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에서 진가를 발휘하고 있는 국립현대무용단과 그 수장 남정호
국립현대무용단 남정호 예술감독 ⓒBAKi
감독 취임 2년차의 소회
국립현대무용단의 예술감독으로 부임하신 지 2년이 되었습니다. 소회를 밝혀주십시오.
2년이라는 시간이 참 빠르게 갔습니다. 코로나와 함께 취임했고 준비했던 모든 공연이나 워크숍을 새로운 방법을 찾아 진행하느라 정신없이 바빴습니다. 결과적으로는 많은 것을 배웠고 지혜도 좀 쌓였습니다. 점차 사태가 나아질 거라는 희망을 품고 낙관적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취임 당시에 가졌던 목표와 각오는 무엇입니까?
감독직을 맡기 전부터 국립현대무용단에 대한 신뢰와 애정이 있었기에 거대한 목표 같은 것은 세우지 않았습니다. 2011년 창단될 때부터 6년간 이사로 참여했고, 3년 뒤에 예술감독을 맡게 되었으니까요.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모두를 위한 무용단이라는 의식은 강했습니다. 그래서 전문가와 비전문가, 예술가와 관객이라는 대조적인 두 세계를 아우르고 양 날개를 다 사용해야 한다는 각오는 있었습니다.
공감과 소통을 목표로 하신다는 인터뷰 기사들을 보았습니다. 어느 정도 달성했다고 자평하시는지요?
저 스스로 평가하기는 어렵습니다. 국립현대무용단의 활동을 향유하는 사람들, 즉 대중이나 관객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코로나 사태로 모든 공연이 영상으로 전환되었기 때문에 극장까지 올 여유가 없었던 현대무용 애호가들에게 더 수월한 관람 기회를 제공했던 것 같습니다. 조회 수로 평가할 수는 없지만 접근성을 많이 높였다고 생각합니다. 현대무용을 손쉽게 관람할 기회가 제공되니 현대무용 애호가층의 확장으로 이어졌고 보이지 않았던 관객까지 확충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국립현대무용단을 움직이는 사람들
국립현대무용단의 시즌 공연과 라인업 발표를 기다리는 1인이 되었습니다. 공연 계획은 누구와 의논하고 라인업은 어떻게 결정되나요?
라인업은 전년도에 결정됩니다. 작년에 취임했을 당시에 전 단장님을 중심으로 라인업이 이미 형성되었지요. 이를 존중하여 계획대로 수행하려고 노력했고, 코로나로 못한 것은 <그 후 1년>이라는 타이틀로 올해 올리기도 했습니다. 올해 공연물을 준비하면서 무용단이 쌓아 올린 질서를 따르게 되더군요. 여기서 질서라는 것은 기획팀을 중심으로 큰 틀을 짜는 것을 말합니다. 기본적으로 기획팀에서 기획안을 내면 운영진과 장시간의 논의를 거쳐 결정합니다. 10년 동안 무용단이 중요하게 지켜온 기획 이슈들이 있습니다. 첫 번째 이슈는 좋은 작품을 발굴하는 것입니다. 우리 단체는 단원이 없는 프로젝트 베이스 무용단이니까 좋은 프로젝트를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두 번째는 실험 정신을 지닌 젊은 현대무용가들을 발굴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대중들이 무용을 통해 건강한 몸과 마음을 가질 수 있게 하고 삶의 질을 향상시켜 더 행복해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가장 큰 미션일 것입니다.
그러면 기획안에 감독님의 색은 어떻게 입히나요?
앞서 말했듯이 10년 동안 없어지는 건 없어지고 살아남은 건 살아남았습니다. 여기에 감독의 색깔이라는 게 의미가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감독을 맡기 이전부터 컨템포러리댄스의 현장에 있었고, 동시에 교육계에도 있었지만 될 수 있는 대로 현장에 있던 사람들의 의견을 존중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래서 기획자의 제안을 전문가적 견지에서 타당하지 않으면 거절도 하지만 웬만하면 거의 다 수용합니다.
해외 현대무용단들을 보면 예술감독이 간판스타이고 예술감독의 작품으로 무용단의 정체성을 드러내지 않습니까? 우리나라 무용계는 ‘국립’을 국위선양으로 여기는 1960년대 국립무용단 창단 시절의 사고가 지배적인 것 같습니다. 이 때문에 국립단체의 예술감독들이 공공성의 무게를 지나치게 의식하는 것은 아닌가 싶고요.
