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스포스트코리아
지난자료보기

로고

무용현장

에디터 페이지

도파민 시대의 감각을 건드리는 공연,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 〈더 벨트(The Belt)〉

※본 비평문은 2025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연예술 비평주체 활성화 프로젝트 <신진 비평가 육성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에디터페이지

Vol.124-1 (2025.12.5.) 발행

 

글_ 한성주(본지 에디터)

사진제공_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 ⓒGunu Kim


 

 

Ⅰ. 감각의 한계치를 시도하는 대담한 시도


강한 자극이 일상이 된 시대. 감각은 더 이상 가볍게 스쳐 지나가는 반응이 아니다. 속도와 자극이 멈추지 않는 환경 속에서 감각은 피로와 쾌감, 몰입과 무기력 사이를 오가며 우리가 세상을 받아들이는 방식을 결정한다. 강한 자극에 반응할 때마다 분비되는 도파민은 짧고 빠른 보상을 제공하고, 몸은 더 강한 자극을 요구하는 방식으로 길들여진다. 이 감각의 변화는 질문의 방향도 바꾼다. “우리는 무엇을 보며 감동하는가?”에서 “우리는 얼마나 강한 자극을 받아야 비로소 ‘느꼈다’고 말할 수 있는가?”로.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의 〈더 벨트(The Belt)〉는 이 질문을 정면에서 물어보는 공연이다. 


〈더 벨트〉는 2024년 9월 런던 코로넷 시어터에서 초연된 이후, 특유의 강렬한 에너지와 리듬감이 돋보이는 퍼포먼스로 현지 언론의 호평을 얻었다. 타 장르와의 협업을 통해 무용의 확장 가능성을 꾸준히 실험해 온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는 이번 작품에서 자신들이 구축해 온 미학을 어디까지 밀어붙일 수 있는지 다시 한 번 증명하며 또다시 ‘센세이션’을 만들어냈다. 2025년 11월 6일(목)부터 9일(일)까지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 약 80분간 공연된 이번 작품은 총 8명의 무용수가 출연해 그 감각의 흐름을 이어갔다.




공연은 시작과 동시에 시선을 장악한다. 암전 후 미세하게 켜지는 조명 아래, 양갈래 머리를 한 남자 무용수가 바닥을 구르며 등장하는 순간은 단번에 무대의 몰입감을 끌어올렸다. 그가 입은 블랙톤의 티팬티형 의상은 색을 절제한 채 신체의 윤곽을 그대로 드러내며 긴장감을 조성한다. 다른 무용수들의 의상 역시 레이스·망사 등 다양한 질감이 더해졌는데 절제된 색 위에 텍스처적 과잉을 덧입힘으로써 과잉과 미니멀리즘이 동시에 존재하는 애매모호한 이미지를 구축하는 듯하였다. 형형색색의 의상으로 생동감을 구축해 온 기존 무대 이미지와 비교하면 이번에는 색을 지우는 대신 질감과 형태로 감각을 구성한 대담한 전환이다. 색의 기능은 의상에서 조명으로 옮겨갔다. 무지개 색상의 조명이 블랙 의상 위에 비추며 몸이 색을 입는 것이 아니라 색이 입혀지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무채색이던 무대가 알록달록해지는 변화는 마치 음악의 흐름에 맞춰 공간 자체가 호흡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러한 조명은 움직임과 궤적을 더 날카롭게 드러낸다. 무용수들은 조명의 급속한 전환 속에서 방향을 바꾸고 군무와 솔로를 오가며 서로 간의 간격을 치밀하게 조정해 나간다.


무용수들의 움직임 또한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 특유의 신체 언어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서로 닿을 듯 말 듯한 거리 속에서 밀지도 끌어당기지도 않지만, 호흡과 박자, 공간의 흐름을 세밀하게 감지하며 보이지 않는 컨택을 완성한다. 이 거리는 단순한 안전한 동선의 결과라기보다 리듬 중심 신체 언어가 만들어낸 관계의 방식에 가깝다. 물리적 접촉 없이도 비접촉의 간격에서 강한 긴장을 발생시키며 빠르게 전환되는 장면들의 흐름과 맞물린다. 무용수들이 짧은 솔로를 이어가는 장면은 숏폼 영상을 스크롤하듯 소비되는 오늘의 감각과 자연스럽게 겹쳐 보인다. 신체는 무대 위에서 분명히 실재하지만, 장면을 받아들이는 리듬은 디지털 시대의 짧은 호흡과 겹쳐 보인다.



공연 후반부 무용수들의 땀방울은 조명을 받아 반짝이며 흩어진다. 이 장면은 움직임의 속도와 강도가 어느 지점까지 밀어붙이고 한계에 다다랐는지를 육안으로 확인하게 만드는 순간이다. 제25회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에서 선보였던 얀 마르텐스의 〈도그데이즈 2.0〉이 반복과 정밀함을 끝까지 수행해 나가며 에너지를 서서히 쌓아가는 구조였다면, 〈더 벨트〉는 그와 다른 방식으로 폭발한다. 여기서의 에너지는 움직임, 음악, 조명 등이 한꺼번에 밀려오면서 몸 안에서만 머무르지 않고 무대 전체를 압도하는 흐름을 만든다. 그 결과 후반부의 땀과 호흡은 단순한 체력적 소모가 아니라, 작품이 끝까지 밀어붙인 강렬한 에너지와 감정의 파동이 몸의 표면까지 치고 올라오는 흔적으로 다가온다. 이 파동은 관객의 감각을 직접 흔들 만큼 강했고 속도와 압력이 누적된 끝에서 가장 현실적인 형태로 드러났다.


