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템포러리댄스의 특성 중 하나는 장르의 경계를 넘고 다양한 분야의 협력을 지향하는 것이다. 우리 무용계에서 이러한 특성은 1970년대 말부터 동인무용단체를 중심으로 창작공연이 활성화되면서 나타났다. 1980~90년대 창작의 중심이었던 대한민국무용제와 “전통의 재창조”류 공연이 유행하자 시인 출신의 대본작가, 마당극 분야의 연출가들이 안무가와 파트너십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IMF 이후 2000년대부터 동문단체들이 해체되면서 창작공연이 축소화되고, 무용공연만 전담하는 대본가와 연출가, 혹은 두 역할을 소화하는 무용연출가들이 등장했다. 그리고 2010년 이후에 지자체와 중앙정부의 창작지원이 활성화되자 제작체계에 또 다른 변화가 발생했는데, 창작의 개념 잡기에서부터 아카이브 기록에 이르기까지 공연의 A에서 Z를 전담하는 드라마투르기의 등장이다. “춤의 드라마투르기를 말한다” 시리즈는 최근의 드라마투르기, 그리고 과거 이와 유사한 역할을 했던 대본/연출가를 초청하여 그들의 달라진 위상과 기능을 짚어보는데 목적이 있다. 첫 번째 주인공은 이 분야의 2세대에 해당하는 대본연출가 이재환이다.
Q. 무용공연에서 대본이나 연출 작업이 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
A. 무용은 오감을 비롯하여 몸으로 표현하는 예술이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부분이 준비되어야 하는 장르이다. 대본을 쓰는 것은 작품의 컨셉을 세우는 작업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다른 여타의 예술보다 무용분야는 마음과 귀를 열고, 눈의 시야를 넓히는데 투자하는 사람이 상대적으로 적은 것 같다. 따라서 몸을 움직이는 시간을 조금 줄이더라도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갖고 공부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가장 이상적인 작업방식은 것은 안무자 스스로 자신이 만들고자하는 작품에 대한 글을 어떤 형식이 됐든 일단 써서 나에게 보여주고, 내가 그 글을 수정보완하고, 서로 조정해가며 진행하는 것이다. 사실 무용에는 대본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대중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팸플릿, 보도자료 등의 매체를 위해 대본이 요구된다. 그런 대본이 오히려 작품에 대한 이해를 더 어렵게 만드는 경우가 있다. 때문에 거창한 대본보다는 안무자가 자기 작품의 의도나 목적을 명시하는 정도의 글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Q. 무용공연에 참여하게 된 계기는?
A. 창무회의 정기공연을 맡으면서 참여하게 되었다. 김은희의 작품이었다. 소극장에서만 공연을 하다가 대극장 무대에 처음 작품을 올리게 되자 연출이 필요했던 것이다.
Q. 김은희와는 어떤 인연이 있었나?
A. 나는 대학에서 연극을 전공했다. 80년대 말, 90년대 초까지만 해도 남성무용수가 드물었다. 같은 극단에서 활동하던 선배, 동료들이 무용공연에 참여하는 경우가 자주 있었다. 그러다 보니 무용가들과 안면을 트게 되고, 그런 인연이 작품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Q. 당시에도 연출과 대본 모두를 맡았는가?
A. 나는 연출을 맡았고 시인으로도 활동하던 박희준 선생이 대본을 썼다.
Q. 자신에게 영향을 준 사람은?
A. 연극 활동을 할 때부터 리얼리즘적인 작품보다는 퍼포먼스 등의 시각적 볼거리가 있는 작품을 주로 했다. 영향을 준 스승을 꼽자면 강만홍과 이병훈이다. 퍼포먼스 작품을 연출하고 직접 출연도 했던 강만홍 선생은 관객과의 소통, 언어적 표현, 볼거리 측면을 강조하셨다. 반면 연극연출가로 1세대 무용연출가라고 할 수 있는 이병훈 선생은 몸짓을 통한 표현과 작품 전반에서의 잔재미를 강조하셨다.
