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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 예인들에게 바치는 오마주 그리고 다시 꾸는 꿈 -이명훈의 개인발표회 “무명무위지락을 꿈꾸다”


풍물굿이 농촌을 떠나 도시와 대학에서 융성하던 시절, 23살 청년은 어떤 생각을 품고 장구 하나 둘러매고 고창의 황톳길에 들어섰을까. 더 이상 하늘의 별이 길을 밝혀주지 않고, 별빛이 지도가 되지 않던 시대에 그는 무엇을 찾아 나섰던 걸까. 그 길에서 그는 누구를 만나고 무엇을 꿈꾸고 또 이뤘을까. 그가 전하는 30년의 스토리가 흥미롭고 그 성취가 놀랍다. 

 

이명훈의 “무명무위지락無名無位之樂”은 『채근담』에 나오는 것으로서 ‘명예와 지위 없는 즐거움이 참된 즐거움’이라는 것을 일러주는 말이다. 이름을 날리고 출세하길 원하는 보통 사람들의 꿈과는 참 많이도 다르다. 왜 이런 꿈이 화두가 되었을까. 공연의 시작과 함께 영상이 흐르고, 청년 이명훈이 황톳길을 걸어 굿의 길로 들어서고, 고창의 예인들을 만나는 장면이 한 장씩 한 장씩 펼쳐지니 비로소 알 것 같다. 그들의 이야기구나. 그들이 몸짓으로 가락으로 풀어내던 굿의 의미, 일터에서 당산 마당에서 펼쳐내던 굿의 신명, 그분들이 일러준 참다운 즐거움이 그거라는 거구나. 그들에게 배운 굿, 그들의 삶이 그렇다는 것일 터, 그렇다면 “무명무위지락을 꿈꾸다”는 그들이 꿈꾸던 참다운 삶의 의미를 다시 재현하고 싶다는 뜻일 것이다. 그러니 이번 무대는 그에게 굿의 길을 일러준 선생들에게 바치는 오마주인 셈이다. 

 

 

이명훈이 만난 굿 예인들이 누구길래 그토록 꿈꾸듯 그리는 것일까. 설장고 명인 황규언은 이명훈에게 고창굿의 멋과 흥청거림을 오롯이 전해준 인물이었다. 그는 또한 옛 명인들과 연결된 통로이기도 했으니 그를 통해 김만식의 장구가락, 박성근의 쇠가락 그리고 김학준, 김성락, 이봉문, 이동원 등 기라성 같은 예인들의 이야기가 이명훈에게 이어졌다. 또한 고깔소고춤의 스승들, 정창환, 유만종, 강대홍, 황재기, 박용하... 이 분들은 논밭에서 일하는 동작과 일상의 몸짓으로부터 춤이 비롯되었다는 것을 일러준 분들이었다. 그리고 쇠가락과 부포놀음의 진수를 알려준 나금추가 있었다. 나금추는 한 시절을 풍미하던 여성농악 최고의 스타였다. 이렇듯 숱한 예인들의 이름이 이명훈에게 들어왔다. 그러니 이명훈의 춤과 가락은 그 선생들의 몸짓이고 소리일 터, 그의 무대는 곧 그의 몸에 깃든 예인들의 놀이판이 될 것이었다. 

 

 

영상이 흐르고 설장고-교방굿거리춤-고깔소고춤-한량무-판굿-부포놀이가 차례로 펼쳐진다. 사회자의 해설 외에 이명훈과 그의 동료 연희자들은 단 한 마디도 하지 않는다. 30년 동안 이루어진 장대한 여정을 언어의 힘을 빌리지 않고 가락과 춤과 놀이만으로 표현해낼 수 있을까. 그것은 두 가지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하나는 몸속에 들어온 옛예인들의 가락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체화해서 ‘지 가락에 지가 미쳐서’ 놀아나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긴 기간 굿의 길에서 만난 동료들과 걸판지게 섞이는 것이었다. 굿을 보면서 이 둘이 교묘하고 절묘하게 어우러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특별한 장치나 연출이 있어 보이지 않는데도 무대에 오른 이들 모두가 ‘지들 가락에 지들이 미쳐서’ 놀았다. 그래서 각각의 공연이 순차적으로 또는 교차하면서 곡진한 굿의 서사시를 파노라마처럼 펼쳐 보였다. 

 

 

공연의 절정은 판굿. 무대에서 열네 명의 치배들이 점점이 늘어섰다가 휘감아돌고 엉켰다. 태평소가 길고 높게 신명을 돋우고 쇠, 징, 장구, 북, 소고가 눈비가 되고 바람이 되어 휘날렸다. 그리고 태풍의 눈에 든 것처럼 순간의 정적, 무대 뒤로 숱한 그림자들이 움찔움찔 춤추기 시작했다. 그들이었다. 굿 예인들이 열네 명 연희자의 몸에 실려 춤을 추었다. 그리고 객석을 향해 두 줄로 늘어서고 굿의 길이 났다. 여름날 뙤약볕의 황톳길, 풍물소리 가득한 논둑길, 넉넉하게 넘실대던 정월달의 걸립길, 여성농악단의 고된 유랑의 길이었다. 그 길이 이어지자 이제는 객석에서 두 팔을 치켜든 사람들이 들썩였다. 상쇠가 소고를 불러내고, 소고는 지 멋대로 놀다가 북을 끌어내고, 북은 장구를 부르고, 장구는 징을 불러서 춤을 췄다. 상쇠가 지휘하는 일사불란함이 아니라 각각이 파급의 주체였다. 지들 가락에 지들이 미쳐 노는 판굿이었다. 누가 시작했는지 어디로 향하는지 모를 즉흥의 굿판에서 부포가 피어오르고, 고깔과 오방의 색띠가 춤을 추었다. 꽃밭이었다. 이들이 꿈꾸는 무명무위는, 길에서 만난 사람들과 어우러지고 연대하는 굿판인 듯했다. 굿의 길에서 만난 사람들, 그 켜켜이 쌓인 인연들을 호명하며 몸 안에 담고 다시 열어가면서, 참된 즐거움, 참된 삶의 의미를 꿈꾸는 한바탕 꿈판으로 보였다. 

 

 

그렇게 굿이 끝났다. 하지만 어디 그것으로 끝나겠는가. 굿은 다시 시작될 것이다. 서사시의 시대가 이미 지났고 더 이상 하늘의 별을 보며 길을 찾지 않는다지만, 어디 그러겠는가. 그 길을 걸었던 이들이 다시 꿈을 꾸고 있으니 언제고 다시 길은 열릴 터, 무명무위지락이 어디까지 파급되었다가 되돌아올지 기다리고 있을 참이다. 참된 굿을 치는 사람들, 그들의 굿이 그립기 때문이다. 

 

글_ 이경엽(목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사진제공_ 고창농악보존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