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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만의 춤사위로 한국적 컨템포러리 댄스를 구축한 안무가 - 김윤수


 

김윤수는 한국춤에 있어서 컨템포러리 댄스의 경향을 가장 잘 담아낸 한국무용가이다. 전통춤의 근간을 중시하면서도 이를 해체한 다양한 춤사위로 탈경계의 성향을 오롯이 보여주는 동시에 자신감을 바탕으로 또렷한 색깔을 완성했다. 현재 김윤수무용단 대표 및 예술감독으로 활동하면서 무용수, 안무가, 교육자로서의 역할을 병행하고 있다. 무용을 시작한 이후 국립무용단과 대가들의 작품에서 주역을 맡아 실력을 인정받았고, 인천시립무용단 예술감독과 2018 평창문화올림픽에 올린 공연에서 안무 및 협력연출을 통해 역량을 과시했다. 춤에 대한 성찰을 게을리하지 않는 그의 춤에 매료된 많은 후학들과 관객들은 또 다른 파격을 통한 변신을 기대하고 있다. 

 

<걷는새 III - 뫼비우스의 띠>(1999) 제3회 한국안무가 경연페스티벌 및 바뇰레 국제안무가콩쿠르 국내예선 금상 수상작

 

 

 

연기에서 무용으로의 전환 

 

김윤수는 1970년 생으로 올해 52살이 되었다. 그가 태어난 지 9개월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지만 미대를 가고 싶어 하셨던 아버지의 영향인지 어린 시절 그림 그리길 좋아했다. 중학교 때는 영화에 미치기도 하는 등 예술 쪽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산업디자인을 공부하고 있을 때 어머니가 탤런트 심양홍 씨와 친분이 있어서 여의도 연기학원을 데리고 가시면서 본격적으로 예술계의 길로 접어들었다. 동성고등학교 시절 연기학원에서 최민수의 엑스트라를 하기도 했고, 탤런트 이상아와 주연을 맡을 기회도 있었으나 담임 선생님의 만류로 포기하기도 했다. 이후 심양홍 선생이 부전공으로 무용을 종용해서 고2 때 처음 무용을 시작하게 되었다. 초반에는 발레만 배웠으나 학원 선생님이 정재만 선생님께 가볼 것을 권유했고, 정재만 선생님은 한국무용을 전공하라고 하셨다. 당시 남자들만 20여 명이 모여 잠실종합체육관에서 연습하는 모습을 보고 무용은 그림과 연극, 연출, 그 이외에도 특별한 무엇인가를 합친 형태라는 느낌을 받았다. 당시 받은 감흥을 잊을 수 없었고 이때부터 연기학원과 무용을 병행하게 되었다. 무용으로 경희대에 입학했고, 이후 경영대학원 문화예술경영전공 졸업했다. 대학 시절 같은 무용의 길을 가고 있는 아내 임성옥과의 로맨스도 빠질 수 없다. 연기와의 인연은 대학교 시절 군대 제대 후 무용을 포기하려고 하면서 <지하철 2호선> 1기 멤버가 되었을 때 이어지기도 했다.  

 

<비화낙엽의 이(飛花落葉의 理)>(2000) ASIA DANCE SHOWCASE 2 East Dragon 2000 초청작

 

 

 

세 명의 스승님들이 남긴 유산 

 

