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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공연평가와 리뷰를 위한 나의 기준 - 공연요소별 10점 평가시스템

 

 

사진 / 김선미의 <천(千)> 


 공연에 관객이 있듯이 평론엔 반드시 독자가 있다. 관객들에 앞서 작품을 평가하고 평가한 내용을 논리적으로 기술하는 것이 평론(評論), 즉 평가(評價)와 논술(論述)이다. 일반적인 독자는 예술작품의 관객이지만 때로는 예술가 자신이나 예술작품의 심사․지원단체가 독자가 되기도 한다. 관객은 평론을 읽으면서 작품에 대한 지식을 얻고 예술가는 자신의 작품이 전문가의 눈에 어떻게 비쳤는지를 확인한다. 예술지원단체는 작품의 예술적 가치를 판단하고 지원대상을 선정할 목적으로 평가결과를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공연이 예술가에 의해 이루어지는 창조적 작업이라면 평론은 창조된 작품에 대한 객관적 검증작업이다. 평론가에게 감상의 전문성과 논술의 객관적 태도 및 문자를 통한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요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전문성과 독립성, 커뮤니케이션 능력


 전문성이란 작품의 컨텍스트(context)를 이해하고 작품가치를 판단할 수 있는 식견, 지식, 경험과 객관성 잇는 평가기준을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이다. 객관적 태도란 평론의 대상이 되는 작품과 독립적 위치에 있으면서 평가의 일관성과 중립성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다. 커뮤니케이션능력이란 아름답고 명료한 표현을 통해 독자들이 이해하기 쉬운 글을 쓸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나는 평론 글 자체가 예술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평론가의 첫 번째 기능이 작품에 대한 평가다. 무용작품은 직관에 의해서나 분석적인 방법을 통해서 평가할 수 있다. 직관적평가가 작품을 보고난 후의 느낌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주관적방법이라면 분석적평가는 작품을 구성하는 핵심요소들을 설정하고 각 요소별 충족도를 개별적으로 판단한 후 이를 종합하여 전체를 평가하는 체계적 방법이라 할 수 있다. 직관적평가의 장점이 없지 않지만 평가자의 감정에 흐를 수 있으며 특정부분에 대한 느낌이 전체 평가를 좌우할 수 있는 위험성이 있다. 분석적평가는 개별요소별로 독립적인 점수를 부여하므로 한 요소의 점수가 다른 요소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된다. 균형 있는 평가가 가능하고 요소별점수를 합산하여 종합평가가 이루어지므로 보다 합리적이고 작품 간 비교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장점이 있다. 특히 공정성이 요구되는 각종 지원금 및 경연대회심사에서 투명성을 원한다면 반드시 도입되어야 할 평가방법이다. 작품리뷰에서 흔히 나타나는 두루뭉술한 표현과 추상적 언어유희를 배제하고 평론의 신뢰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도 바람직한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계량화된 평가방법에 의해서 가치성을 판단하고 비교가능성을 높이고 있는 분야는 의외로 많다. 영화 및 뮤지컬공연 평가(3점, 4점 혹은 5점제), 호텔등급평가(무궁화 5개), 식당에 대한 미슐랭평가(Michelin system, 0~3 stars), 자동차 안전도평가(5점제), 로버트 파커에 의한 와인품질평가(100점제) 등이 대표적이다. 무용공연에 점수제를 도입한다는데 대한 반론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연극과 드라마, 영화, 전시회 등 다른 예술분야에 이미 별점제가 도입되어 언론에 공개되고 있는 현실에서 무용만이 예외를 고집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예술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도가 높아지고 공적인 지원제도가 확대될수록 공정한 심사의 필요성은 증대된다. 여전히 만연하고 있는 주관적 심사관행과 객관성이 떨어지는 평론들로 인해 평론기능자체가 퇴화하고 실력 있는 무용가들이 외면 받고 있는 현상은 우리 무용계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보다 엄정하고 신뢰받을 수 있는 평가방법 도입이 절실할 때가 되었다.

 

 종합예술인 무용공연의 종합적 평가를 위해서는 먼저 무용작품을 구성하는 핵심요소들이 설정되어야 한다. 작품 전체를 대표할 수 있는 포괄성을 갖춘 요소들로 개별요소별로 명확한 평가가 가능하고 각 요소간의 균형성과 차별성 또한 확보되어야 한다. 이렇게 분류된 요소별로 개별적 판단이 이루어진 후 합산하여 종합점수가 산출된다. 필자는 다음과 같은 10개의 요소가 이러한 세 가지 조건을 갖춘 무용공연의 구성요소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요소들을 내용으로 하는 ‘무용공연요소별 10점 평가시스템’을 제안한다.

 

무용공연 요소별 10점평가시스템

 

 무용공연을 구성하는 핵심요소 중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관객이다. 관객 없이, 관객의 호응을 얻지 못하는 어떠한 작품도 성공적이라고 볼 수는 없다. 관객에게 어필할 수 있기 위해서는 예술경영적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 공연장소, 홍보방법, 티켓가격, 팸플릿 등이 관객을 불러들이기 위한 공연기획자들의 노력의 표현이다. 관객의 호응도는 공연작품의 성패를 좌우할 수 있는 중요한 바로미터다. 관객은 글을 쓰지 않을 뿐 객관적으로 작품을 평가한다. 무용가가 작품을 통해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의 전달력은 관객의 호응도로 측정된다. 무용가들은 무대 위에서 이미 관객들의 호응도를 느낀다. 이러한 느낌이 그들에게 새로운 에너지를 불러일으킨다는 사실을 무용가들은 알고 있을 것이다.

