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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현장

춤작가

응집된 에너지의 발산과 연기력을 바탕으로 내공을 더하며 진일보하는 안무가, 최지연


한국무용가 최지연은 한국 창작춤의 발전을 이끌었던 창무회(創舞會)의 일원으로 활약했고 현재는 자신만의 아우라로 독립적인 작업을 병행하고 있다. 연극과 영화를 통해 다져온 뛰어난 표현력과 한국무용에서는 보기 드문 분절적 춤사위로 타 무용가와는 변별되는 능력을 보여 왔다. 춤과 연기를 통해 장르를 넘나들며 한국춤의 새로운 문법을 만들어가는 춤꾼이라는 평가가 적절한 그녀이다. 또한 한국무용계에서 70-80년대 르네상스를 이루던 모던에서 시작해 2000년대 이후 컨템포러리까지 영역을 넓히며 50대의 마지막을 불사르고 있는 최지연은 최지연 무브먼트와 남편 손병호와 함께 하는 극단 ZIZ에서 활발히 작업하고 있다. 열정의 무용가 최지연은 춤이라는 외길에서 타장르와 협업하며 이를 벗어나지 않고 오롯이 춤과 함께 해왔고 창무회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의리를 지켜 온 의리녀이기도 하다. 여성스러움 속에 뜨거운 내면의 에너지가 공존하는 그녀는 오늘도 경계를 넘나들며 춤춘다.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재능


그녀의 끼와 연기력은 어머니로부터 시작되었다. 얼마 전 작고하신 최지연의 어머니는 춤과 여성국극을 하였다. 김매자 선생은 부산여고, 어머니는 남성여고였지만 김동민 선생에게서 같이 춤을 배웠고 본인은 활동을 관두셨지만 딸인 최지연에게 무용을 시켰다. 처음 무용을 시작한 계기도 부산에서 4살을 조금 넘었을 때 어머니의 선배가 하는 학원에 따라갔다가였는데, 당시만 해도 학원에서 가르쳤던 춤 스타일이 다양해서 스페인춤, 남방춤, 민요, 타악기와 캐스터네츠 등을 배웠다. 과거에는 일반 영화극장에서도 공연을 했는데 이매방 선생과 같은 명인들의 공연을 봤던 좋은 기억도 갖고 있다. 현재 소외지역을 다니는 것처럼 어려서부터 순회공연 형태의 공연들을 다니기도 했다. 첫 배움이 이창신 무용학원이었고 이후 학원을 옮겨 다녔다. 중2때 산업대 예능교실에서 한국무용을 엄옥자 선생에게, 현대무용을 남정호 선생에게 배웠다. 고3때는 황무봉 선생의 학원에서 배워서 이화여대 입시를 치렀고, 당시 학원의 조교로 있었던 사람이 강미선 선생이었다. 


김매자 선생과 창무회와의 만남


그녀는 대학시절에 졸업여행을 가지 않을 정도로 재미없게 보냈다. 이한열의 죽음으로 어지럽던 한국사의 격동기에 데모에도 참여했고 올림픽에 마스게임 등으로 바빴기에 무용수업도 많이 못했다. 그러나 졸업 후 바로 창무회에 들어가면서 그녀의 무용인생도 바뀌었다. 김매자 선생 안무의 <춤, 그 신명>에 출연하면서 50일간 동구권으로 공연을 다니기도 했다. 이때 배우 박상원도 함께 했다. 당시 공연에 착용할 고깔을 가져가지 않은 최지연의 위기의 순간에 박상원이 고깔을 빌려줘 모면한 사건도 기억에 남는다. <춤, 그 신명>은 현재 창무회에 같이 있는 후배 김지영 선생과 그 동기들이 사물놀이 악기를 배워서 라이브로 연주했고 한 달 간의 장기공연을 했다. 당시 창무춤터가 신촌 기차역 근처에 있었는데 관객들이 줄을 서서 관람할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그녀에게 아마도 김매자 선생은 어머니의 친구이자 제2의 어머니 같은 존재가 아닐까 싶다.




