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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작가

관객과 소통하는 개성 있고 감각적인 현대무용 - 김보람

 

 


 

 

 

  현대무용은 공연예술의 한 분야다. 공연예술은 끊임없이 관객과의 상호교류 속에서 발전을 거듭해왔다. 따라서 관객이 봐주어야지만 현대무용의 존재 의미도 살아날 수 있다. 김보람은 관객과 소통할 수 있는 현대무용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공연예술의 근본적인 목적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 젊어서부터 춤 일선에서 활동을 시작하고 두각을 나타냈던 까닭에 나이가 꽤 든 것으로 착각하기 쉬운데 김보람은 1982년생으로 올해로 38세다. 마흔도 되지 않은 무용가가 이 정도로 고유한 예술성, 남다른 개성, 무용계 인지도, 대중적 수용력을 모두 갖춘 경우는 흔치 않다. 전남 완도에서 서울을 거쳐 세계무대로 뻗어가는 현대무용가로 성장하기까지의 김보람을 조명한다.



전남 완도의 소년, 전문 백업댄서 되다


  전라남도 완도에서 태어난 김보람은 초등학교 때부터 TV에 나오는 춤이란 춤은 모두 따라 추곤 했다. 근처에 무용학원이라는 것이 전무하다시피 했기 때문에 전문적으로 춤을 배울 기회는 없었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마음에 맞는 친구들과 함께 댄스동아리를 만들어서 자체적으로 춤을 배워나갔다. TV를 통해서만 춤을 접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저 가수들과 백댄서들을 따라하는 게 전부였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되었을 때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누나가 서울로 올라가겠다고 해서 무작정 따라 올라갔다. 서울의 일반고로 전학해서도 댄스동아리에 들어가서 춤을 추었다. 보다 다양한 춤과 춤꾼들을 접할 수 있게 되어 더 많이 배울 수 있었고 차츰 인정도 받았다. 전문댄서로서의 기회도 생겼다. 2000년부터 ‘프렌즈’라는 단체에 들어가서 유명 가수의 백업댄스를 많이 추었다. 김완선, 엄정화, 조성모, 채정안, 이정현, 윤종신, 김민종, 코요테, 김정민, 현진영의 방송이나 콘서트에 참여하곤 했다. 유튜브에서 당시 가수들의 방송을 살펴보면 십 대 말의 풋풋한(?) 김보람을 발견할 수도 있다. 

 


  우리 무용계에서는 다소 생소할 수 있어서 부연 설명을 하자면, 대중적이고 상업적인 댄스계열의 무용가로는 백업댄서와 스트릿댄서가 있다. 우선 백업댄서는 가수를 상대로 방송댄스를 추는데 ‘프렌즈’에서 주로 했던 일이다. 다음으로 스트릿댄서는 힙합, 비보잉, 팝핀, 락킹, 왁킹, 크럼프, 하우스 등을 공연하는 이들이다. 이해하기 쉽게 분류해 놓았지만 백업댄서의 경우 다양한 춤을 구사할 수 있어야 하기에 여러 스트릿댄스를 배우기도 한다. 김보람 역시 본업은 백업댄서였지만 스트릿댄스까지 전문적으로 배웠다.

 

 

 

춤적 정체성 고민 끝에 만난 현대무용

 


  한창 잘나가던 스무 살의 젊은 청춘은 춤추는 것에 대해 회의를 느끼게 되었다. 방송댄스를 엄청나게 해댔지만 왜 추는지에 대한 의미는 퇴색해 버렸다. 김보람의 예술가적 성향을 읽을 수 있는 대목으로, 자신의 춤적 정체성을 찾아가는 데 있어서 필수적인 자문이다. 2002년 월드컵으로 온 나라가 들썩일 때 김보람은 춤을 중단하고 식당일이나 노가다를 하면서 지냈다. 아무 생각 없이 단순하게 일하면서 참 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춤밖에 없다는 생각에 다시 ‘프렌즈’로 돌아갔고 보다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자 미국 진출이라는 목표를 세웠다. 사실 서울예술대학도 미국 진출을 위해 학생 비자를 받을 목적으로 진학하였다. 당시 현대무용 작품들을 대충 살펴보고 비슷한 느낌으로 작품을 짜서 입시를 쳤다. ‘프렌즈’가 재즈 기반에다가 선이나 스트레칭을 중요시했었는데 그게 도움이 됐던 것 같다.

 

  2003년 서울예술대학에 들어가고 나서 점차 무용예술계와의 연결고리가 생겨났다. 우선 여러 예술 춤을 배울 수 있었으며 동기인 장경민과의 인연도 시작되었다. 장경민은 2007년 창단한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의 공동 대표였다. 그러다가 서울예술대학의 2년 선배였던 김설진의 작품에 출연하는 계기가 생겼다. 김설진 또한 스트릿댄스와 방송댄스를 하다가 현대무용으로 전향한 케이스로, 2007년쯤 작품을 만드는 데 함께 하지 않겠냐고 해서 경험삼아 하겠다고 했다. 현대무용 작품에서 춤을 춘다는 게 생각만큼 쉽지 않았고 처음에는 그냥 따라가는 데 급급했다.

