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카트니(A. McCartney)는 예술과 음향 생태학적 세계에 대해 논하면서 소리를 내며 걷는 것(soundwalk)이 예술 실행의 하나이면서 동시에 이를 듣는 사람들, 나아가 그 장소의 유기체들을 포괄하는 음향 생태학적 세계, 달리 말해 소리 환경을 만드는 것이라 말한다. 우리가 농악을 다른 말로 풍물이라 하는 것은 맥카트니의 말과 비슷하게 소리를 내면서 걷고 뛰고 춤추며 듣는 사람들과 그리고 그 장소의 유기체들과 교류하는 음향 생태학적 세계이기 때문이다. 일반 용어로 풍물은 그저 내 몸 밖에 있는 구경거리나 풍경을 뜻하는 게 아니다. 풍물은 사람들이 보고 듣고 접하고 겪는 사물과 사건을 뜻하며, 또한 그 사물, 사건들과 함께 만들어내는 세상만사를 뜻하기도 한다. ‘물(物)’이란 객체적 존재만을 뜻하는 게 아니라 인간 존재의 인식 영역으로 들어와 격(物格)을 갖는 관계적 존재를 뜻한다. 그래서 그것은 세상만사의 이벤트를 벌이는 구성원이 되기도 하고 스토리를 입고 있는 것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농악을 일컫는 풍물은 단순한 물리적 음향, 몸동작을 수반하는 음향, 사람들이 우리 문화에 맞추어 아름답거나 신명난다고 규정한 ‘예술적’ 음향에 그치지 않는다. 객체적 ‘물’이 아닌 것이다. 풍물은 몸동작과 소리를 통해, 듣는 사람들과 그리고 그 장소의 유기체들과 관계를 맺고, 서로 다른 물성(物性)을 지닌 이 모든 구성원들이 세상만사를 소통하고 표출하게 되는 하나의 경험적 장(場)이고, 모든 구성원들의 ‘물’로서의 경험적 펼침이며 그래서 생태학적 세계이다. 여느 연행 예술이 세상만사의 한 켠 공간과 시간 속에 있다면 풍물은 그 세상만사 자체로부터 발생적이고 편재적인 존재양식을 취한다. 여느 연행 예술은 다분히 구어적(verbal)인 매체를 통해 의미 생산과 전달과 향유에 주력하는 이벤트가 된다. 풍물은 음향과 몸동작의 비구어적 매체를 통해 사람들 간에, 사람과 다른 유기체들 간에 다분히 감성적, 감각적 울림과 불러일으킴과 공명을 수행하는 이벤트가 된다. 풍물에서는 어떤 스토리나 의미보다는 세상만사의 감성적이고 총체적이며 통섭적인 깨달음이나 고양이 실현된다. 풍물의 신명 속에서 세상은 이렇게 아름답게도 저렇게 유장하게도 혹은 능청능청 휘어지고 구성지게도 통합적 감성으로 향유된다.
이렇게 길고 어렵게 풍물을 논한 것은 전북 고창에서 9월 1일까지 벌어지는, ‘이팝 : 신의 꽃’이라는 색다른 풍물굿 때문이다. 고창에는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물게 풍물의 문화복합(culture complex)을 구현하는 복합문화센터가 있다. 고창농악전수관이라는 평범한 이름이 붙어있지만 사실은 상당히 오랜 세월을 호남우도 풍물을 전승하고 익히고 연구해 온 고창 사람들의 복합문화센터이다. 여기서는 호남우도 풍물의 주요 갈래인 고창농악을 이루는 문화복합, 즉 풍물을 문화핵심으로 한 민중생활의 역사적, 사회적, 문화적, 예술적 틀이 연구되고 전시된다. 또한 풍물이 아랫세대에 전승되며 연희 마당을 통해 국내외 곳곳 사람들에 의해 향유되고 크고 작은 문화 교류가 이루어진다. 단지 물리적 하우스나 극장이 아니고 문화연구, 교류, 교육, 향유가 체계화된, 그래서 그 공간이 제값을 하는 지역문화의 거점이다.
한편으로 ‘이팝 : 신의 꽃’은 이 복합문화센터, 한옥으로 지어진 지역문화 공간에 대한 터벌림이기도 하고 성주굿이기도 하다. 바로 고창사람들의 생활사가 얽힌 이팝을 핵심 상징으로 하여 터벌림, 성주굿의 풍물굿을 전개한 셈이다. 그리하여 이 한옥 공간과 마당이 객체적 사물이 아니라 사람과 자연과 사물의 생태학적 연계를 이루는, 역사와 상징적 의미가 배어드는, 문화적 공간이 되었다. 한옥 공간이 이 풍물굿을 통해 제대로 문화적 인정을 받는 문화 리소스가 된 것이다. ‘이팝 : 신의 꽃’은 이 한옥 건축물과 마당 공간을 문화생태계로, ‘장소’로 창조적 승화를 이루어내는 문화실천의 하나이다. 이 공연은 고창농악보존회 사람들과 광주의 마당극 연출가 박강의 그리고 광주 신명극단 출신 배우들이 만들어냈다. 세시풍속으로서의 농사 관행과 의례와 놀이가 풍물굿을 통해 전개되는데 여기에 민중의 삶과 역사를 스토리로 펼쳐내는 마당극 양식을 무리 없이 결합했다.