국립현대무용단은 프로젝트 베이스 무용단이기 때문에 많은 안무자에게 기회를 주고 싶고, 이들로부터 독특한 작품들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작품 하나를 가지고 무용단의 성격을 말할 수 없습니다. 예술감독인 제가 작품을 내놓을 때는 다른 안무가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중 한 사람인 것이죠. 그리고 저는 안무가들이 자유롭게 개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편입니다.
기획팀에는 어떤 분들이 계시는가요?
곽아람 팀장이 이끌고 있으며, 그분 아래에 각 공연마다 담당 피디들이 있습니다. 기획팀에서 리서치하고 제안서를 내면 사무국이나 경영팀이 함께 논의한 후에 감독이 최종 결정을 내립니다. 동시에 2019년과 2020년의 <스텝업>처럼 공모형 프로젝트도 진행합니다.
올해 특별히 주목할 공연은 무엇인가요?
8월의 <힙합> 프로젝트 공연에 대한 기대가 큽니다. 현대무용 안무가들이 국악에 맞춰 창작하는 우리나라식 힙합 무브먼트 작품들을 선보입니다. 한국의 문화가 대중예술만 있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K-Pop이 세계적으로 유명하지만 저처럼 소위 말하는 순수예술을 하는 처지에서 보면 예술성이 조금 아쉬웠습니다. 또, 무용단으로서는 한류를 대중예술에만 맡겨놓는 것이 직무유기를 한다는 느낌도 들고요. 예술성 높은 작품으로 한류를 대표할 수 있게 만들겠다는 의욕에서 기획했습니다. 또 한 가지 추천할 공연은 <겨울나그네>입니다. 이 프로젝트는 제가 제안한 것입니다. 현대무용 작품들이 언젠가부터 지나치게 고난도 테크닉 위주로 구성되는 경향이 있어 마치 청년 무용가들의 전유물과 같아졌습니다. 이 작품은 인생을 오래 산, 오래 무용활동을 한, 어떻게 보면 계절로서는 겨울까지 온 현대무용가들이 그간의 인생 경험을 춤으로 녹여내는 무대입니다.
무용계와의 소통
지나친 비약이겠지만 전임 안성수 감독님의 시절부터 국립현대무용단은 ‘한예종 현대무용단’이라는 비판이 있을 정도로 초청 안무가와 무용수들의 출신이 무용원에 한정된 것처럼 보입니다.
안 선생님이나 저나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교수 출신들이다 보니 그런 인식이 많아진 것 같습니다. 국립현대무용단이 특정 학교 출신의 무용가들에 의해 좌지우지될 수 있는 곳은 아닙니다. 사회 환원이 타당한 표현일지 모르겠지만 외부 현대무용가들에게도 혜택을 제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오픈 클래스를 마련했습니다. 전문 무용수들을 위해서 일주일에 두 번씩 발레와 현대무용 수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누구나 신청할 수 있어요. 오픈 클래스를 통해 외부 무용수들이 새로운 춤을 경험하고 정보를 교류하는 것이죠. 저도 오며 가며 수업에 참여하면서 좋은 무용수들을 발굴하고 있습니다.
무용가들과의 소통과 교류를 위한 노력으로 보입니다. 무용계와는 어떤 관계를 갖는 것이 바람직할까요?
국립현대무용단은 현대무용계 원로들이 오랫동안 노력해서 어렵게 이룬 단체입니다. 원로 세대에 많은 빚을 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간은 무용단의 기틀을 세우느라 여유가 없었습니다. 올해로 창단 10주년이 되었습니다. 원로들의 말씀을 새기는 영상을 만들고 이분들의 노고를 기리는 행사를 기획했습니다. 현대무용계는 국립현대무용단의 터라고 생각합니다. 터가 없는 국립현대무용단은 있을 수 없습니다. 기본적으로 현대무용계와 어깨동무를 하면서 동행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양쪽 다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협력관계를 모색해야 합니다. 올해 현대무용협회가 모다페 40주년을 맞이해서 공연 제안을 해와 수락했습니다. 또, 전국적으로 순회공연도 갑니다.
비평계와 언론계와의 관계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들에게 바라는 기대 또는 역할은 무엇입니까?