Ⅱ. 무대와 객석의 경계 해체


〈더 벨트〉의 Part 2는 작품의 중요한 전환점이다. 약 20분 동안 이어지는 이 장면에서 관객은 더 이상 객석의 수용자로 머물지 않고 직접 무대 위로 초대된다. 음악과 조명의 강도는 그대로 유지되지만, 감각의 초점은 무용수에게서 관객으로 확장된다. 관객이 리듬에 몸을 맡기고 무대에 발을 딛는 순간, 무대와 객석의 경계는 흐려지고 작품은 또 다른 층위의 감각을 획득한다. 이는 장르의 경계를 흐리는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의 미학을 이어가는 실험이자 관객 경험을 수동적 감상에서 능동적 반응으로 확장하려는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Part 2 부분은 하나의 논쟁 지점을 만들기도 한다. 관객이 무대로 올라가 함께 리듬을 타고 움직이는 이 장면을 과연 ‘공연’으로 보아야 하는가 아니면 ‘참여형 이벤트’의 일부로 보아야 하는가 하는 질문이 뒤따를 수 있기 때문이다. 무대 위의 구성은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안무된 장면처럼 보이지 않는다. 춤을 추는 주체가 무용수에서 관객으로 넘어가고 움직임의 질감이나 완성도가 일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부분은 Part 2가 왜 공연의 일부여야 하는지를 명확하게 드러낸다. Part 2는 무용수의 움직임을 단순히 확장하거나 모방하는 장면이 아니라 공연 전체가 축적해 온 에너지의 흐름이 관객의 신체로 전이되는 순간이다. 공연 내내 축적된 여러 요소들이 관객의 몸에 직접 닿는 순간, 관객은 작품의 세계에 함께 호흡하는 존재로 이동한다. 즉, 단순한 놀이적 참여가 아니라, 〈더 벨트〉가 던지는 질문 ‘우리는 얼마나 강한 자극을 통해 느꼈다고 하는가’를 직접적으로 느끼게 하는 미학적 구조를 완성시키는 장치다.





Ⅲ. 감각의 과부하를 체험하게 하는 공연


〈더 벨트〉는 관객에게 여유를 거의 허락하지 않지만 단지 강렬함만을 자랑하는 공연 또한 아니다. 셔플, 테크노, EDM 등 여러 요소가 뒤섞인 전자음 기반의 음악은 시작부터 끝까지 일정한 강도를 유지하며 거의 쉬어갈 틈 없이 이어진다. 음악은 중단 없이 몰아치고, 조명은 끊임없이 색을 바꾸며, 무용수의 움직임은 초반부터 후반까지 에너지가 떨어지는 지점을 허용하지 않는다. 이 구조는 관객을 피로와 흥분의 경계 위에 세운다. 필자는 이것이 안무가의 전략적 선택으로 보인다. 감각적 밀도를 극도로 높여 관객의 뇌와 몸이 공연을 감상하는 대신 반응하게 만드는 것.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자극 환경과 동일시된다.


이번 작품은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가 구축해 온 미학적 정체성을 극단으로 확장하며 동시대인이 감각을 받아들이는 방식을 정면에서 묻는다. 시각(움직임&조명), 청각(음악), 후각(땀 냄새) 등 여러 감각을 동시에 자극하는 다층적 구성은 동시대 관객이 지금 어떤 속도와 밀도의 감각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특히 빠른 박자와 복잡한 동선 속에서도 군무의 정밀함을 유지하는 무용수들의 체력과 집중력은 작품의 강도를 지탱하는 핵심 동력으로 작용하며 작품을 더욱 완성도 있게 보여주었다.


물론 시종일관 강도 높은 자극이 반복적으로 지속되는 구조는 일부 관객에게는 과도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작품의 의도를 고려하면 이 과도함은 단순한 과잉이 아니라 전략적 과잉으로 받아들여진다. 자극이 누적돼 감각이 포화 상태에 이르는 순간 관객은 오히려 지금의 시대가 우리 몸에 어떤 압력을 가하고 있는지 그리고 우리는 어떻게 버텨내고 있는지 더 명확하게 인식하게 된다.



작품의 제목인 〈더 벨트〉는 공연의 구조를 해석하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런던에서의 초연은 관객이 공간을 이동하며 작품을 따라가는 이동형 구조였는데 관객의 동선이 멈추지 않고 이어지는 형태가 컨베이어 벨트처럼 계속 흐르는 이미지를 떠올리게 했다. 반면 서울 무대에서는 이동이 사라지고 원형의 고정된 공간에서 공연이 진행된다. 그럼에도 ‘더 벨트’라는 이름이 유지되는 이유는 이 작품이 공간적 이동보다 에너지의 이동과 감각의 전달을 더 중요한 핵심으로 삼기 때문이다. 여러 요소들이 하나의 동력처럼 서로를 밀어 올리고 무대에서 객석으로, 다시 관객의 몸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끊기지 않는 방식은 일종의 동력 전달 장치처럼 작동한다. 결국 〈더 벨트〉라는 제목은 멈추지 않는 에너지의 순환과 감각의 흐름을 상징하는 개념적 장치로 기능한다.


공연은 관객에게 하나의 답을 제시하기보다 지금 우리가 어떤 속도와 자극의 흐름 위에 놓여 있는지 되묻는다. 단순히 강렬한 퍼포먼스를 넘어서 지금의 시대가 몸에 어떤 흔적을 남기고 있는지를 질문하는 하나의 장치로 작동한다. 그 점에서 이번 공연은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의 미학을 밀어붙이는 동시에, 동시대 무용이 앞으로 어떤 감각을 다루어야 하는지를 예고하는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연예술창작산실 비평지원 안내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로고

웹진 댄스포스트코리아는 2026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연예술창작주체지원사업'으로부터 제작비 일부를 지원받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