옛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산천을 다니면서 마을을 다니면서 나무를 불러일으키고 뜨거운 여름작물과 인간 몸의 성장과 계절적 전환의 의례를 했다. 동네 샘물을 솟아나게 하고 집안 대청과 곳간과 측간과 장독대와 마당을 물활(物活)시키면서 그것들 속에 숨어 있으리라 간주하는 신격과 소통했다. 동네 마당과 시장 한복판에서 그들이 접하며 살아 온 장소, 그들의 세상을 온통 소리와 몸짓을 매개로 한 전체 풍경으로 만들고 세상만사의 생태학적 세계를 만들었다. 굳이 스토리가 필요 없고 그건 수많은 인물들과 사물들과 장소들이 함께 빚어내는 세계를 감성적으로 수용하고 향유하고 깨달으며, 희구하는 세상을 그려내면 되었다. 바로 그러한 옛 사람들 풍물의 감성 세계 정수가 “감성농악 이팝‘이라는 컨셉으로 새롭게 재창조되었다.
‘이팝’은 고창군 중산리에 있는 약 250년 나이 먹은 이팝나무에서 착안되어 이 풍물굿의 통합적 이미지 제재로 그리고 스토리 제재로 끌어들여진 꽃이다. 굳이 고창이라는 지역성이 아니더라도 이팝은 풍물굿의 제재로 충분했다. 그것은 풍물의 생태학적 기저인 밥, 농업, 농민생활사를 표상해 온, 우리 민중 삶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이팝은 쌀밥을 뜻한다. 호남지역 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이팝이란 말이 쓰였는데 이건 배고픈 민중이 꿈에 그리는, 하얗고 자르르 기름기 도는 사물이면서 동시에 희구하는 삶, 세상의 아름다운 모습이다. 이팝나무의 꽃은 입하 무렵에 피는데 꽃잎은 물론이고 나무를 온통 뒤덮은 모양이 꼭 소복한 쌀밥과 같다.
[사진] 민중적 삶과 언니의 복합 상징
[사진] 이팝꽃을 통해 언니를 느끼게 해주고 제 갈 길을 가게 된 가택신들...
그리고 이들과 함께 솟구쳐오르는 우도 풍물 풍류
이 공연은 이팝꽃을 사람들이 감성적으로 그려내는 이미지의 제재로 할 뿐 아니라 표현과 의사소통의 표상으로 세우고 있다. 하얀 쌀밥 같은 이팝꽃으로 세상의 이미지를 그리게 할 뿐 아니라 이팝꽃을 통해 풍물굿에 포함된 대부분의 작은 굿들의 테마를 표출하고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이다. 이 공연에 쓰인 풍물은 호남우도 계열의 고창농악이다. 뜬쇠들이 치던 우도 판굿의 여러 절차들이 공연 전체에 배치되어 있다. 그러나 이 판굿 장단들과 연희들은 그야말로 소리와 몸짓에 국한된다. 그 장단과 연희들을 소재로 하여 농민들의 몇몇 농경세시와 마을굿이 시계열(時系列)을 이루고 펼쳐진다. 그 작은 굿판들 여러 곳에 이팝꽃이 때로는 이미지 제재로 때로는 민중생활과 염원의 표상으로 구현되거나 내재된다. 이 농민의 일상적 세상만사를 드러내는 문화생태학적 세계에 생애사, 사건사(事件史)의 스토리가 삽입되어, 풍물굿의 시계열 펼침에 연극적, 서사적 펼침이 겹친다. 하나는 감성적, 총체적 향유와 깨우침이고 다른 하나는 의미론적, 해석적 사건 펼침과 이해와 향유이다. 이 전혀 다른 전개방식들이 공존하는 것은 판을 그르치는 첩경이다. 그러나 이 공연은 드라마 서사에 치중하지 않고 각각의 전개 국면들이 마치 서로 다른 그림들의 병풍처럼 이어지고, 그 그림들 간에 느낌이 상응하고 조응하게끔 하여 판을 그르치지 않았다. 예를 들어 첫 장면을 노년이 되어 집으로 돌아 온 동생이 빈 집에 갇혀 지내던 성주신, 조왕신 등 가신들을 만나는 것으로 처리한다. 이 가신들은 풍물굿에서는 음력 정월이나 추석 때 마당밟이에서 불러 일으켜지고 활성화되는 사물들의 종교적 표상들이다. 