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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고백의 지독한 몸짓으로 공동체를 위한 춤을 추구하는 현대무용가 김평수

 


지난 3월 25일 우리나라 양대 예술단체 중 하나인 한국 민예총 신임 이사장에 부산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현대 무용가 김평수가 취임했다. 그는 ‘예술 행동’을 지속하면서 춤의 사회적 역할을 다하는데 누구보다 열정적인 무용가이다. ‘예술 행동’은 사회 문제 참여를 위해 벌이는 예술가의 예술 행위를 말한다. 부산 예술인들은 2021년 그를 역대 최연소 부산 민예총 이사장으로 선출했고, 올해 한국 민예총 이사장까지 맡게 되었다. 무용가 김평수를 지켜본 입장에서 두 단체의 단체장을 맡는 것 때문에 창작과 멀어지지 않을까 걱정이 들기는 하지만, 부산 민예총 이사장직을 수행하면서 창작 춤 <소나기>를 안무하고 출연까지 한 것을 보면, 예술가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 것 같다. 

 

2020 <소나기 - 잠깐 내린 비>  

 

김평수의 춤을 아우르는 열쇠 말은 ‘저항’이다. 춤은 일차적으로 중력에 ‘저항’하는 행위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중력의 악령을 떨쳐내고 날기 위해서 춤추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했다. 여기서 중력의 악령이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법 배우기를 방해하는 기만과 위선이다. 즉, 인간 존재의 자유를 부정하고 방해하는 모든 장치를 의미한다. 그러니 춤의 저항은 물리적인 면과 사회적, 철학적인 면을 포함한다.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가 아닌지 의심받을 정도로 활발했던 어린 김평수의 주체할 수 없었던 감정과 에너지는 춤을 추면서 고스란히 예술적 자산이 됐다. 울산예고에 진학한 그는 수업 과정을 잘 따르지 않던 반항적 학생이었지만, 나가는 콩쿠르마다 대상을 휩쓸었다. 거의 모든 규율과 질서를 온몸으로 거부하면서도 좋아하는 춤만은 남에게 뒤지기 싫었다. 그의 첫 번째 ‘저항’은 이처럼 다소 미숙하지만, 열정적이었다. 

 

5.18 40주년 공연 <필 때 까지>

두 번째 ‘저항’은 절망적인 불운에 굴하지 않는 것이었다. 군 제대 6개월 전 낙하 훈련에서 착지하다가 심한 척추 손상을 입었고, 잘하면 겨우 걸을 수는 있겠다는 진단을 받는다. 춤을 추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 견딜 수가 없었고, 포기하지 않았다. 이를 악물고 재활을 한 결과 어느 정도 점프가 가능할 정도까지 회복했고, 복학해 춤을 추었다. 지금도 그의 척추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손상된 상태지만, 춤 때문에 이만큼 버티고 있다. 신라대학교 02학번이었던 그는 과 1등에게만 주어지는 교사자격증을 받기 위해 자퇴하고, 09학번으로 다시 입학한다. 기어이 교사 자격증을 받았고, 장애인과 노인을 가르칠 수 있는 사회예술 강사 자격까지 취득해 무용 특수교육 분야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현재 부산의 장애인, 아동 무용 교육에서 그의 위치는 확고하다. 그의 두 번째 ‘저항’이 예술 교육으로 타인에게 전이되는 이타적 확산을 한 셈이다.  

 

 

2017년 신인 춤 제전에서 초연한 창작 춤 <반성문>은 김평수 춤의 중심이 된 작품이다. ‘지독한 자기 고백의 몸짓’(필자의 리뷰에서 인용)으로 가득한 이 작품은 삶의 슬픔과 아쉬움을 지독할 정도로 내면화한 움직임으로 자신을 극한으로 몰아붙인다. <반성문>에서 자기 고백은 너무나 지독해서 타인의 위로가 끼어들 여지조차 남기지 않는다. 반복하는 우리의 반성처럼 <반성문>은 여러 차례 개작을 거쳐 최근까지 공연했다. 설명적 구성과 격렬한 움직임에 부드럽고 정적인 몸짓을 더했으며, 반성의 대상을 자신으로 한정하지 않고, 성찰과 구도의 경지로 끌어 올렸다. 작품 제목대로 반성을 통한 삶의 변화를 끌어낸 수행적 작품이다. 

 

2018 김평수 개인 공연〈Fifty miuntes〉

 

세 번째는 기성 춤 계의 자기도취적이고 권위적인 태도에 대한 ‘저항’이다. 위계를 이용해 후배, 제자를 대가 없이 이용하는 풍토를 특히 경멸하는데, 자신도 피해자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사회문제에 등을 돌리고 이른바 순수만을 지향한 기성 춤 계의 무기력한 태도에 깊은 회의를 느꼈다. 부산 일본영사관 앞 소녀상에서 정기적으로 벌인 예술 행동과 세월호 희생자를 기리는 춤, 노동자의 억울한 죽음을 위무하는 춤, 지리산에서 희생된 빨치산을 기리는 춤 그리고 부마 민주항쟁을 모티브로 안무한 <필 때까지> 같은 짙은 저항성을 별다른 극적 장치에 의존하지 않고 춤만으로 표현해 내었다. 모두 최근 5, 6년 안에 이루어졌는데, 이 시기에 부산 춤판은 그를 포함한 30대, 40대가 창작의 중심으로 급격히 부상한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부산 춤판 세대교체의 중심에 서 있게 된 셈이다. 

 

 

2019 소녀상 예술행동 중 반성문 

 

미술 평론가이자 큐레이터 니콜라 부리오(Nicolas Bourriaud)는 저서 『엑스폼』에서 ‘리얼리즘 작품은 권력 장치가 배제의 체계와 그 폐기물(물질적이든 비물질적이든)에 씌워놓은 이데올로기의 베일을 걷어 올리는 작품이다.’라고 했다. 리얼리즘이 형식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한 것이다. 이것을 동시대 부산 무용에 적용해 보면 리얼리즘의 일면을 김평수의 작품에서 찾을 수 있다. 그렇다고 그의 춤 전반을 리얼리즘으로 설명 가능한 것은 아니다. <반성문>을 기준으로 <7전 8기>, <씨앗에서 새싹까지>, <가득 찬 시간>에 이르는 자신에 몰두하는 작품과 <필 때까지>, 처럼 사회를 응시하는 작품, <소나기>에서 보여 준  소설을 해체적으로 텍스트화한 시도는 존재가 자신이 처한 장소와 역사적 위치에 따라 세계의 다양한 의미와 진리를 구성한다고 보는 ‘약한 사고’ 혹은 ‘약한 존재론(weak ontology)’을 증명하는 듯하다. 격렬하고 강한 춤으로 말이다.

 

 

                                                            글_ 이상헌(춤 비평가)

                                                                사진제공_ 김평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