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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호남 지역 무용단체들의 전통춤에 대한 새로운 해석 - 국립민속국악원무용단 ‘舞本(무본)’과 정신혜무용단 ‘춤, 세대공감’

 한 해를 보내고 새로운 해를 맞이하는 것이 새삼스러울 것이 없어진 세태가 되었으나 올해만큼은 ‘송구영신(送舊迎新)’의 의미가 새롭게 다가온다. 국정농단과 블랙리스트로 엄청나게 쏟아지는 뉴스들에 심신이 지쳐 즈믄해가 어떻게 가는지 당최 알 수 없는 나날들이라서 그런 듯하다. ‘역사’와 ‘진실’이란 단어들이 바짝 다가와서 그 의미들을 반문하게 하고, 또 의심하게 만든다. 시국사태 이후로 매일을 마술적 환상에 사로잡힌 관객이 된 기분으로 사는 것 같다. 눈과 귀를 막고 어디로든 떠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던 차에 지역의 기획공연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공연을 주최하는 무용가들이 국립민속국악원 무용단의 복미경 안무자와 신라대학교의 정신혜 교수이고, 이들은 데뷔시절부터 눈여겨보던 무용가들이기에 ‘응원’이라는 명목으로 한달음에 내려갔다. 두 안무자가 새롭게 해석한 전통춤 공연에서 새로운 경지를 보았기에 벅찬 마음으로 이 글을 끄적거리게 되었다.




전통춤의 원형은 고수하되 감각적인 무대연출로 관객들을 사로잡은 ‘舞本’

 먼저 민속예술의 전통을 이어가는 국립민속국악원 무용단의 하반기 정기공연인 ‘舞本(무본)’(11월 30일, 전주 국립무형유산원 얼쑤마루)을 소개한다. 전라북도 남원에 소재한 국립민속국악원 무용단은 중견무용가 복미경이 2014년에 3대 안무자로 취임한 이후로 다채로운 변신을 도모하여 존재감을 부각시키고 있다. 특히 복미경은 이곳에서 ‘판소리춤극’이란 새로운 형식을 개발하였다. 이 형식으로 선보인 <춘향을 따라 걷다, 2014년>, <심청이 울었다, 2015년>, 그리고 <토끼야, 너 어디가니, 2016>가 호평을 받으면서 국립민속국악원 무용단은 지역브랜드와 전통춤의 진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었다. ‘舞本(무본)’은 무용단의 활동무대인 남원이 아닌 전주로 옮겨서 이른바 ‘국립’ 단체로서의 소명의식을 실천한 공연이었다. 약 95분가량 소요된 이 날 공연은 정(呈), 중(中), 동(動)의 주제로 14명의 단원들이 상상 이상의 우아하고 역동적인 우리춤의 향연을 펼쳐 관객들로부터 대환호와 박수갈채를 이끌어내었다. 먼저 1부는 국립국악원 정악단(악장: 이영)의 장엄한 연주에 맞추어 학춤과 연화무를 합한 궁중정재 <학연화대무합설무>로 시작하였는데, 화려하고 품격 높은 무대로 연출하여 관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다음은 양근영의 홀춤 <춘앵전>이 이어졌다. 