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상의 위치에 올라선 사람은 그만큼의 노력과 세월의 켜가 쌓여있다. 한국 최고의 국립무용단 수석무용수의 자리를 지켜오며 최근에 자신의 작업을 통해 안무가로서의 가능성도 펼쳐 보인 무용수 김미애가 바로 그러한 인물이라 하겠다. 컨템퍼러리 한국무용이 다양한 방식으로 영역을 넓히는 과정에서 그녀는 전통의 향기를 잃지 않으면서도 창작의 신선함과 창의성을 모두 소화할 수 있는 발군의 실력을 갖추고 있다. 40여 년에 가까운 시간을 오롯이 춤만을 바라보고 함께 해 온 그녀의 끈기와 춤에 대한 애정은 아직까지도 사그라들지 않고 현재진행형이다. 한 번도 어릴 적 꿈인 무용가에서 벗어나 본 적이 없는 그녀의 인생은 가히 꿈을 이룬 예술가의 행복한 삶이라 하겠다. 향후 수석무용수의 자리에서 뛰어난 원로무용가로 이어질 김미애의 행보에 주목해 보자.
제주도에서 무용가의 꿈을 키운 어린 소녀
제주도 출신인 그녀는 부모님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 제주도에 유일한 무용학원에서 처음 무용을 시작했다. 2남 1녀 중 막내였던 그녀는 7살에 무용을 시작했고, 탁구선수 출신이셨던 아버지를 따라 어려서부터 탁구를 배우기도 했다. 체육회 쪽 일을 하시던 아버지는 여자는 다른 분야의 일을 하길 바라셨지만 과거 무용을 하고 싶었으나 못하셨던 어머니가 그 꿈을 김미애에게 대신 펼치게 하면서 유치원 대신 무용학원을 가게 되었다. 제주도에 하나였던 무용학원은 제주도립무용단을 창단한 김희숙 선생님이 운영하셨고, 선생님은 제주민속무용에 관한 많은 것들을 보유하고 계셨다. 또한 제주도에서 계속해서 연구와 무대활동을 펼치셨다. 아버지 후배의 부인이셨던 김희숙 선생님과의 만남은 그녀가 무용을 하는 데 가장 큰 계기이자 시작점이었다. 현재처럼 한국무용, 현대무용, 발레의 세 장르를 배운 것이 아니라 한국무용과 제주의 민속무용을 자연스럽게 접한 것이다.
그러나 불행이 닥쳤다. 아버지가 중학교 들어갈 때 돌아가시면서 무용학원은 몇 년 못 다니고 관둘 상황이 되었다. 다행히 김희숙 선생님이 아껴주신 덕분에 그 배려로 중, 고등학교까지 무용을 계속했다. 이후 선생님이 제주도립을 창단하시면서 그곳에 들어가 2년 동안 단원 활동을 했다. 고향이지만 제주도를 벗어나고 싶기도 했고, 배움에 목말랐던 그녀는 서울에서 더 공부하고 싶은 마음에 선배 언니의 도움(입시작품을 짜줌)으로 한성대학교에 입학했다. 부전공인 현대무용과 발레를 처음 접하게 된 그녀는 대학 시절 당시 부전공이 배움의 신세계였고 그 시간이 너무나 즐겁고 소중했다.
세 곳의 무용단에 동시 합격하고 주역으로 거듭나다
졸업 후 바로 직장을 구해야 했기에 서울시립무용단과 국립무용단, 서울예술단을 모두 시험 봤다. 날짜가 다 달라서 가능한 일이었고 세 군데 모두 합격했다. 특히 서울시립무용단은 배정혜 선생이 단장이었고 당시 2명만 뽑았는데 둘 다 시립을 가지 않아서 노여워하기도 했다. 결국 1997년 국립무용단을 선택한 김미애는 국수호 선생의 단장 시절, 창작을 주저하지 않는 모습이 좋았다. 입단 1년 뒤 김영태 선생 대본, 국수호 선생 안무의 〈티베트의 하늘〉에서 첫 주역을 맡게 되면서 주목을 받았다.
