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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되지 않는 잔여감, 질문으로 돌아온 무대: 전복된 해부학적 풍경(SAL)〈X〉

※ 이 글은 아르코·대학로예술극장 블로그에 함께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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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128-1 (2026.4.5.) 발행


글_ 한성주(본지 에디터)

사진제공_ 한국문화예술위원회 ⓒSang Hoon Ok



2025 창작산실 올해의 신작 무용 부문 선정작인 전복된 해부학적 풍경(SAL)의 〈X〉(2026.3.19.-22.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는 공연이 시작되기 전부터 관객의 감각을 교란하며 작품만의 세계를 구축한다. 객석 곳곳에 흩어져 있는 인물들은 관객의 인지 체계를 뒤흔든다. 미라처럼 붕대를 감은 채 무대에 서 있는 남성, 만삭의 몸으로 소리 지르며 불안정하게 배회하는 임산부, 시체로 보이는 대상을 가방에 넣어 옮기는 인물, 시끄럽게 극장을 배회하는 커플, 개의 형상을 연상시키는 존재까지. 이들은 명확한 서사 없이 등장하지만, 공통적으로 기존의 인식과 질서의 범주에서 벗어난 상태를 보여준다. 이처럼 쉽게 규정되지 않는 상태는 자연스럽게 하나의 기호를 떠올리게 한다. 작품 제목인 〈X〉이다. ‘X’는 특정한 값을 의미하지 않는 미지수이자 무엇인가가 지워진 자리이며 동시에 교차하는 지점이다. 인간이지만 인간이라 단정할 수 없는 존재들, 인간이라는 범주 자체가 이미 무력화된 상태. 관객은 이들을 이해하기보다 이해할 수 없다는 감각 속에 놓이게 된다. 


암전 이후 본격적으로 펼쳐지는 무대는 이러한 혼란을 더욱 구체적인 이미지로 밀어붙인다. 주유건을 통해 무용수의 입에 기름을 주입하는 장면은 인간의 몸에 음식이 아닌 연료가 공급되는 전환을 통해 신체를 생명 유지의 주체가 아닌 작동을 위한 장치로 바꿔 놓는다. 인간이 점차 기능적 존재로 환원되는 현대 사회의 단면을 드러내며 생명성과 비생명성의 경계를 의도적으로 붕괴시키는 순간으로 읽힌다. 이러한 장면은 영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속 ‘워보이’들이 자신의 몸을 기계 부품처럼 여기고 연료와 피를 주입받으며 작동하는 존재로 살아가는 설정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인간의 신체를 생명체가 아닌 자원이나 동력으로 바라보는 디스토피아적 시각은 이 작품에서도 유사하게 감지된다. 결국 효율과 생산성 중심의 구조 속에서 신체가 어떻게 기능화되고 감각이 최소화되며 존재가 성과의 단위로 환원되는지를 보여주며 이를 직접적으로 비판하기보다 극단적인 이미지로 밀어붙임으로써 관객이 그 상태를 감각적으로 체험하도록 만든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임산부의 행동은 더욱 강한 긴장을 만들어 낸다. 임산부는 기존의 윤리적 기준에서 벗어난 행동을 하며 관객이 익숙하게 받아 들여온 가치 체계를 흔든다. 만삭의 몸으로 배회하며 흡연하고, 불안정한 상태를 드러내는 모습은 생명의 보호와 유지라는 관념을 전복시킨다. 이 장면은 단순한 충격을 넘어, 우리가 생명이라고 믿어온 개념이 특정한 규범 위에 놓여 있음을 드러낸다. 그리고 그 규범이 무너지는 순간, 그 신체는 생명의 시작점이 아니라 생명과 비생명의 경계가 실험되는 장소로 변모한다.


이어지는 출산의 장면은 이러한 전환을 더욱 극단적으로 밀어붙인다. 이 장면에서 출산은 자연적 생성이라기보다 일종의 공정이나 합성 과정처럼 보인다. 태어나는 존재는 인간이라고 단정하기 어려운 형태로 제시되며, 관객에게 강한 이질감을 남긴다. 이는 기술과 결합한 미래의 생명이 과연 우리가 알고 있는 생명의 범주 안에 포함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다만 이 장면은 그 의미가 비교적 직접적으로 제시되면서 이전까지 축적된 모호성과 긴장을 다소 단순화시키는 지점으로도 작용한다. 이미지가 갖는 상징적 여지가 줄어드는 순간, 관객의 해석은 확장되기보다 특정 방향으로 수렴되기 때문이다. 일부 장면에서는 감각적 충격이 사유의 확장으로 이어지기보다 이미지 자체에 머무는 인상을 남기기도 한다.


