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작가
Vol.128-1 (2026.4.5.) 발행
글_ 장지원(춤평론가)
사진제공_ 백연

백연은 발레리나로서는 드물게 과감한 실험성과 시대를 앞서는 테크놀로지의 사용으로 컨템퍼러리 발레계의 안무가로 주목받고 있다. 현재 40대 중반인 그녀는 국립발레단과 발레블랑 활동으로 탄탄한 기본기를 쌓았고, 덕원예고에서 기간제 전임교사와 수원대학교, 동국대학교 객원교수를 할 만큼 교육적 역량도 충분히 갖고 있는 육각형 인물이다. 더불어 백연발레프로젝트와이를 창단해 그들만의 독특한 움직임 어휘와 창작력으로 발레계에서 독창성을 보이고 있는 인물로 그녀의 예술세계를 살펴보는 것은 현재의 창작발레의 경향을 살펴보는데 필요한 작업이라 하겠다. 본인만의 색깔이 선명한 그녀이기에 특별히 영향을 받은 인물이나 사건은 없지만 그것이 장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특히 어려운 시기에 안무로 치유의 감정을 느꼈다는 점에서 천상 안무가의 면모를 보였고, 최근 4-5년간 집중적으로 다작을 내며 우수성도 인정받았음은 앞으로도 기대감을 갖게 한다.
초등학교 시기에 시작한 한국무용이 발레로
처음 무용을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때 담임선생님의 권유였으며 이를 계기로 직접 학원을 찾아가 처음에는 한국무용으로 출발했다. 이후 학원의 발레강사 선생님에게 발레를 배워 중학교 시기에 전공을 바꿔 콩쿠르에 수상하게 되었고, 척추측만증이 심해 고통스러웠으나 발레는 해도 좋다는 의사선생님의 말에 온전히 발레에 집중했다. 덕원예고에 좋은 성적으로 입학한 후 부모님은 그녀를 위해 이사를 감행하며 후원해 주셨고 그곳에서 발레블랑 강사선생님들을 접하면서 자연스럽게 이화여자대학교에 꿈을 키웠다. 희망대로 이화여자대학교에 입학했고 졸업 후 바로 국립발레단에 입단해 7년 정도 활동했으며 결혼하면서 발레단을 나왔다. 발레단에서 안무를 할 기회가 없었던 그녀는 공부를 위해 바로 대학원에 입학했고 이후 발레블랑에도 들어갔다. 덕원예고에 있으면서 출산도 했기에 박사를 병행하는 과정이 무척 힘들어 휴학도 하면서 박사과정을 8년간 공부했다. 어려서부터 무용수보다는 안무가로서의 작업에 기쁨을 느꼈던 그녀는 결국은 안무가로서 성장해 지금의 위치에 도달하게 되었다.
초창기 안무작들
백연의 첫 안무는 2012년 석사가 끝나고 박사에 들어가기 전 만든 <슈퍼우먼 콤플렉스>였다. M극장에서 진행한 신인안무가넥스트전에서 이뤄진 공연으로 워킹맘들이 일과 가정 사이에서 균형을 찾으려 노력하지만, 책임감에 압도돼 죄책감에 시달리기도 하는 상황을 다뤘다. 같은 해 아르곤페스티벌에서 <천국의 노마드>라는 작품을 발표했고, 발레협회 신인안무가전에서 ‘신인안무가상’을 수상한 〈deep〉도 이 시기에 안무했다. 박사과정에 들어가 약간의 공백기를 가진 후 2015년 발레블랑에서 <파르헤지아>를 발표했고 이 작품으로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에서 ‘주목할 예술가상’을 수상했다. 2016년 발레블랑 기획공연으로 <낙원>을 안무했고, 박사 시기라 공부에 집중하고 육아도 하던 기간이라 공백기를 거쳐 2021년 신은경 교수님의 추천으로 60분짜리 작품 <나, 그리고 우리>를 발표했다. <나, 그리고 우리>는 본인의 박사학위 논문 영향으로 실존에 관한 여러 가지를 다루면서 실존철학을 내용으로 하고 있으며 영상 사용도 시작되었다. 그 해에 20분 짜리 <용기(courage)>를 안무했다. 코로나 시기였기에 빛과 어둠 등을 다루며 용기 내서 나아가자는 내용이었다.
백연발레프로젝트와이의 창단과 최초작, 대표작, 최신작

