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스러운 흐름과 속도로 인간다운 삶과 춤을 완성하는 안무가 이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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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에 접어든 무용가이지만 얼굴에는 장난기가 가득 남아있는 이재영은 자신의 춤과 ‘시나브로 가슴에’를 통해 진지하고 감각적인 춤을 선보이고 있다. 그의 장난기 있는 얼굴은 순수함을 외적으로 보여주는 일례이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차분하고 조용한 그가 힙합춤으로 무용을 시작했다는 것이 의외이기도 했다. 힙합춤은 그에게 리듬감과 자신의 개성 있는 움직임을 만들어내는데 도움이 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초창기 테크닉적이고 타인의 눈길을 끄는 동작을 구사하는 것이 성격에 맞지 않았던 그가 결국 찾은 것은 자연스러움, 순수함, 그럼에도 구조적이고 스피디하기보다는 조금씩 변화해가는 과정이었다. 스펙터클하고 자극적인 춤의 반대편에서 사유와 느림의 미학으로 접근하는 이재영의 안무에는 얼핏 구도(求道)의 느낌도 있다. 국립현대무용단과의 작업을 통해 실력을 인정받고 있는 이재영을 살펴보며 그 내면을 파악할 수 있었다.

백업댄서로 시작한 춤의 길 

그는 중학교 시절 힙합을 통해 춤을 시작했다. 가수 기획사에 들어갔다가 백댄서 경험을 쌓으라는 말에 중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백업댄서 생활을 오래 했다. 처음에는 반대하셨던 부모님도 백댄서로 TV에 나오는 모습을 보고 좋아하셨고, 부모님의 권유로 서울예술대학교에 입학했다. 당시 박일규 교수 밑에서 탭댄스와 뮤지컬 만드는 실습 등을 통해 무용을 접했다. 또한 김기인 교수가 본인의 수업에 들어오라는 권유로 현대무용과 즉흥수업도 배웠다. 그때 피나 바우쉬의 작품 <마주르카 포고>를 보고 진지하게 현대무용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형들을 따라 편입시험을 본 곳이 한성대였다. 이곳에 합격하고 나서 제대로 발레, 현대무용의 베이직 등을 제대로 경험했다. 박인숙 교수, 강경모, 박순호와 같은 안무가들과 많은 작품에 출연도 하게 되었다. 강경모 선배는 그에게 많은 것을 알려주고 교육적으로 도움을 주기도 했다. 특히 박순호와는 10년 넘게 같이 공연을 하기도 했다. 허성임 선배와는 영국 투어를 같이 하기도 했고 정석순이 동기이다. 후배로는 권혁과 정철인, 정재우 등이 있다. 

자신만의 진정한 춤과 강점을 찾다

그의 첫 데뷔는 24살 때였다. 콩쿠르에 나가는 주변 친구들을 보면서 자신도 도전해보고 싶었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안무를 해봤다. 수상을 하지는 못했지만 비교적 일찍부터 안무를 시작했고, 남들보다 잘하는 부분을 찾다보니 안무에 집중하게 되었다. 2004년에는 전국대학 무용콩쿠르 금상 수상, 다음해 한국현대무용협회 콩쿠르 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2006년에는 서울무용제 경연안무부문에 〈NEPHILIM〉을 내놓으며 안무 및 출연을 했고, 특별히 2009년은 그에게 뜻 깊은 해였다. 서울국제공연예술제 서울댄스컬렉션에서 <바벨>로 최우수안무상을, MODAFE–SPARK PLACE에서 〈N,A〉라는 작품으로 우수안무작을 받았으며, 현대무용협회 신인 안무가상을 수상했기 때문이다. 이를 계기로 안무 기회가 많아졌고, 또래 안무가들과 만날 기회가 생기면서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그의 초창기 작품들은 피지컬의 느낌이 강했다. 스스로가 선호하지는 않았지만 남들이 좋아하니 거기에 부합했다. 하지만 하고 싶은 움직임이 아니기도 했고 무리하다보니 부상을 많이 당하기도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건강하게 움직이고 싶은 마음이 강해졌고, 움직임 리서치 과정에서 춤이 건강하게 발현됨을 발견했다. 권혁과의 작업은 둘의 공감을 통해 ‘시나브로 가슴에’의 단체 색깔이 되기도 했다. 둘 다 움직임 리서치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자연친화적이며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움직임을 추구했고, 단체 안에서의 문화가 그쪽으로 흘러가게 되었다.

