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여러 무용가들과의 작업을 통해 주목받다가 홀연히 미국으로 떠나 성공적으로 입지를 굳히고 유명한 발레마스터나 안무가들과 영역을 넓히고 있는 인물이 있다. 그가 바로 컴플렉션 발레단(Complexions Ballet Company)에서 부예술감독, 전속안무가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주재만이다. 그는 2009년 연극, 무용, 영화에서 뛰어난 재능과 기량을 발휘한 유망주들에게 수상하는 PGA(Princess Grace Award)를 받기도 했다. 이는 모나코 왕비였던 그레이스 켈리를 기리기 위한 재단에서 수여하는 상이다. 이번에는 와이즈발레단과의 작업을 위해 오랜만에 방한한 주재만을 만나 그 활약상과 인간적인 면모, 무용에 대한 애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 |
A. 어려서부터 춤 자체를 사랑했고 첫 시작은 발레였다. 이후 대학진학을 위해 안은미 선생님께 현대무용을 배웠고 이때부터 무용에 대한 눈을 뜨게 되었다. 단국대에 진학하면서 여러 안무가들과 무용수로서 작업을 하게 되었고 육완순 선생님과의 만남이 실력과 보는 눈을 기르는 바탕이 되었던 것 같다. 1996년도에 미국으로 갔고 수업하는 모습을 보고 발탁되어 2달 만에 컴플렉션 발레단에 오디션도 없이 입단하게 되었다. 세계적인 안무가 이갈 페리(Igal Perry)에게서 오랜 수업을 받았고, 컴플렉션 발레단, 발레 히스파니코에서 활동했다. 현재는 컴플렉션 발레단의 발레마스터를 거쳐 10년 정도 그곳에서 전임안무가로 활약하다가 지금은 조감독으로 있다. 이 발레단에서 6개의 작품을 안무했는데 당시 유명한 조이스극장에서 신작을 하게 되어서 행복했던 기억을 갖고 있다.
Q. 무용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A. 형제들은 공부를 했으나 나는 어려서부터 음악 듣고 춤추고 것을 좋아했다. 중학교 때부터는 피아노와 미술을 했으나 실패하고 어머님 친구 분 딸들이 무용을 많이 해서 어머님 따라 무용학원에 갔다가 고등학교 올라와서 발레를 시작했다. 광주 엄영자 선생님에게 배웠고 광주고등학교 시절, 수업이 끝나면 바로 무용학원으로 향했다. 당시 남자가 무용하는 것이 흔치않았던 시절이었기에 더 책임감을 느끼기도 있었다. 고3때 대학진학을 위해 현대무용으로 전공을 변경했다.
Q. 와이즈발레단과의 작업과 컨템포러리 댄스에 대한 견해는?
A. 사실 한국에 돌아와서의 첫 안무이기도 하고 한국무용수들과의 첫 작업이라 긴장을 많이 했다. 그러나 와이즈발레단 무용수들의 적극적이고 열심히 하는 모습에 같이 즐기고 교류하자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고, 그들이 변화되고 발전하는 모습을 보면서 보람을 느꼈다. 또한 무대에서 그들의 솔직함이 보여 좋았고 발레단의 기획력과 추진력이 돋보였다. 컨템포러리 댄스에 대해서는 지금 행해지고 있는 모든 무용이 컨템포러리 댄스이므로 예를 들어 하나의 컨템포러리 발레단이지만 그것은 그 사람의 컨템포러리 발레라고 말하고 싶다. 그렇게 생각하자면 결국 컨템포러리 댄스란 무한정이라고 본다.
Q. 본인의 안무철학에 관해?
A. 난 늘 정서적인 면과 인간적인 면을 강조한다. 발레의 선과 정서, 기교도 중요하며 이는 몸의 역사를 담고 있다. 안무는 무용수를 밝혀주는 역할을 해야 하며 둘은 상호보완의 기능을 한다. 더불어 시각적이며 정서적인 것이 갖춰진 발레의 전통적 기본들이 현대적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이것을 겸용하는 것을 추구하며, 나는 내 작품을 감상하는 재미를 즐긴다. 본인이 재미있어야 관객도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하며 서로를 상상으로 바꿔보는 작업을 좋아한다. 내 작품에는 인간미, 인간간의 관계가 아주 중요하다.
Q. 한국의 무용가들이 해외로 진출하는데 선배로서 조언해주고 싶은 것이 있다면?
A. 무척 힘들지만 두려움 없이 열정을 갖고 꿈을 실행으로 옮겼으면 한다. 문을 열고 무조건 나가라. 인생에서 내가 할 수 밖에 없는 춤과 하나가 되는 단계에서 하나의 문을 열면 다른 문도 열린다. 실패해도 한 번 더 시도하고 추진하길 바란다. 한국의 무용수들은 집중력이 좋고 취미가 아니라 전문성을 갖췄기에 외국에서도 선호한다. 더불어 한국의 현대무용계도 사회적 힘을 모아 발레처럼 일반인들이 좋아할 수 있도록 대중성을 갖추면 그 길이 더 용이하게 열리고 더욱 발전할 것이라 본다.
Q. 근황과 앞으로의 계획은?
A. 나는 낙천주의자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편이다. 늘 바쁜 시간을 보내왔지만 이번 와이즈발레단의 작품안무로 스스로에게 시간을 주는 계기가 되었다. 미국으로 돌아가서는 지금처럼 이갈 페리 스튜디오와 맨하턴에서 발레티칭을 계속 할 것이다. ABT나 뉴욕시티발레단, 한국에서 온 교수님들, 일반인들도 내 발레수업에 많이 참여한다. 앞으로도 무용단에서의 안무와 지도, 객원으로서의 안무, 발레수업 등 바쁘지만 지속적으로 진행하면서 미래에 내 이름의 발레단을 꿈꾸고 있다. 또한 계속 배우는 자세로 다양성이 존재하는 미국에서 도전적인 모습을 보이며 예술적인 방향성을 잡고 있다. 기회가 된다면 한국에서의 워크샵을 진행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
인터뷰‧글_ 장지원(무용평론가, 한국춤문화자료원 공동대표)
사진_ 주재만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