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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영혼과 도전정신으로 최초를 이루다 - 김성한


 

1968년 대구 출생으로 50대 중반에 접어든 김성한은 최초의 타이틀을 누구보다 많이 가지고 있는 남성 무용가이다. 그만큼 누구에게 구속받지 않고 시도해보는 용기를 가졌다는 의미이다. 독립안무가로서 성공하고 롤모델이 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였기 때문이다. 그는 한국의 현대무용계에 컨템포러리 댄스가 일반화되기 이전에 프랑스에서 유학하며 컨템포러리 댄스의 특징인 매체 활용, 실존적 접근, 시공간적 실험, 전통을 뛰어넘어 새로운 감각의 혁신, 움직임의 해체 등을 자신의 작품에 일찍이 담아왔다. 

 

발레로 시작해 한국무용으로, 현대무용으로 마무리

 

김성한은 고등학교 2학년이라는 늦은 나이에 무용을 시작했다. 발레학원을 하던 사촌누나의 권유로 발레를 시작했지만 현대무용계에서 족적을 남기고 있는 그는 움직임에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었기에 금세 적응했다. 어린 시절부터 운동 잘하고 춤도 잘 췄던 그는 음악도 좋아했다. 구속을 싫어하고 자유로운 것을 추구하는 성격이었기에 무용은 싫증 내지 않고 꾸준히 할 수 있었고 이는 천성에 무용이 맞았음에 틀림없다. 처음 발레로 무용에 입문했으나 입시를 한 달 남기고 한국무용으로 계명대에 입학했다. 입학 후 처음 현대무용을 접했고, 적성에 맞아서 교수님의 허락 없이 대학교 3학년 때 현대무용으로 전공을 바꿨다. 

 

당시 계명대에는 현대무용 임혜자, 한국무용 장유경, 발레 이정일 교수님이 계셨다. 그는 세 장르를 섭렵하고 적극적으로 공연에 참여하며 실력을 쌓아갔다. 현재 계명대 졸업생 중 유명한 남성무용가들로 1회 이화석, 2회 김용철, 3회 최두혁, 4회 김성한을 들 수 있다. 모두 각자의 위치에서 탄탄한 입지를 구축하고 있는 동문들인 것이다. 그가 대학교 4학년 때 동아콩클을 나갔을 당시 故 육완순 선생이 재능을 알아보고 집으로 전화해 당장 서울에 있는 이화여대로 오라고 호출을 받았다. 이후 첫 번째로 박인숙 선생님의 <마리아 컴플렉스>에 출연하면서 졸업 전부터 활동을 시작했다. 졸업 후 본격적으로 서울과 대구를 오가며 컨템포러리 무용단 작품에 최두혁과 김성한이 나눠서 출연하기도 했다. 

 

홀연 프랑스로 떠나다

 

1993년 26살에 캠퍼스 커플이었던 아내 오선명과 결혼해 미국으로 유학을 가려고 했으나 비자가 떨어지는 바람에 전환점이 되었다. 94년 안애순 선생이 바뇰레 콩쿠르에 참여 시 무용수로 출연하면서 처음 유럽을 가게 되었고, 프랑스가 학비도 없고 향후 유럽시대가 열린다는 말에 무작정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다. 프랑스로 유학한 최초의 남성 무용수가 된 것이다. 이후 귀국 시기에 한국에 IMF가 터지면서 프랑스에 오래 머물게 되었고 니스 대학원에 가게 되었다. 동양인으로 유일하게 500:1의 오디션을 보고 뽑혀서 장 프랑소아 뒤루르(Jean-Francois DUROURE) 무용단에 입단했고 이후 니스 아리엘(Ariel) 무용단, 깐느 브루노 쟈뀐(Bruno  Jacquine)무용단에서 단원으로 활동했다. 깐느 무용단에서는 트레이너도 했다. 이때부터 그는 최초의 타이틀을 달기 시작했다. 

