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과 물리학. 아무리 융복합 시대라지만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분야가 2016년 6월 23일(목)에 이화여자대학교에서 만났다. 이화여대 무용과의 조기숙 교수와 예일대 물리학과의 사라 데머스(Sarah Demers) 교수는 백여 명의 청중 앞에서 Duologue ‘Dance & Physics’(춤과 물리학의 대화)라는 제목으로 춤에 대해 진지한 대화를 나눴다.
이 범상치 않은 대화는 기획 경위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시작으로 한 시간 반 동안 진행되었다. 데머스 교수는 예일대에서 발레리나이자 예일대 교수인 에밀리 코츠와 몇 년째 ‘Physics of Dance’(춤의 물리학)라는 교양과목을 강의하고 있다. 이 과목은 큰 성공을 거두어 외부에도 널리 알려졌는데, 데머스 교수는 이를 바탕으로 한국의 대표 무용가 중 한 분인 조기숙 교수와 함께 이 대화를 기획하였다고 한다.
조기숙 교수가 먼저 발레의 기본자세와 동작에 대해 설명하면, 데머스 교수는 그 안에 숨겨진 물리학적 원리를 설명하였다. 가장 먼저 설명한 것은 기본자세인 풀업이다. 조기숙 교수는 풀업에 담긴 철학으로 머리는 하늘을 지향하여 꼿꼿이 세우고 다리는 땅에 굳건하게 뿌리박아 중력을 느끼는 것이라고 하였다. 데머스 교수는 이를 받아 물리학적 관점에서 중력이 무엇인지, 풀업 자세에서 넘어지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지, 그리고 사람이 바닥을 뚫고 지구 중심으로 딸려 들어가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지 설명하였다. 이들은 이렇게 서로 주고받으며 풀업에 이어 플리에, 피루엣, 그리고 턴아웃으로 대화를 이어갔다.
같은 자세나 동작을 두고 전혀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고 이해하는 것은 색다른 즐거움이었다. 특히 일생동안 발레를 본 경험이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에 불과한 나 같은 문외한에게는 더욱 그랬다. 물리학자의 눈으로 보자면 발레의 많은 자세나 동작이 단지 최고의 미를 추구하기 위해 고안된 것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될 필연적인 물리학의 원리가 내재되어 있다. 그런데 그러한 이성적 원리가 자연스럽게 감성을 표현하는 최고의 몸짓으로 발레에 구현되어 있는 것이다.
데머스 교수 이전에도 춤과 물리학을 접목하려는 시도는 많이 있었다. 이미 40여 년 전에 미국 디킨슨 대학 물리학과의 케네스 로스 교수는 다섯 살배기 딸의 발레 교습을 도와주다가 40의 나이에 스스로 발레를 배우기 시작했다. 결국 발레 강사가 된 그는 물리학을 바탕으로 학생들을 효율적으로 지도하며 많은 학술논문과 책을 저술하였다.
사실 춤은 많은 사람의 편견과 달리 물리학에서 그리 멀지 않은 존재다. 적어도 물리학자들은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예를 들어 전 세계의 모든 이공계 대학생이 1학년 때 배우는 일반물리학 교과서에는 발레의 두 가지 기본 동작이 소개되어 있다. 그랑쥬떼는 질량중심의 운동을 설명하는 예로, 그리고 뚜르쥬떼는 각운동량 보존법칙을 설명하는 예로. 온라인 강의로 유명한 TED에도 백조의 호수에 나오는 32회의 푸에테가 물리학적으로 어떻게 가능한지 설명하는 애니메이션이 올라와 있다.
조기숙 교수와 사라 데머스 교수의 Duologue ‘Dance & Physics’는 2016년 6월 21일부터 7월 8일까지 ‘지평 넓히기(Expanding Horizons)’를 주제로 개최된 이화-루스 국제 세미나의 일환으로 진행된 것이다. 타 분야와의 소통보다는 장벽 높이기에 익숙한 국내 풍토에서 두 전문가의 대화가 우리 문화의 지평을 넓히는 의미 있는 시도로 자리매김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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