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스포스트코리아
지난자료보기

로고

무용현장

포커스

탈북무용가의 ‘이주하는 몸’이 만들어내는 춤 -무용역사기록학회의 다큐멘터리 퍼포먼스 <몸의 이주>


 

남북분단이라는 한반도의 특수한 상황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 영역에 걸쳐 이질감과 괴리감을 조성하였다. 춤에 있어서도 남북 간의 차이는 확연하다. 이렇게 확연한 차이를 지닌 남북 간의 춤의 차이를 넘어 정서적, 신체적 접점을 찾아가는 다큐멘터리 퍼포먼스가 펼쳐져서 이목을 끌었다. GKL사회공헌재단 ‘사회적 약자 문화예술인 전문 예술활동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무용역사기록학회가 제작한 <몸의 이주>(10월 28일 오류아트홀)가 그것이다. 퍼포먼스의 주요 출연진과 스태프로는 탈북무용인 김옥인, 안무가 박소정, 음악가 김철웅 그리고 연출을 맡은 김재리가 있다. 후반부를 장식한 다큐멘터리는 허재형에 의해 제작되었으며 이후 완성된 영상이 12월 14일 전통창작마루에서 상연되었다. 무엇보다도 이러한 다큐멘터리 퍼포먼스의 콘셉트와 탐구와 실행은 최해리에 의해 총괄되었다.  

 


 

오프인을 장식한 ‘아리랑 소나타’라는 이름의 연주회에서는 민현기(성악가)의 <압록강 2천리>와 정명화(평양민속예술단 단원)의 <임진강>이 김철웅의 반주로 흐른다. 

 

퍼포먼스에서는 탈북무용인 김옥인이 ‘나는 북한 무용가입니다. 자강도 전천군에서 태어났습니다. 9살 때부터 무용을 했고 2002년 남한으로 와서 평양민속무용단을 만들어 춤을 추고 있습니다. 자강도, 함흥, 두만강, 흑룡강, 연길, 한국의 대림동 등 살았던 곳의 기억은 지금 나와 함께 이 무대에 있습니다.’는 말로서 자신의 삶과 춤을 소개하기 시작한다. 그녀는 어떻게 춤을 배우기 시작하여 전문무용인으로 성장했는지, 북한 춤의 종류와 특성은 무엇인지, 한국으로 이주해왔을 당시 느낀 문화적 충격은 어떠했는지, 남북한 춤 사이에 이질감과 괴리감은 어떠한지, 지금은 무슨 일을 하는지 등을 말, 춤, 노래, 소품을 활용하여 펼쳐놓는다. 

 


 

이어서 탈북무용가 김옥인은 한국 현대무용가 박소정과의 만남을 통해 완성된 움직임을 펼친다. 그 과정에 대한 소개는 이후 나오는 다큐멘터리 필름을 통해 보다 뚜렷이 알 수 있는데, 박소정은 김옥인과의 면밀한 대화를 통해 김옥인만의 주체적인 몸성과 춤성을 찾아내기 위한 탐구를 이끌었다. 북한 춤의 인위적인 춤사위에 익숙한 김옥인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움직임에 완전히 동화되지는 못하고 있으나 끊임없이 그것을 찾아가려는 노력을 거듭한다. 그리하여 인위적인 느낌이 강한 북한 춤도 아닌 그렇다고 한국의 현대춤처럼 완전히 자유로운 춤도 아닌, 둘 사이에 중간지대를 배회하는 듯한 움직임을 펼친다. 그것은 마치 서로 다른 두 개의 세계가 충돌하여 서서히 융해되어 과정과도 같다. 이는 김옥인이 끊임없이 풀어나가야 하는 춤추는 삶의 과제처럼 느껴지도 한다. 

 

마지막 20여 분을 장식한 다큐멘터리 필름에서는 김옥인과 같이 북에서는 전문예술인으로 활약하다가 이주 후에 사회적 약자로 전락해버린 탈북예술인의 정체성을 조명하고 한국 사회에서 탈북예술인이 능동적인 주체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가에 대한 화두를 던져놓는다. 그러고는 김옥인이 한국에서 창단한 평양민속무용단의 현재 활동들을 비춘다. 

 


 

12월 14일 전통창작마루에서 상연된 허재형의 다큐멘터리 필름은 10월 28일 퍼포먼스와 그 뒷모습까지 수록하여 보다 완성된 형태를 갖추었다. 이번 다큐멘터리 퍼포먼스에서 다큐멘터리 필름은 상당히 중요한 가치를 지니는데, 퍼포먼스의 목적과 의미를 적절하게 담아낼 뿐 아니라 전 과정을 기록하는 측면에서도 그러하다. 

 

분단을 넘어 이주해온 탈북무용가의 몸은 그 자체로 주목할 만한 춤적 매개로 작용한다. 이러한 탈북무용가와 한국의 무용가와 음악가가 만나서 상호교류 및 공동작업을 통해, 분단을 넘어 ‘이주하는 몸’에서 발생하는 기억과 서사와 역사를 탐구하는 <몸의 이주>란 다큐멘터리 퍼포먼스는 그 자체로 참신한 시도이면서 동시에 사회적, 문화적으로 묵직한 의미와 가치를 지닌다. 

 

근래 들어 무용역사기록학회는 렉처 퍼포먼스나 다큐멘터리 퍼포먼스 같이 무용을 중심으로 주변 영역에 대한 연구와 창작과 실연이 결합된 형태의 공연을 선보이고 있는데 단순히 특정 기관의 지원에 대한 성과발표회를 넘어서 관련 분야에 새로운 지평을 열 수 있을 만한 결과물을 낸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그리고 그 이면에 많은 전문가들의 노력이 확인된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무용의 이론적 영역은 무용의 실제적 영역의 접점을 찾아가야 한다. 


 

 

글_ 심정민(무용평론가·비평사학자)

사진제공_ 무용역사기록학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