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스포스트코리아
지난자료보기

로고

무용현장

춤작가

우리 무용계에 최적화된 창작 그룹으로서 고블린파티: 임진호·지경민·이경구

춤작가

Vol.122-2 (2025.10.20.) 발행


글_ 심정민 (무용평론가·비평사학자)

사진제공_ 고블린파티



우리 무용계는 예술가들이 필연적으로 겪을 수밖에 없는 크고 작은 창작적 기복을 오래도록 기다려주는 편이 아니다. 종합예술로서의 무용은 안무와 실연뿐 아니라 음악, 세트, 소품, 의상 등 많은 요소의 조화로 완성되기 마련이다. 단 한두 군데의 사소한 부실함으로도 작품 전체의 퀄리티가 떨어질 수 있기에 좋은(good) 작품을 만들어내기가 무척 힘들다. 따라서 아무리 탁월한 역량을 가진 안무가라고 할지라도 좋은 작품들 사이에 그렇지 못한 더 많은 작품이 생산되곤 한다. 문제는 연달아 제대로 된 역량을 보여주지 못한 경우 무용계에서 계속해서 의미 있는 기회를 주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혜성처럼 나타나 대대적으로 주목받다가 몇 년 후 소리소문없이 사라지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점이 이를 방증한다. 특히 한 명의 안무가가 이끄는 단체라고 한다면, 창작적으로 상승세일 때는 온전히 자신의 성취로 인정받겠지만 슬럼프 시기에는 받쳐주는 안전장치 없이 추락할 수밖에 없다. 여기서 한 가지 대안으로 창작자 그룹으로 무용단을 운영하는 것인데 고블린파티가 그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임진호와 지경민에 의해 2007년 창단한 고블린파티는 2013년 이경구를 영입하였으며 이후 창작적으로 안정적인 삼각구도를 유지하고 있다. 2025년 10월 추석 연휴가 끝날 무렵 서초동 한 커피숍에서 그들과 함께 관련 이야기를 나눴다. 


3인 3색의 춤 입문기


1984년 충남 금산에서 외동아들로 태어난 임진호는 독특하게도 아버지의 권유로 무용을 시작하였다. 아버지가 직업 군인이다 보니 전국적으로 이사를 많이 다녔는데 그렇다 보니 학교에서 항상 겉돌 수밖에 없었다. 비행 직전에서 선을 아슬아슬하게 지키고 있는 정도였다. 어느 날 친구들과 잔디밭에서 춤을 추는 아들을 본 아버지가 비행으로 빠지기보다는 춤을 제대로 배워보는 게 어떻겠다고 하셨다. 마침 댄스스포츠가 올림픽 종목에 들어간다고 해서 일종의 붐이 조성되어 있던 때라 관련 학원에 등록했는데 알고 보니 간판만 댄스스포츠고 현대무용을 주로 하는 곳이었다. 시쳇말로 낚인 것인데 춤 인생의 은인을 만난 셈도 된다. 원장 선생의 적극적인 추천으로 중앙대학교에 입학하여 이정희 교수에게 일 년 남짓 제대로 현대무용을 배울 수 있었다.



1985년 서울에서 태어난 지경민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친구들이랑 스트리트댄스를 추면서 놀았다. 같이 춤을 추던 선배 중에 무용과로 진학한 경우를 보고 자연스럽게 진로를 결정하게 되었다. 하지만 막상 입시를 준비하려고 하니 집안 사정으로 레슨비를 마련하기가 어려웠다. 아름아름 아버지 지인의 딸이 숙명여대 무용과를 다닌다고 해서 그분을 통해 입시 레슨을 받았다. 보통 남자 입시생은 남자 선생에게 배우곤 하는데 지경민은 현대무용 기초를 여자 선생으로부터 접했다 보니 지금까지도 정형적인 남성 춤의 테크닉을 잘 구사하지 못한다고 한다. 대신 춤의 디테일한 유려함에 있어서는 차별화되어 있다. 


