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역사기록학회는 여러 학술분야에서 학회들이 통합을 통해 보다 발전적 모색을 추구하던 흐름에 발맞춰 2014년 한국무용사학회와 한국무용기록학회가 통합하여 설립된 무용학회다. 이후 단순한 규모의 확장뿐 아니라 다양한 학술활동, 국내외 정보교류 등과 같은 내실을 다져왔다. 여러 사업들 중에서 가장 두드러진 대내외 사업으로서 국제학술심포지엄은 올해 하반기에 제20회째를 맞이하였다.
무용역사기록학회에서 개최하는 제20회 국제학술심포지엄은 제27회 전국무용제와 연계하여 2018년 8월 31일 충북 청주예술의전당 대회의실에서에서 개최되었다. 한경자 무용역사기록학회 회장의 인사말을 시작으로 조남규 한국무용협회 이사장과 류명옥 한국무용협회 충북지회장의 축사가 이어졌으며, 이후 기조연설과 발제 그리고 토론이 펼쳐졌다.
국제학술심포지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장장 8시간에 걸쳐 3개의 섹션으로 나뉘어 진행되었다. 섹션1은 최해리 한국춤문화자료원 이사장을 좌장으로 ‘전쟁 시기 춤 텍스트의 재해석’, 섹션2는 조기숙 이화여자대학교 교수를 좌장으로 ‘갈등과 분쟁의 표현과 기록’, 섹션3은 김경숙 한국무용협회 문화정책연구실장을 좌장으로 ‘몸과 춤의 정치학’이란 주제로 진행되었다. 각 섹션마다 3명씩 전체적으로 총9명의 학자가 발제를 맡았는데, 섹션의 주제에 따라 시대와 사회를 통해본 춤에 대한 학제적 관점을 내놓기도 하였으며 섹션의 주제에 연연하기보다 특정 춤 현상과 현장에 대한 자기만의 견해를 내놓기도 하였다. 본 논고에서는 해외초청학자들의 논의를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하고자 한다.
우선 기조연설로 이자키 야오이 오차노미즈 여자대학교 부학장은 「전후 변화하는 일본의 현대무용-과거, 현재, 미래」를 발표하였다. 일본의 현대무용의 개척자로는 1910년대 등장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이시이 바쿠가 언급되었는데 그는 여러 창작활동과 함께 후진양성으로서 큰 기여를 하였다. 태평양전쟁 시절에는 위문공연 이외의 무용은 금지되다시피 하였으며 전후의 무용은 현대무용과 발레 무용가들의 합동무용제로부터 시작되었다. 1950년대는 미국의 모던댄스가 유입되어 큰 자극을 주었는데 이때 모던댄스라는 용어가 일본 내에서도 확립되었다. 1960년대부터는 미국의 마사 그레이엄 스타일의 모던댄스의 영향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노선을 걷는 무용가들이 등장하였다. 1960년대 히지카타 타츠미에 의해 탄생된 부토는 ‘일본인의 신체로 만들어내는 독자적인 표현’으로써 새로운 무용형식을 구축하였다. 1980년대 프랑스 누벨당스의 영향은 이어지는 1990년대에 컨템포러리댄스라는 세계 무용경향에 대한 빠른 동승을 가능케 하였다. 이렇게 볼 때, 일본에서 현대무용은 모던댄스와 컨템포러리댄스 그리고 부토까지를 아우르는 용어로 이해되며 현재에 이르러서는 여러 장르와의 콜라보레이션을 활발하게 행하고 있는 추세다.
‘섹션1 전쟁 시기 춤 텍스트의 재해석’에서 우미말라 사르카 세계무용연맹 아시아‧태평양 회장은 「전쟁 중 전쟁의 주체들-공연하거나 아니면」을 통해, 인도의 대서사시 마하브라타 중에서 드라우파디 이야기가 연극이나 무용으로 공연화됨으로써 두드러지게 나타난 ‘여성에게 가해진 폭력’이라는 이슈와 그것이 사회적으로 소외되어버리는 현상에 대해 예리하게 논평한다. 인도의 아라비안나이트에 해당하는 마하바라타는 많은 인물들이 복잡하게 얽힌 대서사시다. 드루파트 왕의 딸인 마하바라타는 신랑감 고르기 대회에서 선택된 판다바 형제 중 한 명인 아르주나에게 시집을 가게 된다. 하지만 그녀의 뜻과는 전혀 상관없이 일방적으로 다섯 형제 모두의 아내가 되어버린다. 여성에게 있어서 권리라는 말 자체가 허용되지 않는 인도의 사회 풍조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더군다나 마하바라타의 에피소드 중 가장 인기있는 대목은 그녀가 판다바의 라이벌 가문 형제들에 의해 여러 사람들 앞에서 옷이 벗겨지고 모욕을 당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이는 아주 먼 옛날이야기일 뿐은 아니고 유사한 사건들이 끊임없이 있어왔다. 21세기의 인도에서도 여전히 여성에 대한 불합리하고 폭력적인 상황들이 벌어지고 있으며 여성 피해자로서의 드라우파디들은 국수주의적 정치 선동에 의해 소외되거나 제거되고 있다는 점에서 충격마저 불러일으킨다. 사실상 우리나라에서도 놀랍도록 극렬하게 불러 일어났던 미투 사태들이 점차 다른 이슈들에 밀려 사회적 관심에서 멀어지고 남성 ‘권력(power)’에 의해 반격당하고 있다는 점에서 동질적인 씁쓸함을 남긴다.