또한 당시 국립무용단은 현대무용가 초청이 이슈였는데, 이정희 선생의 〈자연인〉이라는 창작작품에서 박호빈 무용가와도 함께 했으며 이 두 작품을 기회로 전통만이 아닌 창작 작업을 하게 되었다. 기억나는 작품으로 배정혜 선생의 〈춤, 춘향〉이 김미애를 더 각인 시켜준 작품이었고, 김현자 선생의 〈비어있는 들〉과 안무가 프로젝트로 안성수 선생의 〈틀〉이 기억에 남는다. 수많은 예술가들과 함께 한 작업들이 겹겹이 쌓여 지금까지도 몸과 기억으로 남아있다.
가장 애착이 가고 기억에 남는 작품 〈티베트의 하늘〉
가장 사무치게 기억나는 작품은 〈티벳의 하늘〉이었다. 1998년 당시 국수호 선생님의 창작 작품인 데다가 원타이즈만 입어서도 파격이었고, 1년 차가 주역을 하는 것이 부담도 컸다. 안무자는 동양적 세계관을 극적으로 표현하며 신비롭고 이국적인 분위기 속에 다양한 볼거리를 갖추었다. 윤혜정과 김윤수, 김미애와 이경수가 더블캐스팅으로 이뤄진 공연이었는데, 이 작품은 원래 주역이 임신을해서 후배들 중 오디션을 거쳐 주역을 선발한 경우였다. 여기에 주역으로 발탁되면서 맡은 역할을 통해 성장하는 경우 중 하나가 되었다. 더불어 국립무용단이 시기적으로 변화할 때마다 무용수로 그 현장에 있음으로써 다양한 기회가 왔기에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이기도 했다.
아트 프런티어, 〈몸짓에 날개를 달다〉로 시작한 안무작업
첫 안무작은 한성대 동문인 정길만과 같이 했으며 무용수로서 참여했다. 이후 〈중간단계, 회색빛 하늘〉이 있다. 정동극장이 한국문화예술계의 미래를 예견케 하는 젊은 예술가들을 무대에 올리는 아트 프런티어 시리즈의 네 번째로 그녀를 선택한 것이다. 〈몸짓에 날개를 달다〉가 주제목이었던 이 작품에서 춤에 대한 열정과 춤을 통한 희로애락을 표현했다. 1부 ‘중간단계’는 단독으로 했고, 춤 안에 있는 김미애를 그려내면서 폭풍우 같은 열정을 담았다. 2부인 회색 빛깔은 당시는 연인이었던 김용걸이 함께 무대에 올랐다. 10년 동안 변함없는 사랑을 키워온 두 무용수의 사랑이 한껏 묻어나는 작품으로 평가되었다.
남편인 김용걸과는 1997년도 국립무용단 시절, 자신은 국립무용단 단원으로, 김용걸은 국립발레단에 재직했기에 오며 가며 만나게 되었다. 이후 김용걸이 파리를 가게 되었고 8~9년을 기다리고 2007년에 결혼했다. 김용걸과 같이 한 〈볼레로〉는 듀엣 버전이었고, 〈비애모〉는 김용걸이 한국예술종합학교에 간 뒤 오르페우스와 유리디체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으로, 여기서도 둘이 공연했다. 또 다른 안무작 〈Mindmap〉에서는 현대무용수 김형남과 같이 듀엣을 펼치기도 했다.
안무의 폭을 넓힌 〈맘궤다림〉과 김경란 선생의 가르침
무용수로서의 커리어를 착실하게 쌓아온 그녀는 돈화문 국악당애서 최근 공연한 〈맘궤다림〉이 진정한 의미에서 최초의 안무작이라 하겠다. 김미애가 온전히 안무와 독무를 겸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네 안의 너를 만나라”는 김경란 선생의 격려로 독무로서 시작해 보면 어떨까라는 마음에 처음부터 끝까지 두려움을 안고 시작한 작품이었다. 김경란 선생에게 따로 춤을 공부한 지 10년이 되었다. 이는 나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춤추고자 함이었고, 김경란 선생의 가르침은 “너의 춤을 추어야 한다”는 것으로, 각자의 향기를 찾는 작업을 특징으로 한다.
