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일상과 업무의 스트레스로 지친 삶에 하나의 쉼표로서 <춤, 몸, 그리고 치유>란 주제로 3월 8일, 9일에 이화여대 삼성홀에서 이화창조아카데미(단장 조기숙) 주최로 서울 시민 ‘몸’ 축제가 열렸다. 주체적인 움직임으로 자신의 내면에서 체험되는 몸을 자각하면서, 몸과 인격의 성장을 추구하는 몸학(Somatics)적 관점과 방식이 소개되었다. 참여자들은 강연자의 안내에 따라, 신발을 벗고, 바닥에 누워 지면에 접촉되는 몸을 느낀다. 또한 천천히 숨을 들이쉬고 내쉬면서 호흡에 집중을 하는 것만으로도 잊고 있던 몸의 감각이 서서히 깨어나고,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필자는 23년 전 처녀시절에 유방암 3기를 진단받고 절제수술과 화학치료를 경험한 바 있다. 그 후 생명을 위협하는 암세포의 재발 가능성에 대한 두려움이 지속되었고 죽음에 대한 막연한 걱정에 압도되어 몸은 더 이상 삶을 위한 안전지대가 될 수 없었다. 더욱이 한쪽 가슴의 상실은 젊은 여성으로서 여성성과 섹슈얼리티에 대한 신체적 도전과 심리적 콤플렉스를 수반하였다. 암은 트라우마가 되어 감각하는 몸의 즐거움을 잃어버리고, 두렵고 당황스러운 몸을 회피하고 억압하면서 나 자신의 의식으로부터 몸을 소외시켰다.
한편, 전공인 영문학 석사와 박사 과정을 밟으면서, 미국의 대표적 작가인 허먼 멜빌의 걸작 <백경>에 등장하는 지구상에서 가장 거대한 몸을 가진 동물인 고래를 쫒으며 예술적 은유와 상징적 표현으로 투영된 몸에 대해 역사적, 사회적, 철학적, 심리학적 이슈를 연구하고 깊이 천착하였다. 암을 통해 내 운명에 주어진 몸의 도전장에 적극적인 상상력으로 정신적인 사투를 벌이면서 힘든 세월을 헤쳐 나왔다.
그러나, 나의 무의식은 마치 돌아갈 집이 없는 홈리스의 삶처럼 영혼 깊이 자리한 외로움과 두려움과 분노에 발목을 잡혀 과거의 상처와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현재적 삶을 저당 잡힌 채 오랜 시간을 살아왔다. 삶에 그림자처럼 드리운 암 트라우마를 근원적으로 치유하기 위해 필자는 움직임과 춤 중심의 표현예술치유 교육프로그램에 참여하였다. 삶의 모든 경험이 저장되어 있는 몸을 감각하고 알아차리는 섬세한 움직임을 통해서 억눌렸던 정서가 해소되자 심신이 연결되고 통합되는 치유를 깊이 체험했다. 움직임은 머리를 버리고 감각으로 내려와 그동안 소외시켜온 몸에 머물 수 있게 해주었다. 몸의 근원적인 언어인 움직임으로 내면세계에 깃들어 있는 삶의 이야기와 정서를 가시적으로 표현하는 창조적 춤을 추면서 자아의 합일을 체험하고 자폐적인 단절감과 외로움을 극복하며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삶의 보금자리인 몸은 잘못된 생활 습관으로 쉽게 변형되고 통증과 노화를 겪으며, 암과 같은 치명적인 질병으로 위협받을 수 있는 한없이 취약한 현장이다. 또한 몸은 사회적, 문화적 제약과 구속에 지배를 받으며 고된 노동의 타율적인 굴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나 생명의 몸에는 감각과 인지를 통합하여 왜곡된 몸을 교정하고 자율적인 새로운 삶을 탐색할 수 있는, 천연적인 자기 치유력으로서 ‘움직임’과 ‘춤’이라는 ‘약’도 내재되어 있다.
숨가쁘게 변화하는 초경쟁적인 사회에서 현대인은 생존을 위해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과다하여 긴장이 잔뜩 쌓인 몸으로 고군분투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존재의 현장이자 삶의 무대인 몸을 누리는 대신, 몸에서 급속히 소외되고 있다. 인터넷 사용과 사이버의 가상공간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몸의 생명력 있는 움직임을 제한시키고 심지어 영혼이 몸을 떠나는 유체이탈과 같은 위기에 처해있다. 이에 대한 인류의 집단지성적인 창조적 반동으로서 전세계적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요가 수련원을 향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몸으로 회귀하여 심신의 합일을 체화하려는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한국의 사회는 현재의 제도권 교육에서 실시되고 있는 주입식의 타율적 교육과 초경쟁적인 지식의 추구로 아이들과 청소년과 학부모가 모두 몸살을 앓고 있다. 이에 대한 몸부림으로 제도권 밖에서 다양한 대안교육이 시도되고 있다. 그러나 자율적이고 창조적인 삶의 현장인 몸을 만나기 위해 부드러운 움직임의 길로 안내하는 참신한 몸학이 기존 교육과정에 새로이 도입될 수 있다면, 마치 인체 내에 신비롭게 창조된 면역체계와 같이 몸에 내재된 지혜를 발견할 수 있는 희망이 될 것이다.
서울시민몸축제에서 한자리에 모인 몸학의 대표적인 교육자가 초대하는 즐거운 몸 공부에 참여한 시민들은 지치고 힘든 몸에 휴식을 얻고, 자율성과 감각으로 깨어난 몸으로 다함께 어울려 소통하며 신명나는 춤의 물결을 이루었다. 몸의 움직임이 치유가 되고, 춤이 되고, 춤이 공연이 되고 축제가 되었다. 성장과 변화를 위해 평생학습이 필요한 시대에 몸에 대한 감각과 지혜를 일깨우는 행복한 공부가 무엇보다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할 때, 하루가 다르게 넘쳐나는 지식과 정보의 홍수 속에서 익사되지 않고 “배우고 때때로 그것을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라고 노래하며 춤추듯이 공부를 할 수 있으리라.
글_ 미류 이미숙 (몸표현예술치유교육자, 영문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