에밀리 윌콕스 미시건 대학교 조교수는 「파괴 속의 창조-항일전쟁이 초기 중국무용의 탄생에 미친 영향」에 대해 발표하였다. 1937년부터 1945년까지 항일전쟁 시대에 여러 예술가들의 초국적이고 초지역적인 움직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녀에 의하면, 중국 국가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춤 장르인 중국무도(中國舞蹈)가 중국 근대 역사상 가장 끔찍했던 전쟁 중에 탄생한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라고 한다. 항일전쟁 당시 첫째 영향력 있는 예술가들이 국가나 지역 간 이동으로 새로운 형태의 간문화적 협력이 일어났으며 둘째 국가와 관련된 자신에 대한 새로운 이해들이 형성되었으며 셋째 전쟁이라는 맥락에서 장소와 공동체에 대한 새로운 경험이 일어난 것이다. 이를 통해 새로운 표현 형태의 안무들이 활발하게 나타났고 이것이 곧 중국무도가 하나의 예술 장르로 출현하게 된 근간이 되었다. 이렇게 탄생한 중국의 무용들은 전후 시대 강력한 국가의 상징으로 부상하였다.
‘섹션2 갈등과 분쟁의 표현과 기록’에서 야틴 린 국립대만예술대학교 교수는 「린 화이민의 사회적 안무, 포모사 관어도서 고백의 편지」란 원고를 통해 대만을 대표하는 클라우드 게이트 댄스시어터의 창립자이자 예술감독인 린 화이민의 <포모사>(2007)란 작품에 대해 열성적으로 소개하였다.
‘섹션3 몸과 춤의 정치학’에서 데릭 베릴 UC리버사이드 교수는 「거두어 가는 손-고문의 안무」에서 테러와의 전쟁, 9‧11 테러, 미국 군사 정책의 10년간의 주요 부산물은 고문의 정상화와 함께 영화, TV, 비디오게임 등에 그러한 표현의 편재성을 심어놓았다고 한다. 본 연구를 시작한 이래로 5년 동안 적어도 한 번 이상 고문 장면을 다루는 150여 편의 TV프로그램을 발견할 수 있었으며 특히 신체, 육체성, 고통을 이해하는 방식에 있어서 문제가 많다고 한다. 물론 무용가들도 보다 훌륭한 예술을 추구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고문하기도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고문은 그러한 개념이 아니다. 여기서 그가 말하는 고문이란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목적을 가지고 행하는 것, 즉 특정한 하나의 목적 또는 다수의 목적을 가지고 타인에게 가하는 체계적이고 의도적으로 연출되어진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고문의 묘사는 아날로그 피험자(살아 숨 쉬는 존재)를, 객체화된 이상적이고 완전한 군인이자 민간인이면서 종속된 대리인으로 또는 테러리스트의 인간성이 말살된 몸으로 서서히 변형시키는 방식으로, 어떻게 전쟁이 피험자의 담화와 행위로 기능하는지를 보려주는 암호로서 전적으로 강력하다’고 한다. 이러한 시스템에서 전쟁 비디오게임을 예로 들면 아바타로서의 몸은 실제 몸과 동등한 가치를 지닌 것으로 표현되며 그 자체가 국가적, 국제적 폭력의 논리의 확장으로서 폭력의 산물인 것이다.… 이것은 자본주의의 논리적 종단점으로 기능한다. 파시즘, 홀로코스트, 대량학살, 기후변화, 성매매 등은 예전부터 공존해왔고 여전히 공존하고 있다. 따라서 (쾌락을 위한) 고문 역시 자유시장 민주 자본주의의 자연스러운 산물일 수밖에 없다.… 인간은 다른 이에게 고통을 가해서는 안된다는 기본적인 인권과 그 인권에 대한 침해를 근거로 주어진 고문 명령에 저항할 수 있는 효과로 이어질 수 있다. 마지막으로 그는 안무에 잠재적으로 파시스트적이거나 권위주의적인 무언가가 있다는 은밀한 의심을 해왔다고 한다. 다른 모든 창조의 행위처럼, 안무의 행위 또한 그 제체에 파괴의 씨앗을 품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부분적으로 사실이라면 모든 이들은 대부분의 사람들 보다 고문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으며 그 몸 안에 죽음의 씨앗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국내 발제로는 섹션1에 장지원의 「포스트모던댄스에 나타난 민주적 성향에 관한 연구」, 섹션2에 김재리의 「불완전한 몸-한국 군대제도와 춤에 관한 안무적 다큐멘터리」와 권혜경의 「독재정권기 극장건립에 나타난 국가주의적 민족주의」, 섹션3에 장순향의 「촛불정국 문화운동의 춤의 방향」과 김채원의 「춤, 대중문화로서 시국을 춤추다!」가 있었다.
이번 국제학술심포지엄에서 가장 인상적인 발제는 아이러니하게도 불참한 데릭 베릴의 원고였다. 암투병을 하고 있는 그는 비행기에 오르기 직전에 상태가 심각해져서 참석하지 못했는데, 현시대에 일어나는 고문과 같은 극단적 부조리를 방대한 철학적 사유로 풀어내는 통찰력 있는 원고로서 청중으로 하여금 자각과 재고를 이끌어냈다. ‘여성에게 가해진 폭력’에 대한 인도 사회의 과거와 현재의 상황을 예리하게 논평한 우미말라 사르카의 원고 역시, 이것이 비단 인도만의 문제가 아닌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형태를 일어나고 있음을 되새기게 한다. 한편, 해외학자들을 초청한데다가 장시간 진행되는 국제학술심포지엄에서 특정 성취에 대한 사적인 소개 발언이나 이념에 대한 설득력이 떨어지는 주장은 청중을 지치게 할 수 있으므로 지양해야 할 것이다.
글_ 춤비평가 심정민
사진_ 무용역사기록학회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