 


  이후 김설진 선배의 소개로 안성수 선생을 만나게 되었고 작품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발레 트레이닝이라든가 프레이즈 만들기에 재미를 붙인 것 같다. 여기서도 처음에는 너무 어려워서 쫓아가기 바빴다. 이런 식으로 안성수픽업그룹에서 2008년부터 2013년까지 국내와 해외를 오가면서 활동하였다.​

 

 

  김보람은 안성수픽업그룹에 몸담았던 시절 국내 무용계를 대표할 만한 안무가의 하나인 안성수로부터 안무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본질적인 배움을 받았던 것 같다. 보통 유명 안무가와 작업을 할 경우 그 안무가의 메소드에 영향을 받아 모방품을 만들어내기 쉽다. 김보람의 경우에는 안무에 대한 본질을 습득한 후 자신의 예술적 색깔을 확립하여 자기만의 고유한 예술세계를 구축하였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자기만의 색깔을 가진 창작자로 자리잡기

 


  첫 안무작은 2007년 대학무용제에 출품하기 위해 서울예술대학 여학생 다섯 명을 데리고 만든 다. 그해 겨울에 만든 <볼레로>는 2008년 CJ영페스티벌에 올랐고 2009년 CJ아지트 개관공연에서는 이라는 작품을 선보였다. 

 

 

 

<바디 콘서트> 中 ⓒ옥상훈

 

 

  2010년 故김승현 평론가의 추천으로 크리틱스 초이스에서 <바디 콘서트>를 초연하였고 최우수상을 받았다. 당시만 하더라도 <바디 콘서트>가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의 대표 레퍼토리로 자리 잡게 될지는 몰랐다. 한 4, 5년간은 죽어 있다시피 한 작품으로 공연 요청도 없었고 지원 프로그램에도 떨어졌었다. 그러다가 차츰 무용계와 대중에게 알려지면서 여러 기획공연과 행사에 불려 다니게 되었다. 현재로서는 김보람과 동일시되는 대표작으로 자리잡고 있다. 

 


  <바디 콘서트>는 서울로 올라와 치열하게 춤추었던 20대의 나에 대한 한풀이와 같은 작품으로 가장 오랜 시간을 투자하여 만든 작품이다. 약 6개월 정도 준비했던 것 같다. 초연 때는 남자 4명과 여자 2명으로 이루어진 42분짜리 작품으로 완성되었다. 초연 당시 필자의 평론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서울댄스콜렉션과 CJ영페스티벌 등을 거친 김보람은 빠른 상승세로 주목을 받고 있다. 그리고 올해 평론가가 뽑은 젊은 무용가 초청공연의 무대까지 올라섰다. 어처구니 시즌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에서 그는 전작들에서처럼 남다른 개성을 발산한다.

 김보람은 힙합과 현대무용에다가 한국무용과 발레 등 자신이 경험한 다양한 춤 영역을 섞어놓고 있다. 더 나아가 놀이나 장난 혹은 일상적인 행위까지 광범위한 활동들을 자신의 예술적 용광로로 끌어들인다. 오페라에서 K-pop 그리고 랩까지 넘나드는 광범위한 음악적 수용력도 비슷한 맥락으로 설명될 수 있다. 상당히 절충주의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고 하겠다.

 김보람은 이렇게 광범위한 움직임을 흡수하여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누구와도 겹쳐지지 않는 개성을 드러낸다. 특히 유연하게 흐르는 호흡을 가졌지만 그 자연스러운 흐름을 순간적으로 반전시키거나 분절시키는 능력이 뛰어나다. 음악에 반응하는 몸의 선험적인 리듬감으로 이를 더욱 빛나게 한다. 그래서인지 에서 뻔한 동작성은 찾아보기 힘들다. 기존의 동작이라 할지라도 그의 춤적 개성으로 인하여 충분히 신선하게 보인다고나 할까. 이러한 춤의 맛은 김보람 스스로에 의해 가장 잘 표현되었으며 함께한 무용수들 역시 적지 않은 힘을 실어주었다.

 한바탕 노는 듯한 무용수들의 춤은 시간적 제약을 주지 않았더라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밤새도록 이어졌을 것이다. 김보람의 자유롭고 강렬하고 개성 넘치는 춤은 분명 색다른 것이다. 차별화된 예술성을 가진 걸출한 신예가 등장했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심정민, 월간 <춤> 2010년 8월호

 

  웰메이드(well-made) 작품이지만 잘 만들어진 모든 작품이 빈번하게 리바이벌되면서 널리 사랑받는 것은 아니다. <바디 콘서트>의 최대의 장점은 어느 무대에서든 유연하게 변형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무대에 따라 25분에서 1시간까지, 5명에서 11명까지, 에너제틱에서 아티스틱까지 유연하게 조절하고 조정할 수 있다. 여러 개의 음악을 이어서 장면들을 만들기 때문에 어떤 음악을 넣고 빼느냐에 따라 길이나 규모 혹은 분위기를 조절하고 조정할 수 있는 것이다. 다양하게 활용가능하다는 경쟁력으로 인해 초연된 지 10년이 넘은 레퍼토리임에도 여전히 사랑받고 있다.