첫 안무작 <겨울나무로부터 봄 나무에로>


평소 존경하는 강미리 선생과의 인연도 깊다. 강미리 선생은 초창기 본인의 작업 시 최지연을 모두 데려갔고, 강미리 선생이 한예종 연극원에 나가다 부산대학 교수로 가면서 그녀에게 연극원 수업을 물려주었다. 그것이 98년도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선생의 작업 과정을 현장에서 보면서 93년도에 첫 개인공연을 가졌다. <겨울나무로부터 봄 나무에로>는 황지우 시로 ‘시와의 만남’을 시도했던 기획공연이었다. 주제는 봄을 향한 의지와 원동력을 꿈틀거리는 숲과 나무로 표현했다. 미술은 용극장 대표도 했던 김형태 선생이 나무숲처럼 설치미술로 제작했다. 5명이 출연했는데 이때부터 박호빈 선생과 듀엣을 펼쳤다. 20대에서 30대로 넘어가던 시기로 대학로 카페에서 엽서를 보고 영감을 받아 하게 되었다. 당시 김은희 선생과 원일 선생도 해외에 나갈 때 멤버여서 두 사람의 도움도 있었고, 원일 선생에게 부탁해 라이브로 포스트 극장에서 이뤄졌다. 이 공연은 인기에 힘입어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와 같은 해외 공연을 3-4회 가기도 했다. 

  

연극, 영화와의 인연


현재 수원시립예술단의 권호성 선생, ‘극단 모시는 사람들’의 김정숙 선생과는 극장 개관 때인 1993년 극단 목화와 창무회가 오태석 선생의 희곡으로 <아침 한때 눈이나 비>공연에서 주인공을 맡으면서 인연이 시작되었다. 히로시마 원폭을 다룬 내용으로 엄마 역을 김매자 선생이 맡았고, 이때 남편인 손병호를 만났다. 이때부터 연기에 대한 생각도 생겼다. 이후 선욱현 극본, 권호성 연출의 <피카소, 돈년, 두보> 연극 작품에서 의뢰가 와서 춤추는 애인 돈년 역할을 맡았다. 광주민주화운동을 내용으로 하는 이 작품은 문예회관 소극장에서 두 달, 포스트극장에서 한 달 간 장기공연 되었다. 영화감독 송일곤 선생이 다른 역을 맡은 사람을 보러 왔다가 최지연을 보고 영화출연을 권했고 그것을 계기로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칸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소풍>(1999)에 출연하게 되었다. <소풍>은 IMF 때 가족의 동반자살을 다룬 내용으로 이때 남편인 손병호와 호흡을 맞추기도 했다. 이 작품을 시작으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뉴 커런츠 상’과 ‘관객상’을 수상한 <꽃섬>(2001)이라는 장편영화에도 출연했다. 이런 상황들이 그녀를 연극과 영화로 이끌게 된 것이다.




연극을 통해 만난 박호빈과 남편 손병호


박호빈과는 오랜 인연이다. 1990-91년도 쯤 창무회가 러시아 공연을 갈 때 서울예대의 연극하는 남자들이 무용수로 뛰었고 그 중에 박호빈이 있었는데 이때 그녀가 북춤을 가르치기도 했다. 제대로 작품을 같이 한 것은 앞서 언급했듯이 <겨울나무로부터 봄 나무에로>였고, 이후 현재까지 많은 작품을 해왔다. 1993년 <아침 한때 눈이나 비>에서 손병호를 만났고 이후 <소풍>, <꽃섬> 영화에서 같이 출연을 하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1996-97년 함께 극단을 만들어 활동했고 2001년 결혼에 이르렀다. 처음에는 서로의 생각의 차이로 손병호와 부딪침이 많았으나 서로 교집함을 찾게 되었다. 손병호와 <종아리살>과 <다갈라불망비>(부제: 오필리아의 들판)을 같이 연출했고 2000년 초반 손병호와 같이 극단 ZIZ를 만들어 <칼리큘라 닷컴>, <스핑크스> 등 움직임이 더 많은 연극을 하고 있다. 작년에는 대전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인문학 콘서트에서 ‘<손병호&최지연>의 인문학 콘서트’를 가져 함께 추구하고 만들어 온 삶의 궤적에 관해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다.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인 동시에 대표작 <천축>과 이외 작품들


임학선 선생이 대표로 있을 때 작품인 <다갈라불망비>(부제: 오필리아의 들판)를 안무해 오필리어 내용을 다뤘고 이때 배우 김수로가 햄릿 역을 맡기도 했다. 이 때 종이로 만든 붉은 가발을 장마다 바꿔 쓰면서 오필리어를 장마다 다르게 연출해서 그 다음 장이 기다려지는 공연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예악당 초창기에 공연을 올렸는데, 조각조각 되어있는 무대 리프트를 모두 다 사용해서 일렁거리는 느낌을 만들어냈다.


