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에 들어선 문진수는 남사당·승무·발탈·영광우도농악까지 4개의 무형문화재 이수자이며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12호 악기장(북, 장구) 전수자다. 그는 30여 년간 전통예술을 연마하면서 무용학 박사까지 마쳤고, 최우수 박사학위 논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따라서 문무를 겸비한 무용가이자 안무가로 알려져 있다. 또한 연희춤꾼 문진수는 시대를 앞서 간다. 그가 속한 연희라는 분야는 우리에게 친숙한 듯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지는데 그는 이를 현대적으로 수용해 재해석하고 새롭게 되살려냈다.
여기서 사용되는 ‘꾼’이란 단어는 과거 ‘어떤 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 혹은 ‘어떤 일을 잘하는 사람’, ‘즐기는 방면의 일에 능숙한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었다. 그러나 ‘꾼’이라는 말이 오늘날에 와서는 전문인, 마니아를 일컫는다는 점에서 문진수는 여기에 모두 해당된다. 전공을 했기에 전문적이기도 하고, 잘하기도 하며 즐기고 능숙하기도 하다. 다만 그냥 즐기는 차원이 아니라 자신만의 가치와 철학을 가지고 연희와 춤을 대하는 자세에서 그가 닮고 싶어하는 찰리 채플린과 교차점을 지닌다. 어떠한 가치와 철학도 실행으로 보여줘야 하는 예술분야이기에 끊임없는 노력과 지속적인 실행능력은 그의 철학을 지켜주는 힘이다.
늦은 나이에 접한 풍물과 탈춤
전통 연희꾼들은 대부분 어린 시절부터 연희를 즐길 수 있는 환경에 있었다. 부모형제, 친인척이나 동네 어른 등 어깨 너머로 이들의 활동을 보면서 악가무를 접했다. 하지만 문진수의 집안에는 따로 예능과 관련된 분들은 안 계셨다. 다만, 예전에는 동네에서 상을 당하면 상여를 타고 소리를 하는데 할아버지나 아버님이 대를 이어 상여를 타고 소리하시는 것은 본 적은 있다. 그러나 그냥 동네 소리꾼이셨지 예인은 아니셨다. 그랬던 그가 처음 풍물과 탈춤을 접한 것은 고등학교 시절 동아리와 야학 교사 활동을 하면서였다. 이때 풍물극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작은 공연을 올리게 된 것이 연희를 접한 시기로 기억한다. 그리고 고등학교 시절 초파일 행사에서 풍물의 진법을 토대로 <연등무>라는 작품을 올리기도 했다.
공학도에서 춤꾼으로
늦은 시작도 그렇지만 그의 이력은 독특하다. 문진수의 원래 전공은 컴퓨터와 관련된 전자계산과였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고등학교 시절 동아리와 야학에서 풍물과 탈춤을 배운 것이 인연이 되어 선배들에게 배우게 되었고, 방학 때면 전수를 쫓아다니며 틈틈이 학습했다. 이후 20대 초반에 대전에서 활동하던 권번 출신 김윤(본명 김효순)선생에게 한국무용을 처음 배웠다. 풍물을 하다보면 “너, 어느 농고(농업고등학교)를 나왔니?”, 춤을 추게 되면 “너, 어느 학교를 나왔니?”라고 질문을 받곤 했다고 한다. 흔히 풍물꾼들은 풍물만 잘 치면 되고, 춤꾼은 춤만 잘 추면 되는데, 비주류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전공을 체계적으로 하지 않았다는 질책처럼 느껴졌고, 취미로 시작해서 전공으로 전향한 케이스이기에 주변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았다.
이후 들어간 보존회라는 틀은 패밀리즘과 사제지간으로 끈끈하게 뭉쳐 있었다. 그러한 시선과 시스템은 그의 근성을 건드렸고, 현재까지 그 근성을 토대로 버텨오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고 겸손하게 얘기하지만 그는 늘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고, 그래서 학부부터 다시 시작했다. 늘 연희의 주된 움직임과 부족함은 춤이라 여겼기에 무용을 전공하게 되었으며 박사학위까지 받았다. 하지만 학력보다는 사람됨이 더 중요하다는 믿음에는 변화가 없다.