이 작품을 하면서 기존의 자신과 다름이 필요할 거라는 윤중강 선생님의 숙제가 임팩트가 있었다. 영동할망에 대한 내용을 다뤘는데 제주도 신방이라는 독특한 차별성과 보편성이라는 둘을 모두 담고자 했다. 영동할망이라는 인물과 제주도의 아픔이라는 지역성을 그려냈고, 기도하는 사람들의 마음과 신적 존재, 신방, 어며니와 같은 다중적 의미를 포괄한다. 작품을 하면서 춤적으로는 제주도립무용단에서 했던 제주도식 굿의 움직임이 기억에 남으면서 손목춤이라고 하는 가락춤도 사용했다. 역사성과 전통을 근간에 두었더니 안 보이던 것이 보이는 계기가 되었다.
안무자의 요건과 무용수, 안무가로서의 김미애
김미애는 안무자가 갖춰야 할 조건으로 사람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꼽았다. 또한 본인의 예술세계를 무용수들에게 전달하고 작업의 과정에 고집과 확신, 안목도 필요함을 언급했다. 지금까지 무용과 함께 해 온 세월 속에서 그녀는 무용수로서의 삶에 만족했고 선택받은 사람이라 여기고 있었다. 어찌 보면 그 점이 실험정신을 가로막았던 것이 아닌가를 인식하면서 조심스럽지만 과하지 않게 자신의 길을 찾는 부분에 용기를 갖게 된다. 앞으로 안무가로서도 어떤 동기부여가 될 수 있다면 부족하다 싶어도 작업에 임할 마음가짐도 있었다. 앞으로 그녀는 국립무용단에서 꽃을 피웠으니 감사한 마음을 갖고 무용수로서 이들과 함께 춤추며 마무리까지 최선을 다하는 무용수이고 싶어 했다. 또한 순응하는 삶을 살고 싶어 했으며 춤 자체를 즐겼기에 후회는 없다는 말이 인상깊었다.
천상 무용가로서 외길을 걸어온 김미애는 어린 시절의 바람을 현재로 실현했다. 나비처럼 아름다운 춤사위로 관객들을 사로잡기도 하고 해방을 갈망하며 자유롭고도 열정적인 모습으로 다양한 춤을 통해 관객들에게 감동을 주는 무용수 김미애는 다각도의 매력을 소유한 인물이었다. 더불어 〈맘궤다림〉안무를 통해 안무가로서의 가능성도 충분히 입증했다. 수석무용수로서 집중 조명을 받아왔음에도 그 기회가 주어짐에 감사할 줄 알고 자신을 채찍질하며 정상의 위치를 유지하는 노력도 그녀가 지금의 위치에 있을 수 있는 원동력이다. 가냘픈 몸매는 여성스럽지만 춤에 내재된 폭발적 에너지는 제주도 특유의 강인한 여성상이라는 지역적 특성까지 더해져 외유내강(外柔內剛)의 품성도 담고 있다. 앞으로 더욱 다채로운 스펙트럼을 펼치며 겸손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갈 김미애가 얼마나 더 발전할 수 있을까를 지켜보는 일도 흥미롭다.
글_ 장지원(춤평론가)
사진제공_ 김미애
전세계의 독자들을 위해 '구글 번역'의 영문 번역본을 아래에 함께 게재합니다. 부분적 오류가 있을 수 있음을 양해 바랍니다.
Please note that the English translation of "Google Translate" is provided below for worldwide readers. Please understand that there may be some errors.
Kim Mi-ae, a principal dancer with both outstanding skills and humility, has achieved her dream
Anyone who has reached the top has put in the same amount of effort and accumulated years. Kim Mi-ae, a dancer who has maintained her position as the principal dancer of Korea's best national dance company and has recently shown her potential as a choreographer through her own work, is such a person. As contemporary Korean dance expands its scope in various ways, she has outstanding skills that can digest both the freshness and creativity of creation while not losing the scent of tradition. Her tenacity and love for dance, which she has spent nearly 40 years focusing solely on dance, are still ongoing. Her life, which has never deviated from her childhood dream of becoming a dancer, can be said to be the happy life of an artist who has achieved her dream. Let's pay attention to Kim Mi-ae's future steps as she moves from the position of principal dancer to an outstanding senior dancer.
