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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무용단 안성수 예술감독이 말하는 국립현대무용단의 정체성

 ‘음악이 보이는 춤’, ‘발레 같은 현대무용’, ‘전통춤과의 접목을 통한 한국적 컨템포러리댄스의 확장’ 등 독자적인 안무 스타일로 입지를 다져온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창작과의 안성수 교수가 작년 12월에 국립현대무용단의 제3대 예술감독으로 선정되었다. 그는 부임 직후에 자신의 소품이었던 <혼합>으로 포문을 열었고, <춤이 말하다>, <쓰리 볼레로> 등 기획공연과 신작작업을 연이어 올리면서 전문성과 예술성을 겸비한 단체의 성장에 주력하고 있다. 오는 7월 28~30일에 신작 <제전악-장미의 잔상>을 선보일 안성수 예술감독을 만나 국립현대무용단의 정체성과 한국 현대무용의 향방에 대해 들어보았다.


Q. 뒤늦었지만 국립현대무용단의 예술감독이 되신 것을 축하드린다. 무용계에서는 명불허한 안무자이지만 일반 독자들을 위해 간략하게 본인 소개를 해주신다면?
A. 뉴욕 줄리아드 무용원에서 공부했다. 대학 재학시절에 다국적 무용수들로 이루어진 안성수픽업그룹을 창단했다. 이 무용단과 함께 무용전용극장으로 유명한 뉴욕의 조이스극장(Joyce Theater)을 비롯해서 주요 무대에 자주 섰다. 당시에 브누아드라당스의 안무가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귀국한 후 1998년에 서울에서 무용단을 재결성했고, 무용뿐만 아니라 다양한 배경을 지닌 예술가들과 함께 작업해 왔다.

Q. 얼마 전에 3명의 남성안무가를 초청하여 <쓰리 볼레로>를 올려 언론으로 호평을 받았는데, 본인의 작품은 아니지만 그 의의와 평가를 내린다면?
A. 부임한 후에 올린 <혼합>이 소품이었기 때문에 다음 공연은 화려하고 대중적으로 알려진 분들을 선택해 많은 분들이 현대무용을 관람하면 좋겠다는 의도로, 김용걸, 김보람, 김설진 안무가의 작품을 올렸다. 따라서 그 공연의 가장 중요한 목적과 의의는 무용의 대중화였다. 안무가 세 명에게 20분의 라이브음악을 제공하면 각자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을 기본 골격으로 했고, 대중에게 친숙한 음악이 관객에게 쉽게 다가가지 않겠냐는 생각에서 <볼레로>를 선택했다. 일단 대중들로부터 국립현대무용단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는 점에서 성공적이었고, 미확정이지만 내년에도 <쓰리 볼레로>든, <쓰리 20세기 춤곡>이든 춤곡을 오케스트라와 함께 올리는 기획공연을 예정하고 있다. 잘 발전시켜서 국립현대무용단의 레퍼토리로 남기고 싶다. 초청 안무자에 대한 평가는 관객들의 몫이며, 예술감독으로서 공연의 효율적인 기획과 운영에 치중하였다.

Q. 줄리아드 출신이라서 그런지 감독님의 작품에는 음악적 요소가 크게 작용한다. 어떤 측면에서 감독님의 창작 작업은 현대발레의 선구자 조지 발란신의 작업과 비견된다. 즉, 음악에 대한 치밀한 분석과 활용을 중요시 하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A. 안무에 있어서 음악에 대한 표현, 음악의 시각화를 표방하기 때문에 그것이 중요시되는 것 같다. 음악의 시각화를 보여주는 사람들이 무용수이기 때문에 그들의 트레이닝을 열심히 한다. 이번 신작은 춤곡인데 음악이 전통악기로만 구성된 전통적인 선율로 이루어진다. 여기에 장단이 들어오는데, 다행히 우리 무용수들이 이것을 잘 소화해내는 것 같다. 현대무용이라면 2박, 3박, 4박 등의 규칙적인 서양 리듬에 익숙한데, 신작에는 태평무의 5박이 기본으로 깔린다. 한국무용을 전공한 무용수들은 이미 이 장단에 익숙해서 시각화에 능숙한 것 같다.


