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용, 꿈을 이루기 위한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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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김성용에 대한 무용계의 관심과 기대가 크다. 잘 나가던 무용수에서 개성 있는 안무가로 나아가더니, 국내 무대를 넘어 일본에서 굵직한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러한 경력을 바탕으로 대구시립무용단에서 5년간 예술감독으로 자신의 리더십과 예술적 역량을 증명하였으며, 올해 봄에는 국립현대무용단의 예술감독으로 임명되어 세간을 놀라게 했다. 간략히 나열하니 그가 순탄하게 여기까지 올라선 것 같지만 사실은 춤을 시작하면서부터 꿈꿔왔던 예술감독 직(職)을 위해 치근치근 실력과 경험을 쌓아왔으며 많은 것을 감내하고 희생해 오기도 했다. 그중에는 안정된 삶에 대한 내려놓음도 있었을 것이다. 김성용을 9월 15일 예술의전당 모처에서 만났다.

어긋나지 않으려고 시작한 춤 

1976년 대구 출생인 김성용은 어려서부터 좋은 신체적 조건으로 육상이나 배드민턴 같은 스포츠를 즐겨 했다. 특히 배드민턴 종목에 부각을 나타내면서 초등학교 3학년부터 6학년까지 선수로 활동하면서 숙소 생활까지 했다. 그러다가 중학교 시절 배드민턴을 그만두면서 질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게 되었다. 어느 정도의 친구들이었냐면 소년원에 다녀온 이도 끼어있을 정도였다.

중학교 3학년 때 어쩔 수 없이 춤을 시작한 계기가 있었다. 교사로 갓 임용되어 첫 담임을 맡은 젊은 열혈 교사는 위태로워 보였던 제자를 바로 잡기 위해 수시로 집에 들락거렸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교사가 제자를 붙잡기 위해 내민 마지막 카드는 춤이었다. 운동을 했던 김성용의 입장에서는 남자가 무슨 춤을 추냐는 생각부터 들었으나 끈질긴 회유와 권유에 못 이겨 경상북도예술고등학교에 시험을 치르러 갔다.

춤을 배운 적도 없었기에 체육복을 입고 국민체조를 하고 나온 게 다인데 덥석 붙어버렸다. 경상북도예술고등학교는 그 지역에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명문 예고인데도 불구하고 춤을 제대로 배우지도 않은 김성용을 뽑은 이유를 유추해 보자면, 남학생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무용계 현실에다가 운동 지각 능력이나 체형과 같은 신체적 조건이 워낙 좋았기에 잠재력과 가능성을 보고 뽑았으리라 본다.

입학 후에도 한동안은 수업을 빠지고 옛 친구들과 만나곤 했다. 그러다가 2학년 때 현재 계명대학교 교수인 최두혁을 만나면서 춤에 대한 인식이 완전히 바뀌게 되었다. 당시 최두혁은 기술, 표현, 체형 그리고 인성까지 고루 갖췄던 그야말로 누구나 인정하는 현대무용계의 스타였다. ‘진짜’를 접하게 된 김성용은 당시를 회상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수업 시간에 시범을 보이는 퀄리티가 남달랐다. 남자 춤이 저렇게 멋있고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았다.” 가슴 안쪽에서 저렇게 춤을 춰보고 싶다는 열망이 일렁거리면서 정말이지 미친 듯이 춤을 연마하기 시작했다. 

지역 명문 예고에서 전국 명문 대학으로 

김성용의 기량은 수직 상승하여 고등학교 3학년 때가 되자 계명대학교 주최 콩쿠르에서 최고상을 받고 4년 장학금을 보장받는 수준에 올라섰다. 당시 대구 무용계는 경상북도예술고등학교와 대구시립무용단뿐 아니라 계명대학교, 영남대학교, 대구가톨릭대학교, 대구예술대학교에 무용과가 있을 정도로 강세를 보이고 있었다. 당연히 대구에 있는 대학으로 가려고 했는데 발레 전공 친구들이 서울에 있는 한양대학교 콩쿠르에 나간다고 해서 따라가 현대무용 부문에 출전했다가 남자로서는 최고상을 받아버렸다. 2등이었으나 당시는 남녀 구분 없이 함께 치르는 경연이어서 남자로서는 최고 순위였다.

