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4일부터 5일까지 <2018완도 생태학과 문화 국제학술심포지엄>에 관련된 생태예술(EcoArt) 필드워크와 라운드테이블에 참가하기 위해 모처럼 숲과 바다가 함께하는 생태예술섬 완도(莞島)를 방문했다. 생태계의 몸짓, 상징적 존재들과 어우러진 일상을 같이 하는 일정이었다. 그중에서도 완도의 구계 등 바다의 생명맞이 ‘갯제’를 같이 할 수 있었던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었다.
그 옛날 바닷가에서 이름 알 수 없이 죽어간 사람들에게 음식을 바치는 의례인 ‘헌식(獻食)’에 참여한 것도 행운이었다. 신성공간인 ‘당숲’에서 나와 사람들이 오가는 일상 공간 바닷가에서 헌식하는 일을 완도 정도리마을 사람들은 ‘거랫제(거리제)’라고도 했다. 그 모습은 짚으로 엮은 작은 배에 음식을 실어 바다에 띄우고 정도리 사람들과 구계 등을 방문한 뭍에서 온 여러 사람들이 함께 하도록 수많은 갯돌 상차림과 배 띄우기, 음복(飮福)과 음식나눔으로 조화로웠다. 바다 속 신격과 이름 없는 사람들과 뭇 생명에게 나를 바치고 보내는, 그로써 자연과 죽은 자와 산 자들이 의례적 거래를 하고 나눔을 같이 하는 소박해보이지만 의미가 큰 의례로 보였다. 정도리 구계등에서 함께하는 생태적, 종교적, 이름하여 공동체적 실천나눔으로도 볼 수 있었다.
130년 전 해남 미황사 신도들의 완도섬 순례는 청산도 풍랑 속 죽음으로 끝난 역사가 있다. 지금의 완도사람에게는 역사적 사건뿐만 아니라 자연과 공동체의 ‘들여다보기’에 대한 향수로도 여겨진다. 첫 날 부추림 당숲에서는 이방인인 무용수들이 ‘몸으로 느끼고 춤으로 되돌려갚기’라는 의식을 보여주었다.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의 김보람(완도 출신) 연출가와 5명의 무용수들이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일상을 자연 속에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까’를 스스로 질문하고 생태계와 어울리는 몸짓의 상징적 교환무대를 꾸며 의미 있는 시간을 만들었다. 이러한 구계등 해변에서의 생태와 예술가의 만남은 매우 신선한 시도로 다가왔다.
이외에도 구계등 숲과 해변을 대상으로 한 ‘감각작업으로써의 미디어퍼포먼스’도 곁들여졌는데, 하얀달을 운반하는 행렬이 바닷가를 향하며 먼발치의 익명의 이름들과 만물의 이름들을 새기며 바다로 바다로 향하는 퍼포먼스였다. 일몰 저녁 어스름의 분위기와 절묘하게 어울리며 흥을 더했다.
이튿날 생태문화전문가모임이 열렸다. 비가 오는 관계로, 생태예술 워크숍이 열릴 예정이었던 보길도 윤선도원림은 가지 못했지만 생태문화 전문가들은 이 학술워크숍을 다양한 의견을 표출하고 소통하는 라운드테이블로 가졌다. 이름 하여 생물권 보전지역의 동향과 문화예술로 생태적 삶의 질을 높이기를 위한 방법을 각자 자유롭게 피력했다.
‘완도의 숲과 길’ 그 자체를 놓고 생태계와 공간, 각자 몸의 일깨움을 살펴보는 다양한 이야기가 오갔다. 그 중 ‘생물권 보전지역 동향’에 대한 발표가 있었다. 유네스코가 정한 이 생물권 보전지역은 인간과 생물권 프로그램의 중요요소이고 이를 실행하는 공간이며, 놀랍게도 현재 122개 나라 686개 생물권 보전지역이 국제적으로 네트워크를 이루고 있다고 한다. 이 생물권 보전지역은 지역의 생태적 가치뿐만 아니라 문화적 보전과 활용에도 중점을 두고 있었다. 그 사례로 문화와 생물다양성의 연계, 지속가능한 전통지식의 역할, 원주민의 전통적인 삶의 방식과의 연계 등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편 지역생태문화자원의 다양하고 창의적인 활용은 청년, 전문가 등 외부사람들의 유입과 참여, 노령자와 은퇴자들의 공동체 활동 등으로 보전지역 내에서의 새로운 문화적 접근과 활동사례들이 점차 늘어가고 있다고도 했다.
완도출신으로 (사)섬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는 강제윤 시인은 이번 학술대회에서 논문이 아니라 시와 영상으로 발표를 했다. 신선한 발상이었다. 완도에서 살아온 원주민 나그네가 발표한 이 영상은 오랫동안 간직한 사진, 시, 인터뷰를 바탕으로 영상전문가 유신성 감독이 만들었다. 제목은 ‘완도 섬들의 사람과 풍경’이다. 목포대 고고문화인류학과 조경만 교수의 제안을 받아 일전에 한 번 소개한 것을 기반으로 이번 학술발표에서 10분짜리 영상으로 만든 것이다. 매우 서정적이고 의미 있는 사진과 시인의 글과 영상전문가의 편집이 어우러져 짧지만 많은 참가자들에게 감동과 사유를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이 밖에도 유기쁨, 황윤, 조성용, 제종길, 윤여창, 배철지, 유영업, 정희섭, 김원자, 윤정현 등이 라운드테이블에서 완도 생태계와 삶의 발전을 위한 각자의 탐구 및 의견을 활발히 제시했다.
이 모든 것이 이뤄진 장소인 장보고기념관 주변의 비 내리는 모습은 마치 대지의 축복을 누리는 것 같은 상서로운 느낌이 들었다. 생태계의 발육을 위한 단비를 바라보며, 숲과 바다, 완도의 문화생태계들의 다양한 이야기들의 의미가 더 크게 다가왔다. 이틀간의 완도 생태예술 행사는 생명을 기리는 지혜를 다시 한 번 모았을 2018년 11월 <생태문화 국제학술심포지엄>의 전제로서, 생태예술에 대해 심도 있게 생각해 볼 수 있는 유익한 자리였다.
생태예술(EcoArt)라는 개념은 1990년대 서구에서 창안된 것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2010년대 초부터 한려수도 해안지방의 생태예술 연구와 실천의 선구자들이 학술적으로 표현하고 노력한 것이 주춧돌이 되었다고 한다. 생태계와 인간의 미래에 대한 지혜를 나누고 지속가능한 삶과 지역사회의 문화실천에 대한 것으로서, 생태계와 문화의 통합적 사고와 실천을 추구해야 하는 생물권 보전지역의 면모와 실상을 보여준 것만으로도 이번 10월 4일과 5일의 완도에서의 생태학과 예술의 만남은 매우 뜻 깊게 생각한다.