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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애와 구조적 춤이 조화를 이루는 컨템포러리 발레의 선두주자 홍성욱

 


 

근면과 성실, 겸양을 갖춘 예술가는 흔치 않다. 예술가들은 자신의 재능에 대한 자부심으로 꾸준함과 겸손함에 대한 미덕을 잃기 쉽다. 그런데 늘 겸손하게 끊임없는 노력과 성실성을 겸비한 안무가가 있다. 그가 바로 홍성욱이다. 자신의 무용수들에 대한 깊은 애정과 안무에 대한 열정 외에도 홍성욱은 대중들과의 교감과 경영능력을 발휘한 결과 성인발레를 보급하는 데에도 주력하고 있다. 김길용과 함께 한 와이즈발레단을 통해 대중성과 예술성을 동시에 도모하는 과정에서 그의 성실성과 안무력이 빛을 더했다. 서사보다는 체계적 구조미가 돋보이는 홍성욱의 안무미학은 초창기부터 한국 컨템포러리 발레가 형성되는데 그 기여도가 크다. 다작(多作)보다는 완성도에 주력하기에 경력에 비해 많은 작품을 남기지는 못했지만 한국 발레계에서 독립안무가, 중견 안무가로서 그의 위치는 굳건하다. 

 

 

연모의 감정으로 시작한 무용과 스승들

 

부산에서 태어났지만 쭉 서울에서 자란 1970년생 홍성욱은 어려서부터 춤을 시작하진 않았으나 브레이크 댄스나 그 밖의 춤에 관심이 컸다. 성악가가 희망이셨던 어머니는 3남매 중 누구든 예능을 시키고 싶어 하셨다. 그러던 중 홍성욱은 좋아하는 여자가 무용을 했기에 그녀를 보기 위해 고3때 무용을 시작했다. 우연히 어머님의 지인에게서 발레 김명회 선생을 소개받았다. 원래는 현대무용을 원했으나 첫 시작이 발레였고 그 인연은 계속되었다. 이후 민병수 선생, 진수인 선생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진수인 선생은 실제 자신의 발레인생을 이끌어 준 인물로 발레에 대해 인식하고 미국 유학을 실질적으로 권유해 준 스승이기도 하다. 

 

현대무용과 한국무용도 배웠는데, 한국무용은 이애현 선생과 임관규 선생에게 배웠다. 특히 임관규 선생은 한국무용을 적극적으로 권유하기도 했다. 한양대학교 안산캠퍼스에 입학해서는 김민희 선생이 스승이었다. 대학 재학 시 늦게 무용을 시작한 핸디캡을 극복하고, 잘하는 친구나 후배에게 자극을 받아 깁스한 시기를 빼고는 단 한 번의 결석 없이 무용에 전념했다. 그 결과 발레협회 콩쿠르에서 은상, 후쿠오카 콩쿠르에서 입상하기도 했다. 

 

 

 

 

새로운 세계로 떠난 유학시절의 경험들

 

대학교 3학년 때 방위로 해군본부에 갔고, 그곳에서 공연활동도 했다. 이후 국립발레단 연수단원으로 들어갔으나 행복감을 느끼지 못해 1년 후 바로 미국으로 출국했다. 그가 갔던 뉴욕 콘서바토리 오브 댄스는 가장 유명한 아카데미로, 그곳에서 발레 뤼스의 마지막 무용수였던 블라디미르 도크도브스키를 사사했다. 임혜경, 이원국, 신무섭, 이민정 등이 이곳에서 수학했다. 나중에는 상위 기관인 뉴욕 시어터 발레단에서 프리랜서 발레리노로 활동하기도 했다. 2000년에는 생활을 위해 무용을 그만두고 식당 매니저 일을 하면서 다른 일을 찾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배움은 그렇게 끝나지 않았다. 뉴욕에서 우연히 알게 된 NYU 무용과 교수의 장학금 제안에 다시금 무용을 하게 됐고, 수니 퍼체스에 들어가게 되었다. 