Q. <제전악-장미의 잔상>은 부임 후 첫 신작이다. 한국무용수들의 아름다움과 인간사의 희노애락을 담은 축제적 제의로 알고 있다. 안무의 핵심과 관람 포인트를 짚어주신다면?
A. 우선 춤곡이기 때문에 곡에 대해서 알려주고 싶다. 7월 6일에 춤곡하우스라는 타이틀로 음악 소개만 따로 하는데 일차적으로 음악을 소개하고 이 음악을 가지고 어떻게 춤을 만들었는지 알려주고자 한다. 나와 작곡가가 아직 미완성이나 같이 가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처음 이 작품에 대해 구상한 것은 그라나다에서 <혼합>을 공연하고 있을 때이다. 그 도시는 아랍, 유럽과 로마의 영향이 서로 배제되지 않고 아름다운 공존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 과거의 아름답고 상당히 발달했던 예술을 오늘날로, 미래로 되살려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이를 표현하기 위해 과거 조상신을 찾아가 얘기를 듣고, 그 바탕 하에 아름다운 미래로 발전시킨다는 내용이며 미래로 나가기 위해 축제를 벌이자는 뜻에서 제전이라고 이름 붙였다. 음악에서 영감을 얻어 장면을 만들었는데, 단군신화, 서동요의 사랑 이야기 등 9개의 소품들이 음악으로 연결되어 스토리를 가진다.

Q. 전작 <혼합>, <장미>을 비롯해서 이번 신작까지 움직임에 있어서 한국적인 요소를 유달리 강조하는데, 국제무대를 염두에 둔 것인지 아니면 다른 계기가 있었는지?
A. 한국적인 요소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한국무용 수업이다. 귀국 직후에 무용원 수업을 맡았는데, 한국무용 수업을 보게 됐다. 거기서 현재까지 나와 같이 꾸준히 작업해 온 이주희도 만났다. 내가 보기에 한국무용은 현대무용과 너무 유사했다. 호흡, 무게감의 사용에서 동질감을 발견했으며, 몸을 훈련시키기에도 좋은 테크닉이라 생각했다. 그때부터 한국무용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앞으로 나의 움직임은 이렇게 되겠구나 예측했다. 한불수교 130주년을 맞아 샤이오 극장 프로그래머가 신작을 하나 제작해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따라 내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한국의 아름다움이다’라는 측면에서 시댄스 후즈 넥스트에서 <춘앵전>을 모티브로 한 작품을 선보였다. 그것을 모티브로 한 이유는 ‘우리도 왕족이 만든 춤이 있다’라는 의도였다. 그들이 음악에 큰 관심을 보였고 한국의 미를 소개시켜주는 것이 목적이었으므로 우리나라의 오래된 음악들, 조선시대 음악, 특히 구음이나 사당패 음악을 발견해서 창작에 넣었다. 결국 해외무대를 겨냥한 것이 맞는 것 같다.