무용단과 비평가들 사이에는 건전한 긴장감이 유지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무용이 순간의 예술이기 때문에 공연하면 결국 남는 것은 사진, 영상, 그리고 비평문이죠. 객석의 박수보다 전문가인 비평가의 글이 명료하게 남다 보니 결코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비평가를 위해 작품을 만들지는 않습니다. 동시대 예술이라는 게 굉장히 빨리 변하고 금지된 것이 없는 만큼 비평가들도 이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공부가 필요합니다. 이 부분에서는 국내비평에 아쉬움이 좀 있습니다. 비평가들은 안무가들의 작품 경향을 비롯한 국내외 무용계 전체의 흐름을 파악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진가를 발현한 국립현대무용단의 언택트 활동
코로나 시대에 대응하여 랜선공연을 넘어 AI공연까지 선보이고 있는 국립현대무용단의 언택트 활동이 돋보입니다. 마치 이런 시대가 올 것을 예상한 듯이 미래지향적이며 상당히 안정되어 보입니다. 그 비결이 무엇인가요?
현대무용이라는 것 자체가 ‘현대’를 위한 것이며, ‘동시대’는 테크놀로지의 시대이기도 하죠. 국립현대무용단은 10년밖에 되지 않은 젊은 무용단이기 때문에 두 분야의 실험과 교차가 수시로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코로나 이전에 영상은 무용기록을 위한 수단이자 선택이었지만, 코로나 이후로는 필수매체가 되었습니다. 코로나 이전에도 국립현대무용단은 홍보자료를 비롯하여 영상적인 모험을 많이 하고 있었습니다. 이미 영상에 대한 단련과정이 있었던 거지요. 그래서 코로나 시대에 맞춰 재빨리 대응할 수 있었습니다만 세계적인 수준에서 보면 아직은 부족합니다.
1990년대 무렵에 감독님을 통해 프랑스를 비롯하여 유럽의 최신 춤영상 자료를 참 많이 관람했었지요. 30년 전부터 이미 유럽 안무가들은 영상을 제3의 무대로 간주하고 영상 전용 춤작품을 만들어 왔으니 우리와 영상 수준의 격차가 클 수밖에 없을 겁니다. 감독님은 유럽 춤영상에서 어떤 영향을 받으셨는지요?
제 개인적으로는 춤을 테크놀로지에 맡기는 것을 선호하지 않습니다. 편리함보다는 진정성을 추구하기 때문이죠. 무용은 마지막으로 남은 수작업이라는 신념이 있으므로 가능하면 가 내수공업적으로 땀을 흘리며 작업을 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다른 안무가들의 작업은 최대한 존중합니다.
코로나 시대의 바람직한 창작과 공연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창작은 작가가 하는 것입니다. 작가는 개인의 삶과 연결해서 창작작업을 합니다. 저 남정호는 남정호의 삶과 연결되는 작업을 하겠지요. 국립현대무용단에서 초청한 다른 안무가들은 또 그들의 삶과 연결되는 방향을 만들 겁니다. 전반적으로 코로나를 맞이해서 안무가들이 허세보다는 실속을 추구하게 되었어요. 언제 죽을지 모르는 불안함 때문에 가족이나 자기 몸을 보살피는 등 무용가들의 가치관이 변화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시대를 겪으면서 허황한 것을 좇기보다는 자기 옆에 있는 파랑새의 가치를 인정하게 된 것이죠. 가장 바람직한 창작과 공연은 자신에게 솔직한 작품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동시대 춤이라는 컨템포러리댄스의 핵심은 자신의 삶과 자신이 사는 사회에 관한 질문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그동안 우리 안무가들의 작품에서는 그런 질문을 찾기 어려웠습니다. 감독님의 말씀처럼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무용가들이 삶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하게 되었고, 비로소 질문이 생긴 것 같습니다. 유럽 안무가들의 개념과 작품을 카피하며 컨템포러리댄스에 거품만 입히던 안무가들이 이제 눈을 떴다고나 할까요. 코로나 시대부터 우리나라의 진짜 컨템포러리댄스가 시작되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컨템포러리댄스의 작가나 안무가라면 본인이 가진 것에 대한 가치와 아름다움을 재발견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서양 사람들이 만든 우수한 작품을 수입해서 배우던 시대가 분명 있었습니다. 지금도 그들이 컨템포러리댄스의 주류입니다만, 안무가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인식하고 이를 춤으로 발현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작가로서 “나는 누구인가”를 진지하게 성찰해 보아야겠지요. 조금 더 냉소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모방만 하는 사람인가?” “내 작품은 수입 대리산인가?”를 반성해야 합니다. 컨템포러리댄스가 수입된 지 이미 오래되었으니 이제는 나의 것, 내가 가진 것, 내가 낫다고 생각하는 것, 어쩔 수 없이 내게 각인된 DNA 같은 것, 우리의 조상과 문화 등을 자연스럽게 생각하는 시대인 거죠. 그렇다고 국수주의를 강조하는 것은 아닙니다. 국립현대무용단의 감독들은 굿에 대한 원천적 해석과 현대적 표현 등 창단 초기에서부터 우리의 컨템포러리댄스에 많은 관심을 가져왔습니다. 안성수 감독이나 저도 마찬가지고요.