 

수니 퍼체스는 미국의 유명한 대학으로 현대무용가 더그 바론을 배출한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장학금도 받고 교양과목을 가르치기도 하면서 학업을 이어갔다. 이 당시에 니콜 폴테. 숀 웨이. 스탠톤 웰츠 등 유명 안무가들을 만나게 되었고, 이곳의 좋은 안무시스템을 보면서 안무에 대한 생각에 깊이를 더했다. 또한 조명에 관해 배우는 과정에서 조명을 전공할까도 생각해봤다. 1997-2002년, 6년여 간의 미국생활에서 그곳에 정착도 고려했으나 한국에 다시 들어오게 되었다. 나중에 미국에서 대학원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예전 민병수 선생에게서 함께 수학했던 지금의 김길용 선생을 만나 그가 수업도 나눠줘 자리를 잡고 지도위원도 맡게 되었다.  

 

 

 

단체활동을 통해 안무의 기반을 닦다

 

2003년 뜻을 같이하던 김길용, 홍성욱, 이인기, 김형민은 프로젝트 그룹 ‘즐거운 녀석들’을 만들었고, 2~3년간 몇 개의 작품을 안무하기도 했다. 그 사이에 김민희 선생의 글로벌컨템포러리 발레단(김민희 한양발레 아카데미)를 위한 안무로 역량을 키웠다. 드디어 2005년에는 김길용 선생과 지금의 ‘와이즈발레단’을 창단했다. 그 시작은 발레의 틈새시장을 노리며 오케스트라 단장이 권유해서 만들었지만 결국 김길용과 홍성욱이 운영하며 이끌어가고 있다. 이들은 기획자를 양성하자는 생각을 갖고 제자들을 키워서 처음 시작했다. 운영을 위해 포트폴리오를 제작했고, 남해 땅끝마을까지 직접 관계자들을 찾아다니며 공연을 위한 노력을 펼쳤다. 좋은 작품도 중요하지만 무용전공자들이 졸업 후 춤출 수 있는 직업군의 마련과 경제적 혜택이 가능한 단체를 만들고 싶은 소망도 있었다. 현재 와이즈발레단은 무용수들을 선별해서 뽑을 수 있을 만큼의 큰 단체로 성장했다. 

 

 

주제에 따른 안무의 다변화

 

실제 안무자로서의 데뷔는 2003년 김민희 한양발레아카데미 정기공연 <신각설이>(2003) 부터이다. 돈만을 쫒아 가는 21세기의 각설이의 동냥을 통해 현재 인간의 모습을 비판하고자 했다. 2004년 한국발레협회 신인안무가전 <그녀의 바다>에서는 안무가가 겪은 인생을 바탕으로 바다에 뿌려진 재를 생각하며 그녀를 다시 느끼고자한 작품이다. 댄스프로젝트 즐거운 녀석들에서는 <돈 Touch>(2004년)를 안무했고 출연도 겸했는데, 건드리지 말아야할 유혹을 건드림으로써 노력 없이 횡재한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현재 시대상을 반영했다. 

 

와이즈발레단에서 안무한 <비틀즈 슈트>(2005)라는 작품에서는 스토리텔링 없이 비틀즈 음악을 바로크 음악으로 편곡하여 세미클레식의 움직임으로 만들었다. 이 작품으로 미국 ABT와 합동공연을 하기도 했다. 다음 해인 2006년 CID댄스 세계음악과의 만남 <벽>에 안무 및 출연했다. 멕시코 국기의 3색, 초록의 의미는 독립과 희망을 하얀색은 종교의 순수성과 통일, 빨강은 통합과 국가독립을 바친 희생으로 표현된다. 3가지 상징적 의미를 벽을 통해 인간의 삶과 결부시켜 나타내고자 했다. 

