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스포스트코리아
지난자료보기

로고

무용현장

포커스

무용연구에서의 표절문제, ‘물탄개과(勿撣改過)’가 되어선 안 될 것 - 무용역사기록학회의 연구윤리포럼(2)을 다녀와서



 지난 4월에 한국무용기록학회와 한국무용사학회가 통합하여 무용역사기록학회라는 새로운 학회가 탄생했으며, 이 학회는 규모면에서 국내 최대의 무용학술단체가 되었다. 통합 이후 무용역사기록학회는 무용학풍을 쇄신하기 위해 여러모로 노력하고 있다. 하나는 연간 4차례 발간하는 학술지『무용역사기록학』을 해외 등재지로 올리기 위해 엄격한 심사로 무용연구의 질적 향상을 도모하고 있다. 또 하나는 표절근절을 비롯하여 무용연구에서의 연구윤리를 강화하기 위해 연구윤리포럼을 꾸준히 개최하는 것이다. 10월 18일(토) 이화여자대학교에서 개최된 ‘무용역사기록학회 제102차 월례특강 겸 연구윤리포럼(2): 무용연구에서의 표절문제’는 그런 노력의 일환이다.


 무용역사기록학회의 첫 번째 연구윤리포럼이 학술연구에서 전반적으로 경계해야 할 표절과 저작권 문제를 다룬 것이라면, 이번 연구윤리포럼은 무용연구에서 발생할 수 있는 표절문제를 다룬 것이다. 지난 포럼에서 『표절은 없다』의 저자 현택수가 ‘학술글쓰기에서의 표절문제’에 대해 발제하고, 김기태 세명대학교 디지털콘텐츠창작학과 교수가 ‘학술글쓰기에서의 저작권 문제’를 발제하여 참석자들이 학술연구에서 표절과 저작권 문제의 중요성에 대해 인지한 바 있다. 이번 포럼에서는 한국춤문화자료원의 공동대표인 최해리가 자신의 연구자적 여정과 자신이 경험했던 표절 사례를 중심으로 발제하였고, 장지영 국민일보 기자가 토론자로 무용연구에서의 표절 사례를 보충하였다. 발제와 토론을 통해 필자를 포함하여 참석자들은 무용연구에서 표절의 심각성을 공감하였고, 종합토론에서 표절근절에 대한 구체적인 의견을 나누었다. 필자는 포럼에서 인상 깊었던 내용을 중심으로 몇 가지 사안을 정리하며 널리 공유하고자 한다.




 포럼의 1부는 무용인류학자 최해리가 발제자로 나서서 ‘내부시각으로 바라본 무용연구에서의 표절문제’를 다루었다. 발제자는 유학시절에 지도교수의 혹독한 훈련으로 연구자로 설 수 있었다고 토로하며, 대학 입학 후 현 시점에 이르기까지의 학문적 여정을 리얼하게 들려주는 것으로 발제의 운을 떼었다. 이어 무용연구와 연구윤리부정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내용을 전개해갔다. 발제자에 의하면, 연구윤리란 “연구자가 정직하고 정확하며 성실한 태도로 바람직하고 책임 있는 연구를 수행하기 위해 지켜야 하는 윤리적 원칙 또는 행동양식”이며(연구윤리 정보센터), 연구윤리 부정행위란 “연구와 관련하여 행해진 위조, 변조, 중복게재, 표절, 부당한 논문저자 표시, 이중투고, 명예훼손 행위 등”이라고 한다(무용역사기록학회 연구윤리 규정). 그리고 표절이란 “타인의 아이디어, 연구내용, 저작물을 정당한 승인이나 적절한 출처 없이 자신의 것처럼 부당하게 사용하여 타인의 저작권을 침해하는 행위”라고 한다(무용역사기록학회 연구윤리 규정).