Q. 연극과 무용의 경계에서 정체성 혼란은 없었는가?
A. 당시 연극종사자들이 무용공연을 하면서 일하는 방식과 장르별 차이에서 오는 괴리감 때문에 그만 두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나는 어떤 ‘의무감’으로 이 일을 시작했기 때문에 내 의견을 강요하거나 나의 방식을 고집하지 않았다. 오히려 안무가가 나에게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거기에 맞춰가려고 노력했다. 그렇기 때문에 특별히 정체성의 혼란이나 마찰을 겪지는 않았다.
Q. 자신만의 특징이 있다면?
A. 춤이라는 장르가 애매하고 추상적이기 때문에 관객과의 소통에 문제가 있고 그렇다보니 활성화에 어려움이 있지만 그것 또한 무용이 갖는 특징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작품의 30% 정도는 아무도 모르는 상태로 그냥 남겨둔다. ‘일상에서 비일상’으로, ‘순간에서 ‘영원’으로 느껴질 수 있으면 하는 바램으로 작품을 만들며, 이것이 내 작품의 특징이라고 생각한다.
Q. 그렇다면 한계점은?
A. 내가 작품에 접근하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이다. 첫 번째는 대본이 이미 완료되어 있거나 작품이 어느 정도 진행된 도중에 참여하게 된 방식이다. 두 번째는 제작의 초기부터 참여하게 된 방식입니다. 전자의 경우에는 이미 작품 제작에 참여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듣고 그들의 요구를 수렴하는 방식으로 접근한다. 후자의 경우, 안무자를 만나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눔으로써 외형적 틀을 결정하는 방식으로 접근한다. 이처럼 참여 시기에 따라 작품을 대하는 접근방식이 달라한다. 어떤 방식이든 최종의 결과는 ‘안무자의 작품’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내 의견을 끝까지 주장하기 보다는 양보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이해하고 양보해버림으로써 작품을 더 발전시킬 수 있는 기회와 가능성을 놓치게 된다. 이것이 한계점으로 작용하는 것 같다. 또한 열악한 제작환경, 예를 들어, 무용수, 극장대관, 리허설 스케줄 등의 외부 요인으로 인해 더 완성도를 높이지 못해 아쉬움을 갖고 있다.
Q. 이전의 인터뷰에서 안무자를 혼란스럽게 하는 것이 본인의 몫이라고 말했는데?
A. 내가 쓴 대본을 안무자가 그대로 작품에 옮기기를 바라지 않는다. 내 대본을 바탕으로 안무자가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창조해내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리고 안무자들이 다작을 하다보면 어떠한 패턴이 형성되어 계속해서 반복되는 경향을 보이는 등 매너리즘에 빠질 수 있다. 따라서 나의 역할은 안무가들을 계속해서 새로운 방향으로 자극하고, 흔들어 줌으로써 그들이 새로운 발상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는 의미로 그런 말을 했던 것 같다.
Q. 작품의 영감은 주로 어디에서 받는가?
A. 기본적으로 타장르 예술에 대한 관심이 많다. 어릴 때부터 영화 쪽에 관심이 많았고, 이외에도 미술이나 건축, 문학 등에 관심이 있다. 타장르에 대해 관심을 가지면서 “그러한 것들을 어떤 방식으로 ‘무대화’시켜보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자주해 본다. 또한 무대나 조명의 경우에는 일상 속의 사물들을 보고 그것을 그대로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변형시켜서 무대화할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해 본다.
Q. 어떤 무용가들과 작업했는가?
A. 김은희를 비롯해 창무회 무용가들과 많은 작품을 했다. 아내가 된 윤수미, 김매자 선생과는 15년 이상 함께 작업한 것 같다. 그리고 강미리 선생, 한명옥 선생, 여러 시립 및 도립무용단과도 함께 작업을 했다. 창무회의 최지연, 김지영과는 근래에 들어 함께 작업을 하고 있다. 그들에게는 어떤 면에서는 같이 성장해온 친구라는 느낌이 있다.
