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템포러리댄스의 특성 중 하나는 장르의 경계를 넘고 다양한 분야의 협력을 지향하는 것이다. 우리 무용계에서 이러한 특성은 1970년대 말부터 동인무용단체를 중심으로 창작공연이 활성화되면서 나타났다. 1980~1990년대 창작의 중심이었던 대한민국무용제와 “전통의 재창조” 류 공연이 유행하자 시인 출신의 대본작가, 마당극 분야의 연출가들이 안무가와 파트너쉽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IMF 이후 2000년대부터 동문단체들이 해체되면서 창작공연이 축소화되고, 무용공연만 전담하는 대본가와 연출가, 혹은 두 역할을 소화하는 무용연출가들이 등장했다. 그리고 2010년 이후에 지자체와 중앙정부의 창작지원이 활성화되자 제작체계에 또 다른 변화가 발생했는데, 창작의 개념 잡기에서부터 아카이브 기록에 이르기까지 공연의 A에서 Z를 전달하는 드라마투르기의 등장이다. “춤의 드라마투르기를 말한다” 시리즈는 최근의 드라마투르기, 그리고 과거 이와 유사한 역할을 했던 대본/연출가를 초청하여 그들의 달라진 위상과 기능을 짚어보는데 목적이 있다. 두 번째 주인공은 시인, 극작가, 드라마투르기로 활동하고 있는 김경주이다. |
Q. 무용계에 들어오기 전 과거 이력 혹은 예술배경은?
A. 서강대 철학과를 다니던 대학시절 연극반 활동도 했고, 2003년 대한매일(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등단하면서 시로 데뷔했다. 연극실험실《혜화동 1번지》에 희곡을 올리면서 극작가로도 활동하고 있으며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극 창작과 전문사 과정에서 공부했고 극작가와 시 작업, 드라마투르기를 병행해왔다. 동덕여대와 한국예술종합학교 등에서 다양한 강의를 담당해 왔다.
Q. 무용공연에 참여하게 된 계기는?
A. 2000년대 초 연출가 김아라 선생이 하는 총체극 공연에서 대본작업을 하면서 다양한 무용수, 마임 하는 사람들을 만나서 작업하게 되었다. 그 후 움직임과 몸에 관한 관심이 무용미학쪽으로 옮겨가면서 여러 지면에 조금씩 글을 쓰기 시작했고 『밀어- 몸에 관한 시적몽상』라는 책을 출간을 하기도 했다. 무용평론가이자 시댄스 페스티벌의 디렉터이이신 이종호 선생과의 인연으로 몇 년 정도 무용에 관한 글을 쓰기도 했다. 김성희 디렉터의 ‘봄 페스티벌’의 신체연구에 참여하면서 다양한 무용작업과 연관을 갖게 되었다.
Q. 영향을 받은 스승이나 선배가 있다면?
A. 누구에게 실질적인 영향을 크게 받지는 않았다. 시를 쓰시지만 무용에 각별한 애정을 가지셨던 작고하신 김영태 선생님이 무용계에 가장 큰 공헌을 하셨다고 생각한다. 520여개 세계 각국의 도시를 다니며 많은 공연을 본 것이 큰 자산이다.
Q. 가장 최근의 공연을 뽑자면?
A. 가장 최근 작업한 것이 국립현대무용단의 안애순 선생과 했던 <11분>작품이다.
Q. 자신이 무용공연에서 드라마투르기로서 하는 역할과 정체성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A. 과거 드라마투르기라 하면 희곡작법에서의 역할을 얘기했으며 연극학이나 연극이론을 공부하신 분들이 극작법을 이론적 느낌으로 서포트하거나 문헌학적 접근을 통해 비평적 역할까지 소화하는 것이었다. 즉, 공연 안에서 기능적인 실용성과는 별개로 브로셔글이나 비평 등을 담당하신 것이다. 그러나 드라마투르기는 현대에 와서 무용뿐 아니라 연극, 영화, 애니메이션, 드라마와 같이 보다 넒은 범위 속으로 확장되고 있고 과거보다 실리적 접근으로 이행되고 있다.
레지던스 프로그램으로 베를린이나 영국 등에서 드라마투르기 워크샵공연을 경험하면서 드라마투르기의 역사성․기능성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는데 드라마투르기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 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예술이 대중에게 어떻게 다가갈 것인가에 대한 질문, 즉, 일종의 동시대적인 소통에 대한 질문에서부터 출발한다는 것을 재각성하게 되었다. 다른 공연이나 예술장르도 그렇지만 특히 시와 현대무용은 동시대성과 무관하지 않다. 동시대의 감각, 문제의식, 철학, 등을 무용으로 담아내는데 드라마투르기의 역할은 필수적이고 과거와는 다른 촘촘함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나는 드라마투루기가 1차적으로는 안무나 연출이 가지는 상상력을 텍스트로 이식시켜주는 실행력을 돕는 역할에서 필요하다고 본다. 즉 엑추얼리티(ACT+REALITY)를 돕는 역할이다. 안무가, 무용수의 연결고리를 해주는 역할과 대상화 작업이 일차적이다. 하지만 앞서 말씀드렸듯이 하나의 작품이 동시대성에서 어떤 소통을 원하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같이 공유해 갈 때 이러한 작업의 결들이 풍성해진다고 본다. 나는 그것들을 잇는 작업이 드라마트루기라고 본다.
