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아르코·대학로예술극장 블로그에 함께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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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128-1 (2026.4.5.) 발행
글_ 한성주(본지 에디터)
사진제공_ 한국문화예술위원회 ⓒSang Hoon Ok

우리는 언제부터 스스로를 감시하기 시작했을까. 우리의 시선은 외부를 넘어 어느새 스스로를 규율하는 장치가 되어 있다. 2025 공연예술창작산실 ‘올해의 신작’ 작품인 수 댄스컴퍼니의 〈개한테 물린 적이 있다.〉(3월 6일-8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는 유용선의 시 〈개한테 물린 적이 있다〉를 원작으로 한다. 원작에서 개에게 물린 사건은 단순한 사고를 넘어,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존재에 의해 일상이 무너지는 경험으로 이어진다. 이후 화자는 다시 물리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극도의 긴장 상태에 두게 된다. 원작이 이러한 공포가 일상으로 확장되는 내면의 균열을 그려낸다면, 안무가 최수진은 이를 ‘파놉티콘’이라는 감시 구조로 전환한다. 이는 외부의 위협이 개인의 내면에서 작동하는 방식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감시의 구조로 읽힐 수 있다. 과거의 상처는 내면에 보이지 않는 감시탑을 세우고 타인의 시선에 대한 과잉 반응과 자기 검열의 상태를 만들어낸다. 스스로를 감시하며 살아가는 현대인과 맞닿아 있다. 이 작품은 감시가 외부의 시선에서 개인의 내면으로 이식되는 과정을 다루며 신체로 드러낸다. 이러한 구조는 원작에서 드러나는 불안의 확장과 맞물리며 일상의 공간이 위협적으로 감각되는 상태로도 읽힌다.
작품은 한 명의 무용수가 정면을 응시하며 천천히 움직이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어 뒤편의 무용수들이 그를 향해 접근하며 압박하듯 손을 뻗고, 어느 순간 그의 움직임을 따라 하기 시작한다. 개인과 집단의 경계는 흐려지고 몸은 점차 동일한 패턴으로 수렴된다. 이 장면에서 무용수의 신체는 릴리즈 테크닉을 기반으로 중력에 맡겨지듯 흘러내린다. 그 흐름은 자유롭기보다 어딘가 억제된 긴장을 품고 있다. 단순한 신체 이완이 아니라, 이미 통제된 상태에서의 제한된 이완처럼 보인다. 무용수들이 상체 중심의 움직임으로 군집을 형성할 때 뒤편에 검은 옷을 입은 무용수들이 그들을 내려다본다. 이 장면은 감시의 시각화를 넘어서, 감시가 이미 일상에 스며든 상태를 암시한다. 마치 우리의 삶 곳곳에 존재하는 CCTV처럼 시선은 특정한 주체 없이 공간 전체에 퍼져있다.


이후 반원형으로 파놉티콘 구조로 배치된 구조물 위에 선 무용수들은 아래를 내려다보며 감시하고 바닥의 무용수들은 서로를 경계하며 움직인다. 서로를 경계하듯 한 몸들이 어느 순간 음악의 비트에 맞춰 동일한 움직임으로 수렴된다. 반복되는 전자음과 일정한 리듬 속에서 신체는 점차 동일한 패턴으로 길들여진다. 이때의 반복은 단순한 군무의 형식이 아니다. 동일한 동작의 미세한 변주를 통해 구축되는 반복의 미학은 관객에게 최면적인 감각을 제공하는 동시에 통제된 환경 속에서 신체가 어떻게 규격화되는지를 보여준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움직임의 일치에 그치지 않는다. 처음에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움직이던 몸들이 서로를 의식하는 순간, 차이가 점차 희미해지고 일정한 방향으로 정렬된다.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온 존재들이지만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비슷한 방식으로 반응하게 되는 모습이 겹쳐 보인다. 이는 감시가 외부에서 주어지는 통제에 머무르지 않고,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 속에서 강화되고 반복되는 구조임을 드러낸다.
마지막 장에서 구조물 상단에서 초록색 분장을 한 한 인물이 천천히 아래로 내려온다. 인간인지, 혹은 다른 존재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이 인물은 위태로운 균형 속에서 조심스럽게 바닥으로 발을 내딛는다. 그의 느리고 불안정한 움직임은 묘한 긴장을 만들어낸다. 이후 결국 무용수들 사이로 스며든다. 이 장면은 감시가 특정한 위치에 고정된 권력이 아니라, 내부로 침투해 결국 우리와 구별되지 않는 상태에 이르렀음을 드러낸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무용수들의 시선이 객석을 향한다. 감시의 구조가 무대 밖으로 확장되는 순간이다. 관객은 더 이상 관찰자가 아니라, 감시 구조의 일부로 편입된다. 이때 떠오르는 것은 조지 오웰이 그려낸 감시 사회의 이미지다. 언제 어디서든 시선에 노출된 상태 그리고 그 시선을 의식하며 스스로를 검열하는 존재. 작품은 이를 직접적으로 재현하기보다 이미 그러한 상태에 놓인 우리의 모습을 환기시킨다.

〈개한테 물린 적이 있다.〉는 작품이 다루고 있는 거대한 주제를 풀어내는 방식에서 몇 가지 간극이 느껴졌다. 우선 원작 시의 제목이 지닌 상징성이 무대 위 신체 언어로 충분히 구체화되지 못한 지점이다. ‘개’와 ‘통제된 존재’라는 개념적 유추는 논리적 설득력을 갖추었으나, 관객이 직관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신체적 이미지로의 전이는 다소 완만한 형태에 머문 느낌이다. 이러한 상징의 간극은 홍보 이미지와의 관계에서도 포착된다. 포스터 속 산업용 덕트와 결합 된 강렬한 신체 이미지는 작품에 대한 기대감을 고조시키는 중요한 단서가 되지만, 실제 무대에서 이러한 물질적 장치가 생략됨으로써 이미지와 공연 사이에 거리감을 만들었다. 또한, 군무 장면에서 강조된 무용수들의 강한 호흡 소리는 하나의 장치일 수도 있지만, 때로 움직임의 유려한 흐름을 앞지르며 감각적 몰입에 변수로 작용하는 면이 있었다. 감시와 통제라는 묵직한 주제 의식이 장면의 유기적인 구성과 신체적 이미지로 더욱 긴밀하게 응집되었더라면 하는 지점이 남으며 확장된 담론에 상응하는 구체적인 무대 구현에 대한 고민 역시 향후 작업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질 필요가 있어 보인다.
이 작품은 감시가 외부의 권력이 아니라 개인의 내면과 우리의 일상 속에서 작동하고 있음을 환기시키며 동시대의 문제를 신체로 사유하려는 시도를 보여준다. 결국 무대 위의 ‘그들’은 곧 ‘우리’이며 관객 또한 그 시선의 구조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지 않다. 그 점에서 이 작품은 어떤 해답을 제시하기보다 하나의 불편한 인식을 남긴다. 우리는 정말 감시에서 벗어나고 싶은 것인지, 혹은 이미 그 상태에 익숙해진 것은 아닌지. 이러한 질문을 던지는 순간조차, 우리는 여전히 그 구조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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