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작가
Vol.126-1 (2026.2.5.) 발행
글_ 이상헌(춤평론가)
사진제공_ 강경희, 이연정

공연 예술에서 공동창작(Joint Creation)은 매우 드물다. 조금 다른 집단창작(Collective Creation)도 마찬가지다. 공동창작은 여러 사람이 같은 작품을 함께 만들지만, 역할과 책임의 중심이 비교적 또렷한 경우가 많다. 반면 집단창작은 작품이 한 사람의 머리에서 ‘구상’되기보다, 집단의 과정 자체에서 발생하며, 권한 구조에서는 수평성이 원칙에 가깝다. 통일성보다 다성성(여러 목소리), 방법론의 흔적이 작품의 골격이 되기 쉽다. 둘 다 쉽지 않은 과정이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잘 선택하지 않는다. 하나의 무용단에서 위계가 흐리다면 창작 방식은 늘 고민거리일 것이다. 구성원이 돌아가면서 책임지고 창작하면 될 듯하지만, 작품의 주체를 단체 이름으로 할지 안무자로 할지가 애매해서 결국 거의 모든 단체가 한 사람을 중심으로 돌아가게 된다.
‘온 Dance Lab’은 동갑내기 동기들이 모여 만든 무용단이다. 그래서 구성원끼리 위계가 없다. 대외적으로 대표가 있긴 하지만, 그마저도 돌아가면서 맡는다. 이런 형식은 구심력이 약해 지속하지 못할 수 있는 위험이 있다. 그러나 ‘온 Dance Lab’은 공동창작, 집단창작, 개인 창작 방식을 넘나들며 어느새 10년을 훌쩍 넘겨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처음에는 친구 세 명이 시작했는데, 중간에 한 명은 다른 길을 선택했고, 지금까지 강경희, 이연정 두 명이 작품마다 필요한 무용수를 초빙하는 프로젝트 방식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런 방식으로라도, 단체로 활동을 이어가는 것은 ‘온 Dance Lab’이 무용가로서 강경희, 이연정의 모태라고 여기기 때문일 것이다.
만남
강경희는 초등학교 무용부에서 처음 무용을 접했다. 무용부에서 흥미를 붙인 뒤 동네 무용학원으로 옮기는데, 그곳이 지금까지 스승으로 모시는 강미선 선생의 학원이다. 스승이 한국무용가였기에 자연스레 한국무용을 배웠고, 부산예고를 거쳐 부산대학교 무용과에서 한국무용을 깊게 연마했다. 대학 시절 솔로 작업과 공동 작업을 병행하며 창작의 재미를 체감했고, 졸업 후에는 지도교수의 추천으로 ‘강미리 ᄒᆞᆯ 무용단’에서 3년 동안 활동했다.
이연정 역시 초등학교 무용부에서 무용을 시작했다. 발레에 흠뻑 빠져 장소를 가리지 않고 춤추는 딸을 보고 어머니가 보낸 곳이 강미선 무용학원이었다. 이곳에서 평생의 예술적 동지이자 둘도 없는 친구 강경희를 만났다. 이연정은 한동안 발레리나를 꿈꿨지만, 오른쪽 발목에 통증이 멈추지 않아, 강미선 선생의 조언을 따라 한국무용으로 전공을 바꾸었다. 부산예고에 진학해 서울을 목표로 정진했지만, 고질적인 발목 부상 때문에 재수한 뒤 부산대학교에 입학했다. 그렇게 강경희와 만남이 다시 이어졌다. 대학에서 강미리 교수의 제자로 폭넓고 강한 훈련을 받으며 무용가의 꿈을 키워갔다. 하지만, 현실적인 문제로 졸업 후 여러 직업을 거치게 되었다. 그 와중에도 춤을 추겠다는 꿈은 한 번도 접지 않았다. 이 경험은 이후 그의 춤에서 호흡과 움직임의 탄성으로 새겨졌다.
Redstep 무용단: 무용가로 다시 만난 시간
다니던 회사에서 퇴직하고 오디션도 떨어져 막막한 마음으로 초등학교 방과 후 댄스 수업을 하고 있을 때, 이연정은 Redstep 무용단 허경미 예술감독을 만났다. 당시 Redstep은 민주공원 상주단체에 선정되어 단원을 보충하고 있었다. 허 감독의 제안에 이연정은 흔쾌히 응했다. 강경희는 ᄒᆞᆯ 무용단에서 나와 있던 차에 허경미 감독을 만나 Redstep에 합류한다. 이번에 두 사람은 학생이 아니라 프로 무용가로 만났다. Redstep에서의 6년은 두 사람의 춤 세계에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었다. 다양한 공연을 치르며 각자의 춤 세계를 구축했고, 자신의 장단점을 명확히 인식하며 개인 창작의 중요한 바탕을 다졌다.
온 Dance Lab