백연은 2022년 백연발레프로젝트와이를 창단했고 무용단의 첫 작품 〈ORIGIN〉을 발표했다. 서강대메리홀에서 공연했던 이 작품은 코로나가 심한 시기에 춤의 죽음을 다루면서 발레의 기원에서부터 컨템포러리 발레까지를 전개했다. 발레의 역사와 개인 고유의 춤을 믹스해 춤의 현장성을 드러냈으며 비록 지원금을 타지는 못했으나 무용단체를 만들고서의 첫 안무작이라 백연 본인은 최초작을 〈ORIGIN〉이라고 본다. 같은 해 발레블랑 기념공연으로 30분짜리 <몽가(夢家)>를 발표했고, 2023년에는 <메타아이>로 서울문화재단에서 처음 지원금을 받았기에 애착이 가는 작품이기도 하다. 리어왕의 내용을 다루면서 이때 건축과 콜라보를 진행했다. 같은 해 제44회 서울무용제에서 발표한 〈VISION〉은 무용에 있어서 AI로봇의 등장과 함께 무용수와 함께한 로봇의 시선으로 바로 본 인간의 세계를 무용으로 표현했다. 당시 참신한 시선으로 관객과 평단의 호응을 얻었으며 ‘올해의 춤 작가상’을 수상했다. 2024년에는 〈ORIGIN-바디랭귀지〉, 〈발레로-HUNMINJEONGEUM〉를 발표했고, 〈발레로-HUNMINJEONGEUM〉는 한국춤비평가상 ‘베스트 작품상’의 영예를 안겨주었다. 2025년 안무한 <미로美路 2.0>은 한국발레연구학회에서 초연한 <미로美路>(2023)가 변주된 작품이다. 그녀는 2025년 서울문화재단 예술창작활동지원 선정 프로젝트로 <바디-시뮬라크르(BODY-SIMULACRA)>를 발표했고, 철학가 보르리야르가 말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포스트 휴먼시대 복제, 왜곡, 변형을 통해 생성되는 새로운 개체의 이미지를 컨템퍼러리 발레 움직임으로 표현하고, 그들의 존재 의미를 짚어 보았다. 이 작품 역시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에서 ‘심사위원선정 특별예술가상’을 수상했다. 그녀는

<댄스포스트코리아> 3월호
동시대적 사유를 주제로 삼다
백연은 주제 선정에 특별한 제약이 있지는 않으나 이 시대와 동떨어진 주제는 피한다. 그녀 스스로 ‘이 시대에 예술을 발전시켜 나가는 창작물을 만드는 것’이 사명이라 여기고 안무를 시작했기 때문에, 동시대의 이슈나 꼭 지금 필요한 사유를 연결 짓는 주제를 선호한다. 과거도 미래도 현재와 연결되기에 이러한 사유는 백연이 현재 컴템퍼러리 발레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다양한 모티브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동시대적 사유, 특히 과거를 통해 현재를 사유할 수 있고, 현재를 통해 미래를 사유할 수 있는 주제를 선택한다. 그래서인지 코로나 시기에는 실존에 관한 이야기나 삶의 용기와 의지, 발레의 기원에서부터 오늘까지를 주제로 삼았다. 또한 작품에 의식을 담아 철학적인(눈에 보이는 것 너머를 간파할 수 있어야 하는 것) 때로는 현실적인 문제들(집을 매개로 우리 사회의 양극화 문제, 미에 대한 문제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길, 미디어기술, AI와 로봇)에 주목해 발레를 통해 다각도의 측면을 사유하도록 제안했다.
구조적, 구성적 이미지에 충실한 안무
백연은 본인의 몸에서 즉흥적으로 구성되는 움직임을 토대로, 구조적으로 쌓아 올리거나 뒤섞이고 꼬여 조형적 이미지를 만드는 방식을 취한다. 또한 개별적 움직임만 보여주기보다는 이 움직임 위에 높낮이와 시간 등을 더해서 조금 복잡하고 세밀하게 구성하는 방식을 좋아한다. 그래서인지 그녀는 타인의 작품을 볼 때도 치밀한 안무 구성을 통해 특이한 모양이 지워지는 이미지를 좋아한다. 그래서 그녀는 안무를 할 때 개별적 움직임의 역동성보다는 시간과 공간을 배치하여 나타나는 구성적 이미지에 중점을 둔다. 시공간의 층위를 쌓아가는 작업은 스토리텔링에 익숙한 관객들에게는 어려운 작품으로, 이해가 힘들다거나 그로테스크하다는 반응을 가져올 수 있다. 하지만 현대 예술은 미추의 개념을 벗어나 해석의 문제로 확장되면서 사유를 이끌어내는 그 무엇이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다. 이 점에서 그녀의 구조적이고 구성적인 이미지는 해석을 요구한다. 때로는 파격적인 연출을 통해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장면들을 완성하기도 하는데, 발레의 전형적인 구조를 뛰어넘는 이러한 시도가 그녀의 매력이라 하겠다.