Q. 작업하는데 있어서 특별히 선호하는 무용수나 협업을 담당할 예술가들이 있는지?
A. 이번 신작의 경우는 국악작곡을 하시는 라예송 선생, 조명하시는 김건영 감독, 의상하시는 성민경 선생과 협업을 한다. 작업에서는 무용수들과의 협업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개인적으로는 특히 열린 무용수들을 선호한다. 그간 현대무용 테크닉을 배운 무용수들과의 작업이 뜸했다. 이 작품으로 가장 적극적으로 현대무용수들과 작업을 하고 있는데 무척 재미있다. 과거의 달리 젊은 무용수들이 상당히 오픈되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Q. 1대 홍승엽 감독, 2대 안애순 감독과는 안무, 지도, 기획 등 여러 측면에서 다른 길을 걸어 왔고 따라서 다른 색깔로 무용단을 이끌 것으로 예측된다. 본인의 생각은 어떤지?
A. 그들과의 공통점이라면 국립현대무용단을 잘 이끌어나가는 것이며, 당연히 작품을 만드는 목표도 다르고 방법론도 다르다. 차별 지점이라면 현대무용, 발레, 한국무용이라는 삼분법적인 구분을 두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작품성향이나 무용단의 운영은 진보적이기보다는 보편적이고, 잘 훈련된 무용수와 다양한 레퍼토리의 확보로 안정적인 구조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 또한 우리의 뛰어난 무용수들과 한국의 가무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려주기 위해 많은 해외공연과 지방공연도 추진하고 있다.

Q. 국립현대무용단의 정체성과 컨템포러리댄스에 대한 견해는?
A. 내가 생각하는 컨템포러리댄스에는 현재에 만들어지는 모든 창작물이 포함된다. 그래서 국립발레단이나 국립무용단에서 만드는 춤도 컨템포러리댄스로 간주한다. 그러므로 컨템포러리댄스의 외연은 굉장히 넓으며, 내연을 들여다보면 무용수, 무용단, 지향하는 바가 다 다르다. 때문에 컨템포러리댄스 범위에는 다양한 색깔의 작품들이 무궁무진하게 존재할 수 있다. 국립현대무용단의 정체성은 무용수들에게 달려 있다고 하겠다. 재직하는 동안에 모든 것이 가능한 만능 무용수들로 훈련시킬 것이다. 이는 줄리아드에 있을 때 스승의 가르침과 동일하다. 따라서 발레, 한국무용, 고전 현대무용이라는 세 가지 정체성에 두루 통하는 무용수들이 함께 협업하고, 한국의 현대무용을 발전시켜 나갈 수 있도록 만들 것이다. 이것이 국립현대의 정체성이다.

Q. 마지막으로 국립현대무용단의 향후 계획이 무엇인지, 국내 무용가들이 국제무대로 진출할 수 있는 팁에 대해 들려주신다면?
A. 현재 여러 국제무대들이 한국의 무용수나 안무가를 초청하고 있다. 한국 출신들은 워낙 음악성과 움직임이 뛰어나다보니 자신들이 가진 것만 보여줘도 열광하는데, 한국적인 안무나 춤까지 보여주면 더 각광 받을 수 있다. 우리 무용수들은 피지컬이 강렬한데, 반면에 표현은 굉장히 섬세하다. 때문에 해외 관객들에게 쉽게 어필할 수 있고, 또 열정과 준비가 철저한 점도 장점이다. 국제무대가 선호하는 무용수들은 대체로 음감이 뛰어난 사람들이다. 우리 무용수들은 선천적으로 타고난 음감이 있다. 그러므로 이 특징을 잘 살리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국립현대무용단도 여러 해외공연이 잡혀 있다. 신작 <제전악-장미의 잔상>은  콜럼비아의 세 개 지역에서 순회공연을 가지며, 작년에 벨기에와 합작한 <나티보스>가 7월에 유럽투어를 한다. 이외에도 스웨덴과의 교류, 스위스 안무가와 협업한 <슈팅스타>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앞으로 국립현대무용단의 명성이 국제무대에 더 많이 알려지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며 국내 현대무용계의 흐름에도 국립현대무용단의 작업이 선순환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올해부터 선보이고 있는 팝업스테이지의 세 번째 무대 <권령은과 정세영>편이 준비되어 있고, 이후에도 <맨 투 맨>, <댄서하우스>라는 기획공연이 있다. 그리고 일 년에 두 개씩 신작을 내보일 예정이다. 2019년까지의 공연계획이 다 세워진 상태다.


인터뷰_ 장지원(무용평론가, 한국춤문화자료원 공동대표)
사진_ 국립현대무용단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