그렇게 무용과 명문인 한양대학교에 95학번으로 입학했으며 1학년부터 공연에 투입되었다. 대학 시절 내내 하루 종일 3-4개씩 작품 연습을 하면서 서울을 물론 전국 단위로 공연을 계속해서 했으며 해외 공연까지 다녔다. 워낙 공연을 많이 하다 보니 비하인드 스토리가 한두 개가 아닌데 가장 기억에 나는 것은 해외 공연 때 무대 위에서 잠이 든 것이다. 무용단 막내로 여러 작품에 군무로 출연해서 체력 소모가 많았던 데다가 시차 적응까지 안 되어 무대 위에 누워있는 장면에서 그만 잠이 들었다. 모두 퇴장한 상태에서 김복희 교수가 솔로를 추는 장면이 시작되었는데도 계속 누워있었다. 본의 아니게 그 무용단 서열 1위와 가장 막내가 듀엣 아닌 듀엣을 한 셈이 되어 버렸다. 

안무에 대한 끊임없는 시도와 노력 

무용수로서 끊임없이 러브콜을 받는 상황에서도 안무에 대한 열의는 사그라지지 않았다. 김성용의 첫 안무작은 시어터제로라는 소극장에서 2000년에 기획한 ‘댄스 밀레니엄’에서 발표한 〈3식E〉이었다. 이후 매년 3-4편씩 창작해서 20여 년이 흐른 현재 150여 편의 작품을 발표했다고 한다. 대작도 있지만 상당수 작은 규모의 작품이기에 이러한 다작이 가능했으리라 본다.

27세 때 외국무용단에 입단할 기회도 있었으나 오디션의 마지막 관문에서 막혀 버렸다. 마지막에 접촉즉흥을 해야 했는데 한국에서는 아직 접할 기회가 없다 보니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파트너를 이룬 여자 무용수가 펑펑 우는 걸 보고 슬픈 예감이 들었다. 전날 그 무용단 예술감독의 긍정적인 멘트도 아무 소용이 없어져 버렸다. 그날 일이 뼈에 사무쳤던 듯, 현재 김성용 안무의 주요한 특질로서 접촉즉흥을 포괄하는 즉흥적 요소라는 점은 우연이 아니라고 본다. 

일본 진출에서 얻은 것 

2003년에는 한국무용협회가 주최한 ‘젊은 안무가 창작공연’에서 최우수 안무가로 선정되어 그 부상으로 신진 예술가 지원 기금을 받을 수 있었는데 이는 일본 진출에 재정적인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아오야마극장의 극장장이었던 다카야 세이지의 적극적인 관심으로 그 극장에서 작품을 올릴 수 있었다. 김성용의 춤이 일본에 진출할 수 있었던 예술적 바탕은 다크한 분위기의 피지컬한 연행이 강한 인상을 심어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2012년부터 2015년까지는 교토공연예술센터의 3년짜리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었다. 매년 여러 워크숍과 쇼케이스를 거쳐서 3년 차에 완성된 형태의 작품을 발표했기 때문에 대단히 힘든 과정이었으나 이를 통한 예술적 성장도 이룰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의자를 소재로 10분짜리 창작을 10개 정도 해는 경우 처음 두세 작품은 잘 만들 수 있었으나 다섯 개째가 넘어가면 더 이상 할 게 없어서 벽에 부닥치게 된다. 어떻게든 방법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할 수밖에 없고 이를 통해 돌파구를 찾을 수 있는 정신력과 경험을 쌓을 수 있었던 것이다.

3년간의 프로젝트로 완성된 <원색 충동>은 야마다 세스코의 총괄기획, 김성용과 시라이 츠요시의 안무뿐 아니라 사진작가 아라키 노부요시, 작곡가 마리히크 하라 등 일본을 대표하는 예술가들이 여럿 참여하였다. 작곡은 원래 류이치 사카모토가 하기로 했었으나 건강이 급작스럽게 나빠져서 어시스트가 투입된 것이다. 당시 김성용이 얼마나 고생하고 고민했는지는 원래 마른 몸에서 7-8킬로가 더 빠졌다는 것에서 알 수 있다. 국내에서도 <원색 충동>이 공연되는 날을 기대해 본다.

이즈음, 김성용의 창작은 한층 성숙한 면모는 보이는데 2013년 서울무용제에서 <초인>이라는 작품으로 대상을 비롯하여 총 5개의 상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도 여기에 기인한다. 

