에서 인터뷰한 이래로 십여 년이 흐른 시점에서 훨씬 더 편안하고 여유로운, 연륜이 묻어나오는 모습으로 조우할 수 있었다. 필자의 저서 『뉴욕에서 무용가로 살아남기』에서 일부 발췌하였음을 밝힌다.
광주에서 서울 그리고 뉴욕으로
1972년 광주 출생인 주재만은 어렸을 적에 여러 예술에 관심이 많았다. 그러한 성향을 일찍이 알아본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중학교 때부터 무용학원에 들락거릴 수 있었다. 적지 않은 남성무용가들이 많은 반대와 고뇌를 겪은 후에 춤 인생을 선택하는 것에 비해서는 편안하게 춤을 접할 수 있었던 편이다.
당시 엄영자 무용학원을 다녔는데 그곳에 주재만뿐 아니라 박나훈, 노정식 등 우리 무용계에서 이름을 알린 남자무용가들이 다수 배출됐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주재만은 발레, 한국무용, 현대무용을 모두 배웠지만 발레의 신체 훈련 방식이 특히 좋았다고 말한다. 그래서인지 단국대학교에서 현대무용을 전공하고 여러 현대무용단과 교류하면서도 그의 정확한 기본기를 잡아주는 것은 발레였다.
주재만은 대학을 졸업한 직후인 1996년, 프랑스에서 개최된 바뇰레 안무가 경연대회에서 이윤경의 안무작으로 ‘최고 무용수상’을 수상하였다. 자신의 무용수로서의 능력이 세계 무대에서도 통한다는 것을 깨달은 주재만은 곧장 뉴욕으로 날아갔다. 이십대 중반에 홀연단신 해외로 나간 이유로는 한국 무용계의 경직성을 넘어 다양한 예술세계를 자유롭게 접하고 싶다는 열망이 가장 컸다.
뉴욕에 도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주재만은 오디션을 통해 빌 T. 존스 무용단에 입단할 수 있었다. 하지만 관념적인 움직임보다는 몸을 중점적으로 활용하는 기교적인 춤을 더 좋아했던 그에게는 별 매력을 주지 않는 무용단이었다. 안무가의 철학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영어가 되지 않는 점도 큰 어려움이었다.
컴플렉션즈 컨템포러리발레단과의 인연
컴플렉션즈와의 만남은 주재만에게 새로운 기회였다. 1994년 창단된 컴플렉션즈 컨템포러리발레단은 그 이름처럼 흑인인 두 예술 감독을 비롯하여 백인, 남미인, 동양인 등 다양한 인종을 포괄하고 있었다. 컴플렉션즈의 한 관계자가 여러 춤 스튜디오에서 날개를 단 듯 비상하는 한국인 남성무용수 주재만을 눈여겨보았고 그에게 입단 의사를 물었다고 한다. 물론 주재만은 뛰어난 예술 감독과 무용수들이 포진되어있는 무용단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해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컴플렉션즈와의 인연은 시작되었다.
2005년 첫 내한공연 때만 하더라도 컨템포러리발레에 대한 국내 무용계의 이해도가 높지 않았던 탓에 현대무용단으로 소개되었으나 컴플렉션즈 컨템포러리발레단은 명칭 그대로 컨템포러리 스타일을 지향하는 발레단이다. 발레를 바탕으로 하지만 그 정형성을 깨부수면서 현대무용 등 다양한 춤 스타일을 수용하기 때문에 이에 익숙지 않았던 한국 무용계가 현대무용단으로 소개했던 것이다.
컴플렉션즈와의 사반세기가 넘는 인연에서, 처음에는 무용수로 활동했으나 차츰 안무가, 발레마스터, 부예술감독으로 활동 영역을 확장하고 승진(?)을 거듭하였다. 주재만이 자신의 예술세계를 확장하기 위해 다른 무용단에서 활동할 때조차 컴플렉션즈에서는 ‘여기는 너의 집이니 마음껏 돌아다니다가 오면 된다’면서 신뢰와 응원을 보냈다고 한다. 그리하여 유명 안무가들의 작품에 출연할 수 있었으며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의 안무적 역량도 고취시킬 수 있었다. 컴플렉션즈에서의 타이틀 중에서 ‘전임예술가’가 무엇이냐는 물음에 대해 ‘컴플렉션즈를 대표하는 무용가라는 타이틀로서 그곳에 몸담았던 수많은 무용가들 중에서도 다섯 명 정도만 받을 정도로 상당히 명예로운 칭호이므로 영광스럽게 생각한다’고 설명한다.
무용수로서 다양한 움직임 탐구를 위한 노력
컴플렉션즈가 빠르게 유명세를 떨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용수들의 피지컬과 테크닉에 바탕한 춤 공연이기 때문에 주재만이 그곳에 몸담고 있다는 것 자체가 세계적인 수준의 무용수라는 인증과도 같다.