Redstep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면서도, 두 사람은 함께 춤출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2012년 ‘Ganesh project’에 짧은 작품으로 참여하게 되는데, 그 작품이 <온>이었다. 강경희, 권민정, 이연정이 출연했고, 북청사자놀음의 퉁소를 대신해 플루트 라이브 반주에 얼굴에 천을 쓰고 봉산탈춤의 ‘놀음’을 표현했다. <온>에서 인상적인 점은 전통의 ‘형식’을 재현하려는 태도가 아니라, 전통이 가진 감각 장치를 빌려 오늘의 몸을 다시 조율하는 방식이었다. 얼굴을 천으로 가린 무용수들의 ‘익명성’은 인물의 서사를 지우는 대신, 몸의 방향과 호흡의 미세한 흔들림을 전면으로 밀어 올렸다. 플루트 라이브는 퉁소를 대체하기보다, 전통 리듬의 골격을 다른 음색으로 비추며 관객의 귀를 새롭게 열어젖혔다. 봉산탈춤의 ‘놀음’은 여기서 민속의 재현이 아니라, 놀이가 가진 이완과 긴장으로 웃음 직전의 서늘한 공기로 번역되었다. 그 순간 <온>은 ‘한국 춤을 새롭게’가 아니라, ‘다시 낯설게’ 만들었다.


당시 작품 제목이자 지금 단체 이름인 ‘온’은 처음에는 불교의 오온(五蘊)에서 빌려 왔는데, 현재의 의미는 ‘쌓다(蘊)’에 가깝다. 춤의 연륜과 미학을 쌓고 관계도 쌓아간다는 뜻이다. 시간이 그저 흐르는 것이 아니라는, 당연해 보이지만 깊은 깨달음이 담겨 있다. 작품 ‘온’이 몇 차례 더 초청되며 자신감이 붙자, 이들은 ‘온 Dance Lab’을 정식으로 결성한다. 2015년 ‘온 Dance Lab 제 1회 정기 공연 <춤 너머의 춤–Beyond 온>’ 2017년 제2회 정기 공연 <춤 너머의 춤–덧>을 발표했다. 두 번째 정기 공연 후 세 명은 각자 시간을 갖기 위해 잠시 활동을 멈춘다. 이 시기에 한 명이 떠나고, 강경희, 이연정은 다시 만나 후배 춤꾼을 영입해 <덧, 넘다>(2017년 공동 안무)를 발표한다. ‘온 Dance Lab’의 작품들은 한국 춤의 정서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데, 그렇다고 한국 춤의 상투적인 표현에 머물지 않는다. 드러나는 서사가 뚜렷하지 않지만, 작품 기저에는 서사가 흐른다. 마치 한국 춤 호흡이 겉으로 잘 보이지 않고, 춤꾼 몸 안에서 머물렀다가 어느 순간 뱉어지듯이 말이다.
和而不同