 

그는 프랑스에서 활동 시 한국에서 배웠던 방식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음을 깨달았다. 테크닉에 익숙한 한국과 달리 자유로운 움직임을 추구했고 이곳에서 즉흥도 처음 해봤다. 적응도 힘들었고 생존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해야 했다. 안무가가 원하는 것을 하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에 거기에 집중하게 되었고, 이로 인한 스트레스도 심했다. 그에게 있어서 고난의 시기였지만 외국의 체계와 시스템을 접하고 익힐 수 있는 기회였고, 프로에 대한 고민도 깊이 했던 시간이었다. 그래서 현재 무용단 운영과 다양한 일에 접목해서 실행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 것이다.  

 

<슬리핑뷰티>

 

안무가를 꿈꾸며, 세컨드네이처 댄스컴퍼니를 창단

              

안무가를 꿈꾸던 그의 첫 안무작은 <망각의 터널>이다. 2002년 장승헌 선생이 주관한 ‘우리 시대의 무용가’에 김원 선생과 공동 안무로 LG아트센터에서 공연했다. 이후에 작가전과 크리틱스초이스 등에 참여했다. 김성한은 2005년 세컨드네이처 댄스컴퍼니를 창단해 16년 동안 쉼 없이 달려왔다. “세컨드네이처”란 인간이 저마다 가지고 있는 ‘제2의 본성’ 또는 ‘본질’을 의미하며, 한 사람의 인간으로 태어나 무대라는 공간이 주어질 때 표출될 수 있는 예술적 감성의 또 다른 나를 지칭하기도 한다. 또한 무용인으로 살아가는 자기 자신에 대한 끊임없는 외침이기도 하다. 

 

지원금을 못 받고 무용단 운영에 힘들었던 시기를 거쳐 현재까지 세컨드네이처를 이끌어 올 수 있는 힘은 예술가와 교육자의 기로에서 안무자를 원했던 김성한 자신의 의지였다. 독립안무가로서도 성공할 수 있다는 선례를 남기고 싶은 마음이 강했다. 제일 힘들 때부터 함께 한 단원이 지금의 권혜란 선생이다. 세컨드네이처 댄스컴퍼니는 유럽식 무용단 운영시스템을 도입하여 전문스텝의 안정적 확보, 최소한의 상주 단원을 표방하고 있으며 실력과 열정을 겸비한 무용단원들을 통해 전문무용단의 행보를 실현하고 있다

 

다양한 스펙트럼의 작품들

 

<눈먼 자들>

안무에 대한 열정을 불태운 그의 작품 중 <훔치는 타인들>은 스스로에게 가장 애착이 가고 기억에 남는 작품이다. 최초로 1시간의 러닝타임을 갖고 안무한 작품이고, 충무아트홀에서 하는 최초의 무용공연으로서 의미가 깊었다. <훔치는 타인들>은 ‘인간탐구 시리즈’의 첫 번째 이야기로, 그가 인간을 탐구해서 첫 번째로 찾아낸 것이 “육체는 기억저장고”라는 것이었다. 타인은 타인과 서로 만나고, 관계를 맺고, 사랑하지만 이별하면 타인에게 속해 있던 자신을 훔쳐간다. You는 너의 것이지만 ‘나의 You’는 내 것인데 말이다. 그래서 훔치는 타인들이었다. 인간탐구 시리즈는 나란 존재를 탐구하는 것이었다. 이때부터 인간, 관계, 육체에 대한 그의 관심이 작품에 반영되기 시작한다. 

 

그는 가장 효자 작품으로 <눈먼 자들>을 들었다. <눈먼 자들>은 레퍼토리화된 작품으로 수정을 반복해 예술성을 더하고 있고 지방에서도 인기가 좋은 작품이다.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이기심에 눈이 멀어 인간성을 상실한 현대인의 모습을 재조명하는 작품으로, 인간의 잃어버린 감성에 대한 회복 가능성을 탐구하고 ‘우리는 누구인가’, ‘어디로 가야하는가’ 등의 질문을 던진다.