 

뻗어나가다

 


  2010년에 서울댄스콜렉션에서 지경민과 함께 한 <공존>으로 최우수상을 받았고 이로 인해 일본 요쿄하마 댄스콜렉션에 진출할 수 있었다. 2012년에는 스페인 마스단자 국제무용페스티벌에서 안무 부문 관객상을 받기도 하였다. <공존>은 꽤 효자 레퍼토리다. 지경민과는 서울예술대학 때부터 의기투합하여 지금까지 함께 작업하고 있으며 서로를 너무 잘 알기에 초청공연 의뢰가 들어오면 둘이 그냥 음악과 옷만 가지고 가서 출 수 있는 작품이 <공존>이다. 그래서 <공존>을 많이 공연해왔다.

 

 

  나이 서른을 넘어가면서 공연 기회는 더욱 확대되어 갔다. 2013년 서울국제공연예술제에서 국내초청작으로 <인간의 리듬>을 올렸으며 2014년에는 <미스테이크>란 작품으로 요코하마 댄스콜렉션에서 심사위원상을 받기도 하였다. 

 


  2015년 춤 활동에 있어서 또 한 번의 이정표를 맞이할 수 있었다. 안산문화예술의전당에 상주단체로 선정된 것이다. 그 전년도에 안산 국제거리극축제에서 <공존>을 공연한 적이 있었는데 상당한 주목과 관심을 받았다. 당시 그 공연을 본 오미현 과장이 상주단체 선정에 있어 많은 도움을 주었다. 상주단체로 활동했던 경험은 소중할 수밖에 없는데 단체 운영, 연습공간, 극장무대 등에 있어서 연간 계획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매년 레퍼토리 2개와 신작 1개를 공연하였고 그 사이에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관객 개발 워크숍도 병행하였다. 안산에는 거리공연들이 여럿 있어서 자주 참여하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상주단체 당시 춤 인생에서 가장 규모 있는 작품을 만들 수 있었다는 것이 큰 의미로 다가온다. 바로 2016년 발표한 <예술을 위한 조화>다. 이 작품은 2015년 거리공연을 위한 만든 <조화로운 삶>을 빅버전(big-version)으로 업그레이드한 것으로, 원래 4명이 출연하는 25분짜리 작품을 10명의 무용수와 25명의 오케스트라에 의해 실연되는 1시간 40분짜리 작품으로 성장시켰다. 규모가 크다 보니 리바이벌되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는 점에 대해 김보람은 아쉬움을 표한다.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는 2018년까지 안산문화예술의 전당의 상주단체로서 여러 활동을 펼쳤으며 현재는 수원 SK아트리움과 광명시민회관에 반(半)상주단체로 활동하고 있다.-반(半)상주단체라고 하면 해당 극장의 기획공연에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을 받는 것이다. 작년부터 공연 활동 영역도 더욱 넓어져서, 무용계에도 잘 알려진 작곡가 장영규와의 협업하는가 하면 대중성을 갖춘 퓨전전통연주단인 ‘이날치’과 협연하기도 하였다. 특히 이날치와의 공연 현장은 유튜브에 공개되어 높은 조회수를 보였는데 온스테이지2.0을 통해 그 영상을 확인할 수 있다.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다 보니 공연 제안이라든가 광고 제안도 있었다.

 

  비교적 최근작인 <피버>는 2019년 서울거리예술축제에서 초연되었으며 올해(2020년) 4월 광명에서 무관중 공연으로 재연되었는데 안무, 연출, 의상, 분장 등에 있어서 김보람 특유의 개성과 스웨그를 느낄 수 있다. <피버>를 비롯하여 김보람의 여러 공연은 대중과 소통하기 위해 만든 유튜브 채널인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https://www.youtube.com/channel/UCm5ZRzEMYk2qZYI0uFwP_jQ)를 통해 볼 수 있다.

 

  김보람의 발자취는 분명 범상치 않다. 백업댄서에서 현대무용가로 전향하는 과정에서 서로 다른 두 장르의 춤을 감각적이고 개성 있게 융해하여 누구와도 차별화된 움직임을 확립하였다. 새로운 움직임 창출은 예술적인 탐구, 음악적인 감각, 개성 있는 연출 등과 어우러져 ‘김보람 스타일’을 구축하기에 이른다. 무용계에서는 독특하다는 인상과 대중에게는 흥미롭고 재미있다는 반응을 동시에 불러일으키면서, 국내 현대무용의 표현 영역을 확장시키는 데 한 역할을 하였다. 무엇보다도 상주단체, 거리공연, 타 분야와의 협업, 유튜브 채널 등을 통해 끊임없이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창구를 모색하는 김보람의 진취성은 21세기 공연예술로서의 무용이 나아가야 할 한 방향을 제시해주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끊임없이 관객과의 소통 속에서 발전을 거듭해온 공연예술로서 무용의 본질적인 단면과도 닿아 있다.



글_ 심정민(무용평론가·비평사학자)
사진제공_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