 

동문단체인 글로벌컨템포러리 발레단를 위해 안무한 작품도 여럿이다. 2006년에는 정기공연 <게임의 법칙>에 안무 및 출연했다. 치열한 경쟁사회 속에서 가늘지만 길게 가고 싶다는 현대인들의 사회생활을 그렸다. 젊은 날의 패기와 욕망 그리고 야심은 어느덧 포기하고 가족을 위해 마지막으로 택한 행복이라는 울타리를 위해 현실과 타협하는 게임의 법칙 속 우리를 담아냈다. 2007년 경기문화재단 무대제작 지원사업 글로벌컨템포러리 발레단 정기공연 <마술피리>의 안무를 맡아 출연도 했다. 이 작품은 동화발레 모차르트 마술피리를 발레 전막으로 만든 작품이었다. 글로벌컨템포러리 발레단의 2011년 안산문화예술의전당 기획공연에서는 을 안무했다. 전쟁과 환경파괴에 의한 기후변화를 통해 고통 받고 죽어가는 사람들을 다뤘다. 이들이 죽기 전에 목 놓아 외쳐보는 외침으로 고통 받은 이들의 마음을 그려내기도 했다.

 

 


 

 

현시대를 사는 현대인들의 자화상, 대표작들 

 

이밖에도 2011년에 와이즈발레단이 초연했고 이듬해 대한민국발레축제에서 다시 선보인 가 있다.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인 에서 홍성욱은 눈 뜨고 아름다운 세상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을 ‘마음의 장님’이라 정의했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포르투갈 작가 주제 사라마구의 작품과 영화로 나온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 모티브를 얻어 현대인들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들을 보지 못하는가, 마음으로 세상을 보는 포용과 믿음이 현대인들의 내면을 자리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안무했다. 2013년에는 인간의 작은 잘못이 얼마나 큰 재앙을 불러올 것인지에 대한 작품M극장 기획공연 <나비효과>를 안무했다. 여러 작품들을 안무하다보니 기계적으로 하게 돼서 약간의 시간을 두었고 매년 해외로 나가 해외의 경향을 보기도 했다. 

 

창단 10주년에는 를 제작했다. 2015년 초연한 는 일본에서 6박 7일을 있는 동안 <미생>을 보면서 작품으로 제작하면 좋겠다는 영감을 받았고, 그 결과 완성되었다. 이 작품으로 2017년 대한민국 발레축제 초청, 2021년 창작산실 우수레퍼토리로 선정되기도 했다. 작품의 내용은 비정규직 여성근로자를 사회적 약자의 통칭이자 상징으로 세워놓고 이 시대의 자화상과 현주소를 발레로 풀어냈다. 고전발레 백조의 호수를 재탄생시켜 작품 속 신화를 현실로 끌어당겨 시대의 자화상을 그려낸 작품이다. 홍성욱이 대표작으로 뽑는 작품이다.

 

는 2017년 창작산실 올해의 신작으로 선정되어, 2018년 창작산실 올해의 레퍼토리로 선정된 작품이다. 창작자가 겪고 있는 예술적 고충을 표현하고자 바로크 시대의 위대한 음악들의 영감이 안무가의 상상력으로 재창조 되는 과정을 보여주고자 했다. 바로크 시대로 시간여행을 떠나게 된 현대의 작곡가가 그 시대 음악가들로부터 영감을 얻어 현대로 되돌아오는 과정을 그려내고, 이를 관객들에게 시각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무용수들은 발레의 정석적인 클래식한 움직임과 컨템포러리한 움직임을 대조적으로 보여주었다.

 

 

 

무용수들 대다수가 젊은 여성들로 구성된 장르적 배경과 그들 대다수가 비정규직 노동자인 사회·경제적 환경, 여기에 현장성을 침탈한 코로나 피해까지 의 무대는 창작자가 제어할 수 있는 범위를 뛰어넘어 시대와 공명하며 연극이 시대를 비추듯이, 무용도 그럴 수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주었다.

- <댄스포스트코리아> 윤단우 무용칼럼니스트

 

에서 홍성욱 안무가는 청각으로 느껴지는 바로크 음악의 특징을 움직임을 통한 시각화로 보여주며 특히 16명의 여자무용수가 정렬해 정확한 박자에 통일감 있는 움직임을 보여주는 부분은 미니멀한 무대와 조명, 의상과 어우러지며 놓치면 안 되는 장면으로 만들어낸다.