A young girl who dreamed of becoming a dancer in Jeju Island
A native of Jeju Island, she began dancing at the only dance academy in Jeju Island under the influence of her parents. The youngest of two sons and one daughter, she began dancing at the age of seven and also learned table tennis from a young age, following her father, who was a former table tennis player. Her father, who worked for the Athletic Association, wanted women to pursue other fields, but her mother, who had wanted to pursue dance in the past but was unable to, let Kim Mi-ae pursue her dream instead, so she ended up going to a dance academy instead of kindergarten. The only dance academy in Jeju Island was run by Kim Hee-sook, who founded the Jeju Provincial Dance Company, and the teacher had a lot of knowledge about Jeju folk dance. She also continued to conduct research and perform on stage in Jeju Island. Meeting Kim Hee-sook, who was the wife of her father's junior, was the biggest opportunity and starting point for her to pursue dance. Instead of learning the three genres of Korean dance, modern dance, and ballet as she does now, she naturally encountered Korean dance and Jeju folk dance.
However, misfortune struck. Her father passed away when she was entering middle school, and she had to give up the dance academy after only a few years. Fortunately, thanks to the consideration of her teacher, Kim Hee-sook, she continued dancing through middle and high school. After that, when the teacher founded Jeju Provincial Dance Company, she joined the company and worked as a member for two years. Although she was from Jeju, she wanted to leave Jeju Island and was thirsty for learning. So, she wanted to study more in Seoul, so she entered Hansung University with the help of her senior (who wrote her an entrance exam essay). She first encountered her minor, modern dance and ballet, and during her college years, her minor was a new world of learning, and she enjoyed and cherished that time so much.
Passing the entrance exams for three dance companies at the same time and becoming a leading role
After graduating, she had to find a job right away, so she took the exams for the Seoul Metropolitan Dance Company, the National Dance Company, and the Seoul Arts Company. It was possible because the dates were different, and she passed all three. In particular, the Seoul Metropolitan Dance Company was led by Bae Jeong-hye, and at the time, only two people were selected, and she was angry because neither of them went to the city. Kim Mi-ae, who eventually chose the National Dance Company in 1997, liked the way she didn’t hesitate to create when she was led by Kook Su-ho. A year after joining, she received attention when she took on her first leading role in 〈Tibet's Sky〉 written by Kim Young-tae and choreographed by Kook Su-ho.
Also, at the time, the National Dance Company had an issue with inviting modern dancers, and she worked with dancer Park Ho-bin in Lee Jeong-hee’s creative work 〈Natural Person〉 and these two works gave her the opportunity to do creative work, not just traditional work. Among the memorable works, Bae Jeong-hye's 〈Dance, Chunhyang〉 was the one that made Kim Mi-ae more recognizable, and Kim Hyun-ja's 〈Empty Field〉 and Ahn Seong-su's 〈Frame〉 as a choreographer project are memorable. The work I did with numerous artists piled up and still remains in my body and memory.
The most affectionate and memorable work, 〈Tibet's Sky〉
The work I remember most vividly was 〈Tibet's Sky〉. It was a work created by Kook Su-ho in 1998, and it was also unconventional to wear only one-piece tights, and it was also burdensome to have a first-year performer play the lead role. The choreographer dramatically expressed the oriental worldview and provided various things to see in a mysterious and exotic atmosphere. It was a performance with double casting of Yoon Hye-jeong, Kim Yun-su, Kim Mi-ae, and Lee Kyung-soo, but the original lead role was pregnant, so the lead role was selected through an audition among juniors. Here, she was selected as the main character and grew through the role she was given. In addition, she was able to have various opportunities by being there as a dancer whenever the National Dance Company changed over time, so it was also the piece she was most attached to.