Q. 현대무용 작품에도 참여했는가?
A. 이연수, 박호빈, 박나훈과 작업했다. 특히 박호빈은 ‘교실’이라는 같은 극단 출신이다. 극단 ‘교실’은 극단 사다리라는 아동극을 하는 팀, 연극을 하는 팀, 그리고 심규만, 박호빈, 이상희, 내가 활동했던 퍼포먼스팀 등 세 팀으로 구성된 단체였다. 박호빈은 아마도 배혜령 선생의 작품에 출연한 것이 현대무용과의 첫 인연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Q. 지금까지의 작품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A. 아주 인상적으로 읽었던 기사가 하나 있다. 한 기자가 어떤 사진작가에게 “지금껏 찍었던 사진들 중에서 자신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사진은 어떤 것이냐?”고 물었는데, 그 작가는 “바로 내일 찍게 될 사진”이라고 아주 멋지게 대답했다. 나도 꼭 이 말을 써먹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바로 내일 올라갈 작품”이 아닐까.
Q. ‘드라마투르기’에 대한 생각은?
A. ‘무용연출’, ‘드라마투르기’, ‘콜라보레이터’라는 명칭 모두 적절한 표현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역할을 포괄할 수 있는 적절한 명칭이 생겨났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모든 작품 에 드라마투르기가 필요하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작품이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두느냐에 따라 필요한 역할과 사람이 다르다. 굳이 언어적인 혹은 논리적인 전개방식으로 진행되어야 하는 작품이 아니라면 무대미술가, 조명가, 음악감독 등이 드라마투르기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 드라마투르기가 기존의 연출자와 크게 다르지 않은 역할을 하면서 명칭만 다르게 불리고 있는 경향이 있다. 작품에 따라 빛의 드라마투르기, 무대미술의 드라마투르기, 음악의 드라마투르기 등으로 분리되어 존재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렇게 분리된 드라마투르기들은 예전처럼 조명감독, 음악감독으로 분화된 역할이 아닌 조명을 통해, 무대미술을 통해, 음악을 통해 무용작품 전체를 관통하여 논리성을 부여하고, 작품을 이끌어가는 역할로 존재해야 할 것이다.
Q. 최근에 드라마투르기 역할이 강조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A. 안무자들이 편해지고 싶어 하는 것에서 기인한 것 같다. 어려운 과정을 피하기 위해서 역할을 세분화하고 협업을 하게 된다. 협업을 하는 것이 여러 사람들이 모여서 다양한 의견을 바탕으로 하나의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내기도 하지만, 서로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이 사람 이야기 조금, 저 사람 이야기 조금으로 나열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는 단점이 있다. 무조건 역할을 세분화하여 협업할 것이 아니라 한명이 작품 전체를 이끌어 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Q. 향후 계획이나 바램은 무엇인가?
A. 올해 하반기에 많은 작업들이 기다리고 있다. 특별한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완벽히 준비되어있지도 않은 사람인데 많은 분들이 일을 제안해 주신다. 그 분들께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 예전에는 내가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이고, 아티스트라는 생각을 했다. 지금은 프로페셔널한 태도와 정신으로 일한다. 기존에는 관객과 평론가들의 반응을 고려하지 않고 작품을 만들었다. 최근에는 관객, 안무가, 제작사 등 여러 조건을 고려하다보니 하고 싶은 것을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예술적으로 고민하고 갈증을 느끼고 있다. 지금까지는 한 분야를 아주 잘 알고 잘 하는 사람이 아닌 다양한 부분에 대해 조금씩 아는 사람이 연출자나 드라마투르기의 역할을 해왔다. 앞으로는 보다 세분화된 영역에서 드라마투르기들이 많이 나와 주었으면 좋겠다.
인터뷰_ 부편집장 장지원(한국춤문화자료원 공동대표)
정리_ 댄스포스트코리아 인턴기자 신찬은(성균관대학교 일반대학원 예술학협동과정 석사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