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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작가

인간관계의 끝없는 변화를 탐구하며 무한으로 나아가려는 무용가 손영일

춤작가

Vol.111-2 (2024.11.20.) 발행

글_ 이상헌(춤평론가)

사진제공_ 손영일




2009년 제18회 부산무용제 결과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당시 26세 청년 안무가 손영일이 안무한 〈미친 개미들〉(휘 댄스컴퍼니)이 대상을 받은 것이다. ‘휘 댄스 컴퍼니’는 당시 부산무용제 참가를 계기로 창단된 신생팀으로 춤 전공과 출신 학교를 가리지 않고 뭉친 단체인데, 신생팀이 부산무용제에서 대상을 차지한 것도 처음이었다. 1992년 시작한 부산무용제가 2009년 이전까지 대상을 주로 대학교수가 이끄는 무용단이나 동문 단체가 받아 온 것을 생각하면 손영일이 대상을 거머쥔 것은 그야말로 이변이었다. 그런데 그 일이 시작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그때는 아무도 몰랐다. 이후 손영일은 무서울 정도로 두각을 나타내었다. 2015년 제24회 부산무용제에서 〈잊혀질 권리〉로 다시 대상을 받는다. 2021년 제30회 부산무용제에서 〈안녕, 나의 존재〉로 대상과 안무상을 받았고, 같은 해 열린 전국 무용제에서 특별상을 받았다. 2023년 제32회 부산무용제에서 〈페르소나〉로 대상, 연이어 열린 전국 무용제에서 금상, 안무상, 무대예술상을 받았다. 이뿐만 아니라 부산무용제에 출전할 때마다 우수상, 연기상 등 상을 놓치지 않았고, 다른 경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부산 무용계에서 손영일처럼 적극적으로 경연에 도전한 안무가는 없다. 보통 한두 번 참가하고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는데, 손영일은 그렇지 않았다. 아무래도 상을 받는 것만 목적이 아닌 듯했다. 왜 그렇게 경연에 매달리는지 물었다. 그의 답을 듣고 ‘매달린다’라는 표현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손영일은 중학교 3학년 때 춤을 시작했다. 중학교 2학년까지 학업성적이 매우 우수한 학생이었는데,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강압적인 학교 공부에 대한 회의가 일어나 공부가 힘들고 싫증이 나고 싫어졌다고 한다. 그 또래가 흔히 겪었을 법한 일이었는데, 이 일이 그에게 완전히 새로운 계기가 되었다. 공부에서 손을 놓고 나서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방황하다가 어머니의 권유로 무용을 시작하게 된다. 그것밖에 없다고 믿었던 길을 포기하고 나면 미처 보지 못했던 길이 보이는 법이다. 손영일이 잘하던 학업에 갑자기 회의가 생긴 것이 결국 그를 예술가라는 새로운 길을 열어 주었다. 학원에서 무용(현대무용)을 배우면서 생소한 환경에 두려움도 들었지만, 춤을 추면서 느낄 수 있는 직접적인 변화와 성취감에 점점 빠져들었다. 춤에 흠뻑 빠진 손영일은 브니엘 예고에 진학했고, 예고에서 창작법을 배우면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창작 수업이 너무 좋아 1등을 놓치지 않았는데, 예기치 않은 무릎 부상을 입었다. 부상이 심각했지만, 굴하지 않고 극복한 손영일은 동아대학교에 입학한다. 


