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에 접어든 김보라는 여전히 가늘고 긴 선은 여성적이지만 특별한 움직임을 통해서 강력한 흡입력을 보이며 동시대를 대표하는 여성안무가, 무용가 중 한명으로 확고히 자리잡았다. 그녀는 아트프로젝트보라의 예술감독과 크리에이티브디렉터로 활약하는 가운데, 2021년 문화예술발전유공자시상식 무용부문 ‘오늘의 젊은예술가상’ 문화부장관 표창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처럼 실력을 인정받으며 한국 내에서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활약상을 보이는 그녀의 저력은 시간과 몸에 대한 깊은 사유에 기인한다. 더불어 주제에 있어서 오늘날의 사회적 이슈나 개인적인 일상, 젠더에 대한 고려와 선택은 공연의 패러다임을 증폭시켰다. 따라서 일탈보다는 진중함과 노력, 탄탄한 기본기로 국내외에서 영역을 넓혀가고 있는 그녀는 한국 현대무용계에서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부모님의 전폭적인 지지 하에 무용을 시작하다.
김보라는 충남 예산에서 태어나 7살 때부터 평소 무용, 미술, 음악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어머니 손에 이끌려 간 학원에서 무용을 시작했다. 중학교 때부터 현대무용을 전공했고, 천안 충남예고 1회 졸업생이기도 하다. 그녀는 시작부터 부모님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무용을 이어갔다. 부모님은 그녀가 충남예고를 가기 위해 천안으로,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를 가기 위해 서울로, 결혼 후 과천으로 거처를 옮기실 만큼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의 모습을 보여주셨다. 고등학교 때는 열심히 전공에 심취했고, 한국무용 원유선 선생으로부터 많은 영감을 받기도 했다. 이후 충남대 콩쿠르에서 1등을 하면서 특차로 다니던 충남대 1학년 시절, 중간에 학교를 관두고 춤을 더 전문적으로 배우고 싶다는 생각에 프랑스 유학을 꿈꿨다. 그러나 그 전에 한예종에 가고 싶다는 생각에 다시 시험을 봐서 합격했고, 미나유 선생의 즉흥 수업에서 창의력을 길렀으며 전미숙 선생에게도 영향을 받았다.
한예종 당시 같이 공부하고 활동하던 지인들로는 차진엽, 이용우, 김판선, 김성훈, 김재덕 신창호 등이 있다. 특히 차진엽은 김보라가 김성한 선생에게 배울 때 소개를 받아 한예종 가기 전에 배우기도 했던 스승이자 선배이고, 김재덕과는 결혼을 했다. 그녀는 학부 졸업 후 2년간(2006-2008) 아일랜드 다그다하 무용단과 함께 페스티벌에 참여하며 활동했다. 이 무용단은 윌리엄 포사이드 객원안무가가 이끄는 무용단이기도 하다. 그리고 스위스의 알리아스 무용단에서 8개월 정도 프로젝트로 공연하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향수병은 그녀를 한국으로 돌아오게 만들었다. 2008년 한예종 전문사로 들어온 후, 현장에서 또래로 일하는 유일한 여성 안무가인 권령은을 만나기도 했다.
첫 안무작부터 수상하며 모든 안무작이 세계로 향하다
그녀의 첫 안무작은 2010년 전국무용제에서 은상을 받은 〈In the beginning〉이다. 그러나 본인이 생각하는 첫 안무는 2011년 안무한 〈혼잣말(A long talk to oneself)〉이다. 이 작품은 카프카의 『변신』을 차용해 자전적 이야기와 생각을 신체언어로 풀어낸 작품이다. 긴 호흡으로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내레이션, 감각적인 영상, 잘 다듬어진 절제의 움직임이 서사 구성력과 함께 긴밀한 조화를 이뤘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안무가 육성사업의 결과물로 나온 솔로 작품으로, 바뇰레에 처음 초청받아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투어를 시작하는 발판이 되었다. 이 공연으로 30여 개 도시를 투어했고, 지금은 더욱 여러 곳으로 확대되었다.