Art Frontier, Choreography work that started with 〈Giving Wings to Gestures〉
She worked with Jeong Gil-man, a fellow alumnus of Hansung University, and participated as a dancer. After that, there was 〈Intermediate Stage, Gray Sky〉. Jeongdong Theater selected her as the fourth in the Art Frontier series, which brings young artists who foresee the future of the Korean cultural arts world to the stage. In this piece, which had 〈Giving Wings to Gestures〉 as its theme, she expressed her passion for dance and the joys and sorrows through dance. Part 1, “Intermediate Stage,” was performed alone, and she expressed her stormy passion by portraying Kim Mi-ae in dance. Part 2, “Gray Colors,” was performed with Kim Yong-geol, who was her lover at the time. It was evaluated as a work that fully expressed the love between two dancers who have maintained their unchanging love for 10 years.
She met her husband, Kim Yong-geol, in 1997 when she was a member of the National Dance Company, and Kim Yong-geol was a member of the National Ballet. After that, Kim Yong-geol went to Paris, and they waited for 8~9 years and got married in 2007. 〈Bolero〉, which she performed with Kim Yong-geol, was a duet version, and 〈Biae-mo〉, which was a work that dealt with the story of Orpheus and Eurydice after Kim Yong-geol went to the Korea National University of Arts, was also performed by the two. In another choreographic work, 〈Mindmap〉, she performed a duet with modern dancer Kim Hyung-nam.
Expanding the scope of choreography, 〈Mamgwedarim〉 and the teachings of Kim Kyung-ran
Having steadily built her career as a dancer, 〈Mamgwedarim〉 which she recently performed at Donhwamun Gukakdang, is truly her first choreographic work. This is because Kim Mi-ae is a complete choreographer and soloist. It was a piece that she started with fear from beginning to end, thinking that it would be a good idea to start as a solo dance, encouraged by Kim Kyung-ran, “Meet the you inside you.” It has been 10 years since she studied dance separately with Kim Kyung-ran. This was because she wanted to find her own identity and dance, and Kim Kyung-ran’s teaching was that “You have to dance your own dance,” and it is characterized by the work of finding each person’s own scent.
The homework of Yoon Joong-gang, who said that she would need to be different from her previous self while working on this piece, had an impact. It dealt with the content of Yeongdong Halmang, and she wanted to include both the unique differentiation of Jeju Island’s Shinbang and universality. It depicts the character of Yeongdong Halmang and the regional nature of Jeju Island’s pain, and encompasses multiple meanings such as the hearts of people praying, divine beings, shinbang, and eomni. While working on the piece, I remembered the movements of Jeju-style gut performed by the Jeju Provincial Dance Company, and I also used a rhythmic dance called wrist dance. By basing it on history and tradition, I was able to see things that were previously invisible.
Requirements for a choreographer and Kim Mi-ae as a dancer and choreographer
Kim Mi-ae mentioned that a choreographer must be able to understand people’s hearts as a condition for being able to convey her artistic world to dancers, and mentioned that she needs to be persistent, confident, and discerning in the process of her work. In the years she has spent with dance, she has been satisfied with her life as a dancer and considered herself a chosen person. In a way, she realized that this may have been what hindered her experimental spirit, and she gained courage in finding her own path cautiously but not excessively. In the future, as a choreographer, she also had the mindset to work hard even if she felt inadequate, if it could be some kind of motivation. In the future, she wanted to be a dancer who would be grateful for having blossomed at the National Dance Company and do her best to dance with them until the end. She also wanted to live a life of compliance and enjoyed dancing itself, so her words that she had no regrets were impressive.
Kim Mi-ae, who has walked a lonely path as a heavenly dancer, has realized her childhood dream in the present. Kim Mi-ae, a dancer who captivates the audience with her beautiful butterfly-like dance moves and impresses the audience with her free and passionate appearance while yearning for liberation, was a person with multifaceted charm. In addition, she sufficiently proved her potential as a choreographer through the choreography of 〈Mamgwedarim〉. Despite having been in the spotlight as a principal dancer, she is grateful for the opportunity and her efforts to maintain her position at the top are the driving force behind her current position. Her slender body is feminine, but the explosive energy inherent in her dance is combined with the regional characteristics of Jeju Island's unique strong female image, and she also has the character of being soft on the outside but strong on the inside. It will be interesting to see how much more Kim Mi-ae can develop as she humbly walks her own path while unfolding an even more diverse spectrum.
Written by Jang Ji-won (dance critic)
Photo provided by Kim Mi-a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