대학 생활은 수업-연습-공연-집의 무한 반복이었다. 남의 눈에는 단순해 보일 수도 있지만, 그에게는 춤에 빠져 지낼 수 있었던 즐거운 시간이었다. 대학에서 동문 단체인 ‘LOGO 현대무용단’ 공연에 참가하면서 첫 무대를 경험하였다. 처음은 설렌 기억으로 오래 남아있기 마련이고 손영일도 그랬다. 대학을 졸업한 후 부족한 실력을 채우고 관심이 있었던 안무 공부를 위해 배울 수 있는 사람과 기회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갔다. 당시 동기 중 많은 수가 학교에 남았는데, 손영일은 학교에 남는 것이 자기 발전에 별로 도움이 안 될 것으로 판단했다. 무용과를 졸업하면 선뜻 무용가로 예술계에 발 딛기가 두렵다. 예술 현장은 울타리 없는 냉정한 정글 같은 곳이라서 내 한계가 여지없이 드러난다. 그래서 많은 대학 졸업생이 대학원에 진학하고, 아니면 동문 단체에 남아 활동한다. 안정적인 울타리를 찾는 것이다. 이를 비난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고, 울타리 벗어나기를 실천한 이들의 용기를 새겨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들은 울타리를 스스로 세운다. 그 울타리는 높거나 단단하지 않고 누구나 넘나들 수 있는 부드러운 울타리이다. 폐쇄가 주는 안정감을 벗어던지고 열린 자유를 찾으려는 시도이다. 손영일은 자기중심을 세우고, 열린 자유를 찾고 있었다. 여기까지 손영일은 삶에서 중요한 두 번의 선택을 하였다. 첫 번째는 중학교 때 춤을 선택한 것이고, 다음은 대학에 남아있지 않고 자기 세계를 구축하기 위해 밖으로 나온 일이었다.






대학 밖으로 나와 자기 계발을 위한 소중한 시간을 보내던 손영일은 단체를 만들어 많은 무용수와 소통하면서 작업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2011년 ‘손영일 현대무용단’을 결성하고 〈손영일 댄스 스테이지 no.1〉을 올린다. 손영일은 사람의 관계, 즉 인간관계에 관심이 있었고, 이를 춤으로 계속 풀어내고 있다고 말한다. ‘사람’과 ‘관계’를 따로 다루기도 하고 ‘사람 관계’로 뭉쳐보기도 하는 등 그가 천착하고 있는 주제는 무한으로 변주할 수 있어서 계속 시도하고 있다고 한다. ‘사람-관계’는 ‘존재의 의미’에 관한 이야기가 될 수 있다. 존재는 상대적이어서 타자와의 관계에서 확인할 수 있다. 내 존재를 알기 위해 타자를 이해해야 한다는 모순적으로 보이는 당위는 많은 예술가를 고민에 빠지게 한 주제이기도 하다. 손영일은 어쩌면 영원히 답을 내지 못할 넓고도 직접적인 이 주제를 여태껏 집요하게 탐구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그의 작품들은 공통점이 있다. 주제의 일관성과 작품마다의 개별성을 적절하게 버무린 그의 작품들이 경연에서 좋은 결과를 얻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물론 경연에서만 두각을 나타낸 것이 아니다. 부산국제무용제 등 유수의 무용제에 초청을 받았고, 부산시립무용단과의 협업 공연을 포함해 언급하기 벅찰 정도로 손영일은 안무가로, 춤꾼으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왜 그렇게 경연에 치열하게 참가하는가?’라는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그의 대답은 ‘제가 올리고 싶은 새로운 작품을 선보이려는 것이 목적입니다.’이다. 지원금을 받지 못하면 작품을 올리지 못하는 현실에서 그가 선택한 방법이 경연에 참가하는 것이었다. 지원금은 받지 못할 수도 있지만, 경연은 의지가 있고 준비가 되어 있다면 참가할 수 있다. 그에게 경연 무대는 신작을 선보일 기회의 무대이다. 또한 그가 경연에 나감으로써 함께하는 무용수들도 춤출 기회를 얻게 된다고 말한다. 이 말은 쉬지 않는 창작 욕구를 해소할 방법으로 경연에 참가하는 것을 선택했다는 뜻이다. 경연에서 상을 받는 것은 주된 목적이기보다 창작의 절실함이 얻어 낸 성과였다.


