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작가
Vol.129-1 (2026.5.5.) 발행
글_ 심정민(무용평론가, 비평사학자)
사진제공_ 최문석

어려서부터 춤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던 최문석은 세종대학교와 툇마루무용단을 거쳐 유럽으로 건너가면서 새로운 예술적 전기를 맞이하였다. 잘 나가는 젊은 무용가에서 예술적인 폭과 깊이가 두드러지게 향상된 무용가로 거듭날 수 있었다. 벨기에와 독일을 중심으로 스위스, 스웨덴, 프랑스, 룩셈부르크 등 여러 나라에서 무용수와 안무가로 활약하면서 제대로 탐구하고 실행해 온 흔적이 〈Grenz.land KOREA〉나 <대구보디(DaeguBody)>와 같은 작품에 뚜렷이 새겨져 있다. 2026년 4월 30일 만남을 통해 최문석의 발자취를 되짚어 본다.
춤은 그의 운명
최문석은 1981년 안동에서 태어나서 곧바로 대구로 옮겨와 살았다. 그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어머니 말을 들어보면 유치원 때 시내 레코드 가게에서 음악이 나오면 한 시간씩이나 춤을 추었으며 지나가던 사람들이 구경하면서 손뼉을 쳤다고 한다. 청소년기에도 친구들과 상가 옥상에서 H.O.T 같은 아이돌 춤을 따라 하곤 했다. 이와 같은 기질로 인해, 고등학교 1학년 때는 6개월만 예술 춤을 배워볼까 하는 마음에 대구에서 잘 알려진 예인무용학원을 찾아갔다.
춤에 적합한 재능과 체형을 알아본 선생들의 적극적인 추천으로, 최문석은 본격적으로 춤의 길에 들어섰다. 예술 춤을 시작하기에는 상당히 늦은 나이였기에, 오랫동안 배워온 다른 학생들을 보면서 빨리 저렇게 추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고등학교 3년 무렵에는 전국구 콩쿠르에 여러 번 나갈 수 있었는데, 실력 있는 학생들을 보면서 좌절하기보다 승부욕이 생길 정도로 최문석의 춤을 향한 열망은 강했던 것 같다. 세종대학교에 진학한 계기를 물음에, <해변의 남자>라는 공연을 본 적이 있는데 리버럴하고 역동적인 남성 춤을 보고 마음이 동했다고 한다.
세종대학교에 입학해서는 최청자 교수에게 현대무용의 기교뿐 아니라 정신을 배울 수 있었다, 위로는 김형남, 노정식, 이영일, 정연수, 김경신 그리고 아래로는 류장현, 이동하 등과 함께 작업할 수 있었던 것도 큰 힘이 되었다. 당시 영향을 받은 또 한 명의 무용가라면 안은미 선생으로, 우연히 사석에서 만나서 열린 시각의 예술적 사고에서 많은 것을 느꼈다.
꿈을 찾아 주저 없이 유럽으로
20대의 최문석은 알랑 플라텔 등에 의한 여러 컨템퍼러리댄스 작품을 보고 어떻게 저런 개념과 전개와 질감을 만들어낼 수 있는가에 큰 충격과 감흥을 받았다. 그래서 신인무용콩쿠르 대상으로 병역특례를 받자마자 주저 없이 유럽으로 떠났다. 프랑스, 룩셈부르크, 독일 등으로 옮겨 다니면서 수도 없이 오디션을 봤고 수도 없이 떨어졌다. 당시 유럽에서는 관념적이고 탐색적인 움직임을 선호했기 때문에 기능적인 움직임에 충실했던 한국 무용수는 잘 선택되지 못했으리라 본다.
최문석은 좌절하기보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작품에 관련된 주제를 생각하고, 발전하고, 반영하는 과정에 관해 차근차근 연구해 갔다. 그러한 가운데, 룩셈부르크에서 이탈리아 안무가의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었으며 독일에서는 2009년부터 2012년까지 자를란트 주립극장에서 단원으로 활동할 수 있었다.
2012년에는 벨기에로 건너가 프리랜서로 활동하면서 쎄드라베에서 알랑 플라텔의 어시스트로 활약했던 무용가와 함께 작업하기도 했다. 최문석이 유럽으로 가게 된 주요 계기가 알랑 플라텔의 작품을 보고였으니 성공적인 유럽 진출이 된 셈이다. 이외에도 스위스, 스웨덴, 레바논, 프랑스 등 여러 곳에 여러 안무가와 작업하였으며 게스트 안무가로 초청받기도 했다. 2015-17년에는 피나 바우쉬의 <봄의 제전>에서 게스트 댄서로서 홍콩, 뉴욕, 캐나다를 투어 하기도 했다. 다양한 국가, 문화, 성향의 무용가들과 활동하는 폭넓은 경험을 자양분 삼아 그는 창작적으로도 자신의 역량을 확장해 갈 수 있었다. 2018년 대구와 베를린을 주 무대로 활동하는 12H Dance를 창단하여 국내는 물론 유럽과 북미까지 활동 반경을 넓혀왔다.