작품 <천축>은 최지연에게 중요한 작품이다. 1997년도 초연 시에는 30분 정도의 길이었으나 96년도 작품 <율>과 합쳐 1시간 넘게 만든 것으로 가장 애착이 가는 대표작이기도 하다. <율>은 11명 정도의 인원으로, 참여한 남자무용수들이 모두 연극원 출신이었고 즉흥춤페스티벌에서 발표했던 30분 길이의 작품이었다. 그러던 것이 <천축>이 합쳐지면서 창무회 단원들이 거의 모두 참여한 대작으로 완성된 것이다. 양용준의 음악에 대규모 군무, 더 거칠고 어마어마해진 에너지로 PAF올해의 안무가상 수상, 제15회 무용예술상 올해의 안무가상을 받게 해 준 작품이기도 하다. 


창무회35주년 정기공연 <내 딸을 100원에 팝니다>는 학교에서 시로 작품을 만드는 수업을 했을 때 장진성 시인의 ‘내딸을 100월에 팝니다’를 기반으로 남자가 아줌마처럼 연기하는 것을 보고 제작하게 되었다. 시인에게 시를 작품으로 제작해도 되겠냐는 허락을 맡고 자유소극장에서 공연했다. 이 작품을 계기로 춤을 통해 사회에 영향력을 줘야겠다는 생각과 무용수 본인이 답을 알고 작업해야 한다는 현실인식이 강해지기 시작했으며 무용수들에게 작품주제를 의식하고 춤을 춰야한다고 주장하게 되었다. <꽃, 제비노정기>가 바로 이후의 작품이며, 이 작품 이전에 의정부에서 창무국제예술제 테마가 ‘전쟁, 치유, 예술’이었을 때 <바람의 노래>를 만들었다. 북한의 실정을 다룬 첫 안무였는데 대전시립무용단 훈련장 시기에 이 작품을 다시 만들었다. 당시 너무 힘들어서 우울증이 오기도 했다. <꽃, 제비노정기>는 리바이벌도 많이 했고 연출을 하는 이재환 선생에게서 “최지연에게 가장 맞는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몸-4개의 강> 역시 최지연이 애착을 갖는 작품으로 다시 원일의 음악으로 돌아온 작품이다. 원일 선생은 인천시립무용단의 <해변의 여인>음악을 했었는데, 거기서 많이 가져와 썼다. 2000년대 최지연 무브먼트로 첫 지원금을 받아 <신공무도하가>를 제작했는데, 백수광부의 처가 몸을 나누는 내용으로 이때부터 몸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되었고, <몸-4개의 강>으로 확장되었다. <일하구도하>는 이재환 선생의 연출로 강을 9번 건너는 내용인데, 절대절명의 위기 속에서 살려면 자신의 몸을 알아야 한다는 주제로 계속 다듬어졌다. 


장은정, 김혜숙, 강애심, 최지연이 함께 ‘프로젝트 춤추는 여자들’을 구성해 만든 <당신은 지금 바비레따에 살고 있군요>는 최지연의 성격을 많이 변화시킨 작품이다. 이를 통해 작품을 발전시키게 되는 계기가 되었고, 할 때마다 몸이 아팠다가 공연하면 낫는 신기한 경험을 갖도록 해줬다. 이 작업은 진솔한 경험의 장이었으며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워크숍때 즉흥과 컨택을 하면서 자연스러운 동화와 교감이 이뤄진 작품으로 10년 이상 이어오고 있다. 2017년 <야만샤만>을 원일 음악으로 김혜숙, 박호빈과 함께 했고 이후 장승헌 선생의 기획으로 고양국제예술제에서 박호빈과 <난리블루스> 작품을 하며 박호빈과의 인연도 이어오고 있다.