스승들의 면모를 이어받다
20대 초반에 김윤 선생에게 한국무용을 처음 배우면서 입춤, 검무, 한량무, 살풀이, 승무 등을 10여 년 동안 학습했다. 김윤 선생에게 학습하는 동안 광주에서 3년 정도 오가며 공부했고, 호남 검무의 임순자 선생과 양태옥 선생에게 검무와 진도북춤 등을 학습했다. 진도의 박관용 선생에게 진도북놀이도 사사받았다. 이후 이매방류 이수자 신재자 선생에게 이매방류 입춤, 한량무, 살풀이, 승무 등을, 조희열 선생에게 도살풀이춤을 학습했다.
남사당 보유자인 故 박용태 선생을 모시는 30여 년 동안 정기적으로 버나놀이와 덧뵈기, 덜미 등을 배웠고, 남사당의 남기수 선생을 모시고 사는 동안에는 남사당 연희를 심화하고 확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2000년 초에는 무용가 정명자 선생의 추천으로 발탈 보존회에 들어가게 되었고, 발탈 보유자 박정임 선생에게 이동안류 재인청 기본무 등을 학습했다. 이후 대전광역시 무형문화재 송재섭(법우스님) 선생에게 입춤, 한량무, 살풀이 승무 등을 학습했고 승무를 이수했다. 이밖에는 보존회 등의 전수(풍물, 탈춤, 무용 등) 시스템을 통해 다양한 선생님들에게 사사했다. 늦은 시작만큼 그의 배움에 대한 열정과 갈망은 컸고, 많은 춤과 연희를 습득하는데 주력했다.
“잘 하면 살판이요, 못하면 죽을 판이다”
남사당놀이의 살판에는 “잘 하면 살판이요, 못하면 죽을 판이다”라는 말이 있다. 잘하기 위해서는 자격을 갖추어야 하고, 격과 예를 갖춰야 한다. 또한,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는 능력도 있어야 한다. 문진수가 바라보는 연희나 전통예술은 전승 시스템에 묶여 꼼짝 못 하는 것처럼 보인다. 살판을 만들기 위해서는 남과 같아서도 남보다 못해도 잘 살 수가 없다. 죽을 판을 가지고 살라니 살 수가 없는 것이다. 공연하기 위해 티켓을 팔고, 무대에 서는 순간 가장 무섭고 두려운 것은 관객이듯이, 그들을 공감시키고 박수를 이끌고 티켓을 사서 후회 없도록 하려면 죽을 판이 아닌 살판을 만들어 내야 한다. 그가 남사당에서 선생님을 모시고 함께 사는 동안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잘하는 것이 남사당이다”라고 한다. 보존회에 소속된 사람만이 남사당이 아니라, 잘하는 놈 하나가 남사당이라는 의미였다.
연희 춤꾼 문진수의 두 개의 대표작
문진수는 2021년과 2022년에 걸쳐 개인공연을 가졌다. 자신의 브랜드 출시 기념공연을 진행하면서 전통의 재창조, 공연의 브랜드화를 이뤄내고자 한 것이다. 그는 자신의 공연을 통해 ‘춤꾼들의 춤 선생’이라는 이름도 얻었고, 2021년 <연희춤꾼 The 문진수 – 무천(舞天)>에서 쇠춤·소고춤·설장구·12발 상모춤까지 연희 4종목 전통작품을 재창작 및 재구성해 선보였다. 스스로 부끄럽다고 표현했지만 ‘연희춤꾼_The 문진수’라는 브랜드는 마술 하면 데이비드 카퍼필드, 사물놀이는 김덕수라는 브랜드처럼 한국 전통 연희분야 중 춤 분야에 예술성을 더해서 대한민국 연희분야 춤꾼 중에 최고라는 자부심의 발로였다. 또한 기존에 존재하지 않았던 ‘연희 춤’ 분야를 탄생시키고 알리자는 의미이자 상징성을 지닌 공연이었다. 이것이 평단의 평가였다.