후반부 행렬 장면은 일정한 간격으로 대각선 이동을 반복하는 무용수들의 움직임을 통해 패션쇼의 런웨이를 연상시키는 동시에, 컨베이어 벨트 위를 이동하는 물체처럼 보인다. 신체는 더 이상 개별적인 존재가 아니라 전시와 소비의 대상, 혹은 생산 체계 속의 부품으로 기능한다. 동일한 리듬과 간격 속에서 움직이는 몸들은 하나의 흐름으로 환원되며, 인간이 시스템 안에서 어떻게 균질화되고 있는지를 시각적으로 드러낸다. 의상의 변화 또한 이러한 흐름을 강화한다. 초반 각기 다른 개성을 지니고 등장했던 무용수들은 점차 검은 가죽 의상으로 통일되며 하나의 집단적 이미지로 수렴한다. 이 변화는 개인이 더 이상 고유한 존재로 보이지 않고, 비슷한 모습으로 정렬된 상태로 바뀌어 가는 과정을 보여 준다. 결국 인간은 시스템에 편입된 채 ‘대체 가능한 존재’처럼 다뤄진다. 이때 ‘X’는 개별성이 지워진 자리를 가리키는 기호로 읽힌다. 이름도, 감각도, 고유성도 사라지고 남는 것은 오직 기능뿐이다.



전복된 해부학적 풍경(SAL)의 〈X〉는 전반적으로 관객에게 친절한 서사를 제공하지 않는다. 작품은 명확한 이야기 구조를 제시하기보다, 파편화된 이미지와 감각적 자극을 통해 관객이 스스로 의미를 구성하도록 유도한다. 이러한 방식은 때로 관객에게 부담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제한된 시간 안에서 다양한 이미지와 감각을 수용하고 이를 연결하는 과정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구성은 안무가가 지속적으로 탐구해 온 작업 방식과도 맞닿아 있다. 배진호 안무가의 작업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공허함, 폭력성, 불안과 같은 감정들은 단순한 부정성이 아니라, 인간의 본능적 층위에 가까운 감각들이다. 그는 이러한 감정들을 배제하기보다 하나의 재료로 삼고 그 안에서 다시 버텨내는 방식과 가능성을 탐색한다. 그렇기에 작품에서 드러나는 강한 이미지들은 단순한 충격이나 자극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 이면에는 이러한 상태를 어떻게 견디고, 어떤 방식으로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 함께 놓여 있다. 일부 장면에서 느껴지는 낯섦과 불편함 역시, 그 질문을 회피하지 않기 위한 방식으로 읽을 수 있다.


결국 〈X〉는 인간과 기계, 생명과 비생명의 관계를 단순한 대립 구도가 아닌, 상호 침투와 변형의 과정으로 바라본다. 이 작품이 그려내는 세계는 낯설고 불편하지만, 동시에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과 분리되어 있지 않다. 빠르게 변화하는 기술 발전, 기능화된 인간, 반복과 효율에 의해 조직된 삶의 구조는 이미 현재의 일부로 존재하고 있다. 작품은 이러한 상태를 과장하거나 설명하기보다, 감각적으로 체험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 체험을 통해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여온 ‘인간’이라는 개념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공연이 끝난 이후에도 쉽게 정리되지 않는 감각이 남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명확한 결론을 제시하지 않지만, 대신 우리가 서 있는 현재의 위치를 낯설게 드러내며 질문을 남긴다. 그리고 그 질문은 단순히 무대 위에 머무르지 않고, 관객 각자의 감각 속에서 계속해서 작동한다. 결국 이 작품에서 ‘X’는 하나의 답이 아니라 질문의 형식이다. 그리고 그 질문은 무대 위에 머무르지 않고 객석을 지나 지금 우리의 감각으로 확장된다. 작품이 끝난 이후에도 쉽게 정리되지 않는 이 잔여감은 어쩌면 이 작품이 가장 정확하게 남기는 감각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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