한참 아래인 이경구는 1992년 대구출생으로, 어렸을 적 어머니 손에 이끌려 발레를 잠시 배웠다가 그만두었고 중고등학교 때 친구들이랑 어울려 스트리트댄스를 추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우연히 본 안은미 선생 다큐멘터리를 보고는 ‘춤을 따라 하지 않고 자기가 새로이 만든다고?’라는 의구심과 호기심으로 인해 동네 현대무용 학원에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류장현 선생에게 짧고 굵게 입시 레슨을 받고 서울예술종합학교에 입학했다. 대학 내내 여러 강사에게 춤을 배웠는데 특히 지경민 선생의 수업이 재미있게 느껴졌다. 이후 우연한 기회에 고블린파티의 <아이고>란 작품을 보고 완전 팬이 되어 장문의 감상문을 써서 보내기도 했다. 


창작자 그룹으로서 무용계에서 빠르게 인지도를 확립한 고블린파티



임진호와 지경민은 각각 중앙대학교 2학년과 1학년 때 처음 만났다. 당시 현대무용 교수가 부재하다 보니 남학생들끼리 연습실에서 춤도 추면서 여러 가지 대화를 많이 했는데, 둘이 가장 교감이 잘 됐다. 다른 남학생들이 콩쿠르나 춤 기량 등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때, 임진호와 지경민은 작품의 메시지 등 창작적인 부분에 초점을 맞춰서 다각적이고도 심층적인 대화를 이어갔던 것이다. 자연스럽게 뜻이 모여 2007년에 공동 창작 그룹을 만들었으며 ‘고블린파티’라는 단체명은 2011년에 붙여졌다. 그 초기부터 임진호의 <원>(2007)과 <아이고_IGO>(2011), 지경민의 <인간의 왕국>(2013)과 <낯가림>(2013) 등으로 무용계에서 주목받는 신진 창작 그룹으로 빠르게 자리 잡아갔다. 


이경구가 고블린파티에 합류한 것은 2013년으로 당시 지경민이 <인간의 왕국>을 같이 해보자고 제안해서였다. 그때 이경구의 나이가 만 21세였으니 무용수로서도 대단히 빠른 데뷔였다. 무용수로서뿐 아니라 창작자로서도 가능성을 확인한 임진호 지경민의 전폭적인 지지로 이듬해에 <우주정거장>이라는 솔로로 ‘신인 데뷔전’에서 신인상을 받기도 했다. 


이후 고블린파티는 <불시착>, <혼구녕>, <응답해요 휴스턴>, <옛날 옛적에>, <은장도>, <꿔다놓은 보릿자루>, <숨구멍>, <여우와 돌고래>, <나는 광주에 없었다>, <놀이터>, <루돌프>, <소극적 적극>, <귀토>, <앙갈로>, <흥>, <꼭두각시>, <초상달>, <신선>, <파도>, <박스오피스>, <닥쳐 자궁>, <토끼전>, <불가불가>, <공주전>, <신비한 극장>, <현대에만 가능한 다소 발레스러운 한국의 춤>, <이유는 없다>, <산조>, <쿵쿵쿵>, <지상의 여자들>, <여름을 덮다>, <솔직히>, <의붓자식>, <세일>, <척>, <얼쑤얼쑤>, <숙성>, <도레미파솔라시도>, <동네북>, , <안녕 춤으로 애기해>, <렬렬춘향>, <웅처>, <긴긴밤>, <맹/진천사는추천식/도심 속의 모기 사냥꾼/윷놀이>, <구미식>, <탈출>, <귀문> 등 왕성하게 작품을 발표해왔다. 이렇게나 다작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원맨 창작자 시스템이 아닌 창작자 그룹을 구축해왔기 때문이다. 