Q. 자신의 드라마투르기의 특징은?
A. 나는 무용, 회화, 시에서는 알레고리와 상징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시와 무용은 일종의 쌍생아와 같다. 인류의 유산 속에서 이 둘은 하나의 몸에서 태어나는 두 생명같은 것이었다. 이 둘은 시적형상화라는 공통점을 가지는데 무용은 이야기의 가능성이 무궁무진하고 그것 역시 시와 유사하다. 따라서 나는 이러한 시적흐름을 몸과 상상력으로 끌어내줄 수 있는 것이 드라마투르기라고 생각하고 공연에임함에 있어서 알레고리적 접근과 여러 상징이 녹아들어가 있는 것을 내 드라마트루기적 접근으로 생각한다.
또한 시와 무용은 어떤 장르보다 매직 리얼리티(magic reality)라는 초현실성을 담고 있다고 본다. 그래서 무용만의 초현실성을 보여주려 한다. 사람들은 초현실주의나 초현실성하면 현실을 도피하거나 현실과 상반된 관점에서만 해석할 수 있지만 초현실성에 대한 논외는 좀 더 필요하다. 간략하게, 초현실성은 현실 너머에 있거나 현실 안에 존재하거나 다른 현실을 보여주는 리얼리티이다. 드라마투루기는 그러한 초현실성을 스토리나 알고리즘으로 연결시켜 매직리얼리티를 관객에게 접근시킬 수 있다. 모든 무용은 다른 현실의 체험이라는 매직리얼리티를 품고 있다. 관객은 그것을 보기 위해 무용을 찾는다. 현실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가는 무용의 다양한 운동성과 이를 통한 공감성을 끌어내 시적드라마(Poetic drama)를 제공하는 것이 내 드라마트루기의 방법론이다.
Q. 주로 같이 작업한 무용가는?
A. 전통무용가, 컨템포러리 무용가들이 다수 포함된다. 특히 이나현과 안애순 선생, 봄페스티벌에서 신체연구를 하면서 워크샵 형태의 공연을 함께 했던 무용수들 등 무수히 많다.
Q. 작업을 하면서 안무가와의 충돌은 없었나?
A. 내가 연출이나 작가일 때는 달라질 수 있겠지만 드라마투르기를 맡았을 경우 안무자의 의도를 모아주고 관객에게 안무자의 입장을 전달하는 방식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므로 안무자나 무용수, 디렉터와의 충돌은 거의 없다. 함께 이야기하고 많이 듣고 질문한다. 그것이 드라마투르기의 입체성이다.
Q. 현재 창작 경향에 대한 진단을 내리자면?
A. 컨템포러리 댄스는 무용의 동시대성(정치․사회적 이슈, 미학적 흐름)과 공존 개념을 담고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몇 년 전 시댄스에서 공연했던 스웨덴 무용작품 중 유명 그룹 ‘라디오헤드’ 음악과 로미오와 줄리엣 내용을 융합시킨 내용은 고전과 현대적인 만남이라는 주제 속에서 그것들을 풀어나갔는데 매우 흥미로웠다.
Q. 최근의 드라마투르기에 대한 생각은?
A. 본인이 10년 전부터 주장한 바이지만 현재 드라마투르기에 대한 필요성은 모두 느끼나 문헌이나 기능적 접근에 국한되므로 실효성의 문제가 대두된다. 무용분야의 드라마투르기는 무용이론을 한 사람보다 더 폭넓게 확장되어야 한다고 여기며 이론적 체제가 아니라 무용의 고유성을 살려주는 것이 중요하다. 무용은 시적드라마이며 과거부터 이야기의 DNA를 갖고 진행되어 왔는데 오늘날 다시금 이 본성을 살려주어야 하며 정서적 개연성(내러티브)을 가지고 안무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갈등을 형성해 무용상황을 만들어 주는 것이 중요하다.
Q. 무용 드라마투르기를 하게 하는 매력은?
A. 무용의 가장 큰 매력은 떨림이다. 무용수들은 보이지 않는 떨림까지 보고 있고 그 떨림들을 측량하고 관측하고 제어하며 이동시킨다. 이것이 내가 무용의 드라마투르기를 하게 하는 동인(動因)이다. 최근에 이러한 몸에 관한 떨림을 『밀어』라는 몸에 관한 글로 표출했을 만큼 신체와 움직임에 대한 애정이 깊다. 또한 무용의 스토리전개는 일반적인 스토리텔링적 접근의 개연성과는 조금 다른 변별력이 상호작용하는데 예를들어 1+1=2라는 객관화로 보여주는 작업 보다는 1+1=3이 될 수밖에 없도록 개연성을 만드는 것이다. 무용은 객관화가 아니라 대상화가 중요하므로 이것이 드라마투르기가 해야 할 역할이며 나는 이 작업을 즐긴다. 무용(시)은 관객에게 그럴듯한 것이 아니라,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러한 상상력이 무용에선 얼마든지 확장가능하다.
Q. 앞으로의 향방은?
A. 당장 9월 5일부터 대학로에서 8년만의 레퍼토리 공연 <늑대는 눈알부터 자란다>를 올린다. 저술작업과 극작업, 드라마투르그를 병행할 것이며 시극운동도 이어나갈 것이고 무용에 대해 미적․드라마적 접근을 한 무용미학서를 계획중이다.
인터뷰_부편집장 장지원(한국춤문화자료원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