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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자로서의 집중력과 자존감이 확고한 현대무용가 - 안영준


 

안영준은 상당히 늦은 나이에 춤에 입문한 케이스지만 빠른 성장을 거듭하여 현대무용 안무가들이 선호하는 무용수의 반열에 올랐다. 그러고는 여러 경험을 바탕으로 자기만의 창작적 방향성을 묵직하게 다져갔으며 2010년대 들어서서는 허리세대 창작자들 중에서도 상당히 높은 인지도와 지명도를 갖게 되었다. 현재 안영준은 예술적 집중력과 자존감이 높은 창작자로서 인정받고 있다.  

 

 

태권도, 미술, 그리고 무용

안영준은 1975년 부산의 한 가정에서 외동아들로 태어났다. 평범한 어린 시절을 보내다가 중학교 3학년 때 그림 그리는 데 소질이 있으니 미술을 배워보라는 한 선생님의 말씀에 급하게 예고 준비를 하게 되었다. 시간이 촉박하다 보니 미흡한 상황에서 시험을 치렀다가 시원하게 낙방을 하였다. 이후 일반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도 계속 미술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인테리어를 배울 수 있는 디자인 아카데미를 다녔다. 미술에 대한 관심은 훗날 그의 창작에서 시각적인 구조가 강조되는 특질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당시 외사촌 형이 무용을 하고 있었는데 고등학교 2학년 말쯤 안영준을 아래위로 예리하게 관찰하더니 무용을 배워보라고 권했다. 어렸을 적에 오랫동안 태권도를 배워서 유연한데다가 180센티에 육박한 키에 균형 잡힌 체격이 무용을 하기에 적합하다는 이유였다. 잘 사는 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머뭇거리는 그에게 외사촌 형은 경성대학교 무용과를 다니는 선배를 소개시켜줬다. 입시학원에 비해서는 상당히 저렴한 레슨비로 무용을 배울 수 있었고 결국 1994년 경성대학교 무용과로 진학하였다.

 


 

 

파리 국제무용콩쿠르 1등상으로 인정된 춤 기량

대학 재학 당시부터 남자무용수라는 희소성으로 인해 당양한 무대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김남진과 김형희가 창단한 트러스트 무용단에서도 공연을 많이 했던 기억이 있다. 그 또래 남자무용수들이 그러하듯 콩쿠르에도 다수 참가하였는데 이를 통해 점차 주목을 받게 되었다. 

 

2000년에는 아예 서울로 올라와서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전문사로 진학하였다. 그해 말에 파리 국제무용콩쿠르에 참가하여 남자 솔로 1등상과 그에 따른 파리 시장상까지 받는 사고(?)를 쳤다. 당시만 하더라도 현대무용계에서 세계적인 무용콩쿠르에서 1등상을 받는 경우가 거의 없었기에 대대적인 주목을 받았고 2001년 문화부장관 표창상까지 받았다. 

 

하지만 국위선양에 가까운 성과에도 불구하고 제도적인 문제로 병역혜택을 받지는 못했다. 이후 전국무용제에서 남자연기상을 받아 병역혜택을 받을 뻔했지만 이 역시 서울 거주라는 점 때문에 취소되었다. 서른 살에 병역혜택에 대한 기대를 훌훌 털어버리고 입대하였다. 군대에서 자신을 되돌아보는 성찰과 춤적 정체성을 찾는 고찰을 할 정도로 고집스러우면서도 낙천적인 성격은 그의 앞날을 비춰준 것 같다.  

 


 

 

창작자로서 가파른 성장

안영준은 안무가로서 입지를 구축하기 전에 국내 유수의 중견안무가들의 러브콜을 받았던 존재감 있는 무용수이기도 했다. 실제로 한국을 대표할 만한 창작자인 안은미, 안성수, 안애순, 김원 등과 차례로 연을 맺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이러한 경험에 안주하지는 않았다. 훌륭한 선례자들의 방법론에 동조하기보다는 다채로운 경험을 자양분 삼아 자기만의 예술적 색채를 찾아갔다는 점은 창작자로서의 자존감을 말해준다. 

 

안영준은 잠재력과 집중력 있는 창작으로 소위 말하는 핫(hot)한 안무가의 대열에 빠르게 올라섰다. 이는 치밀하게 계산된 구성 틀에다가 접촉즉흥의 원리적 탐구를 융해하여, 몸과 몸의 상호 작용과 교감을 토대로 한 독창적인 방법론을 확립하였기에 가능하였다. 