김윤수는 세 분의 스승에게서 가르침을 받았다. 그의 가장 큰 스승은 정재만 선생님이다. 처음으로 한국무용을 배우게 된 계기도 그렇거니와, 늘 30분 전부터 바로 몸을 푸시던 모습도 기억에 남는다. 정재만 선생님은 고3인 김윤수에게 승무 전수생으로 올릴 테니 연기를 그만두라 하셨고, 1년 반 사이에 6개의 작품을 주셨다. 이후 춤에만 전념하며 1989~90년도에 차수정, 배성한, 김충한, 김상덕과 함께 승무를 6개월간 연습하며 28분짜리 전수자 발표회를 가졌다. 그만큼 정재만 선생님은 김윤수를 아꼈다. 경희대학교에 입학하게 되면서 김백봉 선생님을 사사했다. 그는 김백봉 선생님의 <선의 유동> 작품을 좋아한다. 코어로 모이는 에너지가 행성의 에너지처럼 보이며 마치 눈의 결정체를 보는 듯 했고, 일체의 서사가 없으나 아름다움이 전해졌다고 한다. 사회에 나와서는 김현자 선생님에게도 영향을 받았다. 결국 김백봉 선생님에게서는 우주를, 정재만 선생님에게서는 인간과 사랑을, 김현자 선생님에게서는 전위성과 세상을 바라보는 이성적 사고를 배웠다. 그가 느끼기에 세 분은 모두 우주와 인간을 다 가진 스승님이었다. 위대한 스승님들은 김윤수의 정신적 지주가 되었다. 하지만 여기에만 머문 것이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기 위해 정진했다.  

 

 <만찬>(2001) 네 번째 평론가가 뽑은 젊은 안무가 초청공연 최우수 안무가 수상작


 

다양한 수상으로 실력을 인정받다.

 

김윤수는 1988년 고등학교 시절 한국무용협회 주최 콩쿠르 학생부문에서 <초원> 작품으로 수석상을 받은 이후, 1995년 제1회 전국재인춤경연대회 신인부 창작부문 최고상인 조택원상을 수상했다. 또한 제1회 강원무용제에서 <걷는새Ⅱ-살아남은 자의 슬픔>으로 최우수상, 제6회 전국무용제전에서 내무부장관상, 제3회 한국안무가 경연 페스티벌에서 금상을 수상하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2000년대에 들어서서는 2001년 네 번째 평론가가 뽑은 젊은 안무가 초청공연에서 <만찬>으로 최우수 안무자 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2003년에는 CID-UNESCO 러시아 문화장학재단 주최 제2회 국제 안무가 콘테스트 (International Choreography Contest)에서 <망망>으로 최고상을 수상했다. 이후 2015년에는 인천시립무용단 단장으로서 그가 안무한 정기공연작 <가을연꽃…(秋蓮)>으로 김백봉 예술상을, 2016~17년에는 정동극장 <바실라> 작품으로 제 32회 한국 국제 관광전 최우수 홍보상과 국민통합 우수 문화콘텐츠 공연부분 대통령표창을 받았다. 작년에는 무용가로서는 뜻 깊은 Creative Artist상을 수상하는 등 다양한 수상을 통해 그 능력을 널리 인정받았다.  

 

<가벼운 바람>(2006) 현대춤작가 12인전 20주년 기념공연


안무가로서의 성장

김윤수는 1995년 제1회 강원 젊은 춤꾼제전에서 <걷는새>를 안무했다. 97년에는 전국무용제전 참가작 <걷는새Ⅱ-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99년에는 한국안무가 경연페스티벌 참가작 <걷는새Ⅲ-뫼비우스의  띠>를 안무했다. 같은 해 제2회 한·일 아트페스티벌 참가작 <비화낙엽의 이(飛花落葉의 理)>, 2001년에는 <만찬>과 <공>, 2012년 <이몽(異夢)>, 2013년 이경옥무용단 객원안무작 , 서울무용제 경연부문 를 안무했다. 안정된 안무환경을 갖춘 인천시립무용단에서 2013년 제77회 정기공연 <아라의 서> 작·연출·안무를 했고, 2014년 제79회 정기공연 <가을연꽃…(秋蓮)>에서도 역시나 작·연출·안무를 맡으면서 다재다능함을 뽐내기도 했다. 2016년에는 SIDance 후즈넥스트 초청공연에서 많은 이들의 호평을 받은 그의 대표작 <육현의 심상- 네명의 무용수를 위한 거문고 산조>를 선보이기도 했다. 또한 같은 해에 정동극장 경주브랜드공연 <바실라>를 총괄안무했다. 2018년에는 평창 문화올림픽에서 테마공연 <천년향(Scent of Thousand’s year - The Tale of Peace –)> 안무 및 협력연출을 맡아 안무력을 과시했다. 김윤수는 뛰어난 기획력도 지녔다. 예술계 최초로 다음에다 광고를 하자든지 이 밖에도 구매로 이어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려고 노력했다. 조안무로 일할 때 포스터를 300장만 찍어서 입체로 만들자 혹은 시리즈로 만들어서 하자 등의 아이디어를 냈다. 자신의 위치가 예술감독이 아니다 보니 성사되지 않았지만 그는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기획에 대한 의욕을 갖추고 있었다. 