‘글쟁이 무용가’ 남정호
1980년대 초에 프랑스 유학에서 돌아오신 후 ‘프렌치 시크(세련된 프랑스미)’으로 ‘아메리칸 모던(미국적 현대미)’ 일색의 현대무용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신 무용가라고 기억합니다. 그때 본인의 창작 정신이라고 일갈했던 ‘유희’ 정신은 아직도 유효합니까? 아니면 다른 창작 콘셉트나 스타일이 생겼습니까?
유희라는 정서를 바탕으로 대화, 담론, 소통 형식의 무용을 추구해 왔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그리고 교수 생활 후반부에 즉흥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즉흥을 통해 내재된 움직임을 끄집어내는 것이 참 멋진 일이라고 생각했던 거죠. 내재된 자아를 발견하는 것, 깊숙한 곳에 있는 자기를 끄집어내서 본인을 창작의 소재나 도구로 삼는 즉흥이라는 도구가 하나 더 생긴 것 같습니다.
춤비평가였던 조동화 선생님이 유일하게 인정하셨던 ‘글쟁이 무용가’이십니다. 작년에 감독님이 <경향신문>에 연재하신 “몸으로 말하기” 칼럼의 애독자였는데 중단되어 아쉬웠습니다. 감독님의 글쓰기는 문장이 유려하며 어렵지 않고 쉽게 읽히는 것이 특징인 것 같습니다. 글을 잘 쓰게 된 배경이나 글쓰기의 비결은 무엇입니까?
어렸을 때부터 소위 말하는 지(智)와의 사랑, 그러니까 춤과 글에 대한 애정을 동시에 갖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글만으로는 답답하고 춤만으로는 허한 느낌이 들었는데, 글과 춤을 양 날개로 갖고 있을 때 안정감을 느꼈습니다. 어릴 때부터 독서는 꽤 했습니다. 글로 쓰인 것을 읽는 즐거움을 아직도 느끼고 있고 그런 것이 가끔 글을 쓰는 데 도움이 되기는 합니다. 무용가가 안 됐으면 틀림없이 글쟁이가 되었을 겁니다. 신춘문예에 글을 내고 싶은 생각도 있었으니까요. 배정혜 선생님이 예술감독으로 계실 때 국립무용단에서 창작 대본 공모를 했었는데, 거기에 참여해서 상금을 800만 원이나 받은 적도 있습니다. 연극 연출가 오태석 선생님이 심사했다던데 우수상이 없는 차석상인가 그랬어요. 글을 쓰게 된 배경은 아무래도 독서라고 할 수 있죠. 글을 쓰다 보면 내 글 같지 않고 어디선가 읽은 듯한데 어느 사이에 내 안에 들어와서 나의 것이 되어버린 그런 거 있잖아요. 어투라든가 단어라든가 구절이라든가. 그러니 좋은 글을 많이 읽는 게 제일 중요합니다.
감독님의 창작이나 공연도 ‘이해하기 쉬운 글’과 일맥상통하는 것 같습니다. 춤공연의 원칙, 또는 창작에서 지향하는 바가 있습니까?
어려운 이야기를 쉽게 풀어서 할 수 있는 선생님이 제일 좋은 선생님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이런 선생님이 되는 것이 제 공연이나 창작의 지향점이라고 할 수 있어요. 무용이라는 게 추상적이니 어렵기도 하잖아요. 단순하게 알려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단순하면서도 많은 각도에서 자신만의 생각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가장 컨템포러리적인 아름다움이 아닌가 싶습니다.
현대무용 감상을 위한 특급 팁
국립현대무용단이 대중화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중은 현대무용을 여전히 어렵다고 말합니다. 이런 관객들을 위해 현대무용 감상을 위한 특급 팁을 알려주십시오.
