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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이 탈주(脫走)를 꿈꾸는 무용가 박재현

무용가의 춤이 자유로운 것만은 아니다. 특히 무대에서 춤은 안무로 정제한 춤이다. 춤꾼의 몸과 움직임을 규격화하는 안무를 거쳐야 춤이 관객과 만난다. 이 과정에서 춤은 몸에서 몸으로 전해진다. 한 사람의 온전한 무용가로 성장하는 과정은 자신에게 드리운 스승의 그림자를 지우는 과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용가에게 스승은 개인 기량의 전수를 넘어 춤 역사와 전통을 전달한다. 전통은 풍성한 자양분이자 견고하게 구획된 규범집이며 권위이다. 춤판을 둘러보면 드물게 기성 춤판의 견고한 구획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가로지르는 이를 만날 때가 있다. 틀과 구획에서 탈주를 꿈꾸고, 끊임없이 꿈을 현실화하는 존재. 현대무용가 박재현은 끊임없이 탈주를 꿈꾸는 무용가이다.

 

 

박재현에 관해 말하기 위해서 기존 단어와 개념을 새롭게 연결하는 서술 방식이 필요할 정도로 그의 안무 방식과 움직임은 독창적이다. 모든 예술가가 저마다 독창성을 지니고 있지만, 박재현의 그것은 부산 무용가 중에서 돋보이는 다른 색을 가지고 있다. 어떤 선배 예술가나 사조에서 영향을 받았는지 짐작하기 어렵다. 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작품을 만나는 수밖에 없다. 박재현의 모든 작품에는 마치 자신의 일부를 복사한 것처럼 그가 들어 있다. 공허한 개념 속에서 허우적대면서도 마치 깊은 의미를 전달하는 것처럼 꾸미는 허위나 가식을 찾을 수 없고, 작품의 의미에 자신을 감추지도 않는다. <63병동>(2010년 10월 7일 금정문화회관) 같은 초기 작품에서 보이는 과도한 솔직함은 관객이 작품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고민하지 않는 그의 태도가 잘 드러난다. 도대체 타자와 소통할 생각이 없는가 싶다가도 작품이 끝나면 그런 의심이 눈 녹듯 사라진다. 사람을 알아야 작품을 이해할 수 있고, 작품을 보고서야 사람이 이해되는 박재현은 부산 춤판의 대체 불가능한 무용가이다.

 


지난 5월 29일 부산문화회관 중극장에서 <박재현의 안무노트> 공연이 있었다. 2020년 제16회 부산 국제무용제 AK21 국제 안무가 육성공연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굿모닝 일동씨>, 2017년 금정산 생명 문화 축전 제2회 전국 춤 경연에서 상을 받은 <고독-그곳엔 사랑이 없더라>, 2019년 제28회 부산 무용제에서 우수상과 안무상을 받았던 <인어공주를 위하여-편견> 등 3편의 대표작을 재구성한 공연이었다. 박재현 작품은 기존 문법으로 읽기 힘들다는 공통점이 있다. 초반에는 서사가 잡힐 듯하지만, 어느 순간 움켜쥔 모래알처럼 빠져나간다. 관객은 동시다발로 일어나는 혼란스러운 퍼포먼스와 어디서도 본 적 없는 낯설고 감각적인 이미지에 빠져든다.

 

이렇게 말하면 그가 기성 무용계에서 인정받기나 하는지 의문이 들 수도 있다. 기성 무용계의 권위에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편이지만, 무용제나 콩쿠르 등 경연 기회를 자신의 기량을 확인하고 작품을 발표하는 장으로 활용한다. 2000년 제18회 KBS 부산 무용 콩쿠르 대상, 2011년 크리틱스 초이스 평론가가 뽑은 젊은 무용가 선정, 2012년 제21회 부산 무용제에서 <노년의 기록>으로 대상, 전국무용제 은상, 2020년 제16회 부산 국제무용제 AK21 국제 안무가 육성경연에서 <굿모닝 일동씨>로 최우수 작품상을 받은 이력을 보면 기성 무용계에서 평가도 절대 낮지 않다.

 

박재현의 작품을 ‘그로테스크(grotesque)하다’라고 표현한 평론가도 있다. 일부 동의한다. 그로테스크란 원래 로마 시대 벽화에 각종 모티브를 곡선으로 연결해 복잡하게 구성한 장식을 말하는데, 이후 기괴하고 환상적인 표현을 통칭하게 되었다. 박재현의 작품을 ‘그로테스크하다’라고 표현한 것은 앞서 말한 대로 그의 작품에서 공통으로 보이는 ‘어디서도 본 적 없는 낯설고 감각적인 이미지’ 때문일 것이다. 박재현 작품의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는 의도라기보다 꾸미지 않아서 자연스럽게 나온 것이다. 속마음이나 혼자 있을 때 태도나 행동을 정제하지 않고 작품에 드러내는 것을 보는 사람에 따라 ‘그로테스크하다’라고까지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거기에 성기고 거친 무대장치나 소품까지 더하면 느낌이 더 강할 수 있다.

