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5년 9월 11일(금)부터 13일(일)까지 무용역사기록학회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공동으로 예술가의 집에서 ‘아시아 춤의 기억술’이라는 주제로 제17회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미국, 중국, 대만, 일본, 한국의 무용학자 9명이 초청연사로, 원로무용가 4명과 무용학자 6명이 토론자로 참가한 이번 심포지엄은 ‘아시아 무용가의 기억술: 구전심수(口傳心授)’, ‘무용가의 기억 채집: 구술채록’ 그리고 ‘아시아 무용가들의 기억 보존을 위한 토론’이라는 세 가지 세부주제로 진행되었다.
첫째 날의 기조연설은 하와이대학교 주디 반 자일(Judy Van Zile) 명예교수의 “시간을 이어주는 다리: 춤, 기록 그리고 기록보존”이었다. 반 자일 교수는 자신의 에피소드를 소개하며 과거의 춤을 단지 동작으로만 해석할 것이 아니라 당시의 상황을 함께 파악해야지 깊이 있는 움직임의 표현이 가능하다며 춤분석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리고 아시아의 무용가들이 과거 기록에 보다 많은 관심을 갖는 것은 전통춤이 국가적 사업이나 문화유산으로서 가치를 인정받고 다양한 지원이 있기 때문이라는 의견을 냈다. 반 자일 교수는 춤의 기록을 ‘다리’에 비유하며 과거와 현재의 춤을 연결해주는 매개체라고 했다. 그래서 춤과 무용가들을 지원하지 않으면 기록들을 잃게 될 것이며, 기록이 이루어지면 어떤 다리를 만들고 운반하고,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 신중히 결정해야 할 것이라는 제언했다.
기조연설에 이어 한성대학교 지식정보학과의 이호신 교수는 “공연예술 기록화 전력에 관한 담론”이라는 발제에서 공연예술 기록화의 과정에서 무엇보다도 고려되어야 할 요소는 예술적 감흥과 울림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에 대한 과제를 중심으로 청중들과 질의응답을 이어갔다. 일본대학의 마루모 미에코(Marumo Mieko) 교수는 전통이라는 의미를 짚는 것으로 “일본무용에서 전통계승을 위한 이론과 방법”이라는 발제를 시작했다. 미에코 교수는 1950년부터 일본에서 시행된 문화재보호법 법률, 즉 중요무형문화재 제도를 소개하고 모션캡처를 활용한 아카이브인 NANA프로젝트를 소개하였다. 프로젝트의 사례를 영상으로 제시하며, 모션캡처 기록의 과학적 방법과 제한점에 대해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다양한 일본 무보의 종류와 특징 그리고 전통계승의 현황을 소개했다. “구전심수(口傳心授)에서 구술사(口述史)로: 한국춤 고유성의 전승방법”을 발표한 한국춤문화자료원 최해리 공동대표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예술정보원과 문화재연구소의 구술채록연구자로 활동했던 경험을 토대로 “춤의 전승지식은 무형체성, 불확실성, 직관성을 특징으로 하며 무용가의 전승지식을 기록한다는 것은 보이지 않는 지식과 기술을 포착하는 작업이다”라고 말했다. 최해리 대표는 구술채록은 무용가들의 기억이 담긴 소중한 무용유산이며, 무용가들의 구술채록문은 무용연구뿐만 아니라 문화콘텐츠의 창조기반이 될 수 있다고 하며 구술채록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둘째 날의 심포지엄은 원로무용평론가이자 부산대학교 예술영상미학과 채희완 명예교수의 “예술인의 구술채록, 왜 중요한가”라는 기조연설로 시작되었다. 채희완 교수는 예술가의 구술채록은 예술사실에 대해서 접근할 수 있는 1차 자료이며, ‘예술창작론’의 입론 자료가 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고 했다. 또한 이러한 구술채록은 예술가와 담론가의 전인간적 교류에 의해 서술되는 새로운 방식의 기록이며, 이것이 역사적 기록물인 동시에 자기표현물이라는 특성을 갖는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예술가의 구술채록은 재창조를 위한 역사물이며 예술적 진실을 통한 삶의 질적 변화를 꾀하는 기억술이라는 점을 명기시켰다. 기조연설에 이어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연구수집부 정영순 부장은 “예술사 구술채록사업”을 주제로 2003년부터 시작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예술사 구술채록사업에 대한 추진목적과 배경, 그리고 사업의 경과와 현황에 대해 소개했다. 정영순 부장은 구술채록을 위한 교육프로그램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용분야의 참여도가 매우 낮다고 하면서 무용분야 구술채록의 발전을 위해서는 무용연구자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서 국립국악원 권혜경 학예연구사가 “원로예술인의 구술채록의 방법과 가능성”을 발표했다. 권혜경 연구사는 자신의 구술채록경험을 토대로 연구자가 어떠한 질문으로 어떻게 준비하고 접근하고 그것을 토대로 구술채록을 어떻게 이어나갈 것인지에 대한 경험과 고민을 함께 나누었다.