그의 몇 작품을 보면서 ‘왜 비슷한 주제를 동어 반복하듯 표현할까?’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손영일의 답을 듣고 나서 그의 작품들이 새롭게 다가왔다. 동어 반복이 아니라 치열한 탐색이었다. 어떤 주제를 하나의 작품에 모두 담아낼 수 없는 것이 오히려 당연한 일이다. 인간관계에 관한 문제를 다면적 시각으로 바라본 그의 작품들이 때로는 비슷한 분위기로 보일 수도 있었다. 그는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작품을 보는 모든 분이 주제와 내용을 편하게 이해하고 느끼며 함께 호흡하는 작품을 만들어보자는 고민을 항상 가지고 있다.”라고 말한다. 무용가가 무대에서 관객을 만나는 것은 관객에게 말을 거는 것과 같다. 내가 무슨 고민을 하고,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설명하고 설득하면서 공감을 끌어내는 것이 공연이다. 그 시도가 항상 호응을 얻을 수는 없지만, 외면당할 때도 포기하지 않고 끈기 있게 이야기를 걸 때 관객은 반드시 반응한다. 내가 긴 인터뷰를 통해 그의 작품을 이해한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모든 이에게 박수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도 손영일은 자기 작품을 보는 모든 사람과 함께 호흡하려 한다. 아마도 손영일이 꿈꾸는 ‘함께 호흡하는 모든 사람’은 그의 예술 세계를 이해하는 모든 이를 말하는 것이리라. 무용가가 자신의 작품을 이해하는 관객을 만나는 일만큼 기쁜 일도 없으니, 그의 꿈은 모든 무용가의 꿈이기도 하다. 인터뷰 끝에 손영일이 인간관계의 끝없는 변화를 탐구하며 무한으로 나아가려는 무용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세계의 독자들을 위해 '구글 번역'의 영문 번역본을 아래에 함께 게재합니다. 부분적 오류가 있을 수 있음을 양해 바랍니다. 

Please note that the English translation of "Google Translate" is provided below for worldwide readers. Please understand that there may be some errors.

CHOREOGRAPHER

Vol.111-2 (2024.11.20.) Issue

Written by Lee Sang-heon (dance critic)

Photo provided by Son Yeong-il



Son Yeong-il, a dancer who explores the endless changes in human relationships and seeks to advance infinitely



The results of the 18th Busan Dance Festival in 2009 were a refreshing shock. At the time, 26-year-old choreographer Son Yeong-il's choreography, 〈Crazy Ants〉 (Hwi Dance Company), won the grand prize. 'Hwi Dance Company' was a new team founded as a result of participating in the Busan Dance Festival, and it was a group that came together regardless of dance major or school, but it was also the first time that a new team won the grand prize at the Busan Dance Festival. Considering that the Busan Dance Festival, which began in 1992, had mainly won the grand prizes by dance companies or alumni groups led by university professors until 2009, Son Yeong-il's winning the grand prize was truly an unexpected surprise. However, no one knew at the time that this was only the beginning. Since then, Son Young-il has stood out to a frightening degree. In 2015, he won the grand prize again at the 24th Busan Dance Festival for 〈The Right to Be Forgotten〉. In 2021, he won the grand prize and the choreography award at the 30th Busan Dance Festival for 〈Hello, My Existence〉 and a special award at the National Dance Festival held in the same year. In 2023, he won the grand prize at the 32nd Busan Dance Festival for 〈Persona〉 and in the subsequent National Dance Festivals, he won the gold prize, the choreography award, and the stage arts award. In addition, he never missed an award, such as the Excellence Award or the Acting Award, whenever he entered the Busan Dance Festival, and the same was true in other competitions. In the Busan dance world, there is no choreographer who has actively challenged competitions as Son Young-il. Usually, he enters once or twice and then looks elsewhere, but Son Young-il was not like that. It seemed that his only goal was not to receive an award. I asked him why he was so obsessed with competitions. After hearing his answer, I realized that the expression “hanging on” was incorrect.


Son Young-il started dancing in his third year of middle school. He was a very good student until his second year of middle school, but he said that he started to feel skeptical about the coercive schoolwork, and that he found studying difficult, boring, and disgusting. It was something that people of his age would have experienced, but this incident became a completely new opportunity for him. After giving up on his studies, he wandered around not knowing what to do, and then he started dancing at his mother’s suggestion. When you give up on the path you thought was the only path, you start to see a path you hadn’t seen before. Son Young-il’s sudden skepticism about his studies, which he had been good at, eventually opened up a new path for him as an artist. While learning dance (modern dance) at an academy, he was afraid of the unfamiliar environment, but he gradually became absorbed in the direct changes and sense of accomplishment he felt while dancing. Son Young-il, who was completely absorbed in dancing, went on to Bniel Arts High School, and received a fresh shock while learning creative methods there. He enjoyed the creative class so much that he never missed out on first place, but he suffered an unexpected knee injury. Despite his serious injury, Son Young-il, who overcame it without giving up, entered Dong-A University.