이어 노인의 어린 아이 때 언니, 아버지의 도움으로 기와밟기를 하는 세시풍속이 펼쳐지며 언니 손에 이끌려 이팝, 쌀밥을 먹게 되는 장면으로 언니와 쌀밥과 이팝꽃의 복합적 상징화가 이루어진다. 세시풍속으로서의 풍물굿 전개와 사건사로서의 언니와 동생 관계 그리고 쌀밥, 이팝을 통한 복합적, 다성적(多聲的) 상징화가 판을 풍요하게 만든다. 농사 절기에 모내기 풍장(풍물), 김매기 후 만드리(호미씻이) 등이 이어지고 만드리에서는 이팝꽃의 이미지, 그리고 유사 상징으로서 하얀꽃으로 장식한 어사화를 쓰고 농사장원 놀이를 하는 농민세상 구가의 이미지들이 펼쳐진다. 이 국면은 일제 하 풍물 악기를 징발하고 사람모이는 것을 금지하던 시절 농민들이 두려움에 판을 거두는 것으로 반전되고 언니가 정신대에 끌려가 이후 행방을 모르게 되는 스토리로 이어진다. 마지막은 노년의 동생이 이팝꽃을 마당 한 곳에 모실 때 그녀가 알지 못한 채 언니가 나타났다 사라지는 이야기 그리고 이후 풍물꾼들이 민중생활의 결기를 나타내듯 정연하게 열을 지어 오채질굿을 치고 점차 강렬한 오방진으로 판을 역동화시키는 과정이다. 마음이 편해진 동생이 가신들에게 큰 굿판을 만들어 그 집에서 벗어나 제 길을 가게 하고, 이팝꽃 노래가 깔린다.
이 모든 과정을 보면 풍물과 농사와 세시풍속과 그 속에 담긴 온갖 사물들의, 세상만사의 감성적 향유와 표출과 문화생태학적 교감 전개가 있고, 한 가족의 수난과 민중생활사의 수난이 담긴 사건사적 전개가 있다. 그런데 이 두 가지 전개가 갈둥하지 않는 것은 사건사적 전개가 설명적인 드라마가 아니라 옴니버스 방식의 판놀이로 되어 있고 그것이 풍물의 판놀이와 조응하기 때문이다. 서로 툭툭 끼어들면서 서로 다른 그림들이 병풍으로 이어지듯 그리고 의미 위주의 표현보다 감성적 표현과 이미지들이 계속 불러 일으켜지면서 연극보다는 풍물굿다운 연희를 조성했다.
[사진] 부포에 실려 노니는 꽃잎과 바람과 춤
풍물을 장단이나 몸짓의 기량 혹은 풍습적 절차에 얽매여 평하지 않고 미학과 세계관과 삶의 희로애락 국면들을 놓고 평하게 되어 이 공연이 좋다. 몇 십 년 동안 직접 연희를 하지 못하고 과문했던 탓인지 이러한 평을 할 수 있는 공연은 2010년 무렵 전남 해남에서 벌어진 풍물들에 불과했다. 그러던 중 이팝꽃을 상징으로 한 소리와 몸짓의 생태학적 세계, 문화세계, 미학 그리고 민중생활사의 전개를 만나게 되어 본질을 두고 평을 시도하게 된 것이 고맙기만 하다.
“발바치 맴채 종종채로 간다”는 말이 있다. 호남우도 풍류 장단과 몸짓을 익힐 때 입에 담는 구음 같은 것이다. 굿거리는 3박자계를 유장하게 그러나 또박또박 전개하지만 같은 계열의 풍류는 첫 3박자의 첫머리 2분박을 강하게 하고 발을 받쳐 올리며 몸을 띄운다. 그 다음 몸을 낮추며 빙그르 한 바퀴 돈다. 이것이 ‘맴채’이다. 다음 종종걸음으로 나머지 장단들과 함께 걷는다. 이 풍류가 몸을 덩실 띄우면서 그윽하게, 그러면서도 호남지역 말로 ‘귄’이 있는 잰걸음으로 이어지는 미학을 낳는다. 그 세세한 미학이 공연에서 드문드문 잘 표출되는 것을 보았다. 이는 사람들을 풍성하고 소담하게 끌어들이고 앞으로 전진하는 민중의 모습이다. 마지막 오채질굿은 본래 긴 여정을 떠나는 유장한 길굿의 미학에 더하여 민중의 수난과 애환이 풀어지는 것을 다시 담아 결연하게, 뚜벅뚜벅, 천천히 호흡을 몰아가는 모습을 연출했다. 이 공연에서 풍물은 소리와 몸짓으로 감성을 그리고 세상만사의 총체적 느낌을 표현했다. 장단과 기량 그리고 집합적 신명이라는 몇마디 개념과 말로 묘사하기 어려운, 본연의 풍물 세계를 이 공연이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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