백연의 움직임 특징
백연은 긴 팔을 가지고 있다. 이는 클래식발레에서 도드라지는 구조이지만 특히 창작에서는 매우 큰 장점으로 작용한다. 더불어 팔의 각진 움직임과 곡선적 움직임, 그리고 고관절이 오프 된 움직임 등이 잘 드러나는 신체 구조를 가졌다. 그래서 본인 스스로 이야기하길 팔을 이용해서 다양한 동작을 만드는 것을 선호한다고 한다. 그녀는 발레의 기본기를 토대로 이러한 그녀만의 신체 구조를 드러낼 수 있는 직선적·곡선적 움직임, 그리고 왜곡된 움직임을 지향한다. 다양한 작품 속에서 개성 있는 움직임을 보여주는 동력은 꾸준한 관찰과 연구이다. 엮이고 풀리는 조직적인 구조와 적층(積層)의 구성, 움직임은 해외에서는 보여지나 일반적인 한국 창작발레 작품들의 이미지에서는 보기 힘든 장점이다. 그녀가 선호하는 왜곡된 움직임이란 발레의 아름답고 긴 선과 차별성을 갖는데, 해체와 분열, 조합을 통한 신선함은 컨템퍼러리 예술의 특징이기도 하다. 더불어 드라마틱하기보다는 추상 발레의 특성이 강조되면서 불규칙적이고 비대칭적인 움직임들로 장면을 채우고 있다. 따라서 전통적인 발레의 외연을 확장해 현대무용의 분절적인 움직임을 수용하고 활용한다.

백연의 예술세계
백연은 안무를 시작할 때부터 총체적인 안무를 지향해 왔다. 백연발레프로젝트와이의 ‘와이’는 발레 움직임에 늘 새로운 장르나 분야를 가져와 새로운 미지수(Y)의 이미지를 창조한다는 의미를 지녔다. 총체적인 작업은 여러 가지가 결합 되는 과정에서 소통이 많이 필요하고 때로는 예측 불가의 결과를 낳기도 하지만, 그녀는 이것이 일치점을 이룰 때의 쾌감을 즐긴다고 한다. 이것이 그녀가 추구하는 이상이다. 다양한 작업을 통해 여러 요소가 조화롭게 구현되면서 모든 부분이 적절하게 느껴지도록 판단하고 결정하는 능력이 그녀를 차근차근 성장시켜 왔다. 그녀가 추구하는 것은 매번 발레 움직임에 무언가를 더해 새로운 미지수(Y)를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건축, 로봇, 전통음악, 영상, 마임 등 여러 요소들을 효과적으로 사용해 시공간을 꽉 채운 작품들을 완성해왔다. 그렇지만 그녀가 무엇보다 중요시하는 것은 움직임이며 미지의 이미지를 만들기 위한 수많은 재료 중에서 늘 사용되는 발레 움직임은 백연의 정체성이다. 컨템포러리 발레에 대한 생각도 깊다. 그녀는 현장에서 활동하면서 컨템퍼러리를 판단하는 감각을 익혔고, 그 감각을 선명하게 하기 위해 최근 올려지는 예술들을 많이 보려고 노력한다. 이는 동시대 안무를 추구하면서 동시대 예술을 모르면 안 된다는 그녀의 사고에 기인한다.
앞으로의 활동계획
그녀는 올해 8월 CKL에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26년 다원예술창작산실 신작 〈BUILD UP〉을 공연할 예정이다. 이 공연은 건축, 로봇, 영상, 발레 움직임을 결합하여 완성되지 않은 몸이 이상적 몸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드러내고자 한다. 발레무용수의 몸에 새겨진 뒤틀림과 손상이라는 몸의 기록이 건축적 구조물과 이상적 몸을 향해가는 로봇과 결합하여 무용 예술가의 몸에 축적된 역사와 존엄을 되새겨 보고자 기획된 공연이다. 10월에는 서울문화재단 예술창작활동지원사업 선정 프로젝트 〈Ballet ro-훈민정음 Ver.2〉를 공연한다. 이 작품은 2024년 서울문화재단 예술창작활동지원사업 선정 프로젝트인 〈더블빌 LANGUAGE〉 중 한국춤비평가협회 ‘베스트작품상’을 수상한 〈발레로-HUNMINJEONGEUM〉을 리메이크하는 작품이다. 부족한 부분을 보완 확장하여 새로운 작품으로 재창작한다. 마지막으로 (재)인천문화재단에서 운영하는 송도 트라이보울의 기획공연 <트라이보울 시리즈>프로그램으로 12월 12일 〈MELTING〉을 공연한다. 이외에도 8월 22일 서울무용창작센타에서 진행하는 발레블랑 정기공연에 참여하는 신진 안무가의 작품에 서포터즈로 역할 한다. 처음 안무를 시도해 보는 안무자를 돕는 역할로 안무자의 입장에서 처음 하는 공연을 잘 올릴 수 있도록 도울 예정이다.
무엇이든 본인이 직접 경험해야 직성이 풀리는 백연은 여린 외모에 비해 외유내강(外柔內剛)의 면모를 지녔고 대기만성형(大器晩成型)이다. 비교적 뒤늦게 안무가로 출발해 총체적인 안무를 통해 실험적이고 다양한 연출을 기해 온 그녀의 적극성과 탐구심, 경험 중시의 태도는 앞으로도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고 새로운 작품을 완성해 가는데 큰 동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또한 유학파도 아닌 그녀가 독립단체를 운영하며 자신의 노력과 열정, 안무력만으로 자리 잡고 선도적인 안무가로 급부상한 것은 한국발레계의 가능성을 충분히 입증한 것이 아닌가 싶은 마음에 뿌듯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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