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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를 위한 펠든크라이스 워크샵을 마치고


 내가 펠든크라이스(Feldenkrais) 메소드를 처음 접한 것은 지난 겨울이었다. 그때까지 나는 펠든크라이스 메소드에 대해서 아는 것이 거의 없었으니, 몸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경험한다는 기대감만을 가지고 참여했다. “그냥 바닥에 누워서 뒹굴뒹굴하면 된다”는 것 말고는 그 수업에서 대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도 모르는 상태였지만, 새로운 분야에 대한 호기심으로 워크샵에 들어갔다. 예원학교의 교․강사진은 그동안 해부학, 바디 컨디셔닝에 대한 스터디를 해왔고 관련 워크샵에 꾸준히 참여하면서 교육법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는데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나의 동료들은 펠든크라이스 워크샵에 함께 참여하자는 나의 제안에 쾌히 응해주었다. 그렇게 우리는 그때까지 전혀 알지 못했던 분야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워크샵을 진행한 분은 이스라엘 출신의 펠든크라이스 권위자 루티 바(Ruty Bar) 선생이었다. 그 워크샵이 그 분과의 첫 만남이었고 그 만남은 우리가 전혀 기대하지 못했던 새롭고도 의미있는 경험들을 안겨주었다. 그동안 익숙했던 모든 것들을 새롭게 바라보게 해준 시간이었다.

 루티 바 선생의 첫 인상은 날카로웠다.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눈빛이 형형했고, 상대방을 꿰뚫어보는 듯한 그 시선에 어쩐지 주눅이 들었다. 같이 수업을 들은 동료는 그 눈빛이 “내 뼈를 다 스캔하는 거 같은”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첫 수업에서 루티 바 선생은 펠든크라이스 메소드가 “관계 Relationship”에 관한 것이라 이야기했다. 이 메소드의 목적은 삶 그 자체이며, 관계에 관한 것을 다룬다는 대답이었다. 몸과 마음의 관계, 나와 나 자신의 관계, 나와 타인들의 관계, 그리고 나와 환경과의 관계.

 늘 무엇이 맞고 틀리는지를 판단하고 빨리 고치려고 하는데 익숙한 사람으로서는 초조하고 답답한 마음이 들기도 하는 수업이었다. 펠든크라이스 메소드의 레슨에는 시범도 없고 어떤 방식으로 움직여야 하는지에 관해 명확한 지시가 없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게 맞는지, 내가 다른 사람들과 비슷하게라도 하고 있는지 불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워크샵이 진행됨에 따라서 답을 스스로 찾아야하는 이유에 대해 점차 깨닫기 시작했다. 지구 중력에 각자의 방식으로 적응해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애초에 정답이란 있을 수 없으니 답은 각자가 찾는 게 맞다는 걸 긍정하게 되었다.

 무엇이 잘못되었고 틀렸는지를 찾아내고 고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현 상태를 긍정하되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며 답을 찾아가는 것이 이 메소드가 지향하는 방향이었다. 루티 바 선생은 어떤 질문을 해도 즉각적인 답을 주기보다는 왜 그런 질문을 하게 되었는지 생각하게 만들었다. 일정한 방향을 지시하거나 정해진 결론으로 이끌지 않고, 스스로 생각하며 길을 찾게 해주는 것이 내가 경험한 펠든크라이스의 방식이었다. 내가 이미 알고 있고 가지고 있는 것들을 다 내려놓고 맨 몸으로 출발한다는 것은 특별한 경험이었다. 사흘의 펠든크라이스 워크샵은 늘 긴장 속에서 생활했던 나에게 행복한 배움이자 치유의 경험이었다.

 내가 배운 게 과연 무엇이었는지 확실하게 모른 채 끝났던 1월의 그 워크샵 이후, 자연스럽게 예술가로서 교사로서 관점의 변화를 경험하게 되었다. 내가 학생들에게서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것들, 보지 않고 있었던 것들을 보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학생들을 어떻게 대해야하는지, 어떻게 바라봐야하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데, 지나고 나서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된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펠든크라이스 메소드의 영향력을 깨닫게 된 나와 동료들은 그 후로도 몇 번의 ATM(Awareness Through Movement) 수업을 함께 들었고, 서로 경험한 것들을 나누며 그 수업들이 가져온 “작지만 큰” 변화에 공감했다. 루티 바 선생의 “Less is More”라는 말의 의미가 어느덧 마음에 와 닿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러다가, 이번 가을 전문가 과정을 위해 서울에 다시 오시게 된 루티 바 선생이 “지난 워크샵 때 맨 앞줄에 있던 애들”에 대한 각별한 관심을 갖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루티 바 선생 자신이 과거에 무용가였기 때문에, 무용가들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갖고 계시다는 것도. 선생께서 예술가들을 위한 워크샵을 해줄 의사가 있다는 걸 소마콜라보의 박소정 대표를 통해 알게 되었고, 그 제안이 너무나 감사했던 나는 예원학교에서 예술가들을 위한 워크샵을 개최해 9월 25일부터 27일까지 루티 바 선생과 다시금 함께 할 수 있었다.

 9월의 “예술가를 위한 워크샵”에서, 루티 바 선생은 다시 만난 낯익은 얼굴들을 보며 굉장히 반가워하셨고, 처음 만났을 때보다 훨씬 더 친절하고 즐겁게 워크샵을 이끌어주셨다. 루티 바 선생은 다양하고 풍성한 내용들을 ATM 수업을 통해 다뤄주셨고, 짧은 시간 안에  우리로 하여금 많은 것을 경험하고 느끼게 해주기 위해 노력하셨다. 우리가 이전의 수업에서 모호하고 불친절하다 느꼈던 부분들도, 그 이유와 목적에 대해 이해하게 되면서 보다 명확해졌다. 펠든크라이스 전문가 과정의 캐치프레이즈인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가능한 것을 우아하게”라는 문구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게 하는 수업이었다.

 나는 루티 바 선생에게 개인적으로 FI(Functional Integration: 펠든크라이스의 hands-on방식)레슨을 받는 행운을 누렸다.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아주 조심스럽고 가볍게 가이드 하는 손길을 통해 내가 몸을 어떻게 움직이는지, 어떻게 숨을 쉬는지, 어떤 습관이 내게 각인되어 있는지 느꼈고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감각들이 깨어나는 것을 경험했다. 선생께선 내가 배운 것을 “그냥 다 잊어버리라”고 했고 “연습하지 말라”고 하셨지만, 그때 ATM수업과 FI를 통해 경험한 것들은 결코 적지 않은 통찰을 내게 주었고, 지금도 그 영향이 꾸준히 남아있을 뿐 아니라 곱씹을수록 새로워짐을 느낀다. 나와 함께 참여했던 동료들은 우리가 펠든크라이스 메소드를 접할 수 있었던 것에 대해 감사한다.

 예술은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여정이기에, 먼저 자신을 잘 알고 받아들여야 하며 그 길에서 마주치는 모든 만남과 관계맺음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그 모든 "관계"를 가장 중요한 기반으로 삼는 펠든크라이스 메소드와의 만남은 예술가이자 교사로서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한 인간으로서의 나를 다시 돌아보게 해준 소중한 경험이었다.


글_ 김나영 (예원학교 무용부장)
사진_ 소마콜라보 대표 박소정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