고블린파티는 지난 십여 년 동안 쉼 없이 달려오면서, 다양한 작품들을 통해 국내외적으로 널리 알려진 페스티벌들에 빈번하게 초청되는가 하면 국립현대무용단, 국립창극단, 국립무용단, 경기도무용단, 대구시립무용단 등과도 협업을 해왔으며 러시아, 홍콩, 스페인, 불가리아, 리투아니아, 미국, 대만, 일본, 영국 등으로 진출하기까지 했다.




고블린파티의 주목할만한 작품


고블린파티(Goblin Party)는 도깨비의 장난기와 철학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움직임을 탐구하는 현대무용 단체다. 2007년 창단 이래 모든 구성원이 안무가로 활동하며, 대표 없이 협업을 기반으로 공동 창작을 이어가고 있다. 무용, 연극, 음악, 국악, 영상, 아동극 등 다양한 장르를 융합하여 한국의 전통, 놀이, 의식, 정서, 사회 등을 적절하게 작품화해왔다. 그리고 이러한 특질은 초창기부터 일관된 방향성으로 구축되었는데 <인간의 왕국>에 관해 언급하자면 다음과 같다. 


<인간의 왕국>은 TV프로그램 ‘동물의 왕국’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이다. 영상 속 동물들의 행동을 설명하는 인간의 언어가 제멋대로의 해석으로 느껴졌다는 데서 출발한 것이다. 여기에 현시대에 만연한 잘못된 논리를 바꾸려 하지 않는 인간의 모습을 빗대고 있다. 지경민은 그동안 부조리함을 바라보는 예민한 시각을 뻔하지 않은 자유롭고 감각적인 움직임으로 가시화해왔다. <인간의 왕국>에서도 지경민을 비롯한 전효인, 이경구, 임진호, 김평수, 김동욱이 사회비판적인 뉘앙스를 유사한 맥락의 춤 이미지들로 풀어냈다. 지경민의 안무력과 연출력이 십분 발휘된 듯한 앞부분과 뒷부분은 신선하면서도 견고한 춤으로 채워졌다. 특히 마지막의 군무는 지경민의 트레이드마크 같은 자유로우면서도 감각적이고, 신선하면서도 견고한 움직임으로 인상적인 피날레를 장식하였다. 


<춤> 2014년 10월호

고블린파티의 예술적 색깔을 짙게 새긴 ‘염(殮)·죽음 시리즈’는 <아이고_IGO>(2011), <혼구녕>(2014), <구제>(2018), (2022)로 이어진다. 여기서는 ‘서울문화재단 댄스필름 프로젝트’로 제작된 댄스필름으로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2017)를 살펴본다. 

 

김태우 연출과 임진호 안무의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는 죽음에 관련된 여러 이미지들이 움직임과 함께 나타난다. 대학병원 주차장으로 구급차가 들어선 후, 한 여인이 장례식장으로 들어선다. 한 여인의 빈소에 덩그러니 앉아 있던 두 남자가 절을 하더니 갑작스럽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무표정한 얼굴로 현대무용단 고블린파티 특유의 일상성 짙고 개성 있는 몸짓으로 그 상황을 그려 나간다. 그들의 동선을 따라가는 카메라에 의해 자연스럽게 장례식장 이곳저곳이 비춰진다. 한 여인은 자신의 죽음에 완전히 적응하지 못한 채 어둡고 차가운 시체 보관실에 놓이게 된다. 황망함이 묻어나오는 한 여인을 대하는 두 남자의 격식 있고 절도 있는 몸짓이 망자를 보내는 의식을 연상시킨다. 세 명의 남녀 무용가는 무표정한 얼굴로 움직임으로만 이와 같은 상황과 감정을 묘사하는데, 따라서 영상에 비춰진 구체화된 장소가 아니라면 추상적인 춤처럼 이해하기 힘들 수도 있었을 것이다. 춤이 돋보일 수 있도록 영상이 탄탄히 받쳐준 작품으로 여겨진다. 


