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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우리는 어떤 시간 위에 서 있는가: 휴먼스탕스 〈이윽고〉

※ 이 글은 아르코·대학로예술극장 블로그에 함께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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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125-2 (2026.1.20.) 발행


글_ 한성주(본지 에디터)


 

사진제공_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흐르지만, 그 밀도는 저마다 다르다. 2025 창작산실 올해의 신작에 선정된 작품으로 26년 1월 9일부터 11일까지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된 휴먼스탕스의 신작 <이윽고>는 순풍과 역풍이 교차하는 시간의 항로처럼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라는 거대한 조류 속에서 인간이 마주하는 관계의 소실과 회복을 다룬다. 안무가 길홍(조재혁)은 한국 춤의 정서적 뿌리 위에 현대적인 조형미를 얹어, 우리가 결국 마주하게 될 운명적인 순간을 무대 위에 펼쳐 보였다.


객석에 불이 꺼지기 전, 무대는 이미 시작된다. 관객이 자리를 찾는 동안 상수 뒤편에서는 한 무용수가 책상을 중심으로 이미 움직이고 있다. 그는 무대 전체를 사용하지 않고 책상 주변이라는 극히 제한된 공간 안에서만 움직인다. 테이블을 중심으로 반복되는 동선은 확장이나 진전을 거부하며 마치 과거의 한 지점에 붙들린 몸처럼 보인다. 이 무대에서 시간은 출발선이 아니라 이미 누적된 상태로 존재한다. 잠시 후 남성 무용수가 등장해 하수 앞쪽에 놓인 나무판자 위에 천천히 몸을 눕힌다. 객석 안내 방송이 흘러나오고 관객이 자리를 정리하는 동안 그는 허공에 스프레이를 뿌리며 무대를 천천히 돌아다닌다. 마치 공연을 시작하기 전 무대를 정리하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한다. 공연이 이미 시작된 것인지, 아직 준비 중인 것인지 경계가 분명하지 않다. 무대 위의 시간과 객석의 시간이 겹쳐 지면서 관객은 자연스럽게 그 사이에 놓이게 된다.

 

사진제공_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잔잔한 음악과 함께 무용수 한 명이 등장해 은은한 파란 불빛이 나는 향로를 들고 좌우로 스윙한다. 시계추의 메트로놈처럼 시간의 규칙성이 무대 위에 시각화된다. 이 단순한 반복은 곧 다수의 무용수로 확장된다. 동선은 좌우로만 제한되어 향이 타며 길을 밝히는 의식처럼 보인다. 앞으로 나아가지도, 뒤로 물러서지도 못한 채, 오직 옆으로만 흔들리는 몸들. 이는 시간의 흐름이라기보다 시간을 견디는 태도에 가깝다. 지나가야만 하는 길을 비추지만, 그 길 위를 직접 걷지는 않는 상태다.


머리가 긴 무용수가 등장하면서 무대의 기류는 미묘하게 달라진다. 머리부터 몸을 천천히 쓸어내리는 움직임은 외부의 흐름과 거리를 두고 스스로의 존재를 확인하려는 제스처처럼 보인다.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 속에서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으려는 안무가의 시각이 드러나는 지점이었다. 무대 중앙의 남녀 듀엣에서 두 사람은 팔을 포개고 움직임을 따라 하며 자주 엉킨다. 위아래로 팔을 흔드는 장면에서는 새가 퍼덕이며 날아가고 싶어 하는 이미지가 강하게 떠오른다. 독립된 두 개의 몸이 아니라, 서로의 시간을 끌어안고 충돌하는 관계로 읽힌다. 이윽고 무용수들이 향을 흔들며 하나씩 사라지고 무대에 남겨진 것은 머리가 긴 무용수 한 사람뿐이다. 관계의 시간은 흩어지고 개인의 시간이 무대 위에 홀로 남는 풍경은 고독하면서도 숙명적이다.