‘시나브로 가슴에’의 창단과 작업

이재영은 초장기에는 단독으로 작업하다가 ‘시나브로 가슴에’를 창단했다. 시나브로는 순우리말로, 그 이름을 처음 떠올린 것은 아버지가 피시던 담배 때문이었다. 담배 이름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시나브로’에 뭔가 진정성을 담아 가슴에 스며드는 작품을 해야겠기에 ‘가슴에’라는 단어를 덧붙여 작명했다. ‘시나브로 가슴에’는 조금씩 천천히, 창작하는 이의 가슴으로 만들고 감상하는 이의 가슴으로 깊숙이 다가갈 수 있는 작품을 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프로젝트로 지원금을 받아 작업하기 위해서는 팀이 필요했고, 무용수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이때가 2013년으로, ‘시나브로 가슴에’는 권혁과 함께 <이퀄리브리엄>을 작업하면서 구성되었다. 권혁이 제대 후 안지형이 협업 요청을 하면서 이재영, 안지형, 권혁의 3인 안무가 체제가 만들어졌다. 셋은 20대부터 함께 춤을 연구했고, 현재도 친구 및 동료이다. 이후 김소현, 이학, 김혜진 등이 합류하면서 본격적으로 단체 활동을 하게 되었다. 조하나 PD가 들어오면서 단체는 더욱 체계를 갖추었고, 현재 무용수 6명과 조하나 PD를 합쳐 7명의 정규멤버로 구성되었다. 단체의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이퀄리브리엄>, <치타슬로우>, <신체, 파동, 소리>, <휴식>, <질주>, <해탈> 등이 있다. 

작품 주제와 움직임의 특성

이재영 춤의 주제는 특정되지 않는다. 그래서 다양하다. 다만 과학적으로 풀어내는 것을 재미있어하고 수학적 나열을 받아들이는 것에 직관적이기에 구조적이다. 그는 예술적인 부분들을 수학적으로 접근하면 명확한 것 같아 즐겨한다. 그래서인지 <구조와 구조> 같은 작품은 건축적이다. 또한 속도로 드러나는 움직임의 질감을 살펴보면 느림의 미학이 돋보인다. 순발력과 역동성을 요구하던 초기 작품과 달리 반복적인 움직임을 통해 그 프레이즈가 강화되면서 무용수들 자체로도 지속적으로 꾸준히 할 수 있는 움직임들이다. 지구력을 요하는 쪽으로 변화를 가져왔다. 분절된 움직임을 축적해가며 거기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에너지로 관객들에게 접근하는 것이 특성이라 하겠다. 또한 이미지에 있어서 억지스럽지 않고 물 흐르듯 흐른다. 시나브로 가슴에의 <신체, 파동, 소리>는 이재영의 안무 특성을 대변하기도 한다. 신체가 중심이 되어 만들어내는 다양한 감각들, 오감에 주목해 미세한 파동, 감각의 전환 등에 목적을 둔다.

가장 고마운 작품 <휴식>, 가장 최근작 <태양>

이재영은 다작을 한 안무가는 아니다. 하지만 초창기 작품부터 주목을 받았다. 대학교 졸업작품으로 만들었던 5분짜리 작품 <휴식>은 이후 ‘안무가 인큐베이션’을 통해 쇼케이스에서 발전시켰다. 농구의 움직임을 발전시켜 만든 <휴식>은 소품이지만 그를 평단과 현대무용계에 알리기 충분했다. 이후에도 계속 이를 조합하고 변형시켜 투어를 다니게 됨으로써 안무가로서 일할 수 있게끔 해준 고마운 작품이다. 

이재영은 즉흥공연에서도 눈에 띄었던 인물로 <휴식>이라는 작품에서 휴식의 간절함과 공허함을 농구의 이미지를 빌어 사실적으로 표현했다. 끝없는 신체운동의 정지 뒤의 공허함, 그것이 안무가의 휴식으로 설정한 그는 하수 벽 쪽에 한정된 불빛 속에서 자신과 여성무용수 이다솜과 함께 벽을 이용해 연속적 움직임을 이어갔다. 이재영은 자신의 머리를 논구공이 튕기듯 반동을 주고 두 남녀는 무음 속에서 일관된 주제와 모티브를 발전시켜 나갔다. 곳곳에 숨겨진 웃음 코드를 잘 살려냈고, 심박동처럼 규칙적인 타악음에 맞춰 남녀의 적절한 힘의 균형이 조화를 이뤘다. 무엇보다 에너지의 충만함과 군더더기 없는 주제와 열정이 돋보였다.