 

안영준은 자신의 안무 방식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미술과 인테리어를 배웠던 경험이 적지 않게 도움이 되고 있다. 시각적인 구조가 움직임에 연결되곤 하기 때문이다. 신체와 신체를 조립해가는 데 있어 접촉즉흥을 활용하기도 한다. 움직임의 연결성에도 많은 신경을 쓴다. 독창적인 움직임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막히는 부분이 있으면 몸과의 연결성을 따져보곤 하며 그래서 막힐 경우 오브제와의 연결성을 탐구하기도 한다. 이러한 방법론이 다른 창작자와 나를 차별화시키지 않나 한다.”

 

실제로 안무가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이래로 단 몇 작품만으로 이목을 집중시킨 놀라운 상승세를 보였다. 2009년 CJ 영페스티벌에서 <흘러나온다>(최우수상), 2011년 한팩 라이징스타에서 <뮤지컬 체어스>, 2012년 크리틱스초이스에서 <여섯 번째>(최우수상)가 그것이다. 

 

2013년 국립현대무용단에서 <카니발 카니발>과 부산국제무용제 AK21에서 <균열>(최우수상) 그리고 크리틱스초이스에서 <직관>을 발표하면서 바쁜 한 해를 보냈다. 2015년에는 서울문화재단 창작지원을 받아 개인공연으로 <한숨 쉬지마>을 발표하였다. 활발하게 창작활동을 하면서도 성균관대학교 예술학협동과정에서 박사를 수료하기도 하였다. 

 

이후 창작활동은 좀 더 묵직해졌다. 2016년 창작산실 올해의 신작으로 <당신의 바닥>을 발표하였다. 2017년에도 창작산실 올해의 신작으로 <가족 놀이>을 발표할 수 있었는데 이는 다음 해에 창작산실 레퍼토리로 선정되기까지 했다. 2019년에는 서울문화재단 공연장 상주단체에 선정되어 나루아트센터에서 레퍼토리 공연과 커뮤니티 프로그램 등 다양한 사업을 펼쳤다. 

 

2020년 이른 봄에는 국립현대무용단에 연습감독으로 초빙되어 예술감독과 무용수들을 연결해 주는 중간 역할을 하였다. 예술감독의 리드하는 방향성뿐 아니라 무용수 개개인의 컨디션까지 파악해야 하므로 쉽지 않은 위치지만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었다는 점은 이후 활동에 또 다른 자양분이 될 수 있으리라 본다. 올해는 가을에 있을 예술감독 레퍼토리를 도울 예정이며 연말에 국립현대무용단의 프로젝트을 통해 신작을 발표할 계획이다. 

 


 

 

안영준의 대표작 넷

안영준은 그동안 인상적인 안무작을 다수 발표하였으나 그중에서도 대표성을 띤 레퍼토리라고 한다면 <흘러나온다...>, <카니발, 카니발(Carnival, Cannibal)>, <당신의 바닥>, <가족 놀이>를 꼽을 수 있다. 네 작품에 대한 리뷰를 정리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2009년 CJ영페스티벌에서 발표한 <흘러나온다...>에서 안영준은 박시한, 김태희와 함께 성별과 신장의 차이가 있는 몸을 활용하여 동작들을 엮어간다. 크고 보통이고 작은 두 남자와 한 여자 사이의 차이들은 통일성을 가진 동작에 다양성을 입히는 기재다. 남녀 간의 힘과 유연성의 차이나 세 남녀의 선명한 키 차이로 인해 미묘한 불균형이 야기되며 이는 움직임 엮음에 추진력을 더해준다. 다른 한편, 그 차이를 인정하며 거기로부터 균형감을 찾기 위해 여러 춤의 발현이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무대의 양 옆과 뒤에 빙 둘려서 설치한 실 막은 완전히 새로운 발상이라 할 수는 없지만 무용수들이 등퇴장할 때 다양한 동선을 창출한다는 점에서 충분히 신선하게 느껴진다. 그들은 서로 섞일 수 없는 다른 성분의 점성을 가진 물방울 같았다. 세 개의 다른 색깔과 크기의 물방울이 흘러나와 힘을 겨루기도 하고 서로 기대기도 하고 함께 균형을 잡기도 하는 인상이다. 