조선 순조시절 효명세자가 어머님 순원숙황후의 40세 보령을 축하하기 위해 지은 정재무로 널리 알려진 이 춤은 그야말로 미니멀리즘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자그마한 화문석 위에서 추는 우아하고 절제된 춤사위가 매력적이었다. 두 명의 무용수가 돗자리를 깔고 걷고를 자연스레 진행하는 가운데 어느새 <무고>가 무대 중앙으로 소환되었다. 네 기둥에 휘장을 두른 큰 북을 중심으로 사방에 선 네명의 무용수들이 북채를 휘두를 때마다 묵직한 북소리가 울려 퍼졌고, 삼지화를 든 네 명의 무용수가 서로 대화를 나누듯 소담스레 춤을 췄다. 이 정재무 <무고>는 훗날 경남 통영의 <승전무>로 그 갈래가 확장된 것으로 전해진다. 이윽고 안무자 복미경이 무대 한 켠에 자리해 홀춤 <승무>로 직접 인사를 올렸다. 국립민속국악원 기악단의 연주아래 소소한 목탁소리를 시작으로 한영숙류 승무의 장삼자락이 처연하게 극장공간을 휘감는 가운데 춤꾼 복미경은 한 발 한 발 조심스레 하얀 외씨버선의 발디딤새로 객석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동안 <태평무>를 그녀의 대표적 춤으로 알고 있던 필자는 복미경의 다양한 춤학습과 내공에 새삼 놀라웠다. 민속음악의 모든 가락을 아우르는 승무의 춤사위와 북장단은 무형문화재 춤의 품위와 예술성을 다시 한 번 각인시켜 주었다. 다음 순서는 화려한 복식이 돋보이는 한영숙류 <태평무>였다. 낯익은 가야금 선율에 맞춰 양정화의 리드 아래 7인의 무용수들이 단아한 춤사위로 무대를 휘감았다. 태평성대를 기원하는 이 춤은 경기도당굿의 무속장단에서 출처한 빠르고 복잡한 장단에 맞추어 경쾌하게 가로지르는 발 디딤새와 섬세한 손놀림으로 우리춤의 멋과 태를 한껏 음미하게 만들었다. 무대는 어느새 <살풀이춤>의 시나위 가락에 젖어들었다. 송은희의 홀춤으로 진행된 이 희노애락의 속내 깊은 정갈한 춤은 <지전춤>과 조우하기에 이르렀고, 다시 여성 7인무가 등장하였다. <구음지전춤>은 진도씻김굿을 모티브로 망자가 이승에서 풀지 못한 원한을 풀어 극락왕생 천도의 마음을 담고 있다. 살풀이춤과 지전춤 모두 우리 인간 삶의 상처와 치유를 이해, 해결하려는 몸짓을 담고 있어 묘한 공감대를 형성하며 2부 무대를 마무리했다. 마지막 3부는 흥과 신명의 마당춤인 <소고춤>과 <장구춤>, 그리고 <금회북춤>과 <진도북춤>의 콜라보 무대였다. 사물놀이 장단과 함께 우리 민속 고유의 타악기들이 한데 어우러져 동(動)이란 의미를 제대로 펼쳐보였다. 경상남도지역의 최종실류 <소고춤>과 충청권의 양도일류 장구춤에 이어 영남지역 배관호류 <금회북춤>(출연: 신명관)은 전라남도 <진도북춤>과 어울려 우리나라 농악춤의 지형을 넓게 확장시키는 가운데 객석으로부터 뜨거운 환호를 받으며 교감을 나누었다. 궁중정재와 민속춤(한영숙류) 그리고 마당춤에 이르기까지 총 11개의 작품을 씨줄과 날줄로 촘촘히 엮어 조명 암전 한번 없이 자연스레 춤을 연결한 안무자의 세련된 연출력은 물론, 명인들의 정성어린 현장 음악반주가 이 공연의 완성도를 높인 미덕으로 여겨진다. 전통춤의 원형을 고수하되 감각적인 무대 연출과 적절한 춤의 완급조절은 이날 발견한 전통춤의 매력적인 선물이 아닐 수 없다.