 

김성한은 2011년부터 문학적인 것에 기반을 둔 작품을 시리즈로 이어오고 있는데 <구토>, <보이체크>, <이방인>, <인간단테, 구원의 기획자>등이다. 이들은 현대무용과 실존주의에 대한 그의 시각을 반영한 것이다. 그가 문학적 기반을 둔 것은 문학이라는 것이 일단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시대를 반영하고 대중적으로 널리 알릴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밖에도 사회 속의 나 시리즈로 가 있다. 이후 실험작으로 <비트 사피엔스>, <슬리핑 뷰티>, <인형의 집> 등이 있다. 특히 <비트 사피엔스>는 강동아트센터 상주단체 마지막 작품이었고, <슬리핑 뷰티>는 양천문화회관 상주단체가 된 이후 첫 작품이다. 

 

<슬리핑 뷰티>는 첫 번째 디바이징 작업을 시도했고, 장소특정형으로서의 가능성을 염두하고 했던 작품이다. 또한 인도 페스티벌에 영상으로 개막 오프닝을 예정하고 있다. 디바이징 작업이란 무용수와 스태프를 포함해 특정 텍스트 없이 공동작업을 하는 것으로 신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인형의 집>은 디바이징 2번째 작업이다. 그의 작품성향과 주제는 변화를 시도하며 인간탐구 시리즈- 사회 속의 나- 문학작품- 실험적인 것의 순으로 작업의 방향을 전환했다. 열정과 도전을 무서워하지 않는 그의 성격이 이처럼 다양한 색깔의 작품을 완성한 것이다. 

 

그의 작품에 대한 평단의 시선은 다음과 같다.

 

세련된 초현대의 감각, 댄디즘의 잘 정리된 감각, 절제된 이미지와 정확한 타이밍, 무용수의 움직임 라인, 각진 입체감으로 관객에게 볼거리를 선사한다. -무용평론가 김경애

 

남자 무용수는 계속 늘어나도 남성성은 여전히 미흡하기만 한 우리 사회에서 그가 일정한 역할을 할 수 있길 기대한다. -SIDance 예술감독 이종호

 

15년 이상 큰 기복 없이 예술활동을 지속하면서 차근차근 성장을 거듭해온 무용가, 작폼을 통해 자신의 저력을 확인시키는 안무가 김성한. 2021년 <눈먼자들>은 시기적절한 주제 의식, 신구 무용수들의 조화, 교과서처럼 활용된 조명, 예술성과 대중성의 균형잡기 등과 같은 특질에서 긍정적인 면모를 내비쳤다. -무용평론가 심정민

 

‘잠자는 숲속의 미녀’의 스토리와 현대무용의 만남, 무대공간을 분할하는 디바이징 작업을 통해 공간의 다양한 활용과 무대개념 확장, 무용수들의 드라마틱한 연기와 협업, 관객의 체험으로 동시대성을 어우르는 춤의 새로운 장르를 시도한다는 기획은 충분이 공감이 갔다. -무용평론가 장지원

 

움직임과 공간의 구도와 구성, 공간적 짜임새가 주는 상황전개, 계산된 속도가 주는 긴장감이 얽힌 강한 흡입력, 인간- 끝없이 자신과 대화하는 김성한은 철학자이다. -무용평론가 이지현

 

‘보이체크’의 재해석에 도전한 김성한은 작가성과 대중성 사이에서 고민할 필요가 없다. 수준 높은 작가성은 결국 대중에게 쉽게 다가서기 때문이다. -무용평론가 김예림

 

춤의 역동성, 활력이 객석 저 너머 끝에까지 전달되어 우리를 춤추게 한다. 춤이 말을 하는 것 같고 어떤 장면에서는 그림처럼 즉, 시각적 배경으로 움직이며 어떤 춤은 심리적 감정에 집중하는 것 같이 다양하게 연출했다.