-<춤> 2009년 12월호 중에서 

 

2013년 국립현대무용단의 기획으로 만들어질 수 있었던 <카니발, 카니발(Carnival, Cannibal)>은 거의 동음어처럼 들리지만 ‘축제’와 ‘인육을 먹는 사람’이라는 상이한 뜻을 가진 두 개의 단어를 소재로 하고 있다. 우리 안에 내재한 육식동물적인 잔혹함이 활성화되는 과정이 재치 있으면서도 예리하게 펼쳐진다. 다섯 명의 무용수들은 얽히고 풀리는 조형적인 움직임을 통해 물리고 물리는 관계와 상황 속의 불합리함을 그린다. 20분 정도에 많은 것을 응축해놓았으므로 차후 2배나 2.5배 정도로 길이를 늘인다면 더욱 효과적인 작품력을 갖출 수 있을 것이다. 

-<춤> 2013년 5월호 중에서 

 

2016년 창작산실 올해의 신작 중에서 <당신의 바닥>은 누구나 자기 자리가 있다는 주제를 실제적인 탐구가 진하게 묻어나오는 피지컬한 움직임으로 실현한다. 쓰레기통에 버려지고 거기서 벗어나려는 인간과 유유자작 일광욕을 즐기는 가식적인 인간이 한 공간에 제시되는 가운데, 전자와 후자의 극명했던 차이가 서로 마주하는 동안 무뎌지고 무너지기 시작한다. 마침내 둘의 심리적인 입장과 영향력이 반전되기도 한다. 김관지, 김유정, 진다운, 안영진으로 이루어진 출연진은 각자 개성 있는 역할에 충실하면서 모두 함께 피지컬한 동작을 완성한다. 무엇보다도 창작자 안영준이 움직임 조작에 연연했던 침체기를 벗어나, 견고한 구성적 틀 안에 특유의 피지컬한 동작을 심어놓았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춤> 2017년 2월호 중에서 

 

2017년 창작산실 올해의 신작의 일환으로 발표된 <가족 놀이>는 이외로 많은 사람들이 겪고 있는 가족문제로 인한 심리적 상처를 소재로 하는 가운데, 이를 유사가족이라는 상황에 빗대어 겪어내고 버텨가야만 하는 과정을 담담하게 묘사한다. 진지한 주제 의식을 피지컬하면서도 짜임새 있는 안무와 시기적절하게 제시된 거대한 장치로 실제화하고 있다. 

 

언제나와 같이 가장 인상적인 요소는 움직임 그 자체다. 안영준을 포함한 일곱 명의 무용수들은 강도 높은 피지컬적인 움직임을 펼치다가 다음 순간 세밀한 짜임새가 돋보이는 움직임을 펼쳐 나갔다. 전작들에서는 이러한 특질이 두드러지게 느껴졌다면 이번 신작에서는 작품의 흐름 속에서 녹아들었다는 점에서 한층 성숙된 면모를 보여준다. 그리하여 관객의 시선을 잡아끄는 힘은 약해졌을지 모르지만 한층 무르익은 작품력을 확인시켰다.

 

안영준의 작품으로서는 장치가 다소 약하다는 느낌은 마지막 장면에서 완전히 해소되었다. 뒷막이 열리면서 거대한 구조물, 정확히는 건물의 뼈대가 나타난다. 무용수들은 거대한 구조물을 뫼비우스의 띠처럼 돌아다니면서 오르고 내리는데, 이러한 동선은 가족이라는 집단의 최소단위를 넘어 사회 시스템 그 자체를 빗대고 있는 것만 같다. 짜여진 사회 시스템 안에서 쳇바퀴처럼 돌고 돌 수밖에 없는 현대인의 모습을 연상시키면서 말이다.

 

<가족놀이>는 주제를 표현하는 데 있어서 장치적 요소가 인상적으로 제시되면서도 안무가 중심을 잡음으로써 작품력을 의미 있게 끌어올렸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단순히 대중의 흥미를 끄는 작품이라기보다는 컨템포러리댄스에 대한 대중의 감상 수준을 높일 수 있는 작품으로 여겨진다.

-<댄스포럼> 2018년 2월호 중에서 

안영준의 가장 큰 장점은 쉽사리 자기 페이스를 잃는 법이 없다는 것이다. 자신이 그려놓은 예술세계의 궤도에서 차분하고 유려하게 유영하고 있다. 한국 컨템포러리댄스의 현재를 밝히는 창작자 중 하나로서 예술적 집중력과 자존감을 지켜나가길 바란다. 

글_ 심정민(무용평론가·비평사학자)
사진제공_ PDPC(Physical Design Performance Compan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