2022년 <화엄_광대무변>은 작년 ‘광대 소고춤’ 재현에 이어. ‘남사당 버나놀이 15과장’ 재현 및 재창조를 추구하는 공연이었다. 그동안의 버나놀이는 남사당놀이의 한 종목임에도 불구하고 풍물놀이 공연에 부속된 형태로 공연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에 故 민속학자 심우성 선생의 이론과 인터뷰, 남사당 선생의 증언과 학습을 토대로 재담과 기예를 복원하고 창작함으로써 버나놀이를 하나의 공연 예술 장르로 완성했고, 돌리기 기술과 각 과장마다 특유의 연희 춤을 융합하여 전통연희의 수준과 품격을 보여주고자 의도했다. 또한, 전체 36마당 중에서 15과장으로 추려 발표했는데 관객들의 재미와 이해를 돕고자 스토리텔링화 하였다.
‘문진수류 버나놀이(춤)’의 재담은 단지 연희의 설명에 그치지 않고, 민중 지향적 예인집단이었던 남사당놀이패의 전통을 살려서 전복과 도발, 민초들의 삶을 살피고 위로하는 따뜻한 사설들로 이루어져 있는 특징이 있다. 문진수를 이를 살려, 버나놀이 자체만으로 품격 있고 아름다운 예술작품으로 재탄생시키고자 했다. 여기에 이진경 작가의 소박하고 아름다운 미술작품을 무대배경으로 사용해 미술과 남사당놀이의 융합을 시도한, 성공적인 융복합 공연이었다.
교재의 필요성에 의해 제작된 『남사당의 덧뵈기』
2020 『남사당의 덧뵈기』 라는 책을 남정숙 선생님과 같이 발간했고, 교재용으로 자료를 만들기도 했으며 상모춤 관련 2편, 남사당관련 5편, 연희춤 2편, 풍물춤 및 한국춤 관련 2편, 기타 1편 등의 논문도 남겼다. 특히 그가 책에서 다룬 남사당은 오랜 전통과 역사를 지닌 문화의 보고이자 연희단체이다. 남사당은 1964년 12월 7일 국가무형문화재 제3호로 지정되었고, 2009년 9월 30일 UNESCO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다른 문화재 지정 종목은 주로 단일 종목으로 이루어진 것과는 달리 남사당놀이는 6종목(풍물, 버나(접시돌리기), 살판(땅재주), 어름(줄타기), 덧뵈기(탈춤), 덜미(꼭두각시))으로 구성되어, 가(歌)·무(舞)·악(樂)·희(戱)·기예(技藝) 등이 두루 연계된 종합 예술적인 측면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남사당의 연구는 주로 민속학적 측면에서 연구되었고, 꼭두각시(덜미) 위주의 연구만 집중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어, 남사당놀이 종목 안에 종목들은 소외되거나 연구가 미진했다. 또한 보존회에서의 전승 교육이나 전승 교육에 필요한 교재의 필요성을 느끼고 가장 시급한 전승 종목이라 여긴 덧뵈기(가면무극)를 연구하게 된 것이다.
『남사당의 덧뵈기』는 덧뵈기 학습에 필요한 기본서이다. 남사당의 역사적 조망, 남사당 선대예인들의 공연 모습, 덧뵈기의 구조와 내용, 전승자의 계보, 남사당의 탈, 재담 및 가사, 음악, 춤 등에 대한 자료들을 최대한 모으고 기록했으며, 전승되어 오는 원형에 가깝도록 구현했다. 가능하면 전공자∙전승자들, 연구자들의 교과서가 될 수 있도록 구체화하려고 의도했다. 또한, 그저 기록만 한 것이 아니라 전승실태 양상을 조사하고 영상기록 및 채록을 기본으로 배역, 의상, 탈의 모양, 출연진, 대사 변화 등 시대적으로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비교분석도 하고, 타 장르와 구분되는 덧뵈기의 특징을 분석해서 최초의 탈놀이 교본이 되도록 제작한 것이다.