2023년에는 북송녀 이야기인 <오페라 윤동주와 시간거미줄-북한인권을 노래하다>이라는 오페라 안무도 했는데 윤동주의 시를 바탕으로 탈북한 남자무용수를 지도하고 함께 춤췄다. 중국에 억류되어있는 많은 사람들을 UN에서 구제하자는 의도로 제작하였는데 또 한 번 북한의 얘기를 다루게 된 것이다. 


변화와 확장을 거듭하는 몸에 대한 인식


최지연 안무의 주안점은 자신의 몸의 변화와 이에 대한 인식에 있다. 더 나아가 나 자신으로부터 무용수, 관객, 사회로 변화되어 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녀는 안무 즉, 만들어내는 몸짓을 즐겼다. 즉흥적으로 움직임을 만들고 이것을 찾아가는 과정이 중요했으며 메시지에 맞는 사위들을 만드는 과정에 집중했다. 늘 새로운 주제를 찾기보다는 기존의 주제를 더 발전시켜 가는 것이 정답이라 여겼으며 이 과정에서 본인의 생각도 정립되고 있다. <플라스틱 버드>가 그 예시로, 이재환·양용준·김종석·민천홍·김철희가 계속 함께 구성하고 발전시키는 작품이다. 몸에 대한 인식은 주제의 확산으로도 이어져 몸, 북한 사회의 인권, 환경적인 주제를 다루면서 지금의 현상에 대해 주목하고 환기시키는 경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밖에도 <야만샤만>을 통해 인간의 삶이 진화하는 과정에서 가장 원초적인 부분을 다루며 사람들이 잃어가는 영성(靈性)과 인성(人性)의 회복, 유희적인 광란에 대한 슬픔도 담는 등 스펙트럼을 넓혔다.




분절과 진동이 움직임의 특성


최지연의 안무와 춤어휘는 오랜 시간 창무회에 몸담고 있었던 만큼 그 특성들을 지녔으나 본인의 색깔도 그만큼 강력하다. 그녀는 조각에 중심축이 있듯이 중앙에서 시작해 말초신경까지 가는 파동과 에너지가 멀리 발산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분절과 진동을 선호한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춤사위에는 세분화된 몸의 분절과 한국춤의 정중동, 즉흥춤이 주는 흥이 공존한다. 또한 어릴 적 배웠던 스페인춤, 남방춤의 움직임들이 아직도 배어있어 춤사위가 다양하다. 최지연 춤은 처음에는 몸짓이 미세하나 계속 발전하며 에너지가 느껴진다. 재즈와 힙합을 배우고 나서는 한국춤에서 쓰지 않는 부위들을 알게 되었고 아프지 않고 몸을 쓰는 방법 등 몸의 사용 방식을 찾아갔다. 그리고 무용수들에게 동작을 주면 그것을 더 발전시킬 수 있도록 하는 그녀만의 노하우가 있는데 이는 각자 무용수들의 몸이 다르기 때문에 다양한 춤이 되는 것을 이해하고 격려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무용수들이 자신감을 갖고 작품에 몰입할 수 있는 장점이 되고 거기서 새로운 것을 찾아가기도 한다. 


향후 계획들


그녀는 올해 1월 김매자 선생의 강릉 워크숍에서 즉흥으로 작품을 만드는 과정을 진행한다. 또한 뉴질랜드 댄스컴퍼니 모스가 창무국제예술제에 참가하면서 창무회와 콜라보를 많이 해 왔는데, 서울과 뉴질랜드를 오가며 2년간 같이 작업한 ‘숲’을 내용으로 한 작품을 제작할 예정이다. 박사학위 취득 후 이론과 실제를 현장에서 접목시켜 구현하고 있는 최지연은 사회적 현실을 반영하고 깊이 있는 작품으로 한국춤의 흐름에 기여하고 있다. 인천시립무용단 비상임 부안무, 대전시립무용단 상임 지도위원 및 조안무 등을 맡는 동안 대작을 향한 역량을 키워 온 최지연은 현재 창무회 예술감독이다. 드라마틱한 미장센을 만들어내고 개성 있는 춤으로 무르익은 활동을 보여주고 있는 최지연은 지금 다섯 번째의 계절 바비레따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춤과 극으로 다져진 단단한 기본기와 끊임없는 노력,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동시대성을 반영하려는 진솔함이 무한한 가능성은 그녀가 여전히 진일보하는 원동력이다.



                                                         글_ 장지원(춤평론가)

                                                     사진제공_ 최지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