“현대무용이 어렵다”는 불평은 현대무용이 탄생하던 시기에서부터 줄곧 있었습니다. 난해함은 처음 보는 것에 대해 낯섦이거나 특정할 수 없는 모호함 때문에 드는 생각일 겁니다. 그런데 그런 것을 기대하고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기 마련입니다. 요즘 국립현대미술관에 가보면 관람객이 참 많습니다. 그곳에 오는 관람객들을 살펴보면 건축과 전시를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즐기는 것 같습니다. 같은 현대예술인 현대무용의 관객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국립현대무용단의 공연에 오는 관객들은 현대예술에 대한 특별한 취향이 있거나 클래식을 너무 많이 접해 지루해져서 새로움을 찾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그들을 실망하게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요리로 예를 들면 요리사가 좋은 재료를 가지고 자신이 생각하는 근사한 음식을 만드는데 대중이 좋아하지 않을 것 같으니까 불필요한 조미료를 넣지는 않겠지요. 소신껏 작품을 만들어 관객과 향유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관객마다 각자의 취향이 있기 마련입니다. 공연을 보면서 자신이 편한 대로, 생각나는 대로 초점을 두고 감상하면 됩니다. 한 가지 방법을 공유하자면, 머리로 이해하려고 들지 말고 감각적으로 접근해보라는 것입니다. 객석에 앉아 춤공연을 보면서 몸의 작은 근육이나 신경들을 계속 조금씩 움직여 보세요. 춤을 가장 잘 감상하는 방법의 하나는 춤공연에 자신의 몸을 들여놓는 상상적 경험일 것입니다. 그 상태를 받아들일 정도로, 즐길 정도로 몸을 열어야 합니다.
감독님의 말씀을 듣고 있자니 관객들에게 느끼고 보는 훈련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처음에는 약간의 지적 허영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남다르게 보이려고 현대무용 공연장을 찾기도 하고, 특정 현대무용가에게 매력을 느껴서 그 사람의 공연만 쫓아다니기도 하고, 케이스 바이 케이스가 있을 것입니다. 어떤 이유로 시작하든 현대무용 애호가들은 꾸준하게 현대무용공연을 보다가 현대무용의 매력에 사로잡혔다는 것입니다.
무용가의 나이 듦에 대하여
대학 교수직을 은퇴하고 일흔 가까운 나이에 예술감독으로 선정되어 무용계가 술렁였습니다. 무용가의 나이 듦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제 또래의 사람들은 나이가 들었으니 많은 것을 포기하고, 또 약간은 게을러진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저는 아직도 철이 들지 않았는지 호기심이 많아 책도 많이 읽고 사람 만나는 것도 좋아하고 공연을 보는 것도 좋아합니다. 제안이 오면 좀처럼 거절하지 않는 편인데, 가장 큰 이유는 호기심 때문이죠. 젊었을 때부터 ‘자신에 대한 도전’이라는 말을 좋아했고, ‘내가 어디까지는 할 수 있잖아’라는 의식을 갖고 살았습니다. 머릿속에 ‘호기심’과 ‘도전’이라는 단어가 약동하고 있으니 나이를 의식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일흔을 일컬어 종심(從心)이라고 한다지요? “마음을 따르라”,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도에 어긋남이 없다”라는 뜻인데, 저는 “아직은 조금 남았지만”이라고 해석합니다. 마음대로 한다고 해서 엉망진창으로 하는 게 아니라 그동안의 수많은 경험을 가지고서 결정을 내릴 때는 도에 어긋남 없이, 또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끼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을 해요. 국립현대무용단에 오게 된 것은 오랫동안 무용을 해왔고 무용계의 중심에서 있었기에 거기에서 쌓은 경험과 지혜를 토대로 무용단에 봉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마음을 따르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제 임기가 절반이 남았네요. 어떤 예술감독으로 기억되길 원하십니까?
교직에 있을 때 어떻게 마무리하겠다는 생각 없이 마지막 강의까지 최선을 다하고 끝냈듯이 무용단에서 주어진 임기 동안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나의 삶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어떤 감독으로 기억되었으면 좋겠냐고 할 때는 “춤을 참 사랑하는 예술감독이었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모든 예술감독이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 하면 할 말이 없지만, 누구 한 사람이라도 “그녀는 춤을 참 사랑했다”고 기억한다면 충분합니다.
2021.05.25(화) 오후 5시 | 국립현대무용단 예술감독실
인터뷰어_ 최해리(발간인, 무용인류학자)
녹취록 정리_ 윤주영(한국무용협회 파견 인턴사원)
사진제공_ 국립현대무용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