그녀가 뽑은 대표작은 국내에서는 <혼잣말>, <소무>가 있다. <소무>는 바뇰레에 2번째로 초청받은 작품으로 가장 널리 알려져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김보라는 <소무>의 안무의도를 “여성의 몸에서 표현되는 철저한 자기 본위의 감정, 나와 타인 사이에서 사유되는 신체의 행동들, 그리고 관계에 따라 변화무쌍하게 첨삭되는 몸의 대화들 혹은 신체언어의 해석적 오류들을 이미지화하고 구체화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고 밝혔다. 이를 증명하듯 계속 수정을 거듭하고 있는 작품에서는 여성성의 강조뿐만 아니라 여성의 신체 일부를 강조하는 움직임과 밀도 있는 구성이 강조되었다. 한국적인 이미지를 담은 의상과 행위들은 지극히 유교적인 가치관에 매몰된 전통적인 여성상을 구체화하기 위한 안무가의 은유였다.
해외에서는 <혼잣말>과 <꼬리 언어학>이 컨템포러리 댄스의 흐름상 호응을 얻고 있다. <꼬리언어학>은 팸스초이스에 선정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언어라는 상징체계에서 벗어난 동물의 무브먼트를 언어로 사용했다. 2014년에 초연해 캐나다, 독일, 이탈리아, 미국 등에서 큰 호평을 받고 아직도 현재진행형인 작품이다. 조형적인 디자인 설계와 감각적인 색감으로 알려져 있는 김보라가 초연과 달리 9명의 무용수들의 움직임으로 승부수를 띄웠다. 원초적이지만 세련된 신체 표현은 개념에 몰두해 움직임의 진정성을 보이는 것이 자칫 컨템포러리 댄스답지 않다고 생각되는 현 실태를 비틀었다. 해체적 공간의 재구성과 주제 의식과 함께 움직임의 아름다운 균형감을 보여주는데 음악, 소품, 의상, 초감각적 에너지를 보인 무용수들이 일조했다.
이밖에도 주요 안무작은 LDP 정기공연 안무의 〈I'm not there〉, Art Project Bora의 <프랑켄슈타인>, 백남준 아트센터 기획공연 <토끼를 찾아서>, 국립무용단 기획공연 〈Nobody〉등이 있다. 2012년 백남준 아트센터, 2013년 5월 코오롱 커스텀멜로우의 지원으로 대림창고라는 극장이 아닌 공간에서의 공연, 2013년 국립현대무용단 주최 미술관 공연 등이 현재는 그녀의 기억에 남는다. 공간개념을 확장하고 재해석하며 파괴함으로써 재구성되는 순간의 매력을 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김보라는 국립현대무용단 기획공연에서 시간에 관한 집요한 탐구를 바탕으로 <점>을 선보이기도 했다. 요코하마 댄스컬렉션 심사위원상을 받고 이후 지원받아 제작된 작품인 〈땡큐(Thank you)〉도 있다.
그녀는 새롭게 시작하는 공연에 애정이 많다. 따라서 최근 애정이 많이 가는 작품은 영국 공연을 가졌던 <무악>이다. 그 이유는 기존 작품을 레퍼토리로 다시 새롭게 재구성하는 안무 성향을 가진 그녀의 최신작이기 때문이다. <유령>은 아직 애증의 작품이다. 해외에서의 공동안무로는 영국의 마크 부르와 작업한 〈공공제로(공, 空, Zero)〉라는 작품으로, 안무 및 출연을 함께 했다. 싱가폴 The무용단에서 객원안무한 작품으로 〈The Seasons〉가 있다.
아트프로젝트보라의 창단과 협업의 힘
그녀는 2013년 아트프로젝트보라를 만들었다. 첫 공연에서는 김보라, 이윤희, 지경민 3명이 <땡큐>라는 작품으로 일본에서 초연했다. 그전에도 1인 PD 체제로 해외 공연을 다니는 시작 단계였지만 아트프로젝트보라를 시작으로 <꼬리언어학> 할 당시에는 5명(김보라, 박선화, 이재린, 서예진, 송승리)으로 늘어났다. 작업하는 인원이 늘어나면서 단체의 필요성이 절실했고, 더불어 지원사업이나 해외공연 시 팀이라는 주요 구성원의 필요성을 느꼈다. 현재는 기획자 2인(이미진, 신재윤), 파운딩 멤버 3인(박상미, 최소영, 이혜지)과 프로젝트 멤버 9명(앞선 4인에 최민선, 이규헌, 김희준, 김지혜, 백소리)까지 합쳐져 12명이 활동한다. 이들은 힘을 모아 공연, 프로그램도 개발, 리서치, 공연 메소드 작업도 같이 수행하고 있다. 동기인 김재덕과는 2016년 결혼했다. 동기일 당시에는 성향이 너무 달라 부딪침도 많았다. 그러나 결혼 후 각자의 안무작업은 별도이고 김재덕이 음악을 맡고 그녀가 안무를 하는 비즈니스 부분을 통해 서로 도약하고 있다.