한국에서 선보인 주요 작품들
벨기에에서 한창 알랑 플라텔 스타일 등 컨템퍼러리댄스를 연구하고 있을 때 모다페의 초청으로 잠시 귀국하여 〈Inst.Act〉란 작품을 선보인 바 있었는데, 이에 대해 <춤> 2013년 6월호에 다음과 같은 글이 올랐다.
최문석은 〈Inst.Act〉을 통해 인간의 본성에 대해 고찰한다. 맞닥뜨림에서 파생되는 반응은 또 다른 연쇄된 반응을 일으킨다. 괴음, 경련, 압박, 충돌 등이 산발되는 행태는 불편함을 야기하지만 현대인의 본성에 대한 고발이라는 점에서 의미 있는 불편함이다. (중략) 여섯 명의 행태는 마침내 합일된 힘을 발산하는 군무로 이어지면서 심미적 절정감을 이끈다. 젊은 에너지의 진솔한 분출은 앞부분에 엉켜있는 행태적 실타래가 모두 하나의 틀 안에서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정리해주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현대 문명사회 속의 인간 본성에 대한 자각과 성찰 같은 것 말이다.
유럽에서 활동하는 수많은 한국 무용가 중 하나였던 최문석의 창작적 성취에 주목하게 된 계기는 역시 모다페에서였다. 모다페 2022에서 발표한 한·독 합작 프로젝트 〈Grenz.land KOREA〉는 공동안무를 맡은 최문석과 샤일라 코드르(아르헨티나·독일), 사운드디자이너 알브렉히트 지퍼트(독일), 영상디자이너 에라토 타자바라(그리스)에 의해 만들어졌다. 춤, 영상, 사운드의 융복합을 통해 개념과 실연의 균형감을 제대로 이루어낸 작품으로, 관객에게 시청각적 미감과 함께 주제에 대한 사유와 자각을 끌어냈다. 당시 <댄스포럼> 2022년 7월호에 실린 <융복합의 균형감을 갖춘 국제협업>이라는 글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Grenz.land KOREA〉는 팬데믹 전에 세계 공연예술계의 주요 화두였던 디아스포라를 소재로 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전 세계의 다양한 인종, 국적, 언어, 문화, 세대의 이민자들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멀티미디어 전시와 퍼포먼스 공연이 이루어진다. 퍼포먼스는 공동안무를 맡은 최문석과 샤일라 코드르와 더불어 사미 알렉산테리 시미라에(핀란드)에 불과하나 영상에 비치는 여러 이민자들의 인터뷰로 인해 무대가 꽉 차 보인다. 영상 속 사람들의 모습은 서로 다르지만 그들의 사연은 생존, 자유, 희망, 사랑 등 인간의 본질적인 공통분모로 귀결된다. 글로벌한 현재에도 여전히 존재하는 크고 작은 경계와 차별, 배척과 혐오에 대한 재조명, 논의, 자성을 촉구하는 방식을 취하는 것이다.
〈Grenz.land KOREA〉는 춤, 영상, 사운드의 융복합을 통해 개념과 실연의 균형감을 제대로 이루어낸 작품으로, 관객에게 시청각적 미감과 함께 주제에 대한 사유와 자각을 끌어냈다. 최문석의 그동안 작업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동시에 국제협업 중에서도 손꼽힐 만한 성과라고 여겨진다.

오랜만에 한국 공연으로 예술적인 역량을 확인시킨 최문석이 이듬해 대구시립무용단에 예술감독으로 임명되었다는 소식은 새로운 대작 발표의 가능성을 높였다는 점에서 기대를 모았다. 이에 응답하듯, 대구시립무용단에 예술감독으로서 첫 번째 대작인 <대구보디(DaeguBody)>(2023년 9월 15-16일, 대구문화예술회관 팔공홀)를 통해 이제껏 가장 주목할 만한 작품을 선보였다.
대구라는 도시가 지니는 개성과 특성을 그 속에서 살아 숨 쉬는 사람들의 모습으로 실제화한 작품이다. 몸과 그 안에 축적된 역사성이라든가 정서와 지역의 고유한 특색을 담아낸 작품은 아래와 같은 안무와 연출로서 상당히 인상적인 성취를 거두었다.