연희와 전통의 재해석에 대해서
문진수는 춤에 대해 무척이나 사색적이다. 전통을 바탕으로 재해석한다는 것은 많은 고민과 실천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단지 작품을 재구성하고 재창작하는 것이 아니라 전통에 담긴 가치와 철학을 작품에 어떻게 녹이고 현대적으로 수용하느냐에 대한 물음이라 여겼다. 또한 작품을 새롭게 해석하고 재창조하는 과정으로 전통의 변용과 현대적 요소의 수용 및 새로운 전통을 창조하는 것들의 유기적인 방식으로 생각했다.
연희는 꾸준히 시대적 패러다임을 수용해오고 있다. 사물놀이도 남사당의 사랑방 풍물에서 출발했듯이 과거의 또랑 광대와 같은 소리꾼들의 등장도 마찬가지이다. 맹목적 답습이 아닌 현대적 삶을 녹여내고 우려내는 오늘의 상황이기도 하다. 따라서 과거의 예스러운 멋과 현대적인 새로움이 함께 어우러지는 것이며 앞서 언급했듯이 자신이 전통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전통이 자신을 지켜주는 것으로 여겼다. 결론적으로 문진수가 보는 연희에 대한 철학은 명확하다. “전통은 내가 지키는 것이 아니라, 전통이 나를 지켜준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 그러기에 그는 전통은 무한한 보고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십 년 적공에 장원 나고, 백 년 적공에 광대 난다
문진수는 작년에 대한민국 연희춤협회(한국 연희춤협회)를 조직했다. 전국 16개 지역에 지부와 지회가 개설되었고, 얼마 전 캐나다에도 지회가 만들어졌는데 조직의 부피보다는 좋은 작품을 만들고 좋은 공연을 올리는 것이 그의 목표이다. 그는 주변의 도움에 감사하고 이를 즐길 줄 안다. 늘 주변의 도움으로 함께 성장하고 발전하고 있는 것을 느끼며 부모님과 스승, 동료들과 주변에서 끊임없이 관심을 주시는 모든 분께 고개 숙여 감사할 줄 아는 인성을 지녔다. 마지막으로 그는 “십 년 적공에 장원나고, 백 년 적공에 광대 난다“는 말처럼, 오랜 수련과 노력을 요구하는 광대를 소중히 여기는 우리가 되어주길 진심으로 바랐다.
문진수의 ‘The 문진수’는 30여 년간 인간문화재 스승들에게 배운 한국 예술을 기반으로 트렌드에 맞게 현대인이 즐길 수 있도록 창작·제작한 여러 작품들을 통칭하는 브랜드다. 브랜드라는 것이 만들기는 쉽지만 성공시키기는 힘듯 것이 현실이다. 그럼에도 그는 다양한 시도를 통해 성공의 길을 걷고 있다. 문진수의 성공에는 전통에 담긴 가치와 철학을 작품에 녹여내고 현대적으로 수용하는데 대한 진지한 사고와 철학, 현재의 흐름에 맞는 재창작에 대한 도전정신, 겸손함과 감사함을 아는 인간성, 30여년을 꾸준하게 이어온 진득함 등 여러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특히 연희춤을 바탕으로 연희춤꾼으로 기억되고 싶은 문진수의 앞으로의 행보는 이 분야의 최고로서 찰리 채플린을 꿈꾸는 원대한 꿈의 실현과정이 될 것이다.
글_ 장지원(무용평론가)
사진제공_ 문진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