화이부동, 조화롭지만 같지 않다는 뜻처럼 강경희와 이연정은 ‘온 Dance Lab’을 축으로 모여 함께 고민하고 창작해 왔다. 그러나 각자 엄연히 독립적인 존재라 공동 창작을 하면서 서로의 다른 점을 깊이 인식하게 되었다. 이 다름이 다툼으로 변질되어 관계를 망치는 경우가 흔하지만, 두 사람은 너무 가까워서 문제가 생길 것 같으면, 거리를 두었다. 한 사람이 주장이 강하면 한 사람이 물러나고, 둘 다 너무 물러나 있으면 누군가 다가가는 식이다. 상대와 치열하게 부딪히다가 떨어지면 비로소 나 자신을 보게 된다. 이들은 단체 활동에 조바심 내지 않고 많은 시간을 각자의 춤 세계를 굳히는 데 보냈다. 강경희는 <궤(軌): 길을 잇다>(이연정 공동안무, 영남춤축제 2021년), <영(映): 비치우다>(이연정 공동안무, 영남춤축제,2022년) 등과 많은 작품에 주역급으로 출연하였다. 최근 <찬(燦)>(허경미 무용단 무무 기획공연, 2025년)을 통해 작품 세계가 차분히 깊어졌음을 증명했다. 강경희의 춤은 감정을 과시하지 않는다. 대신 동작의 끝을 쉽게 닫지 않는 방식으로 무대를 ‘따뜻하게’ 만든다. 선은 건조하게 정리되어 있으나 그 건조함이 차가움으로 떨어지지 않는 것은 몸이 늘 조금 늦게, 조금 더 머무르며 온기를 남기기 때문이다. 그녀의 절제는 결핍이 아니라, 관객의 감각이 스스로 채워 넣게 만드는 여백의 기술이다.


이연정은 <散-풀어놓다>(2018년), <反-다시, 여기로>(2020년), <궤(軌): 길을 잇다>(강경희 공동안무, 영남춤축제 2021년) <영(映): 비치우다>(강경희 공동안무, 영남춤축제,2022년)를 발표했고, 여러 안무가의 작품에 출연하였다. 무엇보다 ‘마고춤’이라는 독보적인 장르를 확보해 다양한 환경에서 춤추고 있다. 이연정의 강점은 ‘말랑함’이 단지 부드러움으로 끝나지 않는 데 있다. 그녀의 몸은 바닥을 누르며 탄성을 저장하고, 저장된 힘이 다시 풀릴 때 동작이 꾸밈없이 번진다. 그래서 그녀가 어떤 공간에서 춤추든 몸은 그 장소를 ‘점유’하기보다 천천히 바꿔 놓는 쪽을 택한다. 마고춤은 그 변형 능력이 집약된 형식으로, 춤이 특정 장르에 ‘속한다’기보다, 춤이 환경과 관계 맺는 방식을 새로 제안한다. 함께했을 때는 ‘온 Dance Lab’의 색깔이지만, 각자의 무대에서는 서로 고유의 색을 내어 보이는 ‘和’이면서도 ‘同’은 아닌 관계의 미학을 품고 있다.

부산 춤판에서 두 사람과 ‘온 Dance Lab’
존재의 가치를 평가하는 기준은 다양하다. 다양하다는 의미는 확실한 기준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나 적어도 하나는 말할 수 있다. 존재의 가치는 종종 바깥의 언어가 아니라, 존재 스스로 만들어 낸 지속 방식에서 먼저 증명된다는 것이다. 모호한 시선에 연연하지 않고 자기 길을 가다 보면 가치 평가는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두 사람과 ‘온 Dance Lab’은 꼭짓점 없이 흔들리는 것처럼 보여도, 자신들의 분명한 궤적을 가지고 있다. 말랑하고 탄력 있는 감성적 표현이 장점인 이연정, 건조하지만 따뜻한 시선의 강경희가 부산 춤판에 남긴 발자국은 옅어 보일 수도 있지만 뚜렷하다. 여태까지 ‘따로, 또 같이’ 함께하면서도 같아지지 않는 절묘한 관계의 거리를 유지하며, 그 거리 자체를 창작의 기술로 바꿔 온 이들이 흔치 않았기 때문이다.
아마 앞으로도 두 사람 같은 관계는 나오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어렵다’라는 말은 그들이 사라진 자리에 빈자리가 생긴다는 뜻이 아니라, 그들이 남긴 방식이 하나의 기준이 되어 다른 누군가의 용기를 북돋울 것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조화롭되 같지 않게’라는 그 오래된 문장은, 부산의 한 작업실에서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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