  

사진제공_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사진_ (c)어썸이강철

 

암흑 이후, 무대에는 길처럼 하나의 조명이 생긴다. 나무판자를 든 무용수들이 한두 명씩 등장하고 흩어져 있던 조명은 점차 모여 사각형을 이룬다. 총 열 개의 나무판자가 무대 위에 놓인다. 이 판자들은 서로 나란히 서기도 하고 회전하기도 한다. 바람개비처럼 회전하는 움직임은 시간을 되감는 듯한 인상을 주며 과거와 현재를 교차시킨다. 판자들이 이어 붙여져 사각형을 이룰 때, 그 안에서 펼쳐지는 춤은 마치 시간의 틀 안에 갇힌 몸처럼 보인다. 판자는 결국 인간이 스스로를 가두고 살아가는 시간의 프레임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이후, 검은색 액자프레임이 등장하며 또 하나의 이미지가 만들어진다. 프레임을 중심으로 좌우에 선 무용수들은 거울처럼 동일한 동작을 반복한다. 이후 한 명의 무용수만이 남아 프레임 안에서 살풀이를 춘다. 액자프레임은 경계이자 사회가 규정한 시선의 틀처럼 느껴진다. 자유로운 몸짓조차도 결국은 어떤 틀 안에서만 허용되는 현실을 은유하는 듯하다.


이후 작품은 급격히 전환된다. LED 조명, 비트 있는 음악, 세미 정장의 블랙 의상. 과거의 시간에서 현재, 혹은 미래로의 이동이다. 이전 장면이 ‘한’과 축적된 시간의 무게를 품고 있었다면, 이때부터는 움직임은 단절되고 각진 몸, 기계처럼 반응하는 신체를 보여준다. 목을 좌우로 흔들고 팔은 비트에 맞춰 정확히 끊긴다. 이때 무용수들이 하나둘 바지를 벗는 장면은 사회적 지위와 페르소나를 상징하는 의복을 벗어 던짐으로써 현대 문명 속에서 거추장스럽게 덧입혀진 가식을 제거하고 인간 본연의 날것으로 돌아가겠다는 의지처럼 보인다. 머리에 전구를 가득 단 인물은 정보 과잉 속에서 머리만 비대해진 현대인을 풍자하는 듯하면서도 어둠 속에서도 사유를 멈추지 않는 인간의 뇌를 형상화한 듯한 인상을 남겼다.


강한 바람 속에서 무용수들이 휘날리듯 움직이는 장면은 작품의 인상을 한층 또렷하게 남긴다. 무대 위에는 여러 대의 선풍기가 동시에 작동하며 바람은 일정한 방향이나 속도를 유지하지 않는다. 그 바람은 때로는 사막에서 불어오는 모래바람처럼 거칠고 건조하게 느껴지고 때로는 몸의 균형을 무너뜨릴 만큼 직접적으로 무용수들을 밀어낸다. 무용수들은 이 바람을 정면으로 견디거나 몸을 맡긴 채 흘러가기도 하며 저항과 순응 사이를 오간다. 이 장면에서 바람은 단순한 효과가 아니라 통제할 수 없는 시대의 흐름처럼 작동한다. 무용수의 몸은 그 흐름에 맞서 버티려다 흔들리고 다시 흐름에 몸을 실은 채 방향을 바꾼다. 적극적인 저항도, 완전한 순응도 아닌 그 중간의 태도는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인간이 취할 수 있는 현실적인 선택처럼 보인다.

 

사진제공_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휴먼스탕스의 〈이윽고〉는 분명 많은 것을 말하고자 하는 작품이다. 시간, 관계, 전통과 현대, 개인과 사회, 유한성과 지속성까지. 한 편의 공연 안에 담기엔 다소 과할 정도로 많은 메타포와 오브제를 쏟아낸다. 그만큼 장면과 상징이 풍부하고 때로는 과잉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시간을 단순화할 수 없듯 이 작품 역시 하나의 메시지로 정리되기가 힘든 것 같다. 모든 장면을 붙잡을 수는 없지만 우리는 각자의 시간 속에서 이 공연을 지나온다. 이 작품은 우리에게 묻는다. 수많은 우연과 필연을 지나 ‘이윽고’ 마주하게 된 당신의 현재는 안녕한가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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