- <서울문화투데이> 임동현 기자

 

 

조직적 움직임과 음악의 시각화를 추구하다

 

홍성욱은 주제 선택에 있어서 주로 언론매체를 통해 사회적 이슈나 부조리 등을 비판하고자 스토리를 만들어 나가는 특성을 보였다. 너무 추상적이고 철학적인 내용보다는 공감대를 얻을 수 있는 주제를 표현하고자 노력한다. 이러한 경향은 사회에 대한 관심, 인간에 대한 애정에 근간한다. 또한 안무과정에 있어서는 선정된 음악의 분석을 통해 음악에서 느껴지는 철학을 본인만의 느낌으로 대입하며 테마를 잡고 베리에이션을 펼쳐나가는 안무가이다. 각 역할에 주어진 무용수들이 갖고 있는 재능을 즉흥을 통해 발견하고, 다시 동작을 입히고 만들어나가면서 반복된 동작들을 최소화하면서 작품을 구조화했다. 그는 동작과 동작 사이의 연결부분에 대한 고민을 깊게 하며 군무에서 느껴지는 조화 그리고 강렬함을 선호한다. 따라서 군무를 중요시하며 구성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기에 밀도감 있게 무대에서의 구조화가 가능한 것이다 

 

무용은 음악과 함께 하는 예술이다. 미국에서 공부한 영향으로 음악의 철저한 분석과 음악을 듣는 음악에서 보는 음악으로 만들려는 ‘보이는 음악’에 중점을 둔다. 그는 음악이 앞서거나 너무 장대하면 무용에 부담을 주기에 음악이란 춤을 추는데 들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홍성욱에게 작품 전달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연출이다. 여러 가지 무대 기술(세트, 조명 등)을 이용해 관객들에게 동작으로 표현되지 못하는 것들을 연출로 채우려고 고심하는 부분이다. 또한 발레뿐만이 아닌 연극적 요소도 가미하여 작품을 풀어가기도 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신각설이>, <돈터치> 였고, 탭댄서와 함께 탭의 소리에 맞춰 작품구성을 하기도 했다. 이것이 그의 안무경향이다. 

 

 

 

 

와이즈발레단과 성인발레로 발레의 대중화

 

그는 2015년부터는 일반 성인들에게 발레를 가르치는 성인발레 수업을 시작했고 이후 성인발레단인 ‘스완스발레단’을 만들기도 했다. 성인발레 수업을 시작한 이유는 이들의 시장이 무시할 수 없게 크다는 측면과 발레의 대중화에 기여하기 때문이다. 이는 와이즈발레단이 대중들을 놓치지 않고 가치실현에 중점을 두고 목표와도 부합한다.  

 

홍성욱은 성실하고 겸손하며 인간애를 가진 안무가이다. 자신이 안무에 대한 재능을 타고나지는 않았다고 스스로 자평할 만큼 겸양의 미덕을 보였지만 그는 꾸준한 자기관리와 노력을 통해 우수한 작품들을 안무해왔다. 사회의 어둡고 험난한 현실을 주의 깊게 관찰해 작품에 반영했고, 주역들의 연습장면을 보고 그냥 앉아있을 무용수들에게 한번이라도 더 출연의 기회를 주고 싶어 군무를 선호한다. 그러한 인간적인 면이 작품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나기에 관객들에게 공감대를 얻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음악을 분석하는 능력을 바탕으로 조직적이고 구조적인 안무를 하는 과정에서 반복을 선호하지 않고 체계적인 모습을 보이기에 기존의 한국발레의 외양과는 다른 그만의 개성 있는 작품이 완성되며 한국 컨템포러리 발레의 선두주자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교육자, 안무가, 와이즈발레단 예술감독, 한국발레협회 부회장으로 바쁘게 달려가고 있는 그의 작은 소망은 1시간 이상의 대작을 2편 이상 제작하는 것이다. 홍성욱의 안무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하는 부분이다. 컨템포러리 발레의 시작과 함께 한 그의 여정이 더욱 탄탄하고 환하게 빛나길 바란다.

 

 

                                                                글_ 장지원(무용평론가)

                                                                     사진제공_ 홍성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