<서울문화재단 웹진 춤:in> 2017년 11월 20일자

2016년 창작산실 올해의 신작으로 선정되어 그해 말에 초연된 <옛날 옛적에>는 고블린파티의 대표 레퍼토리로 지금까지 가장 많이 공연되어왔다. 2021년에는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의 ‘무장애예술주간’의 일한으로 동명의 댄스필름이 제작되기도 했다.




고블린파티의 <옛날 옛적에>는 우리 전통을 작금의 방식과 개인의 감각으로 재구성하고 있다. 옛날의 여러 생활 모습이나 전래동화를 끌어와서 재창조하듯 상투와 갓, 두루마기와 한삼, 바지와 대님, 버선, 부채 같은 의상과 소품을 새롭게 배치하여 활용하였다. 전통적인 풍자와 해학을 현대적이고도 개별적인 유머와 재치로 변환해 놓은 몸짓 또한 흥미롭다. 임진호, 지경민, 이경구의 공동 창작이긴 하나 독특한 움직임과 기발한 유머 코드에서는 이경구의 지분이 높아 보인다. 장면마다 집요한 탐구와 본능적 감각을 함양하고 있듯, 예술적 수준과 대중적 수용력을 모두 충족시킨다는 점이 차별화된 경쟁력이다.


<춤> 2017년 2월호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웹진_이음> 2021년 8월 25일자

고블린파티는 현재 무대에서의 창작활동뿐 아니라 댄스필름 제작, 아동·가족 대상의 무용극, 타 분야와의 융복합, 기관이나 단체와의 협업 등을 폭넓게 전개하고 있다.

 

최근 동향_현대춤 창작에서 넓게 확장된 활동


2020년대 들어 고블린파티가 그 어느 독립 단체보다 무용계 내외적으로 왕성하게 활약하다 보니 그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도 없지 않다.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 되는 점은, 한 명의 예술가가 이끄는 단체가 아니라 창작자 그룹에 의해 운영되는 단체라는 것이다. 임진호, 지경민, 이경구를 중심으로 그밖에 단원들에 의해서도 창작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렇게 많은 작품활동을 동시다발적으로 전개할 수 있는 원동력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차별성이 오래 기다려주지 않은 한국 무용계에서는 최적화된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서로 간의 이해와 존중 그리고 배려를 전제로 하지 않는다면 불가능한 운영 체제라는 점에서 고블린파티만의 사회적, 관계적, 상황적 포용력을 확인할 수 있다. 


고블린파티의 현재 동향을 살펴보면, 현대춤 창작으로부터 넓게 확장된 활동까지 병행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임진호는 국립무용단이나 경기도무용단과의 협업을 통해 한국무용 창작의 지평을 확장하는 데 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경구는 그동안 실연과 안무뿐 아니라 노래와 연기에도 재능을 보여왔는데 뮤지컬이나 연극 분야에서도 러브콜을 받아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다. 지경민의 경우 국립창극단의 안무를 맡는 등의 활약과 함께, 고블린파티의 음악과 영상을 책임지면서 또 다른 전문 영역을 구축하고 있다. 이러한 관련 활동은 한눈팔기가 아닌 그들의 창작적 영역의 폭을 넓게 넓혀주는 자양분으로 작용할 수 있으리라 본다. 


고블린파티만의 차별화된 경쟁력은 각기 다른 개성의 무용가들이 서로 협력하여 하나의 창작을 완성해가는 공동체적 조화에서 비롯된다. 무엇보다도 젊은 감각과 감성을 진지한 탐구와 훈련을 거쳐 구현해낸 작품으로 인지도와 지명도를 확립하고 있다. 젊은 창작의 본질이지만 많은 이가 간과하고 있는 바로 그 본질에 대한 충실한 수행이야말로, 고블린파티라는 이름을 널리 새겨놓은 원천이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연예술창작산실 비평지원 안내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로고

웹진 댄스포스트코리아는 2025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연예술창작주체지원사업'으로부터 제작비 일부를 지원받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