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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제된 완벽함에서 깨어나는 감정 정형일 Ballet Creative 〈Sleeping Beauty ‘AWAKEN’〉

※ 이 글은 아르코·대학로예술극장 블로그에 함께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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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126-2 (2026.2.20.) 발행


글_ 한성주(본지 에디터)

사진제공_ 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26212일부터 14일까지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된 정형일 Ballet CreativeSleeping Beauty ‘AWAKEN’은 고전 발레 잠자는 숲속의 미녀를 유전자가 권력이 되는 미래 사회로 옮겨온 작품이다. 과학 기술이 인간의 탄생과 계급을 설계하는 사회를 배경으로 완벽한 유전자로 태어난 오로라와 그렇지 않은 조건에서 태어난 왕자의 관계를 통해 설계된 완벽함과 인간성의 대립을 보여준다.

 


통제의 미학: 대칭적 구조와 획일화된 신체

 

무대는 거대한 구형 오브제와 직선 구조물, 차가운 색감의 조명으로 구성되어 미래적 공간을 형성한다. 흰 가운을 입은 인물들이 동일한 간격으로 서서 팔을 수평으로 뻗고 직선적으로 움직이는 장면은 유전자 사회의 통제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군무 구성은 전체적으로 대칭적이며 움직임은 마치 하나의 시스템 안에서 프로그램된 듯 흘러간다. 신체가 하나의 인격이라기보다 시스템 안에서 배열되는 대상으로 읽힌다.

 

이러한 통제의 분위기 속에서 공연 중반, 고양이 형상의 무용수와 흰 가운을 입은 인물의 듀엣이 등장한다. 이 장면은 고전 잠자는 숲속의 미녀3막에 장화 신은 고양이가 떠오른다. 원작에서는 축하 장면의 일부이지만 이번 작품에서의 고양이는 공상적 공간 한가운데에서 과학자와 마주한다. 듀엣은 날카로운 나이프 형태의 구조물 아래에서 진행되며 생명 창조와 통제의 현장을 연상시킨다. 고양이는 실험체의 은유처럼 보이기도하고 인간 이전의 본능적 상태를 상징하는 존재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 이미지가 이후 서사에서 반복되거나 확장되지는 않는다. 한 상징으로 제시되지만, 극 전체 구조 안에서 지속적으로 작동하지는 않았다.

 


안무가는 인터뷰에서 유전자 조작과 대리모, 계급화된 사회 구조 등 동시대적 이슈를 작품의 배경으로 삼았다고 밝혔다. 기술의 완벽함보다 인간의 감정과 자유가 더 본질적이라는 문제의식을 드러낸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서사 구조에서도 드러난다. 이 작품이 다른 잠자는 숲속의 미녀와의 큰 차별점은 서사의 역전이다. 원작에서 잠든 오로라를 깨우는 존재가 왕자였다면, 여기서는 오로라가 왕자를 찾아 깨운다. 이는 수동적 여성 서사를 전복하는 시도이자, 주체로서의 오로라를 재구성하려는 의도로 읽힌다.

 

정형일은 동시대 컨템포러리 발레 계열 안에서 음악을 예민한 감각으로 시각화해온 안무가로 평가받아 왔다. 이번 작품에서도 음악사용의 변주는 중요한 장치로 작동한다. 원작에서 오로라의 테마로 사용되던 음악을 왕자의 움직임에 배치하거나, 장면의 전환에 따라 음악의 성격을 변형하는 방식은 단순한 차용이 아니라 서사의 재배치를 드러내는 시도처럼 보인다. 음악은 인물의 감정 상태를 설명하기보다는 캐릭터의 위치 변화를 감각적으로 체험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특히 오로라의 움직임이 점차 결단력 있는 질감으로 변화하는 후반부에서는 음악의 흐름 또한 이전과 다른 에너지로 전환되며 신체와 긴밀하게 맞물린다. 이러한 구성은 발레 마니아에게는 원작에 대한 기억을 환기시키는 장치로, 일반 관객에게는 서사의 변화를 직관적으로 감지하게 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깨어남은 완성인가, 또 다른 질문인가

 

AWAKEN이라는 제목처럼 작품에서 말하는 각성은 완결된 승리라기보다 또 다른 불안의 시작처럼 보인다. 오로라가 감정의 힘을 깨닫고 결단하는 순간에도 과학과 권력의 구조는 여전히 무대 공간을 점유하고 있다. 거대한 구형 오브제는 끝까지 존재하며 통제의 세계가 완전히 해체되지는 않는다.

 

이번 공연은 동시대적 질문을 던지며 여러 시도를 보여주었다. 무대 미학과 장면 구성, 고전 어법의 재배치 등에서 실험성을 보여준다. 다만 상징과 서사가 보다 압축적으로 조직되고 러닝타임이 더 타이트하게 구성되었다면 감정의 각성은 더욱 강렬하게 다가왔을 것이라 생각한다.

 

Sleeping Beauty ‘AWAKEN’는 고전을 단순히 변주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발레라는 형식 안에서 완벽한 인간이 무엇인지에 대해 사유하게 한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작품을 보고 난 뒤 하나의 질문이 남는다. 우리는 설계된 완벽함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불완전함 속에서 피어나는 감정을 선택할 것인가. 그리고 그 선택은 과연 스스로의 의지에서 비롯된 것인가. 작품은 그 물음을 완전히 닫지 않은 채 무대 위에 남겨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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