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스포스트코리아
지난자료보기

로고

무용현장

춤작가

안주하지 않고 세상의 주름에 뛰어든 무용가 김미란


“저걸 네가 하는 거야!”


대학 수학과에 진학하고 싶었던 고등학교 1학년 김미란에게 어느 날 무용 선생님이 “무용을 전공 해보면 어떻겠니?”라고 권유한다. 무용 선생님은 김미란이 가진 소질을 보았기 때문이겠지만, 김미란 입장에서는 생각해 보지 않은 뜬금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선생님은 말로 권유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를 ‘짓’ 무용단(동아대 한국무용 전공 동문단체) 공연에 데리고 갔다. 난생처음 보는 무용공연에 김미란은 눈과 정신이 번쩍 뜨였다고 한다. “저걸 네가 하는 거야.” 선생님의 결정적인 한마디에 힘입어 김미란은 무용을 하기로 결심한다. 이후 김미란의 삶은 새로운 전환을 맞이한다. 2년의 준비 시간이 길지는 않았지만, 부산대학교 무용학과에 입학한다. 처음 본 공연이 한국무용 공연이었기 때문에 입시도 한국무용을 선택하게 된다. 대학에서 춤의 기본 다지기에 충실하면서 한편으로 무용 이론, 타 장르 예술 과목, 철학 수업을 두루 들은 결과 생각이 깊어졌고, 다른 전공생들과의 교류도 넓혀 갔다. 도서관에 살다시피 하면서 무용, 미술, 철학, 문학 서적을 탐독하고 공연 시청각 자료도 두루 섭렵하였다. 잘하고 싶다는 의지로 기교뿐만 아니라 예술가로 나아갈 길에 자양분이 될 두텁고 넓은 기반을 쌓아갔던 것이다. 춤뿐만 아니라 공부하는 자체를 즐겼던 김미란은 대학원 진학을 계획했었다. 그런데 지도교수였던 김현자 교수가 그가 졸업하는 해에 한예종으로 자리를 옮겨 대학원 진학이 무의미해졌다. 


직업무용가의 길


하나의 길이 막히면 다른 길이 보이듯 대학원 진학을 포기한 김미란은 부산시립무용단(이후 ‘시립무용단’) 오디션을 보게 되었고, 어려운 경쟁을 뚫고 합격한다. 무용을 선택한 순간이 김미란 삶의 첫 번째 전환점이었다면, 시립무용단 입단은 두 번째 전환점이다. 대학에서 인문학적 소양을 탄탄히 다졌다면, 직업무용단 생활은 춤 자체를 다지는 계기가 되었다. 민속춤, 궁중무용 같은 우리 춤과 현대무용, 악기 등 무용수가 갖추어야 할 고도의 기량을 쌓아간 시립무용단 생활은 직업무용수의 태도와 정신을 확고히 해주었다.



시립무용단 같은 공공무용단에 들어가는 일은 무용 전공자면 누구나 꿈꾸는 일이다. 안정된 생활을 하면서 최고의 조건에서 춤출 수 있는 생활을 마다할 사람은 없다. 그래서 출중한 무용수들이 공공무용단에 들어가면 대부분 그곳에 안주한다. 이것은 당연한 일이고, 누구도 비난하지 못한다. 그런데 단체의 일원으로 공연하다 보면 개인 존재가 소멸하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무용수 개개인이 작품 속에 녹아들어야만 완성도가 높아지는 큰 작품의 특성상 어쩔 수 없는 일이고, 여기에 더해 개인을 내세우는 창작 활동이 아니라 시민의 세금으로 운영하는 공공무용단이라서 더욱 그런 것이다. 대부분의 무용수는 이런 상황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고 그냥 받아들이지만, 간혹 이 상황을 예민하게 느끼는 사람이 있다. 김미란은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쪽이었다. 인터뷰에서 김미란은 “무용단 활동 안에 제가 없었습니다.”라고 말한다. 이것은 좋고 나쁘고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의 문제이다. 김미란은 번거롭고 쉽지 않은 쪽을 선택했다. 