시간과 몸의 감각에 대한 사유, 공간개념의 확장과 재해석
김보라는 ‘시간’에서 많은 영감을 받고 작업하는 안무가이다. 우리는 흔히 무용을 종합예술이라고 칭하며, 사실은 그중에서도 가장 직접적으로 눈에 보이는 움직임과 관련해 시각이라는 감각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 그녀도 초창기에는 이미지텔링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시각적인 측면에 주목했다. 그러나 현재는 시간에 주의를 기울이며 영감을 받고 함께 한다. 그 결과 춤과 함께 하는 것은 시각예술이 아니라 ‘시간예술’이라는 결론을 얻게 되었다. 김보라는 공연이라는 것은 진행되는 그 시간 안에 끝났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시간의 흐름과 동행하는 것이 컨템포러리라 여긴다. 그렇다 보니 그녀의 주제선정도 시간적인 부분들, 젠더적인 부분들로 변화되었다. 시간적인 부분들이란 시간 안의 몸에 관한 것으로 확장되었고 그래서 몸에 대한 사유, 몸의 감각에 대한 언급이 다수이다.
그녀가 생각하는 컨템포러리 댄스는 본인이 하는 작업, 공연하는 작품들이 시간 안에서 어떻게 존재하고 있을까를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다. 즉, 지금 말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가 중요하며 시간 속에 안무가, 작업, 관객이 동등하게 존재해야 한다. 또한 그녀는 작품의 주제에 부합하는 독창적 춤어휘를 통해 주제를 부각시키는 능력을 발휘한다. 앞서 시각적 이미지의 극대화의 초점이 시간의 흐름으로 넘어오긴 했으나 여전히 예상을 뛰어넘는 미장센을 통해 연출력이 돋보이기도 한다. 이 밖에도 작품을 성공으로 이끈 이면에는 정서를 자극하거나 긴장감을 극대화시키는 김재덕의 음악과 그것을 구체화시켜 세련된 몸짓으로 표현하는 뛰어난 무용수들이 있다.
안무가 외의 것들로 영역을 넓히다
그녀는 현재 많은 역할을 하고 있지만 가장 중심은 역시 안무이다. 그럼에도 안무랑 연계되어있는 것들 중 하나가 크리에이티브디렉터와 애플리케이션 개발이다. 특히 애플리케이션 개발은 코로나 팬데믹 때문에 관객들과 가상세계, 어플 안에서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기인했다. 또한 아르떼에서 발달장애인을 위한 움직임 프로그램으로 제작비를 받았고 비대면으로 진행되었는데 여기에 카드 제작, 영상 등도 포함되었다. 그 외에 국립현대무용단에서 만든 <점>에서 파생된 것과 부산국제단편 영화상에서 파생된 <시간의 흔적>이 있다. 이로써 김보라도 댄스 필름 감독에 도전하게 된 것이다. 무대 공연을 그대로 보여주는 방식이 아닌 제작과정까지 담은 댄스 필름 2개와 코로나 이후 무용단의 활동을 담은 다큐멘터리도 찍었다. 앞으로 그녀의 계획은 대면 공연을 맘껏 하는 것이다. 또한 3년간 중장기 지원을 받은바, 애플리케이션 협업의 틀 안에서 국내외 안무가들과 같이 리서치하고 작업할 수 있는 개발에 치중하고자 했다.
김보라는 다방면에 뛰어난 감각을 지녔다. 시간을 다루는 힘, 시각적인 흡입력, 장르와 공간의 경계 허물기, 세계인에게도 어필할 수 있는 예술성, 자신의 단체를 운영하는 운영 능력까지 말이다. 사립단체인 아트프로젝트보라를 만들어 10여 년 가까운 시간을 동반 성장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현실에서 우수한 무용수들과 그리고 해외의 안무가들과 협업하는 상황은 그녀의 독보적인 힘이라 하겠다. 몸의 해체, 주제에 대한 새로운 해석, 동서양을 아우르는 춤어휘, 섬세한 연출력은 진취적으로 진격하는 그녀의 행보가 기대되는 이유이며 늘 현재진행형인 그녀의 작품들이 발전을 거듭할 수 있는 원동력일 것이다. 앞으로도 한국 현대무용계의 여성 파워를 보여주며 세계 속의 안무가로 더욱더 활약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글_ 장지원(무용평론가)
사진제공_ 김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