전통춤으로 세대간의 만남과 소통을 실천한 ‘춤, 세대공감’

 12월 3일에는 춤의 발길을 부산으로 옮겼다. 2017년 정유년이면 창단 20주년을 맞이하는 정신혜무용단의 기획공연 ‘춤, 세대공감’은 이번이 다섯 번째의 무대이며, 필자는 공연해설자로 함께 했다. 이 공연은 부산 무용계에서 숱한 화제를 나으며 송년의 명품공연으로 자리잡고 있다. 부산문화회관 소극장에서 홀춤 위주로 공연하던 방식에서 벗어나서 금년에는 대극장무대인 영화의 전당 하늘연극장으로 장소를 옮겨 진행되었다. 프로그램과 출연진 역시 역대 최고급으로 관객들의 관심을 모으기에 충분했다. 공연내용 또한 홀춤, 남녀 2인무, 여성 4인무, 그리고 명인의 춤과 군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전통춤들이 원형의 모습으로 혹은 다양한 변주와 함께 우리춤의 근간인 한, 흥, 멋, 태의 다채로움을 전달하며 공연장을 찾은 관객들의 마음을 훈훈하게 만들었다. 20대부터 70대까지 각 세대별 출연진들의 이력 또한 흥미롭다. 첫 무대는 정신혜무용단의 여는 춤 <울림>이 극장을 가득 메운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무대 중앙에 단을 쌓아 올려 대북(연주: 정신혜)과 삼고를 횡렬로 배치시켰으며 오케스트라피트에는 또 다른 10명의 타주가 합세하였다. 이들의 절도 있고 통일감 넘치는 춤사위는 태고의 바람인양 일순간 축제의 풍경을 연출하며 공연의 서막을 알렸다. 먼저 ‘20대 청춘’을 상징으로 무대에 오른 남성 춤꾼은 <한량무>를 춘 임현종이다. 이 패기만만한 젊은이는 지난 2013년, 두 번째 ‘춤, 세대공감’을 빛내준 故 임이조 명인의 장남이기에 무대에 서는 감회가 남달라 보였다. 예의 부채를 들고 진중한 표정과 함께 그의 춤에서는 나이답지 않은 성숙함이 풍겼다. ‘30대 입지’에는 네 사람의 여성 무용수가 출연했다. 정신혜무용단의 든든한 지킴이가 된 최지은, 박혜경, 김수진. 노연정은 교방춤 <즉흥무>로 객석에 단아함과 정겨운 분위기를 선사하였다. ‘40대 불혹’에는 특별한 무용수가 등장하여 반가웠다. 춤과 노래, 그리고 무대의상 디자인 등 다재다능함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이서윤이 오랜만에 무대로 돌아와 이매방류 <살풀이 춤>을 통해 춤꾼으로서의 건재함을 과시한 것이다. 공연의 연주를 맡은 젊은 소리 쟁이(대표: 박준식) 연주자들이 대부분 영남지역 출신이라 그런지 남도 시나위가락의 끈끈하고 애절한 울림을 내지 못해 다소 아쉬웠다. 그러나 <동래학춤> 등에서는 흥과 신명을 다한 연주로 그럭저럭 아쉬움을 상쇄시켰다. 한편, ‘50대 지천명’은 오랜 춤벗으로 활동해 온 남녀 무용가의 조우가 보는 즐거움을 배가시켜 주었다. 이 무대의 주인공은 중견무용가 홍기태(전 부산시립무용단장)와 정진욱(경남대 교수)이었다. 이들은 꽃잎 날리는 영상과 애절한 신민요 <강원도아리랑>을 배경으로 2인무 <연가>를 춤추며 농익은 듀엣의 앙상블을 펼쳐 보였다. 이윽고 명불허전의 무대가 되었고, 두 명무가 등장하였다. 우선 ‘60대 이순’에서는 <동래학춤>의 예능보유자 이성훈 명인이 비상하듯 호방한 춤사위로 영남 남성춤의 정수를 보여주었다. 이 선비정신이 깃든 영남춤은 지난해의 ‘춤, 세대공감’에서 열렬한 박수갈채를 받아 2년 연속 초청되는 영광을 안았다. 특히 이성훈 명인은 금년 2월에 부산무형문화재 제3호 동래학춤 예능보유자로 지정받아 영남춤 남무의 계보를 충실히 잇게 된 만큼 더욱 진중하고 활달한 춤으로 객석으로부터 환호를 받았다. 이 날 공연의 대미는 ‘70대 고희’ 무대로 ‘근대춤의 아버지’라 불리는 한성준이 나라의 태평성대를 기원하며 만들었고, 故 강선영에 의해 전승된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92호 <태평무>가 장식하였다. 이 춤은 진쇠장단, 낙궁, 터벌림, 올림채, 도살풀이 등 무속장단을 배경으로 현역 원로무용가이자 전수교육조교인 이명자 명인의 품격 높은 춤사위로 관객들과 만났다. 특히 정신혜무용단 대표를 역임한 구성심, 최지은 등 20대에서 50대의 무용수 12명이 화려한 궁중복식과 장삼을 입고 명인의 무대에 합류하여 화사함을 더하였다. 이렇게 군무로 재구성된 <태평무>는 ‘춤, 세대공감’의 의미를 더욱 돋보이게 하였고, 아름다운 춤풍경을 연출하였다. 올해로 다섯 번째를 맞이한 정신혜무용단의 ‘춤, 세대공감’은 전통춤을 통해 세대간의 만남과 소통을 실천했던 춤판으로 지역 문화예술계의 주목을 받기에 충분하고 소중한 기획공연이었다.

 영호남 지역의 대표적 중견무용가로 자리매김한 복미경(국립민속국악원 안무자)과 정신혜(신라대 교수, 정신혜무용단 예술감독)가 긴 호흡과 느림의 미학을 기조로 옛 춤이 간직한 법도와 정신, 아울러 예(禮)의 마음으로 엮었던 기획공연 두 편은 답답했던 시국의 소용돌이를  벗어나도록 필자의 정신에 맑은 쉼표를 찍어주었다. 40대 무용가 두 명이 지역에서 꾸준히 정진하며 진정성을 담아 재해석한 다채로운 빛깔의 우리춤 공연은 칭찬받아 마땅하며, 이들이 정겹고도 소중하게 올린 공연은 세모의 따뜻한 춤선물이 아닐 수 없다. 소리없이 강한 전통춤판들 덕분으로 2016년을 훈훈하게 갈무리할 수 있어서 고마웠다.


글_ 장승헌(공연기획자, 전문무용수지원센터 상임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