안주하지 않고 세상의 주름에 뛰어들다


평소에 글을 읽고, 영화를 보고, 그림을 감상하고, 일상을 영위하는 순간에도 문득 창작의 영감이 떠올랐고, 그것을 충실히 기록하고 기억하고 있었다. 이렇게 가득 찬 내면을 두고 시립무용단 단원 활동에만 만족할 수가 없었다. 자연스럽게 자기만의 작품을 만들어 충만한 내면의 예술적 욕구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김미란의 시립무용단 이외 활동은 단순히 다른 사람 작품에 출연하는 데 그치지 않았고, 지원금이 없어도 자기 작품을 꾸준하게 만들었다. 그 결과 지난 8월 25일 2023 창무 국제공연예술제, ‘창무 프라이즈’부문에서 <중中독>으로 작품상을 받았다. 이 상을 계기로 무용계와 언론의 관심을 받았는데, 김미란이 이번에 잘한 것이 아니라 그동안 꾸준히 잘해 오던 터라 이번 수상은 오히려 늦은 면이 있다. 수상 경력은 이뿐만이 아니다. 2019년 제53회 처용 창작 전국무용대회에서 <어여쁘소서>로 인기상과 대상을 받았고, 2003년 (사)한국무용연구회 주최 제13회 신인 안무가전에서 <꽃을 꺾어본 적이 있습니까?>로 작품상을 받았다, 2003년부터 본격적으로 <꽃을 꺾어본 적이 있습니까?>, <얼룩무늬 저 여자>, <청색 시대>, <그에게 가는 길>, <메멘토 모리>, <진흙>, <선물>, 〈It’s a real〉, <미궁>, <그리고, 그들은 꽃에 수갑을 채웠다>, <인연>, <표풍>, <벙어리 춘앵>, <버려짐>, <춤 에세이- 살다 보니>, <움트다>, <벌거벗은 임금님>, <크리스마스 캐럴>, <미궁>, <위로>, <중中독> 등의 작품을 창작했다. 2004년에는 <거미집, 벙어리 춘앵, 인연>을 ‘김미란 무용단’ 창단 공연으로 올리면서 대외적으로 활동을 공식화한다. ‘김미란 무용단’은 뒤에 ‘김미란 DANCE THEATER zip 集’으로 이름을 바꾸어 활동을 이어간다. 그의 활동 폭은 넓다. 부산민예총 춤 분과 활동, 국립무용단 기획공연, 젊고 푸른 춤 한마당, 대전 시립무용단의 2006 안무가 페스티벌, 춤패 연분홍 공연, 생명 춤판, 창무예술원 주최 내일을 여는 춤 등 기회가 있으면 놓치지 않았다. 이 밖에도 연극 작품의 안무를 맡기도 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이 정도의 활동을 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인데, 시립무용단 정기공연 2019년 <남풍>, 2020년 <소생>에서 주역을 맡아 존재감을 높였다. 이처럼 시립무용단 활동과 외부 공연 기회를 주저하지 않고 이용하는 것을 보면, 직업무용수에 독립 춤꾼을 더한 이상적인 무용가의 모습일 수 있다는 생각마저 든다.



김미란은 대학 수업에서 알게 된 피나 바우슈(Pina Bausch)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고 말한다. 피나가 이끄는 부퍼탈 탄츠씨어터(Wuppertal Tanztheater)는 김미란이 꿈꾸던 이상적인 댄서와 춤, 작품, 단체로 보였다. 실제로 (재)부산문화회관이 기획한 ‘2019 안무가양성프로젝트 - 몸으로 쓰는 시’에 참가한 <청색시대>의 마지막 장면을 피나 바우슈의 <마주르카 포고>의 한 장면을 차용하기도 했다. 피나의 영향인지 김미란의 작품은 연극적 요소가 풍부하고 기교적이라기보다 감성적이다. 현란한 동작으로 어필하지 않고 짙은 감성으로 관객의 공감을 풍성하게 끌어낸다. 연극적인 구성과 연기에 가까운 움직임은 깊은 호흡에 실려 연극의 그것과는 다른 춤의 극적 효과로 나타난다. 이런 특성은 “작품에서 주제를 표현하는 데 집중하는 편”이라는 김미란의 말을 증명한다. “작품 의도를 잘 표현하기 위해 목적지를 두고 여러 노선을 그려본다. 많은 경우의 수를 펼쳐두고 만들고 지우기를 반복하면서 복잡하고 아름다운 길을 만드는 것이 자기의 제작 과정이며, 이 과정이 설레고 즐겁다.”라고도 말한다. 안무는 많은 조건과 가능성을 하나씩 제거해 나가면서, 단순화하는 작업이다. 감성과 이성이 균형을 이루어야 하는 안무 작업은 김미란이 지나온 길과 닮아있다. 수학과 지망생에서 무용 전공으로, 무용 이론가를 꿈꾸다 직업무용수가 되었고, 직업무용수에 머물지 않고 안무자의 길을 가고 있는 그의 선택은 언제나 감성과 이성이 기우뚱한 균형을 잡아가는 과정이었다.    


그래서, 김미란은…


부산에서 무용가가 점점 줄어든다는 말은 반만 맞다. 부산의 대학 무용과 통폐합으로 한 해 배출되는 신진 무용가의 수가 극적으로 줄어든 것이 사실이지만, 여전히 부산 춤판을 지키고 있는 무용가들이 건재하다. 그들의 뒤를 이어 부산 춤판을 살찌울 세대가 줄어든다는 사실이 절망할 정도는 아니지만, 걱정되기는 한다. 이런 현실에서 김미란은 매우 중요한 무용가이다. 부산의 역량을 인정받고 안주할 수 있는 조건이 충분한 시립무용단에 있으면서도, 바깥으로 나와 활동하는 그의 행보가 시립무용단이 조직 차원뿐만 아니라 단원 개인의 활동을 통해서도 지역 무용계를 건강하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그의 활동 가운데 극단이나 후배 무용단과의 작업은 김미란의 존재가 큰 힘이 된 사례이다. 무용가 한 명이 부산 공연계 전반에까지 선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김미란은 “부산시립무용단이라는 국공립단체에 몸담은 장점을 이용해 좀 더 적극적인 활동을 해 보고 싶습니다.”라고 말 한 그대로 실천하고 있다. 또한 “무용을 지키기 위해서는 장르적 폐쇄성을 깨야 하며, 무용의 특수한 고유성은 다양한 장르와 만날수록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라고 확신한다. 안주하지 않고, 깨어있기를 게을리하지 않는 김미란의 행보는 예상할 수 없어서 더욱 기대되고 가치가 있다.



                                                       

글- 이상헌(춤평론가)

사진제공_ 김미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