 

그의 안무 노트는 장면과 움직임을 매우 꼼꼼하게 디자인한 그림과 글로 가득하다. 낯설고 성긴 이미지가 세밀한 계획으로 태어난다는 것이 역설적으로 보이지만, 한편으로 작품을 의미나 개념으로 치장하기보다 이미지를 만드는 데 집중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작품 창작을 수행(performance)으로 본다면 박재현은 치밀한 과정을 거쳐 ‘과소 수행’의 이미지를 생성한다. 많은 안무가가 필요 이상의 수행으로 작품을 과도하게 치장하는 것에 비하면, 그의 과소 수행은 오히려 담백하다. 여성 주인공이 작품 내내 무대를 기어 다니는 <편견-인어공주를 위하여>는 고집스럽고 비효율적인 과소 수행의 결과가 만들어 낸 대표적인 환영의 세계이다.

 

 

남보다 다소 늦은 17세에 춤을 시작한 박재현은 2003년 첫 작품 이후 안무가로 활동한다. 그에게 춤을 접한 것이 언제인지 물었다. 돌아온 답은 “세 살”이었다. 어릴 적 대구에서 어머니가 운영하던 무용교습소의 기억이라고 말한다. 그때 어머니께 춤을 배웠는지, 자신이 어떤 춤을 추었는지에 관한 기억이 아니라 당시의 어렴풋한 이미지이다. 박재현식 대화는 줄거리를 순차적으로 이어가기보다 중요한 내용을 이미지화해 작품에서처럼 툭툭 던지는 식이다. 이야기를 그가 단체를 만들어 활동한 시기로 이어갔다. 박재현은 여러 차례 단체를 만들어 함께 춤추기를 시도했다. 한때 부산 남성 무용수들의 힘을 보여주었던 ‘엠노트(M.note)’와 ‘줄라이 댄스 시어터’의 대표를 맡아 부산 현대무용 판을 풍성하게 했다.

 

하지만 단체 활동이 좋기만 한 것은 아니었고, 자신만의 단체를 다시 만들었다. ‘경희 댄스 시어터’가 그 단체다. ‘경희’는 박재현의 어머니 이름이다. 남아있는 춤에 관한 첫 기억이 어머니의 무용교습소였으니 박재현 춤의 처음과 지금이 어머니로 연결된 것 같다. 단체를 이끌면서 박재현은 부산 춤판의 위기를 체감하고 있다. 작품을 하고 싶어도 자신의 구상을 현실화할 무용수 구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안무 의도에 맞는 춤꾼을 구하지 못해 결국 춤꾼에 안무를 맞추어야 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현실이 그렇다고 해서 원인을 찾아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고, 지금 남아있는 춤꾼이라도 어떻게든 안고 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경희 댄스 시어터 춤꾼들과의 관계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긴다. 공연이 없어도 모여서 춤추고, 같이 밥 먹고, 술 마시는 것으로 서로의 존재 가치를 나눈다. 그가 느끼는 위기감을 극복하려는 나름의 방식이다.

 


자유란 자신을 규정하는 시도나 의식에 끌려가거나 주저앉지 않고 끊임없이 부정하고 초월하는 것이다. 무용가가 자유로워지려면 끊임없이 관객에게서 도망가야 한다. 관객이 만족하는 순간 새로움은 사라진다. 관객이 만족하는 지점은 안무가가 탈주를 시작할 지점이다. 박재현은 한 번도 제 자리에 머문 적이 없다. 매번 발표하는 작품은 그 자신 말고 아무도 예상 못한 것이었다. 관객이 만족하기도 전에 그는 저만큼 자신의 길로 탈주하고 있었다. <박재현의 안무노트> 마지막에 연출한, 부산 춤꾼 수십 명이 객석에서 올라와 함께 춤추는 축제 같은 장면은 박재현의 탈주하는 삶이 부산 춤판에 가져다준 눈부신 선물이다. 이처럼 그는 작품의 끝을 늘 감성적으로 열어 둔다. 춤추며 살아가는 삶에서 어쩔 수 없이 ‘고독’을 선택했어도 정주(定住)의 그리움을 부정하지 않고 받아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가 언젠가 머물 곳을 찾게 되겠지만, 영원히 탈주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글_ 이상헌(춤 비평가)

사진제공_ 경희 댄스시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