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s 페이지는 댄스포스트코리아 에디터들의 진솔한 이야기로 꾸려갑니다.
춤을 둘러싼 다양한 곳에서 경험한 우리의 취향과 시선은 오늘의 춤과 닮아 있습니다.
화려한 테크닉으로 무장한 움직임보다는 보는 사람에 따라 소소한 공감과 흥미를 느낄 수 있는 오늘의 춤처럼, 세 명의 에디터들이 돌아가며 춤과 우리들의 이야기를 나눠보려 합니다.
N잡러라는 말을 아시는가? 2개 이상의 복수를 뜻하는 ‘N’, 직업을 뜻하는 ‘job’, 사람이라는 뜻의 ‘러(-er)’가 합쳐진 신조어로, 생계유지를 위해 본업 외에 개인의 자아실현을 위해 여러 개의 직업을 가진 사람을 의미한다.1) 무용 전공 10년 차인 나는 현재 대학원생이지만 여러 개의 일을 병행하고 있다. 아직 사회에 제대로 발을 들여놓지는 않았지만 학부생 때보다는 더 많은 사람과 환경을 접하고 있는 요즘. 소규모여도 엄연히 ‘사회생활’을 하는 사회인이자 집안의 애물단지, 그래서 어떻게든 경제생활을 하고자 하는 책임을 느끼는 성인으로서 다양한 활동을 하는 N잡러이자 멀티플레이어로 살아가고 있는 나.
주변 대부분의 무용 전공생들의 처지 또한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전공과는 거리가 먼 카페 아르바이트, 보습학원 채점 아르바이트, 혹은 유아발레 강사 등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병행하고 있다. 물론 각자의 사연이 있을 것이다. 무용하는 친구들은 평생 고생 한 번 안 해봤을 것 같다는 일반적인 편견이 무색할 만큼이나 다들 매일 각자의 삶에서 전투를 치르고 있다. 대학 졸업과 동시에 무용을 그만두고 다른 길로 가는 친구들도 많이 보았다. 누구의 선택이 옳다 그르다 말할 수는 없다. 그 선택을 옳게 만드는 것만이 남아있을 뿐.
현재 무용 웹진 댄스포스트코리아에 처음으로 내 이름을 걸고 글을 써보는 5개월 차 에디터, “맞다 나 무용 전공이지!”를 상기시켜줄 만큼 아주 간간이 참여하는 크고 작은 공연의 무용수, 누군가를 가르치는 선생님, 나름 큰 포부를 안고 가게 된 대학원에서 전공인으로서의 자아는 아직 찾지 못한 채 공부를 하는 학생, 한편으론 자아실현을 이루고야 말겠다며 뛰어든 독서 토론 모임 참여자 등, 살아남기 위해 무용만 해서는 충분치 않다는 생각 때문인지 다양한 일들을 하고 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비자발적으로 N잡러인 동시에 멀티플레이어가 되어버린 것이다.
공연이나 일이 들어오면 경력이 안 되더라도 기회라고 생각해 무조건 수락부터 하는 나. 시간이 촉박해도 이 기회를 놓치면 다시는 오지 않을까 두려워서 몇 년간 신념처럼 쌓아 올린 우선순위는 차치하고 무턱대고 하겠다고 하는 나. 이런 버릇은 어느새 습관이 되어버렸다. 어쩌면 경험이라는 허명(虛名) 아래 스스로 혹사하는 것은 아닌지 몇 번이고 되돌아보았다. 이젠 적은 돈이라도 부모님께 더는 손 벌리기 싫고 자아실현은 하고 싶고, 춤은 놓고 싶지 않고, 그러면서 20대의 빛나는 삶도 만끽하고 싶다면 너무 욕심을 부리는 걸까?
[간간이 참여하는 공연에서]
가끔 준비 기간이 넉넉하지 않은 공연을 하게 되면 연습 부족에 대한
죄책감과 머쓱함으로 다른 공연에서보다 두 배 더 웃는 편.
이병헌 뺨치는 건치 미소로 공연에 임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생각해보면 대학 입학 후 바쁘게 지내지 않은 적이 없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예중·예고 생활부터 그랬다. 중간고사, 실기시험, 기말고사 그리고 1주일의 짧은 실기 방학을 보내면 예술제 준비, 다시 학기 시작. 그렇게 1년을 빈틈없이 몰아치는 일들을 해내는 데 쏟아 부었다. 이렇게 몇 년을 지내다 보니 이런 생활이 몸에 배었다. 6시부터 시작하는 새벽 레슨은 내게서 아침잠을 빼앗았다. 그렇다고 해서 무용을 전공한 것이 절대로 나에게 나쁜 영향만 미친 것은 아니다. 이 때의 습관으로 나는 아침형 인간이 되어 남들보다 조금 더 빨리 하루를 시작한다.
무용을 전공하면서 얻은 것들이 참 많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도 “한 번 더!”를 외쳤던 인내와 끈기, 군무를 통해 길러진 타인과 소통하고 협력하는 법, 무대에서 얻은 남들 앞에서 나를 표현하는 법, 다이어트를 하면서 배운 내 몸을 다스리는 법 등···. 이것들은 모르는 사이에 내 내면에 겹겹이 쌓여왔다. 인이 박인 것이다. 겹겹이 쌓인 막처럼 나를 보호해주는 내면의 힘들은 내가 무용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의 일을 할 때도 자양분이 되어주고 버팀목으로 작용했다. 어떠한 일이든 남들보다 더 끈기 있게 할 수 있는 정신적이고 육체적인 지지력이 됨을 깨달았다.
다양한 일들을 하다 보니 남들은 경험해보지 못한 일들과 마주칠 때가 더 많았다. 남들은 하지 않는 실수를 한다든지, 불쾌한 일들을 겪은 경험은 물론이고, 왜 하필 나에게만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에 대한 후회와 괴로움도 있었다. 그래도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결과에 상관없이 충분히 그리고 오롯이 그 과정을 즐기게 되었다. 그 경험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주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내가 바쁘게 보내는 하루가 나에게는 버겁지만 감사하고 행복하다. 찰나의 순간들이 모여 내 24시간을 만든다. 이렇게 보내는 시간이 또 다른 나의 미래를 만들어줄 것이라 믿는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춤추고, 읽고, 쓰고, 달리고, 말하며 N잡러이자 멀티플레이어로서의 시간을 보낸다.
글·사진_ 여지민(에디터)
1)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6541248&cid=43667&categoryId=43667. 네이버 지식백과. 접속일 2022. 05.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