 -무용평론가 박민경

 

단테의 코메디아를 비극화시킴으로써 단테의 철학을 비판적으로 조명하고, 이를 통해 현대인의 냉혹함과 섬뜩함을 고발, 예술가의 인문학적 깊이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무용평론가 윤대성

그는 수상경력도 화려하다. 2008년 한국현대무용진흥회에서 <훔치는 타인들>로 댄스비전 ‘최우수작품상’ 수상, 2011년 <구토>로 댄스비전 ‘최고 안무가상’을 수상하면서 작품성과 안무력을 인정받았다. 2011년에는 세계국립극장페스티벌에서 국내 무용단으로는 유일하게 ‘국내우수작’으로 <구토>가 선정되기도 했다. 이를 통해 세계의 여러 단체들과 동등하게 인정받고 세컨드네이처 댄스컴퍼니만의 색깔을 보여주며 국외 활동도 활발히 하고 있다. 

 

이후 <인간 단테, 구원의 기획자>로 한국춤평론가회에서 ‘춤평론가상’을, 일반대중을 위해 제작된 가 댄스비전 ‘최우수작품상’을, 제9회 제주 해비치 아트페스티벌 문화예술 시상식에서 ‘제주특별자치도지사’ 표창을 수상하기도 했다. 특히 2017년 문화예술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문화체육관광부장관 표창을 받으며 그 성과를 보여주었다. 또한 <비트사피엔스>로 ‘2017 댄스비전 Frontier Spirit Award’ 수상, 2019년 <기억의 지속>으로 ‘올해의 작품상’ 국회문화체육관광위원회위원장 표창, 2020년 SCF Golden Award 수상, 올해 제14회 제주해비치아트페스티벌 ‘문화예술단체상’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방인>

 

김성한의 춤과 안무 스타일

 

김성한의 춤스타일은 유럽에 가서 처음 접한 탄츠씨어터이다. 그는 국내에서 최초로 탄츠씨어터를 보급했다고 자부하고 있으며 주제에 있어서는 인간, 사회의 관계, 실존적 문제에 대해 집중한다. 또한 규칙이 지켜지는 불규칙을 선호하며 즉흥을 중요시한다. 무용과 연극의 결합인 탄츠씨어터를 통해 대중에게도 가까이 가는 노력을 보인다. 그는 해체된 움직임을 사용하는 것 외에도 안무가로서 무용 시야를 중시하고 넓히는 안무가, 춤을 추는 방법을 알려주는 안무가로 남고 싶어 했다. 누구나 본인의 스타일이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이를 고수했다. 자신의 신념을 반영해 세컨드네이처 무용단에서도 안무 시 무용수들에게 질문을 던져 고민하게 하고 서로 간의 에너지의 결합을 중요시하며 자유로움을 추구했다. 이것들을 정리화시키는 작업이 안무이며 작가정신이 무엇보다 첫째라 여긴다. 작가정신보다 지원금 받기에 급급한 안무가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부분이 아닐까 싶다. 

그는 무용수가 망가지는 것을 즐긴다. 무용수들 스스로는 인식하지 못하지만 무용수는 망가져도 아름답다는 믿음이 있다. 이것은 다른 방법론을 찾는 것이며 무용수가 뭘 해도 아름답다라는 자신감을 알려주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그리고 작품 안무시 밸런스를 맞추는 것을 중요시하므로 준비과정도 오래 걸린다. 이렇듯 정교하면서도 오픈마인드 된 시각을 지닌 그였기에 불규칙 속의 규칙을 통해 정형화되지 않은 움직임 어휘를 만들어낸 것이다. 또한 영상을 통해 시공을 초월한 공간을 구현하는 것도 그의 장기이다. 현재는 장르를 초월해 영상사용이 빈번하지만 그가 초창기 다양한 영상을 실험하던 시기만 해도 선도자였고, 융복합의 디바이징 작업 역시 그러하다. 자유로운 성격에 투철한 실험정신, 철학적 사유를 갖춘 김성한 스타일은 누구나가 그만의 스타일로 인정한다. 

