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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탐구되고 실연된 렉처 퍼포먼스 - 무용역사기록학회의 <신민요춤의 재발견>

 

1990년대 중순 이래로, 새로운 무용경향으로서 컨템포러리댄스는 국내 무용계에도 영향을 미쳤으며 200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수용되고 확산되었다. 컨템포러리댄스의 다양한 양상이 국내 무용가들에게도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쳐서 여러 갈래의 실험과 혁신을 단행하게 하였다. 2010년대에는 새로운 것을 추구하려는 국내 무용가들 사이에서 렉쳐 퍼포먼스라는 것이 시도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렉쳐 퍼포먼스라는 용어 자체가 생소했던 탓에 새로운 공연 양식으로 인식되기도 했지만 사실 그 시작은 꽤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원래 렉처 퍼포먼스는 1960년대부터 공연의 하위 장르로 존재해왔는데 근래 들어 다시 확산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예술과 학계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균형을 잡고 있는 분야로서 강연에다가 공연과 교육적 측면을 융합하여 청중의 지적, 감성적, 정서적 참여를 이끄는 분야다. 기존의 정형화된 형식을 넘어서 확장된 형태의 융복합을 시도하기도 한다. 최근 춤의 하이브리드 특성에 대응하여 렉처 퍼포먼스 역시 스펙터클(퍼포먼스, 연극, 영화, 흥행물 등), 스토리텔링, 매스미디어(신문, TV, 라디오, 영화, 잡지 등), 인터넷, 광고, 슬로건 등 분야를 끌어들이기도 하는 것이다.  

 

그동안 다수의 무용가들에 의해 국내에서도 여러 형태의 렉쳐 퍼포먼스가 시도되어 오긴 했으나 렉쳐란 명칭을 쓰기에는 탐구력이 부족하거나 심지어 렉쳐 퍼포먼스에 대한 이해조차 부족한 공연도 적지 않았다. 그러한 가운데 얼마 전 무용역사기록학회의 <신민요춤의 재발견>은 탄탄한 복원 연구를 통해 재현된 렉쳐 퍼포먼스라는 점에서 관심을 모았다.  

 

무용역사기록학회는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은 ‘2020 전통예술 복원 및 재현사업’으로서 <근대의 춤 유산, 신민요춤의 재발견>을 추진하였다. 8월 8일 예술가의집에서는 같은 제목으로 신민요춤에 관한 자료 조사 및 재현을 위한 학술세미나를 전개하였으며 그것을 바탕으로 9월 13일 돈화문국악당에서 렉쳐 퍼포먼스를 펼친 것이다.  

 

신민요춤이란 일제강점기 음반시장의 형성으로 대중화된 신민요와 더불어 1960년대까지 일반 대중 사이에서 널리 유행했던 춤으로, 1928년 배구자의 <이리랑>을 효시로 보고 있다. 이번 공연에서는 1930년대 최승희와 쌍벽을 이루었던 신무용가 배구자의 신민요 관련춤, 노래, 기사와 함께 1950~60년대 문화영화에 수록된 권려성(최승희의 제자)의 신민요춤을 연구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그중 <천안삼거리>, <늴리리야>, <처녀총각>을 복원 연구를 통해 재현하는 한편 작금의 감각으로 재구성하여 무대 위에 올렸다.  

 

 

<천안삼거리>

 

우선 <천안삼거리>는 굿거리장단에 맞춰 흥겹게 부르는 노래로 그 흥겨움을 표현하는 ‘흥~’이란 가사로 인해 흥타령으로 불리기도 한다. 자료의 출처는 1936년 배구자가 배구자악극단과 소녀합창단과 함께 부른 신민요 레코드에다가 1957년 <내 강산 좋을시고>란 문화영화에 담긴 권려성무용단의 춤 장면이다. 해당 영상에는 뒷산에 꽃을 따러 나온 한 여인의 흥취가 정감있게 펼쳐지는데, 강주미 춤패바람 예술감독에 의해 재현 및 재구성이 이루어졌다.  

 

 

<늴리리야>

 

<늴리리야>는 굿거리장단의 노래로서 본래 무당들이 굿을 할 때 부르던 무가(巫歌)인 창부타령에서 유래한다. 원전 출처는 권려성무용단이 출연한 1960년 문화영화 <흘러간 옛노래>로서 경쾌한 음악에 맞춰 댕기머리를 한 소녀들이 노니 듯이 밝고 가볍게 춤을 춘다. 김선정 단국대학교 교수의 지도로 4명의 여성무용수들이 재현작 및 재구성작을 전개하였다.  

 

 

<처녀총각>

 

<처녀총각>은 1960년 문화영화 <흘러간 옛노래>에 삽입된 권려성무용단의 신민요 창작춤이다. 신민요의 전성기를 이끈 ‘양산도’라는 신민요를 반주로 하여, 2쌍의 남녀무용수들이 서양식 포크댄스 형식으로 만들어진 춤을 춘다. 남수정 용인대학교 교수가 4명의 무용수들을 데리고 재현 및 재구성을 진행하였다.  

 

각각 <천안삼거리>, <늴리리야>, <처녀총각>을 맡은 강주미, 김선정, 남수정은 간략한 연구발표를 통해 춤, 노래, 기사, 문화영화 등의 자료를 연구하여 당시의 모습을 가능한 충실하게 재현하였다고 한다. 물론 춤의 일부만 영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경우 나머지 부분에 대해서는 유추하여 보강하기도 하였다. 작금에 이르러서는 무대 위에서의 실연을 거의 볼 수 없는 신민요춤을 재현하였다는 점에서 역사적, 이론적, 현장적 가치를 지닌다.  

 

이어진 <천안삼거리>, <늴리리야>, <처녀총각>의 재구성에서는 현재의 대중들에게 소통될 수 있을 만한 모습으로 발전시켜 놓았다. 강주미, 김선정, 남수정의 재구성작을 통해 한국 춤이 현재에 이르러서 얼마만큼 예술적 성장과 확장을 이루어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구도적으로나 기교적으로 풍성하고 정돈되고 세련된 춤으로 재구성된 것이다. 신민요 역시 아코디언, 퍼커션 및 꽹과리, 바이올린, 색소폰, 장고, 소리 등을 다루는 6명의 뮤지션들에 의해 현재의 감각으로 새로이 각색되었다.  

 

세 가지 신민요춤의 재현과 재구성이 중심을 이루면서 신문, 방송, 영화 등에 기록된 신민요춤에 대한 영상 보기라든가 골동 축음기와 음반으로 일제강점기 신민요 원음 감상하기 같은 세부 프로그램이 더해져서 상당히 풍성한 렉쳐 퍼포먼스를 완성하였다. 별다른 탐구도 새로운 비전도 제시하지 못한 채 안무의 무게를 회피하려고만 하는 렉쳐 퍼포먼스가 적지 않은 현실에서, 무용역사기록학회의 「신민요춤의 재발견」은 렉쳐 퍼포먼스의 전문성이 어느 정도로까지 깊어질 수 있는지 보여주는 하나의 예시로 자리매김하리라 본다. 사실, 탐구의 깊이를 살펴보면 리서치 퍼포먼스란 용어가 좀 더 정확해 보일 수 있으나 리서치 퍼포먼스는 보통 연구실적이나 연구성과로 해석되는 경우 많기 때문에 렉쳐 퍼포먼스 중에서도 리서치를 강화한 형태라고 보는 것이 적합할 것이다.  

 

 

글_ 심정민(무용평론가, 비평사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