대구시립무용단 예술감독으로 오랜 꿈을 이루다 

2017년 12월에 김성용은 춤을 시작할 무렵부터 간직했던 오랜 꿈을 이루게 되었다. 대구시립무용단의 예술감독으로 임명된 것이다. 그리고 최장이라고 할 수 있는 5년 동안 운영과 창작에 있어서 여러 가지 일을 하였다. 40명 정도 되는 단원들의 이끌어야 하는 일은 다양하고 복잡했지만 단순하면서도 본질적으로 접근했다. 리더로서 솔선수범하면 단원들이 믿어 주리라 생각한 것이다.

리서치 작업을 처음으로 해보는 단원들이 대부분이다 보니 스스로 찾아가는 과정에 대한 작업이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거의 매일 만나다시피 하다 보니 서로 간의 이해를 통한 신뢰가 두터워질 수밖에 없었다. 이를 바탕으로 5년간 15개 정도의 크고 작은 작품을 발표할 수 있었는데 그중에서 〈DCDC〉, 〈Be〉, 〈The Object〉, 〈아이튜브(i tube)〉 같은 작품은 두드러진 성과로 여겨진다.

김성용은 2010년대 후반부터 동시대적인 감각이나 예술적인 스케일 면에서 한층 성숙한 면모를 보였는데 이는 대구시립무용단에서 공고해졌다. 2020년 국제현대무용제(모다페)의 일한으로 5월 28-29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 오른 〈Be〉를 통해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Be〉를 통해 대구시립무용단이 … 스타일상 젊어지고 감각적으로 변했다는 인상이 있다. 무용수들의 춤 스타일이 그러하고 의상이나 음악 혹은 조명 또한 그러하다. 즉흥과 구성을 교차하는 안무는 각각의 개성이 묻어나오는 다양한 움직임으로부터 점차 구성력을 강조하다가 마침내 일체적 동시성을 갖춘 군무로 나아간다. … 무용수들은 기대 이상의 실현력을 보여주었으며 몇몇의 기량은 상당한 수준이었다. 대구시립무용단이 동시대적인 창작 경향에 동참하기 위해 얼마만큼 노력해왔는지 그리고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남다른 의미를 가진 공연이었다. 

<춤> 2023년 6월호

이듬해 대구문화예술회관, 경기아트센터, 제주아트센터와 협력하여 공동 제작한 이머시브 공연 〈The Object〉 역시 김성용 체제하에 대구시립무용단이 이루어 낸 하나의 성취였다. 

6월 16-17일 경기아트센터 대극장에서 펼쳐진 〈The Object〉는 현대무용에 현대미술 그리고 현대음악이 융복합된 형태로 이루어졌다. 안무와 공동연출을 맡은 김성용은 대구시립무용단의 예술감독으로서 일상 속에 소소한 물건들이 무대 위에서 확대되고 확장될 때의 이질감을 상상하는 데서 이 작품을 시작했다. 실제로 객석에 설치된 탁자에는 여러 가지 잡동사니들이 널려 있는데 그 물건들이 거대하게 구현된 것이 무대 위 오브제들이다. 이를테면 컵 안에 물은 커다란 비닐막이 되어 이리저리 옮겨지고 휘날리게 되며, 텀블러나 연필은 거대한 원통구조물로 승화되어 들락거릴 수 있게 된다. 예술가의 상상력에 의해 작고 큰 것, 사소하고 중요한 것에 대한 관념 자체를 반전시키는 작업은 흥미롭다. 

<객석> 2021년 8월호

대구시립무용단에서 김성용 창작의 정점은 <아이튜브(i tube)>라고 할 수 있는데 이에 관해 ‘2022년 연말 결산 및 주목할 만한 작품’(<춤> 2023년 3월호)을 발췌해 본다. 

5월 15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모다페 사전축제의 일한으로 펼쳐진 대구시립무용단의 <아이튜브(i tube)>는 현실적 삶에 직면하는 수많은 문제나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과 걱정 속에서 휘청거리는 우리의 모습을 투영하고 더 나아가 스스로의 존재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다. 작은 버스 크기의 플라스틱 원통형 오브제 즉 튜브 두 개를 주요 기재로 활용하면서, 이를 길게 이어붙이거나 분리하기도 하며 여러 위치로 이동시키고 돌리기도 한다. 무용수들은 이러한 튜브의 주위, 안과 밖, 위에서 움직인다.