 

<비트사피엔스>

 

경영의 실력을 펼치며 리더로 도약

 

김성한도 한계가 온 시기가 있었다. 지쳐서 그만두고 싶을 때 세계테마기행을 보고 아프리카로 가서 힘을 받아 오기도 하고, 진정 무용을 관두려 했으나 시기적절하게 2014년 강동아트센터 상주단체가 되었다. 아마도 이 기회가 오지 않았다면 지금의 그는 없을 것이다. 이미 그는 세컨드네이처 댄스컴퍼니를 통해 예술경연지원센터에서 ‘우수전문예술법인단체’로 선정되었고, 예술경영컨퍼런스에서 무용계 최초로 수림문화재단이사장 표창을 받는 등 차별화된 단체 운영능력도 높게 평가받았다. 그럼에도 상주단체로 있으면서 경영에 대해 더 많은 부분을 배우는 계기가 되었다. 

 

경영 실력과 리더십은 김성한에게 안무가 외에 또 다른 지위를 부여했다. 그는 2017년 현대무용협동조합(COOP_CQDA)을 결성해 초대 이사장을 지냈고, 올해 민간무용단체인 4개 무용협동조합이 의기투합해 무용협동조합연합회(Cooperative Association of Dance, CAD)를 발족해 상임부회장을 맡았다. 현대무용협동조합은 예술의 대중화를 꿈꿨고, 3년이 지난후 양천에서 커뮤니티댄스페스티벌이라는 축제를 열어 성공을 이뤘다. 무용협동조합연합회도 올해 첫 공연을 가졌고, 교육사업에도 진출해 일반인들의 엘리트 교육에 힘쓰고 있다. 

 

 

<인간단테, 구원의 기획자> 

 

안무가에서 존경받는 선배로, 현장의 대변자를 꿈꾸다

 

앞으로 그의 바람은 양천문화회관 상주단체로서 잘 마무리해 좋은 사례를 남기는 일이다. 또한 협동조합과 연합회를 활성화하고 이들의 축제가 굳건히 자리매김하는데 기여하며 현장을 대변하는 정책, 안정화를 돕는 작업을 하고 싶어 했다. 김성한은 마지막으로 안무가로서 시야를 넓혀 현장 리더로서, 대변자로서 가이드 역할을 하며 특히 존경받는 선배가 되길 바란다. 그는 관심 자체가 작품에서 작가로서의 충전시간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더욱 깊어졌다. 

 

김성한은 자유롭고 창의적인 시도를 통하여 예술성과 대중성의 공존을 위해 노력해왔다. 앞서 언급했듯이 그는 남을 따라하는 것을 싫어해 최초라는 단어가 꼬리표처럼 따라다닌다. 최초로 프랑스로 유학을 가서 유럽에서 활동한 남성 무용가, DSL 영상을 최초로 도입해 상상을 실현시키려 노력한 안무가, 탄츠씨어터와 선진 유럽의 무용단 시스템을 최초로 도입한 무용가 등등이다. 그와 같은 앞선 발자취를 뒤로 하고라도 김성한은 현재 독립안무가가 많이 사라진 현대무용계에서 무용현장화에 앞장서고 있는 인물이다. 춤과 안무에 대한 집념은 끈기 없던 그가 현재까지 무용을 지속할 수 있는 원천이며 흔들림 없이 저력을 과시하는 김성한은 무용계에서 하나의 주축이 되었다. 앞으로도 깊은 사유를 바탕으로 현장의 대변자로 활약할 김성한은 실천가이자 몽상가이다. 헛된 몽상이 아니라 진실된 아름다움과 따듯한 시선을 꿈꾸며 인간과 사회를 바라보는...

 

글_ 장지원(무용평론가)

사진제공_ 세컨드네이처 댄스컴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