<이몽(異夢)>(2012) 한팩 솔로이스트


과거와 현대의 조화, 동양적 정서의 반영

그의 작품은 다채로운 스펙트럼을 보인다. <공(空)>은 배정혜 선생님이 작품을 내보라고 해서 안무한 것으로, 국립무용단에서 작품을 사서 이후 국립무용단의 레퍼토리가 되기도 했다. 그는 이 작품에서 ‘비워냄’이라는 개인의 사유의 과정을 통해서 해방되어지는 자의식을 표현했다. <이몽>은 르네마그리트의 ‘도플갱어’를 모티브로 했는데, 거대한 초록색 조명이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그는 두 명의 자아가 등장해 상충하는 내면을 효과적인 움직임으로 전달했다. 객원안무가로 참여한 는 시간의 수레바퀴라는 의미를 지닌 칼라차크라 만다라를 모티브로 한 것이다. 만남과 생명의 탄생, 성장과 사랑, 소멸을 반복하는 거대한 생명의 순화과정 속에서 생명이 지닌 불멸의 가치를 그려냈다. 추상적이며 은유적 표현이 주된 한국 춤언어와 직관적이며 구체적 신체 언어를 가진 현대춤의 결합을 통해 동시대적이며 독자적인 한국춤 언어를 만들어냈다. 애착이 가는 작품인 <육현의 심상- 네명의 무용수를 위한 거문고 산조>는 음악의 시각화를 선명하게 구현한 작품으로 무용수들의 신체를 통한 아름다움과 예술성이 빛을 발했다. 특히 소리와 그것에 반응하는 인과관계를 나열했다. <바실라>는 고대 페르시아 대서사시 쿠쉬나메를 바탕으로 스펙터클한 쇼로 완성되었고, 웅장한 서사와 환상적인 무대예술로 표현된 퍼포밍 아트였다. 인천시립무용단에서 안무한 <가을연꽃>은 조선 인조 때 역적으로 몰려 고문 끝에 죽게 되는 임경업 장군과 그의 칼 ‘추련도’에서 제목을 가져온 작품이다. 무용극 형식으로 이 역시 스펙터클하면서도 웅장함이 돋보였다.  


양자물리학적 관점으로 인간의 내면의식을 탐구

과거 김윤수는 자신의 작품세계를 언급하면 김윤수라는 인간의 의식, 사회와 맞닥뜨린 감정의 구조문제라고 생각했다. 즉, 이전까지는 미성숙한 인간의 표출이었다면 창작한 지 30년이 되어가는 현재는 사고의 도구가 인문학에서 자연물리학으로 이행되면서 자연스럽게 혹은 편안하게 춤을 추어라 등의 것들이 무리 없이 수반되었다. 그가 다루고자 하는 특정 주제는 내면의 나이다. 장자의 호접몽과 시뮬라시옹은 양자물리학에서 보면 동일한 세계관으로 인간의 내면의식을 탐구하는 것이다. 그는 이처럼 확장된 세계관을 가진다면 작품에 흥미롭게 반영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김윤수가 선호하는 움직임은 호흡과 관련된 것으로, 당연히 이 호흡은 생명유지만을 위한 호흡이 아니다. 공기를 들이마시면서 장기를 통해 밀도가 다른 신체로 보내는 것을 느끼기 위해 상상을 바탕으로 신체의 말단까지 인지하는 단계이다. 타자에게 움직이는 방법론을 전달할 때 인위적인 호흡을 다루는 방법이 음악의 진동수와 동일하게 접근하는 법이다. 가무악칠채와 유사하다고 보며 소리에 반응하는 호흡법이라 볼 수 있다. 많은 부분 음악의 지시명령에 따르며 변칙적인 패턴을 만들어내는 것이 기본적인 움직임의 방법이며 기호화된 다름의 체계를 발전시켜 나가는 안무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자신의 안무를 통해 완성해낸 작품에 대한 평가는 다음과 같았다.