주재만의 무용수로서의 역량을 또 한 번 확인할 수 있는 예는 발레 히스파니코의 오디션에서였다. 발레 히스파니코는 조이스시어터의 시즌 공연에 포함될 정도로 꽤 인지도 있는 무용단이다. 컴플렉션즈에서와는 다른 경험을 해보고 싶었던 주재만은 1999년에 발레 히스파니코의 오디션에 참여하였다. 가슴에 번호표를 달고 1차 시험으로 발레 바(barre)를 하고 있을 때 그 무용단의 관계자가 자신을 사무실로 불렀다고 한다. 그 관계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당신이 공연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꼭 한 번 같이 작업하고 싶었는데 오디션에 참여한 것을 보고 너무 기뻤다. 지금 이 계약서에 서명한다면 당신은 무용수로 채용된 것이다.’ 주재만은 그 계약서에 서명했고 발레 히스파니코에서 2003년까지 무용수로 활약하였다.
2006년경에는 쉔 웨이 댄스아츠에서 짧은 무용수 경험을 갖기도 하였다. 우리나라 순회공연 직전에 그만둔 관계로 귀국하지 못했던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고 한다. 사실 귀국(歸國)이란 말은 정확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는 이미 미국 시민권자로 국적이 미국인으로 되어 있으니 말이다. 2007년 초부터는 신진무용단 지비댄스(ZviDance)에서 무용수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다양한 움직임에 대한 관심과 탐구로 말미암아 주재만은 William Forsythe, Shen Wei, Jessica Lang, Zvi Gotheiner, Dwight Rhoden, Igal Perry 등과 같은 유명 안무가의 작품에 출연할 수 있었으며 이러한 폭넓은 경험은 안무가로서의 가능성을 찾아가는데 큰 자양분이 되었다.
안무적 성취에 대하여
뉴욕에 입성한 지 10년이 지난 시기부터 주재만은 안무가로서도 역량을 발휘할 수 있게 되었다. 첫 안무작인
주재만은 몇 년 전부터 와이즈발레단의 초청으로
주재만은 자신의 안무 스타일에 대해 컨템포러리발레를 지향하면서도 감성적이고 자연미가 있는 스타일을 선호한다고 한다. ‘예술적 아름다움이란 결국 고난을 거쳐 행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찾아질 수 있으리라 본다. 인간미, 정서적인 요소, 자연미 등을 중요시하며 음악적인 서정성도 중요하게 여긴다. 발레 테크닉을 기본으로 하지만 실험적인 현대무용을 크로스오버하여 확장된 움직임 가능성을 탐구하곤 한다. 미국에서는 그러한 트레이닝이 잘 되어 있는 무용수들이 많아서 나의 안무 스타일이 적절하게 실제화되곤 하는데 한국에서는 아직 이에 대해 정확하게 이해하고 실행하는 무용수들이 많지 않은 것 같다. 특히 새로운 움직임을 싫어하거나 부끄러워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와이즈발레단에서 신작을 안무할 때 어려움이 많았다. 하나의 도전이라고 생각하며 이런 식으로 우리나라 발레계에 컨템포러리발레의 정착과 확산이 촉진되는데 한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사명감과 책임감도 있다.’고 말한다.
따끈한 소식, 포인트파크대학 교수로 임명되다
인터뷰 날이었던 6월 4일에 주재만은 그 며칠 전 미국 펜실베이니아 피츠버그에 있는 포인트파크대학(The Point Park University)에 정년이 보장되는 발레교수로 임명되었다는 소식을 전했다. 주재만 스스로가 미국에서 탑5에 들어갈 만한 무용전문대학으로 꼽는 곳인 만큼 대단히 기쁘며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한국 출신의 무용가가 세계적인 무용 현장인 뉴욕에서 인정받고 자리를 잡아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뭉클한 감정마저 불러일으킨다.
2007년 뉴욕에서 인터뷰했을 당시 주재만은 베일 듯이 예리하고 예민한 현장 무용수로서의 면모를 드러냈다. 20여 년이 흐른 뒤 한국에서 만났을 때는 같은 사람이라고 여겨지지 않을 정도로 편안하고 여유로운 연륜을 갖춘 예술가로서 자리 잡고 있었다. 이에 대해 주재만은 어려서부터 넉넉한 집안이 아니었음에도 무용을 시작했고 대학 시절이나 뉴욕에서 활동했을 당시에도 혼자 모든 것을 감내하고 극복하면서 그야말로 살아남기 위해 분투했었다고 한다.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경쟁이 치열한 뉴욕의 무용계에서 혼자 힘으로 우뚝 서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젊은 시절의 그는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차츰 자리를 잡고 정신적, 정서적으로 성장해가면서 보다 여유를 찾아가게 된 것이다. 주재만의 춤에 대한 열정과 성취가 여실히 묻어나오는 분신과 같은 작품인〈Vita〉는 6월 18-19일 대한민국발레축제의 일환으로 CJ토월극장에서 공연된다.
글_ 심정민(무용평론가, 비평사학자)
사진제공_ 주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