우선, 가야금과 퍼커션이 세련된 퓨전음악으로 승화된 라이브 연주, 근대시대 사진부터 기하학 그래픽에 이르는 갖가지 영상 이미지, 디테일한 각도와 명도로 미니멀한 감각의 세련미를 돋우는 조명, 다채로운 개성을 드러내면서도 하나의 브랜드처럼 보이는 의상 등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무엇보다도 각각의 움직임의 개성과 생동감을 잃지 않으면서 구조적인 틀을 견고하게 유지하는 안무는 상당히 인상적이다. 춤의 구성적 디테일에 힘을 실어준 조안무 요스케 쿠사노와 최문석의 예술적 궁합도 상당히 좋았기에 이러한 성취를 거둘 수 있었으리라 본다.
녹록지 않은 안무에 대해 4~5개월 만에 빠른 적응력을 보인 무용수들 역시 프로페셔널하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초록색 드레스의 여인을 필두로 한 여러 명은 거의 최문석의 페르소나처럼 역할 한다. (후략)
<댄스포럼> 2023년 10월호
이러한 <대구보디(DaeguBody)>는 감성적인 심연의 입자들처럼 작용하는 신체에다가 감각적이고도 구조적으로 통제된 안무 및 연출 기법에서 탄츠테아터와 컨템퍼러리댄스의 접점을 매우 잘 찾아냈다는 점에서 놀라움을 선사했다. 유사한 점도 적지 않으나 의외로 조화로이 섞이지 않는 탄츠테아터와 컨템퍼러리댄스가 최문석의 창작에서 매우 잘 어우러졌기 때문이다. 이는 최문석이 28세부터 41세까지 유럽에서 활동하면서 특히 독일의 파나 바우쉬와 벨기에의 알랑 프라텔의 춤을 깊이 있게 탐구하고 실행했기에 가능했으리라 본다.
최문석의 창작 방식
최문석의 창작 방식은 컨템퍼러리댄스나 탄츠테아터의 그것을 제대로 갖추고 있다. 작품의 주제를 담은 시놉시스를 만들어 무용수들에 나눠주고 서로 읽으면서 각각의 해석을 펼치도록 이끈다. 이때 복합적인 자료들, 이를테면 책, 기사, 영상, 사진 등을 서치(search)하여 이를 무용수들과 공유하면서 함께 리서치(research)하는 과정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무용수마다의 감각, 경험, 생각, 시각을 최대한 끌어내는 한편 각각 다를 수밖에 없는 특질들을 크게 아우를 수 있도록 리서치에 리서치를 거듭하는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움직임의 모양(Shape)뿐 아니라 왜 여기서 이러한 움직임을 펼쳐야 하는지에 관한 예술적 관념을 심어 놓으려고 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창작의 의미와 가치를 탄탄히 해가는 방식을 취한다. 알랑 플라텔이나 피나 바우쉬 등과 같은 거장의 창작 과정과도 일맥상통한다는 점에서 최문석이 유럽에서 제대로 탐구하고 실행했음을 알 수 있다.
대구시립무용단 예술감독으로서
안무가라면 공공적인 직업 단체에 소속되어 작업하고 싶기 마련이다.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시스템과 지원 그리고 단원들과 함께 좋은 작품을 만들고 싶은 열망이 있기 때문이다. 최문석이 2023년 초에 대구시립무용단 예술감독에 지원한 것도 그러한 맥락으로 설명될 수 있다. 하지만 최종 면접에서 쟁쟁한 후보들 사이에 가장 젊었던 그는 마음을 접고 독일로 갔다. 또 한 번의 반전은 독일에 도착한 지 일주일 만에 대구시립무용단의 예술감독으로 최종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받은 것이다.

그해 4월부터 정식으로 대구시립무용단에 출근하였으며 연임을 동해 2026년 5월 현재까지 재직하고 있다. 대구시립무용단에서 최문석은 단원들이 컨템퍼러리댄스 작업 방식에 적응하게 하고, <대구보디>처럼 국제적 수준의 창작 작품을 발표하고, 국내외 안무가를 초청하여 워크숍 및 창작을 의뢰하고, 국내외적으로 대구시립무용단 활동을 널리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전국구와 아시아에 대구시립무용단을 알리기 위해 노력해왔다면 이제부터는 유럽에 진출하기 위해 힘을 쏟을 것이라고 한다. 이미 〈The Lovers〉(2025) 같은 작품들로 독일과 프랑스에 초청받았으며 이를 유럽 투어로 확장할 수 있는지를 타진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올해 7월과 12월에도 신작을 준비하고 있는 만큼 대구시립무용단에서 최문석의 활약은 현재 진행형이다. 아니 더 뻗어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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