<춤과 사람들> 2011년 3월호

거대한 조명 아래 불안정한 상태를 표현한 무용수들의 움직임은 그렇기에 잘 짜여진 구조나 정제된 움직임이 아닐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반복을 거듭하면서 의미를 증폭시켰다···. <태양>은 시나브로 가슴에의 움직임에 대한 탐구가 돋보인 반면에 현대예술의 난해함에 또 한 번 봉착하게 되는 작품이었다. 그럼에도 제목만을 보고 <태양의 서커스>의 스펙터클이나 연극의 구체적 서사를 생각했던 관객에게 신체의 물성이 제공할 수 있는 광범위한 해석의 영역에 참여시키는 공연이었다. 절실하게 다가왔던 것은 우리가 처한 불안정한 환경에의 경고, 살아남은 신인류의 생명력과 희망이 아니었을까?

<댄스포스트코리아> 2023년 3월호

이미지의 창조

이재영이 안무에 있어서 중점을 두는 것은 이미지이다. 무대라는 공간에서 무용수들이 어떻게 이미지를 만드는지 떠올리며 작업에 임한다. 그 과정에서 동적인 부분보다 정적인 부분을 먼저 찾게 된다. 연출적으로도 반복적이고 지속적인 힘을 강조한다. 또한 편하고 위안을 얻게 되는 이미지를 무대로 가져오고 그것이야말로 공연을 끝까지 볼 수 있게 하는 힘이라 여긴다. 순간적인 빠른 힘은 강렬하나 지속적인 이미지는 공연을 보면서도 생각하게 하는 것이며 느린 움직임 속에서 발생한다. 그의 안무작으로 <매커니즘>, <이퀄리브리엄>, <이퀄>, <구조의 구조>등이 있고 특히 <구조의 구조>는 <매커니즘>의 또 다른 파생작업이었다. <매카니즘>은 프로세스 작업을 하지 않았다가 4명이서 작은 움직임에서 출발해 확장하면서 나온 작품이다. 힙합의 매커니즘을 경유해 춤에 대한 다른 움직임 구성 원리를 마련했고, 박자 하나하나에 움직임 하나하나의 단위를 구성하며 조직적으로 완성된 이미지를 생성했다. <구조의 구조>는 몸의 구조와 형태에 대한 모습을 현 시대의 사회 속에 포함된 다양한 구조에 대입하여 훌륭하게 풀어낸 작품이다. 

연극작업과 해외진출로의 발전

이재영은 연극에서의 안무작업도 진행해왔다. 4-5년 전부터 조하나 PD가 김정 연출가를 소개시켜주면서 연극작업을 하게 되었다. 연극은 서사가 있어서 장면에 있어서 또 다른 재미가 있었다. 그는 무용수들에게 하듯 배우들과 즉흥작업을 많이 하며 그들에게 움직임을 따로 주지 않고 같이 장면을 만들어 나간다. 그는 연극작업을 하면서 무용이 서사를 가지면 어떻게 될까를 궁금해 했고, 사실상 ‘무용극’이라 느끼는 작품들은 서사가 전달되는 방식에 있어서 텍스트와 춤이 함께 하지만 이것은 그가 원하는 방식은 아니었다. 그래서 가장 최근작인 <태양>에서는 동명의 연극작품 <태양>의 안무와 달리 서사를 들어내고 주된 이미지를 나열해 풀어냈다. 그에게 <태양>은 힘들지만 재미있는 작업이었고 서울예대 동기인 박성률과 함께 해 더욱 좋았던 작품이다. 그는 현재는 해외보다 단체의 작업에 더 재미를 느껴 해외진출이 뜸한 상태이다. 이전에는 해외 교류작업이나 해외 레지던시를 활발히 진행했다.

다양하게 관객들과 마주하다

미니멀리즘의 형식을 갖추고, 그 안에서 구조미와 느림의 여유를 보여주는 이재영은 삶과 인간과의 관계에서도 유사한 모습을 보인다. 뛰어난 안무력을 갖췄으나 남에게 자신을 드러내려 애쓰지 않고 혼자만의 사유의 시간을 선호하는 점, 느리지만 진정성을 갖추고 다가가는 모습이 그러하다. 컨템포러리 댄스의 진화과정처럼 이재영의 춤도 현재진행형이다. 욕심 없이 꾸준히 변화를 거쳐나가는 그의 춤을 우리는 기대하며 바라보게 되는 이유이다. “조금씩 조금씩” 춤을 통해 우리 삶,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고 공감하고자 하는 그는 앞으로도 다양한 움직임과 사고로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고 춤의 외연을 넓혀갈 것이다.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점점 쓸모를 잃어가는 비효율적인 것들의 가치를 찾아가는 것이 예술적 의미를 사회에 전달하는 방법이라고 믿는 그의 믿음은 진솔하게 와 닿는다. 

글_ 장지원(춤평론가)

사진제공_ 이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