그는 신무용과의 운명적 학습내력이나 ‘국립’이라는 관립단체가 갖는 ‘닫힌 기운’을 파기하고, 스스로의 예술적 정체성을 향해 용감하게 질주해나간다. 작품을 창작하는 데 있어 김윤수는 늘 자신을 묶어둘만한 ‘모태적’ 또는 ‘원죄적’ 성향을 과감하게 떨쳐버리고 언제나 새롭게 태어나고자 치열하게 몸부림친다. - <댄스포럼>  

 

1999년에 발표한 <걷는새Ⅲ>는 일상 속에 갇힌 존재들의 상황을 강한 흑백의 분위기 속에서 일종의 알레고리로서 보여준 작품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에 대해 평론가 김태원은 김윤수의 이러한 춤에서 한국춤동작/현대무용적 춤동작의 구별을 갖기는 힘들다고 평한다. 대신 모두 자신의 창작의지와 구성에 ‘호응하는’ 움직임의 선택과 사용이라는 공통분모만 있을 뿐이다. - 평론가 김태원, 월간 <춤>


특히 김윤수 개인의 춤 학습 내력과 활동에서 볼 때 <만찬>에서 시사된 안무의 경향은 매우 급진적인 것이었다. 신무용의 종가(宗家)를 경유했고, 또 대체적으로 보수성을 띤 국립무용단에 몸담고 있다는 김윤수의 태생적 조건과 현재적 위치에서 볼 때 <만찬>에서 보여준 현대적 안무 감각은 한국춤의 새로운 신기원을 추동(推動)하는 큰 움직임으로 점쳐볼 수 있는 것이다. - <댄스포럼>

내가 높이 사고 싶은 것은 작품의 수준도 수준이지만 김윤수 예술감독이 이런 패기를 갖추고 있으며 거기서 그치는 게 아니라 그것을 예술적으로 담아낼 수 있는 능력을 겸비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감히 한국춤 기반의 무용극은 그의 손에 의해 송범 선생 이후 역사적으로 진행되어 오던 흐름을 압축하여 한 단계 높은 수준에 등극(登極)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 평론가 문애령 <춤웹진>
김윤수는 향후 사람을 키우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지금도 안무가군과 직업무용수군으로 분류해 프로 클라스를 하면서 직업무용수들을 키워내고 있다. 프로 클라스를 받는 학생들에게는 대본과 경영을 따로 가르치고 있다. 이미 이와 같은 형태의 수업을 진행해 온 지 10년 정도 되었고 새로운 트랙을 만들며 현재의 한국무용 사조를 알려주고 싶어 했다. 또한 예전에 다 하지 못했던 정재 연구도 계속하고 싶은 마음이다. 

김윤수의 춤은 개성이 넘친다. 자신만의 색깔이 선명하고 감각적이다. 특별히 춤에 있어서 한국무용의 춤사위에 동시대성을 담아 재해석하고 뛰어난 음악 분석력을 통해 춤과 음악의 조화를 도모한다. 무용극에서부터 가장 최전선의 형태까지 다각도의 춤을 선사하는 김윤수의 뛰어난 안무와 연출력은 한국 창작춤에 있어서 독보적인 위치를 부여했다. 국립무용단에서의 10년 세월과 자신의 무용단을 16년 동안 운영해오면서 확고한 예술관을 성립한 그는 한국무용계의 허리세대로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실제로 시대를 아우르며 자신의 춤을 통해 현대예술에 있어서의 시간, 접근성, 소유를 논하는 그야말로 고전개념을 바탕으로 확장된 세계관을 갖춘 예술가이다.


글_ 장지원(무용평론가)
사진제공_ 김윤수무용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