마지막 날은 대만국립예술대학교 무용학장 윤유 왕(Yunyu Wang)과 중국국립예술아카데미 무용연구원 부원장 지앙동(Jiang Dong)의 발제로 시작되었다. 윤유 왕은 “대만의 라반노테이션에 대한 연구”를 통해 대만의 라반노테이션 보급 및 복원에 대한 사례와 대만의 무용아카이브 현황에 대해 발표했다. 윤유 왕에 의하면, 대만의 라반노테이션은 1970년 무용가 풍 슈에 류우에 의해 소개되었으며 과거 9개 대학에서, 현재는 3개 대학에서 교과과정으로 채택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라반노테이션을 통해 현대무용사에 중요한 안무가들의 26개 작품의 복원작업이 이루어 졌으며, 무보를 통해 대만 안무가들의 작품을 기록하는 작업들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소개했다. “무보의 재구성: 중국무용가들의 경험”을 발표한 지앙동은 1949년 사회주의 국가 성립 이후의 중국무용사를 소개하며 각 시기에 있었던 외래무용의 영향과 무용의 기록과 복원에 대해 설명했다. 그에 의하면, 중국의 고전무용에는 러시아 발레의 요소가 있으며, 고전무용의 종류로는 기존 무용에 한당(漢唐) 왕조의 요소를 가미시킨 한당무용, 중국 서부지방의 고대화가들이 돈황석굴에 그린 무용을 복원한 돈황무용, 대만의 류우 풍 슈에가 고대 무보에 의해 복원한 당대(唐代) 무용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 24개의 문자를 사용하여 무용동작을 기록하는 조정(Co-ordination) 무용표기법에 대해 소개하며, 이러한 무용표기법은 훈련을 받아야만 하는 단점이 있다고 강조했다.
심포지엄의 마지막에는 춤의 현장을 오랫동안 지켜온 원로무용가와 무용평론가의 라운드 테이블 토론회가 있었다. 초청 토론자는 대구시립무용단의 창단 감독이자 다다 이사장인 김기전, 한성대학교 명예교수이자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인 김숙자, 정재연구회 예술감독이자 종묘제례악 일무 전수조교인 김영숙, 그리고 무용평론가 김태원이었으며, 이들은 무용학도들이 되짚어 보아야할 한국무용기록의 현주소와 그것을 어떻게 보완하고 실행해야할 것인가에 대해 열정적으로 토론하였다.
이번 심포지엄은 단지 동작만이 아닌 움직임의 숨결을 보존하고 불러내기 위해 역사 속에 존재하는 춤의 기록을 기억하고, 그 의미를 분석해서 표현해 내는 과정의 소중함과 가치를 일깨워준 여정이었다. 3일간 연속으로 심포지엄의 현장을 지키면서 춤의 기억술은 무용가들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위한 나침반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글_ 정은주(무용학 박사, 헤케이브아카데미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