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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완전한 아름다움이 남긴 불편한 질문: 언플러그드바디즈 컴퍼니〈JASON Project〉

※ 이 글은 아르코·대학로예술극장 블로그에 함께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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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126-1 (2026.2.5.) 발행


글_ 한성주(본지 에디터)

사진제공_ 언플러그드바디즈 컴퍼니, 한국문화예술위원회



18회 공연예술창작산실 올해의신작에 선정된 언플러그드바디즈 컴퍼니〈JASON Project〉(안무 김경신)는 인류의 기원과 미래를 묻는 작품이 아니라, 인간이 스스로를 어떻게 실험해 왔는지를 무대 위에 드러내는 구조적 알레고리다. 2026년 1월 24–25일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선보인 작품은 인류의 기원을 묻는 질문보다 인간이 세계와 맺어온 방식에 더 가까운 문제를 던진다. 안무가가 설정한 가상의 존재 JASON은 새로운 생명체라기보다 인간을 비추기 위해 고안된 장치에 가깝고 무대는 이야기의 공간이 아니라 생명과 문명, 폭력과 진화가 동시에 시험 되는 거대한 실험실로 기능한다.


관객이 입장할 때부터 막은 올라가 있고 상수 전면의 책상 위에는 천에 덮인 채 웅크린 검은 존재가 놓여 있다. 중앙에 정렬된 다섯 개의 빈 의자는 앉을 수 없는 구조로 남아 살아 있는 몸이 빠져나간 자리처럼 보인다. 관객은 이미 진행 중인 실험을 바라보는 위치에 놓인다. 암전 이후, 검은 정장을 입은 관리자 형태의 무용수가 등장해 조명을 갈아 끼우고 모래시계를 뒤집는다. 이 연출은 진화라는 거대한 서사가 자연의 섭리가 아니라, 인위적으로 조작되고 관리되는 하나의 프로젝트임을 암시하며 작품의 주제 의식을 예고한다.



검은 전신 타이츠를 입은 무용수들이 손에 든 후레쉬로 살색의 몸들을 비출 때, 무대에는 빛의 궤적이 먼저 그려지고 그 뒤를 몸이 따라간다. 무용수들은 스스로 방향을 선택하기보다 비추어지는 빛에 반응하듯 갑자기 속도를 높이거나 때로는 붙잡힌 것처럼 느리게 움직인다. 이때 조명은 배경이 아니라 몸을 조종하는 하나의 힘과 시선처럼 작동한다. 조명을 단순한 무대 장치가 아닌 독립된 퍼포먼스로 격상시킨 장면들은 안무가가 말한 ‘라이팅 내러티브 코리오그래피’가 구체적인 감각으로 체감되는 지점이다. 음악이 칼 젠킨스(Jenkins)의 〈팔라디오 리이매진드(Palladio Reimagined)〉로 전환되면서 무대는 더욱 긴장된 실험실의 분위기를 띤다. 날카로운 현악 리듬 위에서 무용수들은 화분, 지구본, 뼈 조각을 하나씩 비추는데 그 방식은 마치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기보다 표본을 검사하듯 조심스럽다. 이 장면은 생명이 자연스럽게 태어나는 순간이라기보다 인공적으로 배치되고 관찰되는 탄생의 과정처럼 보인다.


아담과 이브를 연상시키는 남녀 무용수의 움직임에서 보여준 손끝 접촉은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아담의 창조」를 떠올리게 하며 생명이 탄생하는 찰나의 긴장을 시각적으로 소환한다. 그러나 이 접촉은 따뜻한 창조의 제스처라기보다 무엇인가가 작동되기 직전의 불안한 상태처럼 보인다. 곧이어 관리자의 총성과 붉은 카페트가 이 장면을 덮어버리면서 이 탄생은 축복이 아니라 실험의 일부였음이 드러난다. 김경신 안무가가 인터뷰에서 말한 것처럼 탄생은 완성된 시작이 아니라 언제든 중단되고 실패할 수 있는 과정으로 제시된다. 다만 이 장면에서 피를 닦은 천에 인간 형상이 남게끔 제시하는 연극적 장치는 질문으로 남아야 할 상징을 지나치게 고정된 의미로 밀어붙인다는 점에서 다소 과잉된 친절로 느껴졌다. 해석의 여백이 줄어들면서 관객이 스스로 의미를 구성할 공간이 제한되기 때문이다.


이 폭력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무대에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음악이 흐르기 시작한다. 차이콥스키의 ‘꽃의 왈츠’가 흐르는 동안 검은 무용수들이 바쁘게 무대를 정리하고 파괴의 흔적을 처리하는 장면은 이 작품이 가진 아이러니의 정점을 이룬다. 우아하고 조화로운 음악 아래에서 벌어지는 이 불쾌한 움직임들은 우리가 역사 속에서 얼마나 자주 폭력을 미화하고 질서로 포장해 왔는지를 떠올리게 한다. 아름다운 문명 속에서 작동하는 잔혹함. 그것이 바로 이 장면이 보여주는 현대성이다. 


후반부의 제의적 군무는 서사적 직접성을 압도하는 움직임의 힘을 보여준다. 무대 앞에 나열된 골반과 척추뼈 등은 인류가 남긴 흔적이자 우리가 지나온 진화의 잔재이며 그 주위를 에워싼 무용수들의 거칠고 반복적인 스텝은 멸망해 가는 지구를 향한 애도처럼 읽힌다. 쿵쿵거리는 비트와 내레이션이 교차하는 가운데 펼쳐지는 이 군무는 인간 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 마치 지구의 관점에서 우리를 바라보게 만든다. 후반부 라이팅 퍼포먼스에서 등장하는 가위, 칼, 총 같은 도구들은 우리가 만들어낸 기술과 폭력이 세계를 어떻게 규정해 왔는지를 시각적 몽타주처럼 제시한다. 마지막 장인 ‘Wonderful World’에서 여러 행성의 등장은 JASON이 도달한 세계가 미래인지 과거인지 혹은 또 다른 반복의 시작인지를 모호하게 남긴다. 이 모호성이 안무가가 말한 ‘불완전한 아름다움’과 맞닿는다.



결국 〈JASON Project〉는 인간의 본질을 보여주기보다 인간이라는 개념이 얼마나 불안정한지 드러낸다. 인간은 세계를 만들어 왔지만, 그 세계 속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시험하고 위험에 빠뜨려 온 존재이기 때문이다. 공연은 그 사실을 신체, 빛, 소리 등의 구조로 조직해 보여주며 무용이 어떻게 철학적 질문을 물질화할 수 있는지를 나타냈다. JASON은 새로운 존재가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 온 인간의 자화상이며 이 실험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이 이 작품이 남기는 가장 불편한 진실이다. 그리고 바로 그 미완성의 상태가 오늘 우리가 서 있는 자리와 닮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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