 발제자는 신정근 교수의 『마흔, 논어를 읽어야 할 시간』의 “물탄개과(勿撣改過): 잘못을 고치기에 우물쭈물하지 마라”를 인용하며, 표절과 같은 윤리 부정행위는 “숨기려고 해서 영원히 감출 수 없으며 앞으로 숨길 일이 또 생길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무용연구의 발전을 위해 “잘못을 마주하면 인정하고 사과하고 문제를 굳세게 쳐내서 되풀이 하지 않아야 할 것”을 강조했다. 또한 발제자가 겪은 여러 표절사례에 대해서 언급했다. 예를 들기로, ➀ <춤>지가 100세의 배구자 인터뷰 번역기사 전문 및 발제자의 후기까지 표절 ➁ 저명한 두 무용학자가 발제자가 조선시대 정재환경을 특징지은 ‘조선적’ 이라는 단어를 표절  ➂ 2012년 한국무용기록학회 국내 학술심포지엄에서 타분야 원로학자가 발제자의 워크숍 및 발제문을 한 챕터 표절한 것 발각 ➃ 가장 최근에 발제자가 겪은 표절사례는 그 정도가 심각한 것이다. 발제자는 자신의 전공인 무용인류학을 아우르는 제목을 고심하고, 그간 모아둔 번역물과 연구논문들을 엮어 책으로 낼 계획이었다고 한다. 책 제목으로 “인간은 왜 춤을 추는가?”를 발상했고, 이것을 작년 국립예술자료원 주최의 ‘인문학적 춤읽기’ 강좌에서 특강 제목으로 사용했다. 그런데 모대학 교수가 이 제목으로 올해 저서를 내고 교양과목까지 개설했다고 한다. 그 교수는 제목만 표절한 것이 아니라 발제자의 연구를 분명히 참조했음에도 참고문헌에 일절 언급하지 않았으며 표절행위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의 제자들이 교수의 표절 내용을 원문으로 인용하며 그 분야의 연구가 오염되고 왜곡되어 가는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발제자는 표절을 외면 혹은 방조함으로써 발생한 문제점들로 첫째, 무용과 교수나 무용연구자의 권위가 추락하며, 둘째, 잘못된 이해와 인용으로 학문이 왜곡되며, 셋째, 연구윤리의식의 표류와 이해 충돌로 학풍이 붕괴되고, 넷째, 표절을 당한 연구자는 의욕 상실과 자존감 상실로 무용연구가 퇴보할 수 밖에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결론부에서 발제자는 “잘못을 덮고 바로 잡지 않으면 반성도 없고 진실이 은폐”될 뿐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정민 교수의『조심』에서 ‘난진방선(亂眞放善): 국화와 비슷한 소주황이라는 잡초를 심어두고 멋모르고 좋다 하다가 정원을 모두 점령당한 뒤에는 이미 때가 늦음’이란 문구를 인용하며, “참된 것에 대한 가치판단을 흐리게 하고, 선으로 나가는 것을 방해하는 태도를 경계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서 범무용계가 표절을 포함한 연구부정행위를 뿌리 뽑아 사이비 연구를 추방하고, 훈련된 연구자를 배출하여 무용연구를 ‘학(學)’으로 세우는 풍토를 다져야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무용연구자들은 스스로가 연구를 수행하거나 논문을 작성하거나 강의 자료를 만들면서 글자 한자마다 표절은 없는가를 되물으며 연구부정행위를 경계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2부에서는 ‘외부 시각에서 바라본 무용연구에서의 표절문제’를 주제로 장지영 국민일보 기자가 토론자로 나섰다. 토론자에 의하면 <국민일보>는 “무용계 표절”이라는 제목으로 2008년 4월 27일자 신문에 무용연구의 표절문제를 전면적으로 다룬 바 있다고 한다. 이 기사는 1980년~2008년까지의 무용계 학위 및 학술논문 200여 편을 분석해서 최소 50편을 표절로 판명한 내용인데, 이 같은 심층 분석 기사로 인해 기자들은 기자상을 수상했지만 사회적 반향이나 무용계의 파장은 적어 당시 <국민일보> 측에서 놀라워했었다고 한다. 토론자는 기대한 만큼 우리 사회가 무용에 큰 관심을 두고 있지 않고, 또 무용가들이 표절에 대해 경각심을 갖고 있지 않다는 방증이 아니겠냐고 지적했다. 또, 토론자는 아직 한국에는 무용학이 제대로 성립된 것 같지 않다고 토로했다.


 3부에서는, 무용연구에서의 표절문제에 대해 참석자 전원의 종합토론 시간을 가졌다. 공통적인 의견을 종합해 보면, “타인의 글을 인용할 경우, 인용을 잘해야 하겠다는 것”과 이번 포럼을 통해 “무용계의 현실을 파악하고 논문을 작성할 때 표절에 대해 점검해 나가는 기회가 된 것을 도리어 다행으로 여긴다”고 했다.


 끝으로 필자는 젊은이들의 춤에 대한 연구열정을 사회적 지위를 악용해서 억울하게 하거나 인격의 존엄성을 짓밟는 표절행위는 한시바삐 근절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표절은 없다』의 저자 현택수는 표절행위를 “남의 글이나 생각 등 정신적 산물을 마치 자신의 독창적 작품인양 발표하기 때문에 ‘사기’ 이며, 남의 것을 허락 없이 무단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도둑질’이다”라고 비난했다. 사회적으로 지탄받아 마땅한 ‘사기’와 ‘도둑질’과 같은 범죄행위를 저지르고 버젓이 활개를 칠 수 있는 곳이 무용계이다. 한국의 무용학이 제대로 피어날 수 있도록 표절을 근절시키고 타인의 연구 저작권을 존중하는 풍토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범 무용계가 중지를 모아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글_ 현희정(국제무용콩쿨 아시아지국 대표, 국제창작교육연수소 소장)

사진_ 무용역사기록학회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