 

 무용가와 안무가가 무용작품의 핵이라는 데 대해서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영화의 시나리오, 연극의 희곡이 없다면 그러한 예술이 존재할 수 없는 것과 같이 무용가 없이 무용공연은 존재할 수 없다. 무용가를 구성하는 요소는 무엇인가. 첫째로 무용가의 몸이다. 무용은 몸의 언어이고 몸은 무용가의 알파벳이다. 몸은 표정이고 균형이며 조화다. 작품에 맞는 몸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연극이나 영화의 배역을 생각하면 된다. 두 번째는 춤의 테크닉이다. 몸이 알파벳이라면 춤은 문장이고 문단이다. 안무와 훈련, 동작의 실험성 등이 이 부문에서 평가되는 것이다. 무용가의 세 번째 요소는 춤의 구성이다. 솔로와 듀엣, 군무의 연결, 무대공간과 시간구성, 연출, 드라마트루기 등이 여기서 평가된다. 네 번째 평가요소는 텍스트의 창의성과 충실성이다. 모든 예술의 생명이 창의성에 있다면 무용공연 역시 예외일 수 없을 것이다.

 

 관객과 무용가를 연결하는 장소가 무용의 무대다. 무대는 공연에서의 시청각적 요소가 종합된 곳이다. 무대장치와 무대미술, 의상, 각종 소도구 들은 무대를 구성하는 시각적 요소들이다. 이러한 도구들이 적절히 배치되고 춤 출 공간이 충분히 확보되어야할 것이다. 무대를 비추는 조명효과와 요즘 공연에서 흔히 등장하는 영상, 각종 IT와 디지털 테크놀로지 등은 무대를 밝히는 광학적 요소들이다. 스토리텔링에 얼마나 효과적으로 이용되었느냐가 관건이다. ‘음악은 무용’이란 말이 있듯이 무용공연에서 음악의 중요성은 더 이상 강조할 필요가 없다. 생음악과 녹음, 음악 외 음향효과의 사용, 춤과의 조화 등이 평가될 조건들이다.

 

 지금까지 열거한 아홉 가지 요소들 외에 추가되어야할 마지막 요소 하나가 작품의 총평이다. 완성도라고 이름붙일 수도 있고 보존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을 의미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는 최종적으로 관객이 느끼는 감동으로 반영될 것이고 관객의 기억 속에 잔상으로 남게 될 요소이다. 요소별 공연평가시스템을 구성할 10개요소를 다음과 같이 정리해볼 수 있다.


무대 (3) 청각요소(음악 음향)

     시각요소(무대장치, 무대미술, 의상, 소도구)

     색광요소(조명, 영상, IT기술)    


무용가 (4) 춤(technique, 안무, 동작의 실험성)
      몸(체위, 균형, 표정, 배역)

      구성(시간과 공간구성, 연출, 조화, 드라마트루기)

      텍스트(창의성, 충실성)
관객 (2) 예술경영(홍보, 마케팅, 팸플릿)

     전달성(관객호응도, 재미, 관객수)    


감동 (1) 작품완성도, 보존적 가치, 총평, 기여도      


합계(10)


억울한 예술가 없는 공정한 문화풍토


 요소별점수를 합산하여 산출된 5점~10점에 적절한 등급명칭을 부여해도 좋을 것이다. 예컨대 10점(완벽perfect), 9점(탁월outstanding), 8점(특별extraordinary), 7점(우수very good), 6점(우량good), 5점(수준급above average)등이다. 체계적평가방법 적용대상으로는  나는 직접 본 작품 중 공연시간 30분 이상이고 소극장이상 무대에서 공연된 작품으로 한정하고 그 중 5점 이상 작품을 리뷰대상으로 하고 있다. 몸 2월호에 게재된 2014년 베스트 10 공연은 이러한 평가기준을 적용하여 선정해본 작품들이다. 김용걸의 , 국립무용단이 공연한 타로 사리넨의 ‘회오리’, 김선미의 <천(千)> 등이 모두 춤과 안무, 무대요소, 관객호응도 등 10개 구성요소에서 약점을 찾아볼 수 없는 완벽한 작품들로 평가되었다. 물론 이는 주관적인 것이고 평가자의 취향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누가 평가자가 되던 공연구성요소들이 개별적으로 평가된 후 종합평가가 이루어지는 체계가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평가대상이 되는 작품으로부터 독립성을 가진 사람이 평가에 참여하고 평가기준의 일관성을 유지하여야 한다는 점이 강조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무용가들의 소중한 예술작품에 계량적인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 무례함으로 비쳐질 수도 있지만 평론기능을 회복하고 억울한 예술가가 없는 공정한 문화풍토를 이루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것임을 양해해주기 바란다.



(이 글은 무용월간지 <몸>의 2015년 3월호 글을 일부 수정한 것입니다)

 

 

글_ 이근수(무용평론가, 경희대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