거대한 튜브를 발견한 인간은 호기심과 관심을 보이다가 점차 끊임없이 재미와 흥미를 유발하는 그것에 얽매이게 된다. 나중에는 튜브로부터 벗어나려고 해도 벗어날 수 없거나 아예 벗어날 생각조차 못하는 전개가 펼쳐진다. 스스로의 편리와 편의를 위해 만든 문명의 이기에 도리어 잠식당하는 우리의 현 모습이 오버랩된다. 이러한 잠식은 인간을 끌어안은 튜브가 물속으로 가라앉는 이미지로 그려지는데, 튜브에 굴절되는 빛이라든가 진동하는 물소리에 의해 가장 인상적인 장면으로 새겨지게 된다. 심지어 잠식과 같은 본연의 의도와는 달리 시청각적인 미감이 강한 잔향을 남길 정도다. 김성용의 아이디어, 유재헌의 오브제, 유지완의 음향, 송영견의 조명의 협업이 조화로운 시너지 효과를 거둔 장면이다.

튜브를 매개로 하여 그 주위, 안과 밖, 위에서 걷고 뛰고 구르고 매달리고 기대는 등 다양한 움직임을 펼치는 무용수들은 퍼포먼스에서부터 아크로바틱까지 폭넓은 수용력을 보이고 있다. 30명에 달하는 대구시립무용단 단원들의 집중력 높은 실연이 작품을 성취를 받치는 또 다른 주요 요소라는 점에 대해서는 별 이견이 없으리라 본다. 이러한 대규모 군무는 협업적 가치가 돋보이는 설치, 음향, 조명과 어우러져서 하나의 대작을 완성하였다. 튜브를 활용한 창의적인 동작성 탐구라든가 주제 이미지에 대한 정밀한 전개 방식은 좀 더 요구될 수 있지만, 전반적인 작품 구조에서 대구시립무용단의 역량을 최대한 확인시킨 작품이라는 점은 변함이 없다. 

준비된 열정과 노력으로 단행하는 국립현대무용단의 쇄신

대구시립무용단에서 운영 능력과 창작 능력을 높이 인정받아서인지 2023년에는 4월에는 국립현대무용단 예술감독으로 임명되었다. 우리나라에 국·시립 현대무용단이 단 2개인데 둘 모두에서 수장으로 임명된 경우이니만큼 김성용의 꿈은 목표치를 상행하는 성과를 거두었다고 할 수 있다. 지금은 적응 기간으로 하나의 업무를 행정적으로 처리하려면 20-30개의 절차를 거치는 것 같지만 국립 단체로서 책임과 의무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한다.

그동안 국립현대무용단은 안무센터로서 기획하는 역할에 좀 더 신경을 써왔는데 이젠 안무센터와 컴퍼니로서의 역할의 균형을 찾아가야 할 때라고 여겨진다. 우선, 컴퍼니로서의 창작 작품일 경우 모든 무용수들에게 기획의 문을 활짝 열 계획이며 안무센터를 통한 초청 안무가에게도 30% 이상 자신의 단체에서 무용수를 뽑을 수 없게 함으로써 다양한 무용수들에게 열린 기회를 제공하려고 한다.

특히 아시아권에서 이와 같은 재원과 체계의 국립 현대무용단은 찾아보기 힘든 관계로, 아시아권을 중심으로 해외의 무용가들에게도 열린 기회를 제공하여 일종의 허브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중장기 방안도 마련하고 있다. 실제로 대구시립무용단에 몸담았던 시절 해외 무용수 2명 선발에 전 세계적으로 500명 이상이 지원했던 전례가 있었기에 긍정적인 성과에 대한 확신도 있다. 더 나아가 내년 6월에는 일본, 싱가포르, 홍콩, 대만 등의 아시아 투어도 계획 중이라고 한다. 이런 식으로 차근차근 내실 있게 국제 교류와 세계 진출의 발판을 튼튼하게 다져나가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젊은 예술감독의 준비된 열정과 노력으로 단행하는 국립현대무용단의 쇄신을 지켜봐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글_ 심정민(무용평론가·비평사학자)

사진제공_ 김성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