College life was an endless repetition of classes, practice, performance, and home. It may seem simple to others, but to him, it was an enjoyable time when he could immerse himself in dance. He experienced his first stage performance while participating in a performance by the alumni group ‘LOGO Contemporary Dance Company’ at college. The first time is an exciting memory that stays with you for a long time, and Son Young-il was no exception. After graduating from college, he went wherever there was someone he could learn from and where he could find opportunities to make up for his lack of skills and study choreography, which he was interested in. Many of his peers at the time stayed in school, but Son Young-il decided that staying in school would not be of much help to his personal development. After graduating from the dance department, he was afraid to step into the art world as a dancer. The art scene is like a cold jungle without fences, so his limitations are clearly revealed. That is why many college graduates go on to graduate school, or stay in alumni groups and work. They are looking for a stable fence. There is no point in criticizing this, and it is important to remember the courage of those who practiced breaking free from the fence. They build the fence themselves. The fence is not high or strong, but a soft fence that anyone can cross. It is an attempt to break away from the sense of security that comes from being closed and find open freedom. Son Young-il was establishing his own self-centeredness and seeking open freedom. Up until this point, Son Young-il had made two important choices in his life. The first was choosing dance in middle school, and the second was not staying in college and going out to build his own world. 


Son Young-il, who spent precious time developing himself after leaving college, decided to create a group and work while communicating with many dancers. In 2011, he formed the ‘Son Young-il Contemporary Dance Company’ and performed 〈Son Young-il Dance Stage No. 1〉. Son Young-il says that he was interested in human relationships, or human relations, and that he continues to express this through dance. He says that the subject he is obsessed with can be varied infinitely, such as dealing with ‘people’ and ‘relationships’ separately or lumping them together as ‘human relationships’, and that he continues to try. ‘Human-relationships’ can be a story about the ‘meaning of existence’. Existence is relative, so it can be confirmed in relationships with others. The seemingly contradictory imperative that we must understand others in order to know our own existence is a subject that has troubled many artists. Son Young-il has persistently explored this broad and direct subject that may never have an answer. In that respect, his works have something in common. It is only natural that his works, which appropriately mix the consistency of the subject with the individuality of each work, get good results in competitions. Of course, he did not only stand out in competitions. He has been invited to prestigious dance festivals such as the Busan International Dance Festival, and Son Young-il has firmly established himself as a choreographer and dancer, including a collaborative performance with the Busan City Dance Company, which is too numerous to mention.


Let’s go back to the initial question, ‘Why do you participate in competitions so fiercely?’ His answer is, ‘The purpose is to present new works that I want to present.’ In the reality that he cannot present works without receiving support funds, the method he chose was to participate in competitions. He may not receive support funds, but he can participate in competitions if he has the will and is prepared. To him, the competition stage is a stage for presenting new works. He also says that by participating in competitions, the dancers he participates with will also have a chance to dance. This means that he chose to participate in competitions as a way to relieve his ceaseless desire to create. Rather than winning awards in competitions as his main goal, it was an achievement achieved through his earnest desire to create.


While looking at some of his works, I thought, ‘Why do they express similar themes in a tautological manner?’ After hearing Son Yeong-il’s answer, his works came to me in a new way. It was not tautology, but fierce exploration. It is natural that one cannot contain all the themes in one work. His works, which look at issues related to human relationships from a multifaceted perspective, could sometimes seem to have a similar atmosphere. He says, “I still have a lot to learn, but I always think about creating a piece that everyone who sees it can comfortably understand, feel, and breathe with the subject matter and content.” When a dancer meets the audience on stage, it’s like talking to the audience. The performance is about explaining and persuading them to sympathize with what I’m thinking about and what I’m talking about. That attempt may not always be well-received, but when you don’t give up and persistently talk to them even when they’re ignored, the audience will definitely respond. Just as I understood his work through a long interview. We know that we can’t receive applause from everyone. Nevertheless, Son Young-il tries to breathe with everyone who sees his work. Perhaps the “everyone who breathes with me” that Son Young-il dreams of refers to everyone who understands his artistic world. There’s nothing more joyful for a dancer than meeting an audience that understands his work, so his dream is the dream of all dancers. At the end of the interview, I thought that Son Young-il is a dancer who explores the endless changes in human relationships and tries to move forward infinite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